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리 플라이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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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플라이캐처(Fairey Flycatcher)

1. 배경
2. 기술 설명
3. 운용 이력



1. 배경[편집]


영국의 페어리 항공(Fairey Aviation)에서 생산되어 전간기에 해당되는 1923년부터 1934년까지 해군항공대에서 함상전투기로 이용된 기체가 페어리 플라이캐처(Fairey Flycatcher)였다. 이 전투기는 그 무렵 영국 해군의 정책에 따라 육상기지나 비행갑판에서 작전하기 위한 고정식 랜딩기어 사양으로 생산되었으나 필요하다면 캐터펄트 발함용 플로트로 교체될 수 있게끔 설계되었다.

단좌 함상전투기 플라이캐처는 글로스터 나이트자(Gloster Nightjar)를 대체할 항모 함재기와 수상 전투기에 대한 영국 항공성의 요구사양서 N6/22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암스트롱 시들리 재규어(Armstrong Siddeley Jaguar)나 브리스톨 주피터(Bristol Jupiter) 공랭 엔진에 의해 구동된다. 이 사업에 참가한 페어리와 파넬(Parnall)은 모두 그 사양을 만족시키기 위한 초안을 제출했고, 페어리는 플라이캐처를, 파넬 사는 파넬 플로버(Parnall Plover)를 제작했다. 플라이캐처는 1922년 11월 28일 재규어 II 엔진을 장착하고 첫 비행을 한뒤, 이어진 시범 비행에서 경쟁 기종인 플로버를 압도하는 평가를 받아 함대 배치를 위해 왕립해군으로부터 주문되었다.



2. 기술 설명[편집]


플라이캐처는 함재기가 진화하고 있던 당시 기준으로는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우수한 설계였고, 처음부터 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 위해 설계된 최초의 함재기 중 하나였다. 충분한 양력을 벌기 위해 양 날개 전체에 걸쳐 설치된 넓은 플랩 같은 설비도 그런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이 대형 플랩은 이착륙시 아래로 꺾어 일종의 고양력 장치 구실을 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플라이캐처는 맞바람을 이용하면 비행갑판에 겨우 50야드(46m)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이착함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제공해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행기가 나무와 천으로 만들어지던 시절이었던 탓에 동체는 나무와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옥양목 천으로 덮여 있었다. 다소 복잡한 형상을 한 충격 흡수장치가 딸린 착륙장치는 수륙양용으로 트윈 플로트나 휠 조합으로 바꿀 수 있었다. 휠 브레이크도 항공모함의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제동을 걸기 위해 유압식 부품이 추가되었다. 비행갑판에 착함할 때 필요한 어레스팅 후크는 후대의 함재기처럼 꼬리 아래 달린 것이 아니고 착륙장치를 지탱하는 스프레더 바(spreader bar)에 결합하도록 고안된 것이 초기형 플라이캐처의 특징인데, 이런 부분에서 아직 함재기의 기본 형태가 확립되지 않은 과도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운용 이력[편집]


플라이캐처의 생산은 1923년 페어리의 헤이스 공장(Hayes factory)에서 시작되어 제402해군항공대(No. 402 Flight Fleet Air Arm)에 처음 배치되어 운용을 시작했다. 이 전투기는 그 시대의 모든 영국 항공모함에 실려 사용되었지만 항모의 척수가 적어 192대만이 생산된 희귀한 기체였다. 이 시절, 영국 항모에 전형적인 함재기 배치는 16대의 플라이캐처와 16대의 블랙번 리폰과 16대의 정찰기가 1개 항모 항공단을 편성했는데 이런 편제는 커레이저스(HMS Courageous)에서 시작되었다.

볼품은 없지만 당대의 해군 조종사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았던 플라이캐처는 비행하기 쉽고 기동성이 뛰어났다. 2차 대전에서 영국 해군이 구사한 항공 전술을 개발한 것은 바로 이런 복엽 함재기들이었다. 플라이캐처는 본국 함대에서 이용되는데 그치지 않고 지중해, 동인도, 중국 함대에서도 운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 복무하는 동안 플라이캐처는 홍콩 근해에서 날뛰는 중국 해적들을 상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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