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기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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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모로코 피기그.jpg

1. 개요
2. 역사
3. 볼거리



1. 개요[편집]


아랍어
+1فجيج

베르베르어 ⵉⴼⴻⵢⵢⴻⵢ
영어 Figuig / Figig

모로코 동부의 도시. 모로코 동쪽 끝부분의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알제리와의 국경과 남,동,북쪽으로 접하며 서남쪽의 베샤르와 90km 거리인 국경 도시이다. 고산 아틀라스 끝자락과 사하라 사막이 만나는 곳에 입지한 도시로, 전통적으로 대추야자 생산과 대상 교역을 행하였다. 근대 시기까지만 해도 모로코 동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지만, 현대 들어 인구가 급감하여 현재는 1만 가량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제나타 베르베르인으로, 아그람이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2. 역사[편집]


파일:모로코 피기그 2.png
1903년 6월 피기그를 폭격하는 프랑스군 (르 쁘띠 파리지엥 수록 삽화)

선사 시대부터 벽화가 그려질 정도로 먼 옛날부터 인류가 거주하였다. 본래 제나타 베르베르 마을이었다가 10세기 페스에서 이드리스 왕조 왕가의 일원인 이사 빈 압델라흐만 앗-샤리프가 이주하여 궁전과 마드라사를 세워 본격적으로 이슬람화되었고 농업 기술 및 아랍 문화가 전래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현지 마니교 / 기독교 수사들이 예루살렘 순례 중 이슬람을 접하고 개종하여 이슬람이 퍼졌다고도 한다. 13세기 중반 무와히드 왕조의 쇠퇴기에는 타들라 출신의 바누 자베르 아랍인들이 인근에 정착하였다. 14세기에는 성자로 추앙받게 된 시디 아흐메드 빈 무사 알-바르조지가 정착하였다. 17세기 알라위 왕조의 술탄 물라이 이스마일은 일대에 아랍 부족들을 정착시켜 개발하려 하였으나 현지 베르베르 인들이 강력히 저항하여 결국 그 성채를 파괴하였다.

19세기 프랑스측 기록에 의하면 피기그는 알라위 왕조와 오랑의 베이 양측에게 조공하며 자치를 유지하였다. 1903년 사하라 내부로 팽창하던 프랑스 군이 대포를 동원하여 피기그를 두 차례 공격하였고, 결국 패배한 주민들은 배상금을 내야 했다. 이후 프랑스는 피기그 주변의 배후지를 빼앗고 도시를 에워싸는 모로코-프랑스령 알제리 간의 국경이 세워졌고, 이는 1963년 모로코-알제리 간의 모래 전쟁 당시 국경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전쟁으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고, 일대의 거대한 대추야자 농경지가 파괴되며 인구 감소로 이어졌다. 전후 방치되던 도시는 2009년 국왕 무함마드 5세의 지시로 루다게르 궁전이 재건되고 사회 복지 시설이 세워지는 등 재정비에 들어갔다. 2021년에는 알제리 군이 국경 너머에서 경작하던 모로코 농부들을 몰아내는 일이 있었다.

3. 볼거리[편집]


파일:모로코 피기그.png
  • 북부 구도심

파일:모로코 피기그 1.png
  • 남부 구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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