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듀 열차 충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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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퍼듀 열차 사고.jpg

1. 개요
2. 사고 내용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Purdue train wreck

1903년 10월 31일 미국 인디애나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일어난 열차 충돌사고.


2. 사고 내용[편집]


인디애나 대학교의 인디애나 후지어스와 퍼듀 대학교의 퍼듀 보일메이커스는 1800년대 말 부터 라이벌 구도를 띄고 있었다.

당시 퍼듀 보일메이커스 팀과 승객 1,500여명이 탑승한 라피엣인디애나폴리스행 열차 두대가 출발했다. 열차가 도착하는 대로 퍼듀 보일메이커스 팀은 인디애나폴리스의 워싱턴 파크에서 인디애나 후지어스와 경기를 벌일 예정이었다. 열차는 경기에 참여할 팀과 코치단, 특별 공연을 펼칠 음악단, 경기를 보러가는 학생들만을 태운 특별히 편성된 열차로, 첫번째 차량의 기관차는 리치몬드 엔진 No.350이었고, 기관사는 윌리엄 H. 슈메이커(William H. Shumaksr) 차장은 프랭크 M. 존슨(Frank M. Johnson)이었다. 첫번째 차량에 승객 950명, 두번째 차량에 승객 550명이 탑승했다. 첫번째 차량의 첫번째 칸엔 퍼듀 팀원들이, 두번째 칸엔 특별 공연을 펼칠 음악단이 탑승했다.

오전 10시, 첫번째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할때 쯤, 바로 앞에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정차해있는 것을 발견했다. 열차는 특별 편성된 열차라 기존 시간표에 없었고, 때문에 화물열차 측에선 열차가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 선로에 세워둔 상태였다. 거기다 열차는 해당 구간의 제한속도보다 훨씬 빠른 시속 48km로 달리고 있었다. 속도를 제때 늦추지 못한 열차는 그대로 화물열차와 충돌했다. 여객열차는 나무로 만들어져있어 피해가 커졌다.

30분 뒤, 비슷하게 인디애나 후지어스 팀과 팬들을 태운 특별 편성 열차가 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경기를 기대하며 경기장에 입장했으나, 퍼듀 팀이 도착하지 않자 의문을 가졌고, 이내 그들이 사고를 당했단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사고로 17명이 사망했다. 마지막 사망자는 1달간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사망자 중 14명은 퍼듀 보일메이커스 팀의 선수들이었다.


3. 사고 이후[편집]


두번째 열차는 약 15분 간격을 두고 같은 노선을 달리고 있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열차를 향해 달려가 사고 소식을 알려준 덕에 열차는 멈춰섰다. 2차 사고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예정됐던 경기는 취소됐다. 그리고 퍼듀 보일메이커스는 풋볼 경기에 1년간 참여하지 않았다.

1906년, 퍼듀 대학교에선 희생자 17명을 기리는 의미에서 체육관을 하나 만들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겼다. 체육관 이름은 메모리얼 체육관이었다. 2006년, 체육관 이름이 펠릭스 하스 홀(Felix Haas Hall)로 바뀌었다.

사고가 난 노선은 이후 폐쇄되고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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