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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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廙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장준(長駿)으로 화표의 장남. 청주 평원군 고당현 사람.

재능이나 도리가 크면서 민첩했고 장인 노육이 친족을 함부로 천거하지 않는 명분에 얽매여 천거하지 않았는데, 35세까지 천거되지 못했다.

265년에 화표의 병으로 인해 관직에 물러났고 상을 치렀다가 장례가 끝나자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이를 거부했으며, 이전에 화표가 격현에서 선물을 주려는 손님에게 둘러싸인 적이 있어 화표는 화이에게 격현에서 원의라는 사람이 자신의 선물을 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 선물한 사람 중에 3명은 노복이 바뀐 것이라 했다.

원의는 자신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노복의 이름을 적겠다고 했는데, 이후 원의가 뇌물을 가진 것이 발각되었다. 원의도 화이처럼 노씨의 사위라 연좌의 대상이었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노복과 손님이 구별되지 않아 3명의 노복을 화이에게 보냈다.

순욱이 그의 딸을 얻고 싶다고 부탁한 적이 있었지만 화이는 이를 거부했는데, 순욱이 이를 원망해 몰래 사마염에게 원의가 뇌물을 가진 것을 모두 원의의 죄로 해서는 안된다면서 원의의 친족에 해당하는 화이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해서 결국 화이는 복상 도중에 면관되고 작위와 영토가 깎였다.

하준이 화이의 관직을 면직하고 서인을 폐출하면 봉토를 계승하는 것은 안된다면서 화표의 손자인 화혼에게 화표를 계승시켜야 한다고 했으며, 유사에서는 폐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벌로 그의 가계에서 계승하는 것만큼은 허락하라고 했다. 사마염은 이에 대해 화이를 폐적시키지만 관직, 작위는 박탈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 일로 화이는 화씨의 계보에서 사라지게 된다.

화이는 집에서 경서의 요점을 정리해 선문을 저술했고 십재를 자손들에게 가르쳐 경전을 계승했으며, 진협과 함께 집에 울타리를 만들었다. 280년에 대사면으로 인해 봉지를 되찾을 수 있었고 화이는 성문교위, 좌위장군 등을 지내다가 몇 년 후에는 중서감이 되었다.

290년에 혜제가 즉위하자 시중이 되었고 광록대부, 상서령 등에 임명되었지만 화이가 양준의 벽소에 응하지 않아 유사에서 화이를 면직하라고 했으며, 태자소부, 산기상시 등이 되었다. 예법의 제도를 가르치고 교육했고 화이는 이후 병에 걸렸고 태의를 보내 병을 치료했으며, 화이가 광록대부에 올라 의동삼사로 대우받았고 한수가 가남풍에게 자신의 딸을 화이의 손자에게 시집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화이가 이를 거절한 일로 인해 가남풍에게 원망을 받아 삼공에 이르지 못했다.

만년에 중서통사랑을 지냈고 75세에 사망해 시호를 원(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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