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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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주세붕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2. 생애[편집]
1522년 문과에 급제, 권지승문원 부정자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1537년 실세 김안로를 피해 곤양군수[1] 으로 나갔으나 곧 파직된다. 1541년 풍기군수[2] 가 된 후 안향의 옛 집터에 사당을 세우고, 유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지으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백운동서원이다.[3]
1549년에는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해주에 수양서원[4] 을 건립했으며, 이후 대사성, 둥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3. 여담[편집]
사실 그의 학문 수준은 유학의 기본만 겨우 안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만큼은 매우 뛰어났으며,[5] 지극한 효행과 청빈한 생활로 칭송 받았다고 한다.
국어 교과서에 "의로운 거위 이야기"라는 지문이 등장하는데『의아기(義鵝記)』라고도 불리는 이 이야기가 바로 이 사람이 쓴 수필이다.
풍기군수 재직시절 인삼 재배를 적극 장려하여 현재의 풍기지역이 인삼 특산물로 유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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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천시 곤양면[2] 영주시 풍기읍[3]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4] 해동공자 최충의 배향장소로 폐허가 돼 있는 문헌서원을 보고 한탄한 후 새로 배향장소를 만들고 그를 배향시켰다.[5] 예시를 들자면 풍기군수를 지내고 임기가 다 하여 물러나게 되었을 때 고을이 교화되었다는 최상의 평을 받았고 한번은 유산상속을 두고 동생과 다투던 형이 있자 주세붕은 형에게 하루 종일 동생을 업고 동헌 뜰을 걷게 시키고 나중에 형 쪽에게 "너는 어려서 동생을 업고 다닐때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했더냐?" 라는 말로 꾸짖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