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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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reda Ba.201 dive.png
브레다 Ba.201 (Breda Ba.201)

1. 폭격기 전력의 문제
2. 차기 급강하폭격기 계획
3. 기체의 구조




1. 폭격기 전력의 문제[편집]


이탈리아 왕립공군이 2차 대전 이전에 참전한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스페인 내전 동안에 보여준 높은 가동률과 위력을 아는 이라면 열강 이탈리아가 폭격기 개발에 뒤처지고 있었다는 점은 의외일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왕국이 2차 대전에 뛰어들고 첫 1개월 동안 이탈리아 공군이 보여준 전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공군이라는 신속 기동군에게는 지척의 거리인 100 km 이내에 도사린 지중해몰타 기지를 분쇄하는 것초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공군은 서전에 1,000대가 넘는 폭격기와 전투기를 출격시켜 맹공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몰타의 기능을 빼앗는 전략 목표에 실패했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탑재량이 큰 중폭격기와 정밀 공격이 가능한 급강하폭격기, 그리고 지상 공격기가 부족한 탓이었다. 브레다가 야심차게 내놓은 쌍발 폭격기 Ba. 88은 강하폭격이 어려워 명백한 실패작이었으며 카프로니 Ca.311은 느리고 폭장량이 보잘 것 없어 제 구실을 못했다.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게 되자, 이탈리아 공군은 폭격기 대신 전투기CR.32가 폭탄을 매달고 공습 임무에 나서야만 했다. 처음부터 급폭으로 설계된 사보이아-마르케티 SM.85 역시 성능이 총체적인 난국이나 마찬가지여서, 이탈리아 공군은 개량형인 SM.86의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동맹국 독일로부터 Ju 87 슈투카를 급히 수입해 공군에 편입시켰다.


2. 차기 급강하폭격기 계획[편집]


하지만 제아무리 무능한 이탈리아 공군 수뇌부라고 해서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36년에 소개되어 제식 급폭의 유력한 후보인 SM.85가 보여준 한심한 성능이 공군의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터지기 전인 1939년 초, 이탈리아 공군성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차기 급강하폭격기에 관한 요구사양서를 국내의 각 항공기 제작사에 돌렸는데, 이때는 SM 85의 심사가 끝나지도 않은 시기였다.

(1) 단발기 형식은 500 km/h, 쌍발기 형식은 450 km/h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2) 500 kg의 폭탄을 실었을 경우 단발기의 경우 1,200 km, 쌍발기의 경우 2,400 km의 항속거리를 가져야만 할 것.

이 조건을 충족시킨 후보 기종 중에서 유일한 쌍발기인 피아지오 P.122는 전금속체 동체와 출력 1,000마력의 피아지오 P.XI RC40 엔진을 2대 갖추도록 고안되었으나, 이 설계안은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러운데다, 마침 회사의 설립자가 사망하는 바람에 실기는 제작조차 되지 않았다. 단좌기 설계안으로는 우선 시제 전투폭격기인 카프로니 Ca.335의 설계를 단좌기로 살짝 바꿔 1941년 1월에 비행한 파생형 Ca.355가 있었고, 마지막 후보로는 처음부터 완전히 급강하폭격기로 설계된 브레다 Ba.201이었다.



3. 기체의 구조[편집]


전금속제 저익 단엽기인 Ba.201는 인입식 랜딩기어와 역갈매기 날개를 가졌으며, 각 날개 뒷전에 위아래로 펼쳐져 급강하 브레이크 구실을 해줄 스플릿 플랩이 추가되었다. 호리호리한 동체 상단에 위치한 1인승 조종석은 조금이라도 탑승자에게 좋은 시야를 제공하게끔 최대한 기수 앞으로 당겨져 자리잡았다.

구조강도 측면에서 뛰어난 역갈매기 날개를 가진 덕분에 Ba.201의 급강하 성능은 공군성이 원한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것이었고, 에어브레이크 또한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니, 사실은 실수로 수평 비행 중에 펼치게 되면 지나치게 느려져 대공포의 먹이가 될 위험성마저 있을 정도로 그 제동력은 뛰어났다. 동체 하단의 폭탄 랙에는 500 kg 폭탄을 탑재할 수 있으며, 12.7 mm 브레다-SAFAT 중기관총을 날개에 각각 1정씩 장착했다.

Ba.201의 엔진으로 몇 가지 후보안들이 고려되었다. 출력 1,200 hp의 피아트 A.38과 960 hp의 이소타-프라스키니 IF L.121, 그리고 그 중간쯤에 해당되는 이소타-프라스키니 제타(Isotta Fraschini Zeta RC.35)는 1,150 hp의 스펙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국산 엔진들은 급강하 폭격 임무에서 큰 G가 걸리면 연료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기화기가 달린 관계로 최종적으로는 어떤 고도와 자세에서도 안정되게 가솔린을 공급해줄 연료 직분사 방식의 독일제 엔진인 다임러-벤츠 DB 601 액랭식 엔진이 선택되었다.

1941년 7월 3일에 브레다의 밀라노 공장 활주로에서 첫 비행에 성공을 거둔 프로토타입 1호기 MM.451은 공군성이 주관하는 공식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 귀도니아 실험비행센터로 보내졌다. 실험에서 Ba.201은 폭탄을 투하한 다음에는 함께 테스트받던 다른 시제 전투기를 능가할 정도로 민첩한 기동성을 보여주어 관계자들을 기쁘게 했다. 다만 속도 성능은 공군이 당초에 요구했던 500 km/h 보다 느린 460 km/h가 한계였다. 그래도 이 정도 스피드만으로도 당시 일선의 전투기와 거의 맞먹는 준수한 실험값이었다. 하지만 후방 총좌와 기관총 사수가 없어서 적 전투기에 대한 방어 능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전방 시야는 좋았지만 후방 시야는 아주 나빴다. 그리고 이 약점은 끝까지 브레다 개발진의 발목을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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