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페르 류보미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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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일생



1. 개요[편집]


Каспер Любомирский / Kasper Lubomirski

폴란드의 귀족이자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군인. 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편집]


카스퍼는 1724년 5월 9일에 태어났다. 그는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귀족 가문으로서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한 명장들을 양성한 루보미르스키 가문의 일원이었으며, 그의 아버지 테오도르 루보미르스키 역시 폴란드군 육군 원수였다.

1757년 7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카스퍼는 러시아군에서 복무하고 있었다. 그는 러시아군의 동프로이센 침공 작전에 참가해 1개 보병 여단과 4개 기병 대대로 구성된 선봉대를 이끌었다. 8월 30일, 그는 그로스-야거스도르프 전투에 참가해 노키튼 숲에서 프로이센군과 사투를 벌였다.

1758년 1월, 카스퍼 소장은 동프로이센을 향한 2번째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군의 다섯 군단 중 하나를 지휘했다. 또한 7월에는 2개 보병 대대와 2개 로스토프스키 보병 대대로 구성된 제1시단 1여단의 지휘관을 맡았으며, 8월 25일 조른도르프 전투에서 아군 우익 보병대 제1 대열에 배치되어 프로이센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부상을 입었다. 이후 11월에는 3사단에 배속되어 제3 보병 여단과 로스토프스키 보병대로 구성된 새로운 여단을 지휘했고 헬름노에서 겨울 숙영지를 세웠다.

1759년 4월, 카스퍼는 2군단으로 자리를 옮겼고 7월 23일 3개 보병 연대를 지휘해 팔츠이크 전투에 참가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제1 대열의 좌측 중심부에 배치되어 전투를 이끌었다. 그해 8월, 그의 여단은 모든 드래곤 연대와 대포 500문과 함께 러시아 보급로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아 바르타 강을 따라 배치되었다. 이후 8월 중순까지 2사단의 여단을 지휘한 카스퍼는 8월 12일 쿠네르스도르프 전투에 참가해 좌익의 제1대열 보병대를 지휘하다가 심한 부상을 입고 폴란드로 후송되었다.

1760년 중반 부상에서 회복한 카스퍼는 러시아군에 재입대하여 3사단 1개 여단의 지휘를 맡았고 1761년 초엔 3사단의 우글리츠키 보병여단을 지휘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로는 군대 지휘관으로서 이렇다할 행적을 남기지 못했다.

1767년, 카스퍼는 폴란드 주재 러시아 대사의 뒤를 이어 세임의 대리로 부임했다. 1768년, 폴란드 귀족들이 연맹을 결성하여 러시아와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하자, 카스퍼는 러시아 지지 입장을 표명하며 이들을 토벌하려 했다. 그러나 1769년 귀족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그는 뒤에 석방된 뒤 러시아군의 선두에 서서 귀족 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귀족 연합군은 러시아군에게 진압되었고, 카스퍼는 러시아를 뒷배경으로 삼아 폴란드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던 1780년 6월 6일, 카스퍼는 병사했다. 향년 5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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