제2차 팔루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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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팔루자 전투
معركة الفلوجة الثانية
Second Battle of Fallujah / Operation Phantom's Fury

이라크 전쟁의 일부
2004년 11월 7일 ~ 12월 23일
장소

파일:external/442322dbca99b3c5d94712efe2ddb9e8bc44af151b2ccb69f4ee2e7fce1fd5bd.jpg
전투중인 다국적군 소속 미 해병대원들
교전국 및 교전 세력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이라크|

이라크
display: none; display: 이라크"
행정구
]]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이라크 알카에다
이라크 이슬람군
안사르 알순나
1920년대 혁명여단
지휘관
파일:미국 국기.svg 키스 J. 스탈더
파일:미국 국기.svg 리처드 F. 네이톤스키
파일:영국 국기.svg 제임스 코원
파일:지하드 깃발.svg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병력
미군 10,500명
이라크군 2,000명
영국군 850명
3700~4000명
피해
107명 전사
1,500~2,000명 전사
결과
미국, 영국, 이라크 연합군의 승리

1. 개요
2. 상세
3. 기타



1. 개요[편집]


2004년 11월 7일부터 12월까지 벌어진 미군, 이라크군, 그리고 영국군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이라크의 이슬람계 반군과 벌인 전투이다.


2. 상세[편집]


미군의 작전명은 ‘유령의 분노’(Operation Phantom Fury / Operation Al-Fajr تسمى أيضا عملية الفجر). 2차 팔루자 전투에서 미군 10,500명, 영국군 850명, 미국이 주도해 창설된 이라크 정부군 2,000명도 동원[1]되었으며 이라크 정부는 민간인들에게 팔루자로부터 대피하라며 권고 방송을 했고 그 영향으로 팔루자 거주 90%의 민간인들이 소개되었다. 그렇게 민간인들이 대거 빠지자 3700~4000명 규모의 반군이 빈집이 된 건물들을 요새화 하며 미군 주도의 연합군에 저항했다.

다만 유일신과 성전을 비롯한 극단주의 테러단체 조직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현지인들로 구성된 무장세력들이나 친바트당 무장세력. 그들에게 고용된 뒤 갈 곳 없어진 외국인 지원병들만 남았다.[2] 그들이 직접 인질참수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니었으나 반미, 반서방감정으로 직간접적으로 동조 혹은 협력한 건 사실이었고, 또한 팔루자에게 저질러진 만행 때문에 당장 미군이나 영국군이 살려준다 해도 결국 이라크 정부에 의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는 걸 본인들이 잘 알고 있어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미군과 영국군 또한 이번에는 대규모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팔루자 시를 점령하여 반군을 무력화시킬 각오로 전투에 임해서 결국 죽고 죽이는 혈전이 한 달 내내 벌어졌다. 어찌나 치열했던지 상대하던 미 해병대가 1968년 베트남 전쟁시기 후에 전투 이후 가장 격렬했던 시가전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

이 전투에서 미군, 영국군, 이라크 정부군 등 연합군 107명이 전사했고, 이라크 이슬람 반군은 1,500~2,000명이 전사했다. 민간인은 8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팔루자 시내의 모스크 200여개 중 60여개가 파괴됐고, 5만채의 건물 가운데 1만채가 완전 파괴됐으며, 남은 건물의 3분의 2가량도 큰 손상을 입었다. 이라크 이슬람 반군은 결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압도적인 미군과 영국군의 공격과 화력전을 당해낼 수 없었고, 미군과 영국군 몇 명 죽이면서 반군들은 최소 수십명씩 죽어가며 분쇄기마냥 갈려나가는 불리한 전투가 끝없이 이어지자[3] 저항의지를 포기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항복한 자들은 거의 없었고 탈출에 실패한 자들은 대부분 팔루자 주민들이 숨겨준 사례를 제외하면 모두 잡혀 죽었다. 이후 미군은 게릴라전을 계속 치렀는데 반군 조직이 붕괴되어 대규모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소규모 순찰조가 여러번 전멸하는 등 피해가 누적되었다. 결국 2007년 이라크군과 정부에 팔루자의 지배권을 넘겼지만, 이라크 내전이 터지면서 2013년 말 ISIL이 이곳을 점령해 버렸다. 이후 제3차 팔루자 전투로 이어진다.

하지만 두 차례의 팔루자 전투는 이라크 반군의 기를 제대로 꺾어놓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미 본토에서 실전같은 훈련을 거쳐 정예군 수준의 미군과 영국군인데다 미군과 영국군의 선진적인 조직력과 전술적 능력이 압도적이라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전투를 하는 꼴이었던데다 기껏 공격할 기회를 잡아도 미군과 영국군의 헬멧 착용과 고간까지 보호하는 고성능 중장 방탄복 때문에 미군과 연합군 병사들에게 유효타를 먹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령, 미군과 영국군은 수류탄이 근처에서 터져도 운이 좋으면 OTV인터셉터, MTV, 오스프리 Mk.1,2 같은 튼튼한 고성능 MOLLE 시스템이 적용돤 군용 방탄복 덕택에 팔다리에만 부상을 입고 살아남을 수 있었고, 반군 저격수가 미군 하사의 머리를 정확히 맞힌 적이 있으나 헬멧이 관통되지 않아 기절하는 수준에서 끝나 무사히 전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4] 가뜩이나 체격과 체력, 건강 관리 상황도 좋아서 어지간한 부상으로는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없는데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부위는 우수한 방어구로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으니 반군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결국 반군 지휘부에게서 미군과 영국군을 상대할때 유일하게 노출된 얼굴만 노리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는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얼굴만 노려 쏘라는 건 미군 특수부대한테도 하기 힘든 주문이다. 미군과 영국군 등의 연합군이 표적마냥 가만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살려고 은엄폐하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포복전진하고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훈련한 정밀 대응사격을 가하며 발악을 할 텐데, 그런 상대를 대상으로 얼굴을, 더 정확히는 즉사를 노릴 수 있는 얼굴의 T존을[5] 저격하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일반 반군 병사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가전은 매복이나 건물을 이용한 지형 등 의외성과 변수가 너무 많아 이를 잘 이용하면 전투력이 약한 쪽이 전투력이 강한 쪽이라도 그나마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장 환경인데, 그런 환경에서 싸웠음에도 조직력과 훈련도도 미숙한 이라크 반란군이 2,000여명이나 사망할때 미군은 단지 90여명만 사망했다. 특히 전투의 주역이었던 미 해병대는 20인치 총열의 무식한 길이와 무거운 무게에 신축식 개머리판도 없고 전자동 사격도 안 되는 단발-점사식의 제식소총인 M16A4, M16A2 소총을 주로 썼기 때문에, 반군의 16인치 총열의 전자동 AK소총에 비해 실내 소탕전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 등에서 총열이 드러나거나 문턱이나 가구 등의 장애물에 걸리는 등 적잖이 불리했을 것인데도 이랬다. 이 전투에서 자신들의 보급 사정이 허락하는 장비로는 미군과 영국군 등의 다국적군 이교도들을 사살하기 어렵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면서 이후 이라크 무장세력들은 미군 및 다국적군과 정면으로 맞붙는 것을 포기하고 미군과 다국적군의 소규모 정찰조 및 차량화보병진으로 이루어진 정기순찰 임무를 하는 패트롤 병력을 대규모 병력으로 습격해 핀 다운[6] 상황을 만들어 몰살시키거나 급조폭발물(IED)로 이동 대열을 공격하는, 말 그대로의 순수 게릴라전으로 전환하게 된다.

특히 나름 규모가 있는 팔루자의 이라크 반군은 본인들이 그렇게 쉽게 미군과 다국적군의 압도적인 전술과 화력 아래 먼지나듯이 털릴 줄을 몰랐다. 당시 팔루자에는 이라크 반군만이 아니라 이라크 주변국들의 수많은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이라크 반군과 협력하여 싸웠는데 이들은 다양한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들인데도 미군과 영국군의 높은 전투력과 전술 수준에 경악했다.[7] 이라크 반군과 무장 세력들의 통신을 감청한 당시 미군과 영국군 정보통신병들의 증언에 의하면 미군과 영국군이 너무 빠르고 사방에서 튀어나온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군과 영국군 등의 다국적군 병사들의 전투 능력은 생각보다 선진국 제 1세계의 정규군답게 굉장히 강하고 조직적이었다. 그래서 시가전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이라크 반군과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사방에서 기습해오는 미군과 다국적군에게 철저하게 궤멸당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이 당시의 대통령인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인기를 얻어 대선에서 재선될 수 있었다.

사실 당연한게 당시 미군과 영국군 등의 다국적군은 반군의 3배가 넘는 병력에 우수한 장비를 지녔고 미군과 영국군 등은 현실 중동과 비슷한 마을을 만들어 실전과 같은 체계적인 훈련과 그에 맞는 보상체계, 타 병과와의 원활한 상호지원을 하는 통합사령부의 지휘 아래에 싸웠지만 이라크 반군들은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한데다 보상도 없었고 낡고 부실한 장비에 원활한 상호지원도 없었다. 미군이 이라크 정규군의 공군력과 이라크의 보잘것도 없는 해군력은 진작에 싹 쓸어놨고 그 이후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라크 반군과 무장단체들의 장비가 좋을 턱이 없었다. 그나마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참전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전사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까지 계속 전투를 이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전사자가 2,000여 명에 달하자 결국 나머지는 대부분 총을 버리고 팔루자 시내로 숨어들거나 부대를 해체하고 이탈했으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4,000여 명 모두 죽었을 것이다.

3. 기타[편집]


파일:말보로맨.jpg
팔루자 전투의 격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말보로 맨'(Marlboro Man / Marlboro Marine). 본명은 제임스 블레이크 밀러(James Blake Miller)로 당시 미합중국 제8해병연대 소속이었는데 그가 탄 헬기가 반군의 RPG에 맞아 추락하면서 발생한 연기에 의해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렸고 반군과의 교전에서 부상을 당해 오른쪽 귀, 다리, 코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밀러는 어느 건물 지붕에 올라가 담배를 피며 자신이 살아돌아가 아내와 형제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밀러는 이 사진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졌고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담배를 보내왔으며 백악관에서도 부시 대통령이 시가, 사탕, 기념품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밀러는 전쟁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이미 피폐해진 상황이라, PTSD를 앓게 되었고 전역하고 나서 사회로 돌아갔을 때는 적응하지 못하고 아내와도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혼했다고 한다. 현재도 밀러는 PTSD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2013년에 그의 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PTSD 치료를 받아 많이 나아졌으며 재혼하여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

FPS 게임 Six Days in Fallujah가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09년부터 개발이 논의되었으나 실제로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원래 2010년에 발매 예정이었다가 제작사가 한 번 바뀐 후 2023년이 되어서야 출시되었다.

[1] 미국 주도도 있었으나 팔루자를 장악한 테러단체들의 만행과 폭압, 약탈 등도 문제가 커서 이라크도 참여할 이유가 되었다.[2] 역설적이지만 유일신과 성전은 알 자르카위가 깡패들 데리고 구성해서 하는 게 인질 납치와 참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규모 전투상황에서는 걸림돌이었으며, 잔류한 자들 대부분이 전투 경험이 풍부한 용병들과 구 이라크 정부군의 친위세력들이 주축이라 병력의 전반적인 수준 자체는 오히려 1차 팔루자 전투 때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3] 이는 미군과 영국군이 체계적인 CQB 전술과 화력조에 편성된 대전차화기 사수들이 AT4, SMAW, 재블린, LAW-80 등의 경, 중 대전차로켓의 열압력탄과 대전차미사일로 숨어있는 곳마다 열압력탄 로켓과 대전차미사일을 밥 먹듯이 쏴제끼며 폭사시키거나 전차 및 차량 화력지원 등을 이용해 건물째 무너뜨려 매몰시켜 사살했기 때문이었다. 가끔 모스크 첨탑이나 고지대에서 저격수가 저항해 봤으나 대부분 미 해병대, 영국군의 저격팀이나 화력조에 편성된 지정사수들에게 역저격당해 보이는 족족 사살당했다.[4] 출처: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그 이상의 것: 숏아웃[5] 정면에서 볼 때 눈, 코, 입이 몰려있는 부위. 얼굴은 의외로 T존이 아니면 치명상을 입기 쉽지 않은 부위로, T존의 크기도 성인 남성 주먹만 하다. 얼굴에 총을 맞기는 했지만 맞은 부위가 턱이라서 살아남는 경우도 있었다.[6] Pinn Down. 발을 묶는다는 뜻의 이라크에서의 미군과 다국적군, 아프간에서의 미군과 ISAF 연합군의 군사 용어. 주로 차량을 이용한 패트롤 작전 상황에서 많이 일어났으며, 병력과 차량이 오도 가도 못하는 퇴로가 막혀 돈좌된 상황에서 반군 세력의 거센 공격을 받으며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며 불리한 싸움으로 대응하는 최악의 상황을 말한다.[7] 이들 중엔 제3세계 국가의 덜떨어진 군대 나부랭이 따위가 아니라 체첸 전쟁 때 러시아군과 싸운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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