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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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version Project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백인만이 입대 가능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에서 군에 입대한 사람 중 게이레즈비언을 색출해 전환 치료를 시키고 전환 치료가 안 먹히면 강제 성전환 수술을 시킨 사건. 18세에서 24세까지의 게이 군인들과 레즈비언 여군이 대상이었다.

2. 상세[편집]


1970년대 초반 당시 68운동으로 서구 사회가 문화적으로 개방적으로 변화하자 보수 기독교의 보루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까지 동성애가 확산될 것을 염려하여(물론 당시 극우 백인정권의 눈으로 봐서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동성애 치료(?)를 시작했고 20년 가까이 지속됐다. 참고로 피해자는 900명 가량이었다.

피해자들은 강제로 성별이 정정되어 남장이나 여장을 하고 본래의 성별대로 살 수 없게 되어 이성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바뀐 성별을 받아들이고 살더라도 호르몬 치료 값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수술 수준이 좋지 못해서 의료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오브리 레빈(Aubrey Levin, 1938~)은 흑인에 대한 강경정책을 주도했던 보타가 물러나고 나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폐기가 시작되자 캐나다로 도피했으며 그 덕택에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1] 그러나 캐나다에서도 게이 전환 치료를 내세워 게이들을 상대로 전기치료 요법 등을 쓰다가 2010년 캐나다에서 남성 환자들에 대한 성폭행과 학대를 저지른 게 발각되어 그 혐의로 2013년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서[2] 복역하다가 약 2주 만에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되었다. 레빈은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으나, 모든 의료면허가 박탈당했고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당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나, 가석방 후에도 피해자들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자신의 범죄를 전면 부인한 것을 넘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과거의 고국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범죄 행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남아공은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3]인데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동성애자 탄압에 대한 반감이 그 원동력이 되었다. 남아공은 헌법에서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엄금할 것을 규정한 몇 안 되는 나라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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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남아공에 남아 있었다고 해도 넬슨 만델라데즈먼드 투투가 사회 안정을 위해서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자에 대한 린치나 저항에 대한 분쇄에 가담했던 가해자들에게 비교적 관대하게 처분했기 때문에 무기징역 같은 형벌에 처했을 가능성은 낮았기는 했다. 물론 그와 별개로 남아공 LGBT 당사자들에게 규탄을 많이 받았을 테지만 말이다.[2]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남성 환자들은 30명에 육박했지만 기소에 반영된 혐의는 9건이었고 재판에서는 3건만 유죄로 인정받았다.[3] 2006년에 허용되었다.[4] 현지 생활 체감상 아프리카너 백인 또는 흑인이 거의 인구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시골 지역은 아직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만연하며 육체적 & 정신적 탄압도 간간히 존재한다.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등 대도시에서는 개개인은 어떤 생각일지 몰라도 동성애 차별은 인종차별과 같은 맥락으로 보고 상당히 엄격하게 처벌된다. 특히 케이프타운의 경우 남아공에서 LGBTQ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해외에서의 유입도 상당하다. 당장 백인정권 시기에도 많은 교류가 있었던 싱가포르의 초대 지도자 리콴유의 손자가 남아공에서 동성결혼을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는 아직 동성결혼이 법적 보장을 받지 않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