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 FIFA 월드컵 스위스/결선 토너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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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한 대진표
2. 진행
2.1. 8강
2.2. 4강
2.2.1. 1경기 헝가리 4 vs 2 우루과이
2.2.2. 2경기 서독 6 vs 1 오스트리아
2.3. 3위 결정전
2.4. 결승



1. 이상한 대진표[편집]


1954년 월드컵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월드컵 대회 진행의 기본적인 틀인 조별리그+토너먼트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한 역사적인 대회이다. 그런데 현재의 대회 방식과 1954년 당시의 대회 방식에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토너먼트 대진표 작성 방식이다.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A
8강 1경기
1조 1위 VS 2조 1위
E
4강 1경기
A 승자 VS B 승자
G
결승
E 승자 VS F 승자
B
8강 2경기
3조 1위 VS 4조 1위
-
C
8강 3경기
1조 2위 VS 2조 2위
F
4강 2경기
C 승자 VS D 승자
D
8강 4경기
3조 2위 VS 4조 2위
H
3위 결정전
E 패자 VS F 패자

위의 대진표가 바로 이 대회에서 쓰인 대진표인데,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지 않는가? 지금은 강팀들이 대진표의 한쪽 가지로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별리그 이후 토너먼트의 첫 경기는 어떤 조의 1위와 다른 조의 2위가 서로 맞붙게 하는데, 이 대회에서는 한쪽에 각 조 1위 팀들을 죄다 몰아넣고 다른 한쪽에는 각 조 2위 팀들을 죄다 몰아넣는 이상한 대진 방식을 사용했다. 즉 조 1위 4팀이 결승 티켓 1장을 놓고 싸우고 조 2위 4팀이 결승 티켓 1장을 놓고 싸우는 해괴한 형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대진표가 만들어진 데에는 당시 월드컵 본선 진출국들 중에선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개최국 스위스가 자신들은 조 1위보다는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의도적으로 개최국인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진 방식을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뭐 스위스가 개최국의 지위를 이용해 규정을 주무른 것은 그렇다 쳐도, 정작 이러한 대진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원래는 조별리그에서 1위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이 되는 우승후보급 강팀이 고의적으로 조별리그에서 져주기 게임을 하며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면 조 1위를 한 다른 강팀들보다 훨씬 수월한 대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점을 간파한 서독의 제프 헤어베어거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와의 경기 때 주전 선수들을 빼고 고의적으로 패배해[1] 서독이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도록 했고, 헝가리는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독보다 훨씬 어려운 대진을 맞게 된다. 이후 서독과 헝가리는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는데, 서독보다 훨씬 치열한 혈투를 치르고 올라왔던 헝가리의 피로누적과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결국 서독의 승리에 일조하며 이후 조별리그에서의 서독의 고의 패배는 큰 논란을 일으킨다. 결국 이러한 이상한 대진 방식은 이 대회에서만 한 번 쓰이고 폐지되었다.


2. 진행[편집]



2.1. 8강[편집]



2.1.1. 1경기 오스트리아 7 vs 5 스위스[편집]


경기장
스타드 올랭피크 드 라 퐁테즈
로잔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6월 26일 17:00
(1954년 6월 27일 00:00)
국가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점수
7
5
득점
바그너 (25', 27', 53')
쾨르너 (26', 34')
오퀴크 (32')
프롭스트 (76')
밸라만(16', 39')
휘기 (17', 19', 58')

영상

그야말로 난타전에 야구 스코어까지 나온 경기였다. 스위스는 개최국 다음 라운드 징크스[2]라는 아주 좋은 징크스 덕분에 8강에 진출했으나 상대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지금과 달리 헝가리 등과 마찬가지로 우승후보로 꼽힐만한 강호이자, 과거 나치시절 독일의 천적이라 불릴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홈팀 스위스는 전반 16분부터 3분 동안에 3골을 넣어 앞서가는 등 손쉽게 승리를 확정짓는 듯 했으나 전반 25분부터 10분 동안 내리 5골을 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하는 기이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뒤에 스위스가 만회골을 넣고 오스트리아가 추가골을 넣는 등 티격태격 난타전을 벌이며 오스트리아가 한점차 리드를 지키다가 후반 31분 오스트리아의 프롭스트가 팀의 4강행에 쐐기를 박는 골을 터뜨렸다.

또한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개최국이 최다 골을 실점(7골)한 경기였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으나 정확히 60년 후 충격과 공포의 경기가 나오며 타이기록이 세워지고 말았다.

월드컵 역사상 1경기 가장 많은 골이 터진 경기다. 이렇게 된 이유는 스위스의 하프백 로저 보가트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경기 전 뇌종양 진단을 받았기 때문. 당연히 경기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사실 의사는 아예 뛰지 말라고 했지만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월드컵인지라 그냥 출전했던 거다. 참고로 그는 대회 후 축구선수를 은퇴했고,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그 후로 40년을 더 살았다.


2.1.2. 2경기 우루과이 4 vs 2 잉글랜드[편집]


경기장
장크트 야콥 경기장
바젤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6월 26일 17:00
(1954년 6월 27일 00:00)
국가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점수
4
2
득점
보르헤스 (5')
바렐라 (39')
스키아피노 (46')
암브로이스 (78')
로프트하우스(16')
피니 (67')

영상

지난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가 자칭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손쉽게 2점차로 잡고 편안하게 준결승에 진출했다.


2.1.3. 3경기 브라질 2 vs 4 헝가리[편집]


경기장
방크도르프 스타디움
베른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6월 27일 17:00
(1954년 6월 28일 00:00)
국가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브라질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점수
2
4
득점
자우마 산투스 (18')(PK)
줄리뉴 보텔류 (65')
히데그쿠티 난도르 (4')
코치시 샨도르 (7', 88')
런토시 미하이 (60')(PK)

영상

이른바 베른의 전투라고도 불리는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난투극 경기.

헝가리는 팀의 에이스 페렌츠 푸스카스서독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부상당하여 경기에 결장했지만 푸스카스 외의 선수들이 건재했기 때문에, 지난 대회 준우승의 아픔을 딛고 사상 첫 우승을 이루려는 브라질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경기 당일 경기장에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전반 4분 헝가리의 히데그쿠티 난도르가 선제골을 터뜨리는 슛을 때리는 과정에서 상대 선수가 성급하게 바지를 잡다가 히데그쿠티의 바지를 찢는 바람에 히데그쿠티는 본의 아니게 4만 관중들 앞에서 19금을 촬영하였고(...) 이 때부터 양팀간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3분도 안돼서 히데그쿠티가 코치시 샨도르에게 킬패스를 찔러주었고 코치시가 이걸 손쉽게 추가골로 만들어냈다. 다급해진 브라질은 죽어라 공격을 열심히 했고, 헝가리 수비진의 높은 수준에 고전하면서도 파울을 역이용해서 재치 있게 페널티킥을 획득, 자우마 산투스가 만회골에 성공하였다. 이미 전반 초반 있었던 민망한 일로 화가 나있던 헝가리 선수들은 당연히 빡쳐서 플레이가 거칠어졌고 브라질 또한 이에 질세라 거칠게 응수하면서 이때부터 난투극이 일어날 시한폭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경기가 거칠어진 후반 15분 헝가리에게 페널티킥이 주어져 후반 15분 런토시 미하이가 3:1로 달아나는 페널티킥 골을 넣었다. 이 페널티킥에 항의하기 위해 브라질 기자들과 브라질 축구 협회 임원들이 그라운드 난입을 시도했다가 스위스 경찰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갔으며 빡친 브라질의 거친 플레이와 거기에 응수하는 헝가리로 인해 경기는 개판으로 흘러갔고 결국 후반 20분 브라질의 줄리뉴 보텔류가 추격골을 넣어 3:2가 된 직후, 니우통 산투스의 파울에 폭발한 헝가리의 보직 요제프가 니우통 산투스와 싸우면서 둘 다 퇴장 당했다. 이 쯤부터는 경기는 축구 경기가 아니라 거의 헝가리와 브라질 선수들 간의 패싸움으로 변질되었고,[3] 결국 후반 43분에 코치시 샨도르가 패스를 받아 승리에 확정을 짓는 쐐기골을 터뜨렸다. 그 상태에서 추가시간이 선언되자 브라질 선수들은 자포자기해서 축구를 포기하고 싸움에 집중했고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기 직전에는 브라질의 움베르투 토치가 헝가리의 로란트 줄러에게 싸커킥을 날려 퇴장당하기까지 했다.

이 날 경기에서 양측은 42번의 프리킥과 2번의 페널티킥을 찼으며 4명이 경고를 받고 3명이 퇴장당했다.

베른의 전투의 하이라이트는 경기가 끝난 직후에 터졌다. 그라운드를 나오던 브라질의 피녜이루가 헝가리쪽 관중석에서 날아온 유리병에 맞아 쓰러졌고, 동료가 쓰러지자 빡칠대로 빡친 브라질 선수들은 헝가리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 순간을 노려 일제히 헝가리 라커룸에 쳐들어가 헝가리 선수들과 난투극을 벌였다. 거의 모든 헝가리 선수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고, 당시 명장이었던 헝가리 대표팀 감독 셰베시 구스타브는 선수들을 지키다가 장렬히 쓰러져, 나중에 4바늘이나 꿰맸다. 결국 나중에 외국 기자는 이걸 보고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하기까지 했다.

만약 21세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경기는 무효 처리되고 양측 모두 FIFA에게 중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2.1.4. 4경기 유고슬라비아 0 vs 2 서독[편집]


경기장
스타드 드 샤르밀
제네바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6월 27일 17:00
(1954년 6월 28일 00:00)
국가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점수
0
2
득점

호바트 (9')(자책)
란 (85')

영상

서독은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한 8강전에서 가볍게 2점차 클린시트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2.2. 4강[편집]



2.2.1. 1경기 헝가리 4 vs 2 우루과이[편집]


경기장
스타드 올랭피크 드 라 퐁테즈
로잔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6월 30일 18:00
(1954년 7월 1일 1:00)
국가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점수
4
2
득점
치보르 (13')
히데그쿠티 (46')
코치시 (111', 116')
호베르크 (75', 86')

영상

1954년 월드컵 당시 세계 최강팀과 전대회 디펜딩 챔피언 팀의 대결이기도 했다. 헝가리는 8강전 베른의 전투 후유증도 있고 해서 우루과이가 다소 유리해보일듯 했지만, 푸스카스가 빠졌음에도 헝가리는 매우 강하였다.

치보르와 히데그쿠티가 연속골을 넣으며 앞서갔으나 호베르크에게 멀티골을 내주며 연장전까지 끌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코치시가 승리를 확정짓는 멀티골을 터뜨리면서 헝가리는 1938년 월드컵에 이어 2번째로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한다.

다만 헝가리도 우루과이를 상대로 연장 혈투를 치른 덕에 체력이 바닥나서 결승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이는 결국 현실로 이어졌다.


2.2.2. 2경기 서독 6 vs 1 오스트리아[편집]


경기장
장크트 야콥 경기장
바젤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6월 30일 18:00
(1954년 7월 1일 01:00)
국가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점수
6
1
득점
샤페르 (31')
모를락 (47')
프리츠 발터 (54', 64')[4]
오트마르 발터 (61', 89')
프롭스트 (51')

전반 후반

오스트리아는 서독의 왕년 천적이었지만, 당시 서독 대표팀 감독이었던 제프 헤어베어거는 명장이었다. 서독은 이팀이 과거에 오스트리아의 내조의 여왕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경기를 시종일관 지배하면서 오스트리아를 6:1로 대파했다.


2.3. 3위 결정전[편집]



2.3.1. 우루과이 1 vs 3 오스트리아[편집]


경기장
스타드 하르드투름
취리히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7월 3일 17:00
(1954년 7월 4일 00:00)
국가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점수
1
3
득점
호베르크 (22')
스토자스팔 (16')(PK)
크루즈 (59')(OG)
오퀴크 (89')

영상

헝가리와의 준결승전에서 모든 힘을 다 쏟아부은 우루과이는 이어지는 오스트리아와의 3위 결정전에서 거짓말 같은 2점차 참패를 당하였다. 크루즈가 자책골을 넣는 등 불운도 따랐고, 그뒤 우루과이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4강 진출한 이후 별다른 힘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40년 만에 4강 진출에 성공한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본선 진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도 월드컵 본선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2.4. 결승[편집]



2.4.1. 헝가리 2 vs 3 서독[편집]


경기장
방크도르프 스타디움
베른 - 스위스
경기일[A]
1954년 7월 4일 17:00
(1954년 7월 5일 00:00)
국가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점수
2
3
득점
푸스카스 (6')
치보르 (8')
모를락 (10')
란 (18',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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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이 당시의 헝가리는 서독이 정예군을 내보내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팀이었기 때문에 헤어베어거의 결정은 스포츠맨십을 저버린 얍삽한 행위라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영리한 선택에 가까웠다.[A] A B C D E F G H 괄호 안은 한국시간[2] 개최국 팀은 무조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 다만 이는 2010년 남아공이 죽음의 조에 걸려 탈락하면서 잠시 깨지기도 했다.[3] 당시 규정은 지금처럼 전문적이지도 엄격하지도 않았기에 만약 현재와 같은 규정을 그때 적용하였다면 시합을 뛰었던 선수들 대부분이 퇴장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둘 중 한 팀이 몰수패 처리를 당했을지도 모른다.[4] 기이하게도 둘 다 패널티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