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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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성반
崔聖盤, 崔聖磐

출생
1914년 12월 22일
평안북도 구성군 방현면 하단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최성반은 1914년 12월 22일 평안북도 구성군 방현면 하단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30년 1월 무렵 서울 근화여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1930년 1월 14일, 그녀는 학교에서 4학년생 김금남(金錦南)과 동기생 김천례(金順禮)가 자신의 하숙집을 회의장소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날 밤, 그녀의 하숙집에는 김금남, 김천례와 김귀인복(金貴仁福)·김연봉(金蓮峯)·이충신(李忠信) 등 근화여학교 학생 6명이 참석했다. 이 외에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同德女子高等普通學校) 2명·경성여자미술학교(京城女子美術學校) 2명·배화여학교(培花女學校) 2명·실천여자고등보통학교 2명 등 모두 14명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다음날인 15일 아침 서울 시내 각 학교의 학생들이 동시에 만세를 부르며 종로(鐘路) 쪽으로 시위행진을 하는 일에 대해 협의하였다.

1월 15일 오전 9시 30분경, 근화여학교에서 이충신을 선두로 만세를 부르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였는데, 경관이 제지하자 학교 판자벽과 유리창을 깨는 등 적극적으로 맞섰다. 그리고 타교 학생들과 연계하여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동정하는 동맹휴교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수십 명의 여학생을 포함해 400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최성반을 포함해 근화여학교 학생도 다수 체포되었다. 대부분의 동료 학생들이 29일 가출장(假出場)으로 석방된 데 반해, 최성반 등 근화여학교 학생 6명은 30일 근우회(槿友會) 간부 허정숙(許貞淑),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최윤숙(崔允淑) 등 28인과 함께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검찰로 송치되었다.

1930년 2월 10일 허정숙 등 8명만 최종 기소되었고, 최성반을 포함한 근화여학교 학생 6명은 기소유예(起訴猶豫)로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최성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