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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胡母班
(? ~ 190년 6월)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계피(季皮)[1]로 연주 태산군 봉고현 사람이자 왕광의 매부. 성이 호모(胡母)로, 복성이다.


2. 생애[편집]


집금오를 지내다가 원소가 반동탁 연합을 이끌자 동탁의 지시로 오수와 함께 원소를 회유하러 갔는데, 호모반은 조서를 받들고 하내로 가서 의병을 해산하게 했다. 그러나 원소는 왕광을 시켜서 그들을 죽여 효수하게 했으며, 호모반은 왕광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호모반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왕광에게 규탄하는 편지를 보냈으며,[2] 왕광은 그 편지를 받아보고 호모반의 두 자식을 안고 울었지만 결국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3] 이로 인해 호모반의 유족들은 훗날 조조와 손을 잡고 왕광을 죽이는 일을 도왔다.

수신기에 따르면 태산부군과 하백을 만났는데, 호모반이 태산 근처에 있을 때 태산부군을 만나 그의 부탁으로 사위인 하백에게 편지를 전했다. 하백에게서는 그 보답으로 푸른 실로 만든 신발을 선물받았으며, 이후 장안에서 1년을 보내 집으로 돌아가다가 태산 근처에서 태산부군에게 소식을 전한다.

그 와중에 죽은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죽은 후에 3년 간 힘든 일을 하게 되어 이제 2년 째로 태산부군께 말씀해 이 힘든 일을 면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바로 땅의 신 자리를 얻는다고 말하며, 호모반은 태산부군에게 이를 부탁했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길이 다르니 서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거절당하자 계속 애걸해 허락받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자식들이 모두 죽자 태산부군을 다시 찾아가 자신을 불쌍히 여겨 구제해달라고 했으며, 태산부군은 산 자와 죽은 자는 길이 다르니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것은 이 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 말한다.

태산부군이 호모반의 부친을 불러들이면서 옛 마을의 땅의 신 자리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면 마땅히 가문을 위해 복을 주어야 하는데, 어째서 손자들을 죽였나고 묻는다. 그러자 호모반의 부친은 고향을 돌아간 것이 기쁘고, 술이나 먹을 것이 넉넉하면서 손자들이 생각나 불러들였다고 말한다. 그러자 태산부군은 다른 사람을 땅의 신으로 임명하면서 호모반의 아버지는 울면서 물러났으며, 호모반이 집에 들어가 아이를 낳았고 모두 탈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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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한서 원소열전의 주석에 따르면 계우(季友)라고 나와있다. '호모반(胡母班)의 자는 계우(季友)로 태산(泰山) 사람이니 팔주(八廚)의 한 사람으로 이름났다.'(胡母班字季友, 泰山人, 名在八廚)[2] "당신은 저를 감옥에 가두고 조리돌리려 하시는데, 이 어찌 포악무도한 짓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동탁의 친척이라도 됩니까? 어찌하여 저를(동탁과 같이) 미워하십니까? 당신은 범과 이리같은 입을 벌리시고 뱀독을 토하여 동탁에게 맺힌 원한을 제게 옮기어 분노하고 계시는데, 어찌 그리도 가혹하시단 말입니까? 사람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만, 만약 죽은 이에게 혼령이 있다면, 마땅히 하늘에 당신을 고소할 것입니다. 무릇 혼인이란 재앙과 복의 발단이라 하더니, 오늘에야 (재앙이) 나타났습니다. (지난날에는 서로) 한 몸처럼 감싸주다가 이제 원수가 되었으나, 죽을 사람(호모반 본인을 말함)의 두 딸은 당신의 조카이니, 죽은 후에는 저의 시체를 보지 않도록 해주십시오.[3] 하지만 왕광의 입장도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것은 아닌데, 왕광은 당시 반동탁 연합에 참가한 제후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소는 연합의 맹주, 즉 왕광의 직속상관이었기 때문에 매부라고 해서 호모반을 죽이는 것을 반대했거나 망설였다간 원소뿐만 아니라 참가한 모든 제후들에게 동탁의 끄나풀이라는 의심을 사기 충분했으므로 왕광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즉, 호모반과 왕광 모두 자신이 섬기는 상관이 달라서 생긴 비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