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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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현의 수상 및 영예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9








파일:/image/065/2010/08/03/M10_8281-1_0.jpg
이름
조우현(趙佑顯)
생년월일
1976년 3월 22일 (48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출신지
부산광역시
종교
불교
출신학교
부산 대신초등학교- 토성중학교- 동아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별명
육각슈터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신체 사이즈
190cm, 87kg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2번(대구 동양 오리온스)
소속팀
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9~2000)
창원 LG 세이커스 (2000~2006)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6~2008)
전주 KCC 이지스 (2008~2010)
등번호
11[1], 16[2], 7[3], 6[4]

1. 소개
2. 선수 시절
3. 은퇴 이후
4.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한국의 농구 선수. 현역 시절 별명은 각진 얼굴 때문에 붙여진 육각슈터.


2. 선수 시절[편집]


동아고 시절 슈터로 이름을 날린 포워드였다. 중앙대 1학년이던 1995년에는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맹활약하면서 한국의 11년 만의 우승을 이끌고, 자신은 MVP가 되었다. 이 명성 그대로 중앙대학교 농구부에서도 활약하며 후배인 김주성, 송영진, 황진원과 함께 중앙대 전성 시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 결과 1999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성했다.

프로 데뷔 무대인 1999-2000 시즌 제법 나쁘지 않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동양의 차세대 주포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마침 동양은 전희철이 제대한 상황이었고, 포지션 중복 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때마침 그의 은사로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에 취임해서 팀을 갈아엎던 김태환 감독의 부름을 받아 박훈근을 내주면서 그를 영입했다. 그리고 조우현은 여기서 조성원과 함께 팀의 주포로 활약하면서 조조쌍포라는 별명과 함께 2000-2001 시즌 정규리그 2위와 2000-01 KBL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공헌을 한 이후 2년반 동안 조성원과 함께 전성기를 연 이후 잦은 트레이드 속에 모교 대선배인 강동희김영만과 함께 2002-2003 시즌과 2003-2004 시즌까지 공격농구의 LG에서 첨병으로 맹활약했다.

LG에서 제법 괜찮은 활약을 꾸준하게 보이면서 활약하던 조우현은 2005-06 시즌 종료 이후, 신선우 감독의 시간차 트레이드에 엮여서 전자랜드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적 첫 해에는 두 자리수 평균 득점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이던 조우현이었지만, 이적 후 두 번째해인 2007-08 시즌에 부상으로 무너지고, 여기에 불화설까지 겹치면서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졌다. 결국 2008-09 시즌 도중 서장훈강병현이 얽히는 2:3 트레이드로 전주 KCC 이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5]

그런데 여기서 제법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서 KCC에서 나름대로 사랑받았다. 물론 성적은 전성기에서 내려왔지만, 코트에는 당시 주장이었던 추승균이 있으면 벤치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독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팀 케미스트리가 무너졌던 당시 KCC에서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면서 벤치에서 선수들을 독려한 결과 KCC는 극적으로 2008-09 시즌 우승에 성공했고, 조우현도 생애 첫 우승 반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6]

본래 포지션은 스몰 포워드였지만, 포인트 가드가 부족했던 LG에서는 1~3번을 두루두루 소화하고 리딩도 부분적으로 떠맡았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3. 은퇴 이후[편집]


2009-10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후, 중학교 코치를 거쳐 낙생고등학교 코치, 성남중학교 코치를 역임했다. 지금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레슨을 진행하고 있다. 레슨이 많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은퇴 후 인터뷰

한 때 스킬트레이닝을 보고 배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4. 관련 문서[편집]



[1] 대구 동양 시절[2] 트레이드 이후 LG 시절[3] 2001~2006 LG 시절, 인천 전자랜드 시절[4] 전주 KCC 시절[5] 서장훈, 김태환 ↔ 조우현, 정선규, 강병현[6] 여담이지만 당시 KCC에서 추승균 다음으로 노장인 선수가 조우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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