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마리 레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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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11월 19일 ~ 1894년 12월 7일

1. 개요
2. 일생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외교관. 이집트의 여러 곳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수에즈 운하의 개발을 착상하고 파나마 운하 회사의 사장에 취임, 완공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경영의 어려움으로 회사가 파산하여 사직 당국의 조사를 받는 등 일대 의혹사건이 되었다.


2. 일생[편집]


레셉스는 1805년 11월 19일, 프랑스의 일드프랑스주 이블린 데파르트망 베르사유에서 출생한다. 외교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20세 때 리스본 영사관에서 근무, 2년 후 튀니스 영사로 전근한 이래 이집트의 여러 곳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수에즈 운하의 개발을 착상하게 되었다. 1849년 에스파냐 대사를 끝으로 관계에서 떠났다. 1854년 이집트의 부왕 사이드 파샤의 초청을 받고, 레셉스에게 운하 개발안을 제출, 국제 기술자위원회의 숭인을 얻은 레셉스는 1859년 수에즈 운하를 착공하여, 1869년 성공적으로 완성하였다.

레셉스는 1879년 파나마 운하 개발 계획이 파리 지리학회에서 입안되자, 1881년 파나마 운하 회사의 사장에 취임했다. 레셉스는 완공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공사의 의외의 예산을 잠식하고 또한 경영의 난맥상이 나타나 악평을 남겼다. 그러나 레셉스는 1889년 1월 회사는 파산, 1892년부터 사직 당국의 조사를 받아 1893년 최고법정에서 무죄가 되었으나, 파나마 운하 회사의 수회사건(파나마 사건)은 많은 관계자를 끌어넣은 일대 의혹사건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에 휩쓸리고, 또 정신착란의 상태로 그의 말년은 어둡고 불후하였다.

레셉스는 프랑스파리에서 말년에 살다가 1894년 12월 7일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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