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워터 사건

덤프버전 :




1. 개요
2. 사건 상세


1. 개요[편집]


1990년대 빌 클린턴이 아칸소주 주지사 시절 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친구인 제임스 맥두걸 부부와 함께 세운 화이트워터 부동산개발 회사의 지역 토지개발을 둘러싼 사기사건 의혹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대표적 사건사고다.


2. 사건 상세[편집]


1978년 클린턴 부부가 맥두걸 부부와 화이트워터 지역에 휴양 단지를 짓는 사업을 시작하며 이를 위해 1979년 공동으로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회사를 세웠다.

1985년 빌 클린턴이 선거 운동을 하며 5만 달러의 큰 빚을 지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을때 맥두걸이 빌 클린턴에게 정치자금을 모금하기도 하는 등 빌 클린턴을 도와줬다. 이후 맥두걸은 미 연방으로부터 많은 금액을 대출받았는데 이게 빌 클린턴의 직권 남용으로 이루어졌다는 여론에 휘말리게 되었다.

휴양 단지를 짓는 공사는 1980년대에는 계속됐지만 1990년대 초에 맥두걸의 지방은행이 파산하며 사업이 중단되었고 클린턴 부부는 투자금 2만 5천달러를 손해보며 1992년에 손을 떼게 되었다.

1992년 대선 당시에 뉴욕타임스가 이 문제를 보도했지만 파장이 크지 않았고 그러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5개월 후인 1993년 6월 화이트워터와 관련된 서류를 보관하던 힐러리의 동료 변호사 빈센트 포스터가 의문의 자살을 하게 되면서 힐러리가 서류를 파기했다는 주장이 일며 클린턴 부부를 청문회까지 끌고 오는 큰 일로 번지게 됐다.

클린턴의 주요 혐의는 사업이 부진하자 1986년 맥두걸에게 30만 달러를 대출해 주도록 금융업자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또, 조사를 받으면서 위증을 한 혐의도 받아오며 맥두걸 부부는 나중에 유죄판결을 받게 됐다.

1994년 1월 첫 특별검사 로버트 피스크가 임명되며 일단은 무죄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1994년 8월 케네스 스타가 특별검사를 이어 맡게 되면서 빌 클린턴의 성추문 조사를 벌였다.

빌 클린턴이 재선에 성공한 1997년 2월 화이트워터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기소된 맥두걸이 자신의 감형을 위해 화이트워터와 클린턴의 관계를 검찰에 진술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 내용은 불법 대출을 클린턴이 알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맥두걸은 1998년 8월 교도소에서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99년 10월 케네스 스타가 사임하고 로버트 레이가 특별검사직을 이어받게 되며 수사를 지휘했다.

2000년 9월 20일 화이트워터 사건은 클린턴 부부의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6 22:40:52에 나무위키 화이트워터 사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