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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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대외전쟁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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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국가별 군사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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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第二次世界大戰
World War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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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939년 9월 1일[1] ~ 1945년 9월 2일[2]
(종전 후 D28137)
장소
남위 60도 이남[3]을 제외한 지구 전역[4]
원인
문서 참조.
교전국
파일:연합국 명예기.svg 연합국
파일:20211220_072106.jpg 추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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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대영제국
파일:소련 국기 (1936-1955).svg 소련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1]
파일:자유 프랑스 국기.svg 자유 프랑스[2]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3]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그 외 연합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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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1]

그 외 추축국들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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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연합국의 승리, 추축국의 패망
영향
유엔 창설
초강대국 미국소련의 등장, 냉전 체제 수립
식민제국의 몰락 및 탈식민주의의 대두
피해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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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사망자
추축군 사망자
호주 39,700명
벨기에 12,000명
브라질 1,000명
영국령 버마 2,600명
캐나다 42,000명
중화민국 3,000,000~3,750,000명
네덜란드령 동인도 11,500명
이집트 왕국 1,100명
에티오피아 제국 15,000명
프랑스 210,000명
그리스 왕국 35,100명
영국령 인도제국 87,000명
이란 제국 200명
몽골 인민 공화국 300명
네덜란드 6,700명
뉴질랜드 11,700명
노르웨이 2,000명
필리핀 자치령 57,000명
폴란드 240,000명
남아프리카 연방 11,900명
터키 200명
영국 383,700명
미국 407,300명
유고슬라비아 300,000~446,000명
소련 8,660,000~11,400,000명
총합 1,600만명 이상
나치 독일 4,440,000~5,310,000명
이탈리아 왕국 380,000명
일본 제국 2,300,000명
루마니아 왕국 450,000명
헝가리 왕국 200,000명
불가리아 왕국 18,500명
핀란드 83,000~95,000명[1]
알바니아 왕국 30,000명
체코슬로바키아 35,000~46,000명[2]
이라크 왕국 500명
태국 5,600명
스웨덴 100명[3]
총합 800만 명 이상
연합국 민간인 사망자
추축국 민간인 사망자
4,500만명 이상
400만명 이상
연합국 총 사망자
추축국 총 사망자
6,100만명 이상
1,200만명 이상
총합 7,300만명 이상


1. 개요
1.1. 전쟁의 규모
2. 전쟁 당시 전황
4.2. 1939년
4.3. 1940년
4.4. 1941년
4.5. 1942년
4.6. 1943년
4.7. 1944년
4.8. 1945년
4.9. 전후/미실행
8. 전후
8.3. 영향
8.3.1. 인권 존중과 현대 윤리의 대두
8.3.2. 반전 의식의 강화와 민주적 전쟁 억제
8.3.3. 현대 국제정세의 확립
8.3.4. 현대 국가의 탄생
9. 기타
13. 창작물
13.2. 드라마
13.4. 만화·애니메이션
13.5. 소설
13.6. 에세이
13.7. 기타
14. 관련 영상
1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1939년 나치 독일일본 제국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에 의해 발발하고, 이에 미국영국, 소련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맞서면서 1945년 일본 제국이 항복할 때까지 총 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21년 만에 두 번째로 일어난 세계 대전으로,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평가된다.


1.1. 전쟁의 규모[편집]


유럽 일대로 전쟁 영역이 국한된 제1차 세계 대전[5]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전장이 되었다.[6] 유럽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국가까지 개입하고 직접적인 전장이었으며 그로 인해 북아프리카 전선과 아시아-태평양 전선이 펼쳐젔다. 아메리카 대륙 또한 진주만 공습을 당한 미국을 제외해도 해안가나 주요 항로가 추축국 잠수함들의 게릴라전에 시달렸다.[7] 남아메리카 역시 다수의 병력을 유럽으로 파병한 브라질이 존재하며, 칠레 역시 미국으로부터 수차례 전함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8]

현재 공식적으로 생존해 있는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은 세계에 100만 명 이상 남아 있다. 2020년 기준 미국에만 30만 명 이상 생존하고 있다.#[9]


2. 전쟁 당시 전황[편집]




일자별 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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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선에서의 추축국[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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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에서의 추축국[1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cond_world_war_europe_1943-1945_map_en.png}}}
1945년 5월 9일 나치 독일 항복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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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 항복 당시


3. 발단[편집]





4. 주요 사건 목록[편집]





4.1. 전간기[편집]


  • 1931. 9. 18. 만주사변
  • 1935. 3. 16. 독일, 베르사유 조약 파기 및 재군비 선언
  • 1935. 6. 18. 영국-독일 해군조약
  • 1935. 10. 5.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 몇몇 학자들은 이 시점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으로 본다.
  • 1936. 3. 7. 독일, 라인란트 재무장
  • 1936. 7. 17. 스페인 내전 (~1939. 4. 1.) - 몇몇 학자들은 이 시점을 시발점으로 본다.
  • 1936. 11. 25. 방공 협정
  • 1937. 7. 7. 루거우차오 사건, 중일전쟁 발발(~1945. 8. 15.) - 일반적으로는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략을 전쟁의 시작으로 보지만, 일부 시각에서는 중일전쟁부터 이미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 등은 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의 촉발만을 했을 뿐이지만, 중일전쟁은 터진 시점에 '이미 세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다. 2000년대까지는 중국 계열의 민족주의 학자들만이 이렇게 주장했지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 중일전쟁을 2차 세계대전의 시작, 못해도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전초전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전까지는 서방 사학계에서 동아시아 전선의 2차 세계대전에서의 역할이 매우 과소평가되었기 때문이다.[12] 중국이 연합국에 가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뒤인 1941년 12월 9일이다.
  • 1938. 4. 10. 독일, 오스트리아 병합
  • 1938. 7. 29. 하산 호 전투
  • 1938. 9. 30. 뮌헨 협정
  • 1938. 11. 2. 빈 중재
  • 1939. 3. 15.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병합
  • 1939. 5. 11. 할힌골 전투
  • 1939. 8. 23. 독소 불가침조약


4.2. 1939년[편집]


유럽 동부
  • 독일의 폴란드 침공 (폴란드 서부 전선, 1939.9.1. ~ ) - 1939년 9월 3일에 연합국을 구성하는 영국(영연방 포함)과 프랑스가 추축국인 독일에 공식적인 선전 포고를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1939년 9월 1일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13]
  • 소련의 폴란드 침공 (폴란드 동부 전선, 1939.9.17.~ )

유럽 북부
  • 소련의 핀란드 침공(소련-핀란드 전쟁/겨울전쟁) (1939.11.30. ~ )
    • 수오무살미 전투 (1939.12.7. ~ )
    • 만네르헤임 선 전투

유럽 서부


4.3. 1940년[편집]


유럽 북부

유럽 서부
유럽 동부
  • 소련의 발트 3국 침공 (1940.6.15. ~ )
    • 라트비아 침공 (1940.6.15. ~ )
    • 리투아니아 침공 (1940.6.16. ~ )
    • 에스토니아 침공 (1940.6.16. ~ )

지중해/북아프리카


4.4. 1941년[편집]


유럽 서부/대서양

유럽 동부

유럽 북부

태평양

지중해/북아프리카


4.5. 1942년[편집]


상반기까지 추축국이 전성기의 절정을 이루다가 하반기에 연합국으로 전쟁의 축이 넘어간다.

유럽 동부

유럽 서부/대서양

지중해/북아프리카

유럽 북부

태평양


4.6. 1943년[편집]


이 시기의 회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연합국이 이미 승리를 확정 지은 시기다.

유럽 동부

유럽 서부 / 지중해

유럽 북부

북아프리카

태평양


4.7. 1944년[편집]


유럽 동부

유럽 서부

지중해/이탈리아

유럽 북부

태평양/아시아

기타


4.8. 1945년[편집]


유럽 서부
  • 독일 본토 항공전
  • 드레스덴 폭격(1945. 2. 13.~2. 15.)
  • 이터 성 전투(5.5) - 서부 전선 말기, 그것도 히틀러 사후에 벌어진 전투다. 1945년 4월에 벌어진 루르 포위전 이후 서부 전선에서는 대규모 독일군 부대의 조직적인 저항은 없어졌고, 독일군 장병들의 행보는 투항 혹은 최후 항전으로 갈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독일군은 투항을 택하고 싶어했지만, 광적인 나치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전후 벌어질 전범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을 것이 두려운 일부 독일군 장병들은 소련군은 물론이고 그나마 온건한 서방 연합군 상대로도 최후의 순간까지 싸웠다. 이터성 전투는 그 사례 중 하나로, 전투 자체의 규모는 작았으나 이 전투가 상기한 다른 전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독일 국방군 부대(와 몇몇 항복파 무장친위대 대원)가 적군인 미군과 연합하여 동족 군대인 무장친위대 부대와 싸웠다는 것이다.

유럽 동부

유럽 기타
  • Elbe day(4. 25.) - 엘베 강에서 서방 국가 군대와 소련 군대가 조우한 날이다.
  • 아돌프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당일 결혼한 에바 브라운과 동반 자살(4. 30.) - 실질적인 유럽 전쟁 종식일로 본다.
  • VE day (5. 8.~9.) - 되니츠의 플렌스부르크 정부는 서방 연합국에 먼저 항복하고 다음 날 소련군한테 항복한다. 독일 최종 항복

태평양


4.9. 전후/미실행[편집]


유럽

태평양
  • 몰락 작전(1945. 8. 17~)
    • 2차 일본 본토 공습(1945. 8. 17~) 주요 도시만 때렸던 1차 공습과 달리 상륙에 앞서 일본 본토 전 지역에 대규모 전략폭격을 쏟아부을 뿐 아니라 항모 기동부대에 의한 군사적 요충지 정밀 폭격, 전함의 대지상 함포 사격 등이 계획되어 있었다.
    • 고쿠라/니가타 원자폭탄 투하(1945. 8. 18 이후) - 8월 18일 이후 날씨가 좋아지는 대로 고쿠라니가타 중 하나를 핵폭격할 예정이었다. 이후로도 최대 네 곳이 더 예정되어 있었다.
    • 파스텔 작전 - 올림픽 작전에 대비한 기만 작전. 8만 명의 미군 병력이 시코쿠에 상륙할 예정이었다.
    • 타네가시마 상륙작전(1945. 10. 28) - 규슈에 미군 본대가 상륙하기 3일 전 선발대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 올림픽 작전(1945. 11. 1~1945. 12. 1)
    • 코로넷 작전(1946. 3. 1)
  • 지퍼 작전(1945. 9. 9) - 영국의 말라야 반도 탈환 계획. 원래 1945년 9월 9일에 크랑 항과 딕슨 항에 영국군이 대규모로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한 후 남쪽으로 진격해 일본 세력을 몰아내고 싱가포르를 되찾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였다.
  • 조석 작전 - 영국의 싱가포르 탈환 계획이었다. 지퍼 작전의 취소로 말라야 반도 주둔 일본군을 설득해 항복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리슐리외급 전함 한 척이 가벼운 손상을 입고 일본군 300명이 할복 자살하는 피해가 있었다.
  • 카보네이드 작전 - 중국의 반격 계획. 지난해에 대륙타통작전의 점령지에서 일본군을 몰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 서울 진공 작전
  • 결호작전
  • 프로젝트 SEAL - 미군과 뉴질랜드군의 쓰나미 실전 투입 계획.


5. 주요 전선[편집]






6. 참전국[편집]





7. 피해와 전쟁 범죄[편집]





8. 전후[편집]



8.1. 연합국[편집]


연합국은 매우 많지만 일단 전쟁 중 추축국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던 소련(현 러시아),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네덜란드, 미국, 중화민국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소련은 2차대전 전만 해도 러시아 제국보다 영토가 크게 축소된 나라였지만, 2차대전에서 승리한 후 잃어버렸던 영토들을 대부분 재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발트 3국을 병합하고 동부 폴란드(비아위스토크 지역은 전후 반환했다)와 베사라비아를 획득했으며 비록 핀란드 전토를 점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핀란드에게서 페첸가, 카렐리야, 살라를 되찾았다. 심지어 제정 시절에는 타국의 영토였던 지역들까지 획득했는데, 동부 폴란드에는 동부 갈리치아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키면서 카르파티아 루테니아를 뺏어왔고, 베사라비아를 반환받을 때 북부 부코비나를 함께 획득했는데, 이 영토들은 모두 옛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들이었다. 그리고 한때 독일 제국의 영토였던 클라이페다(메멜) 지역과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후에도 건사하는 데 성공했었던 동프로이센 북부까지 차지했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2700만이라는 사상자를 냈지만 승리의 열매는 달콤했다.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이라는 타이틀에 오르면서 종전 후 적어도 유럽 내에서는 소련에게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는 등 나라 자체가 너무 약해져 있었고, 전통적으로 강력했던 군사력도 크게 꺾였다. 영국은 사정이 그나마 나았지만 섬나라 특성상 육군은 소련군에 크게 밀렸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종전 시점에 13전선군이라는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그 말인즉슨 서유럽이 소련과 전쟁을 했다면 미국의 도움 없이는 자기 나라 방어조차 거의 불가능했단 말이다. 이후 1948년부터 1991년 붕괴 전까지, 소련은 냉전 체제 하에서 공산주의 진영의 왕초로써 미국과 대립했다. 비록 2700만이 죽고 국토가 초토화되었지만,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미국과 겨루는 세계의 양대 패권국 소련이었다.

영국은 승전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썼다. 타 유럽 국가보다 영국 본토와 영국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 이은 또다른 괴멸적 전쟁으로 영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원칙에 따른 복지국가론에 따라 국가를 재건하였으며, 사상 처음으로 복지 국가 개념이 실현됐다. 또한 이 시기 영국은 더 이상 식민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식민지들을 차례로 독립시켜 대영제국을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이를 영연방이라는 국제 기구로 재편하게 된다. 이 영연방을 통해 영국은 영연방 왕국 구성국들은 물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과거 피식민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영국의 전후 복구는 이 영연방 각국의 지원과 협력, 영연방 경제 연합을 통해 이뤄졌으며, 이 시기 영연방 각국 사람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부족한 일손을 채웠다. 1972년 전까지 영연방 각국 사이에는 자유 무역과 자유 이주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영연방이라는 기구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배려, 그리고 영국 문화의 소프트 파워 덕에 영국이 초강대국에서 물러난 오늘날까지 어느 정도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복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었는데 과도한 복지 때문에 오히려 영국이 경제적 침체기에 들어갔다는 주장이 있다. 자세한 것은 복지병 참조.

프랑스는 전장이 된 국토를 수습하고, 전후 복구 사업을 진행하였다. 다행히 바르샤바와는 다르게 수도 파리가 나치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초토화시키는 것을 시민들이 저항하면서 막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도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과거의 정치적인 영향력 덕분에 영국과 함께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는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위신과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겠다는 일념하에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했고, 식민지 정책에서 무리수를 둔 측면이 크다.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전쟁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고, 식민제국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알제리베트남을 침공해 식민지 전쟁을 벌였지만 이 전쟁들의 실패로 인해 프랑스는 연쇄적인 식민지에서의 독립 요구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드골주의와 사민주의의 극렬한 좌우대립과 허무주의를 겪었다. 하지만 이런 대립 속에서도 프랑스 특유의 보편적 복지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전후 경제 복구와 유럽의 평화 체제 정착,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 유럽 각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느꼈다. 이 때문에 훗날 유럽 연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최초의 유럽 공동체인 유럽석탄철강 공동체를 형성하여, 오늘날 독일과 함께 유럽 공동체를 이끄는 두 주축이 된다.

폴란드는 이후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폴란드 공산당에게 넘어가 공산화되어 폴란드 인민공화국으로 소련의 위성국화 된다. 소련과 폴란드 공산당은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망명정부 및 폴란드 국내군 소속 장교들을 서방의 간첩으로 몰아 처형시키는 희대의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이후 소련의 간섭을 겪다가 이에 반발한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가 집권하고 후반기 경기 침체로 쫓겨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레흐 바웬사의 자유 노조 운동으로 마침내 1989년 공산당 독재가 종식된다. 폴란드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NATO유럽 연합에 가입하는 등 서방 세계로 화려하게 다시 돌아온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뮌헨 늑약으로 독일에게 빼앗긴 국권을 나치가 패망함으로써 되찾았으며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활약으로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어온 소련군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 역시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그러다가 스탈린 사후 공산 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알렉산데르 둡체크 등 개혁파 세력들이 집권하여 이후 체코 내부에서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련이 체코에 대한 군사 개입을 일으켜 반정부 세력들을 진압하였고 둡체크의 개혁 정책에 반발하던 체코 공산당 내 보수파 세력들이 소련의 군사 개입을 등에 업고 둡체크를 몰아내면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반정부 운동 진압 이후에도 바츨라프 하벨 등이 이끄는 반공산 세력들의 반정부 투쟁이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어졌고 1989년 동유럽 자유화 바람을 틈타 벨벳 혁명이 일어나게 되어 마침내 야케스 공산당 서기장과 후삭 대통령이 퇴진하고 이후 실시된 민주 다당제 대선에서 반공 운동 지도자였던 하벨이 당선되면서 마침내 공산당 독재 체제가 종식되었다. 그리고 1993년 벨벳 이혼으로 체코슬로바키아로 갈라지게 된다.

네덜란드는 추축국에서 해방된 이후 연합국 자격을 얻었지만,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에서 독립하려고 하자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물간 식민주의 대신 새로운 신예인 인도네시아를 자국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길 원했던 미국영국, 소련 등 전승국들의 압박으로 금방 데꿀멍하고 인도네시아에게서 상당량의 돈만 받고 독립시켜 줘야 했다. 이후엔 수리남과 같은 해외 식민지가 모조리 독립하고 아루바 등 소수만 남긴 채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함께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현재는 서유럽의 중견 선진국으로 조용히 살고있는 중이다. 그래도 전범 재판 관련 대해서는 어느 정도 주장할 수 있어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자신들이 처형한 일본 전범이 사실은 다른 전범에 의해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자 즉시 일본에 소환을 요구했고 일본은 어쩔 수 없이 보내버렸으며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를 재판에서 무작정 기관총으로 총살시켰다.

미국은 전쟁 시에 영국, 프랑스, 소련과는 다르게 본토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이유로[15] 강대국에서 냉전기 자유민주주의의 필두이자 초강대국으로 탈바꿈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을 패망시킨 덕에 미국은 태평양 전역과 서유럽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고 기존 유럽의 열강들을 포함해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압도적인 생산량과 군사력 그리고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까지 얻은 미국의 요구에 절대적으로 굴복하거나 자주 국방을 이루기 위해 핵개발에 뛰어들거나 둘 다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리 트루먼 행정부 체제를 통해서 전세계적인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힘쓰며 서방 세계의 정치적 지도자로 떠올랐으며, 군사는 물론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헤게모니를 가지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국제 사회에 대한 미국의 입김은 기존 제국주의 열강들을 제치고 남을 수준으로 어마어마해졌으며 사실상 국제연합을 비롯한 현재의 국제 질서가 정립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 동유럽의 이단 세력의 또다른 초강대국인 소련하고 정치적 대립, 곧 냉전을 시작하게 된다. 동시에 말뚝들과 장교들은 5년 후에 또 큰 전쟁을 겪어야 했다.

중국일본 제국 대신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뻔했으나 겨우내 봉합했던 국공내전이 금세 또 재발발하여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기존의 국민정부타이완 섬으로 국부천대하면서 철수한 뒤[16] 빈 자리를 채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바로 미국소련 양쪽에 밉보여 1970년대까지 고립된다. 그동안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 제사해 운동같은 충격과 공포파탄국가급 사건을 겪다가 중화민국이 UN에서 쫓겨난 자리를 또 다시 채운 후 야심차게 등장한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중국은 사실상 허울뿐인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이후 천안문 사태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경제 성장, 우주 개발에 성공하고 홍콩마카오를 반환받아 구 제국주의 시절의 치욕을 씻는 등 겨우 21세기를 좋게 맞이하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까지 하는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다. 다만, 아직까지도 그 당시의 공산주의 사상이 남아있는 세대와 정치가들 및 정치 체계가 아직 남아있어서 중국은 아직까지 미국을 따라잡기는 어렵다라는 의견도 많다. 거기다 중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수 민족들이 점점 인본주의와 서양에서 밀려오는 사상 때문에 독립하고 싶다는 민족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다가 결국에는 소수 민족의 저항 의식을 불러일으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부 지역의 위구르티베트.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2차대전의 승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5개국이라 평가받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그리고 중화민국을 대체한 중국[17]UN 상임이사국으로서 현재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8.2. 추축국[편집]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다.

추축국들이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 상당수의 기존 정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특히 독일일본은 연합군에 영토 전체가 점령당하여 새로운 국가로 탄생되었다. UN의 규칙 중에 있는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 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 포고 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생겼다. (해당 조항은 유엔 헌장 53조와 107조로 이곳을 참조) 현재는 사문화된 상태이다.

1943년 조기에 항복한 추축국 이탈리아 왕국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한 후에 신정부가 들어서서 연합국에 가담하였다. 행정은 연합군이 세운 군정부에 위탁하였다. 이탈리아의 신정부는 무솔리니가 북쪽으로 도망가서 세운 정부와 독일군을 상대로 1945년 5월까지 전투를 벌였다. 1946년에 들어서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유지했던 왕정을 폐지하여 입헌 공화정으로 전환하여 전쟁범죄자 이미지를 털어내고 이미지 전환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1936년에 탈퇴했던 국제연맹의 후신 UN에 1955년에 공식 가입하였다.
추축국 3대 국가 중 제일 적은 피해를 받았다.


나치 독일은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카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정복하며 전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되니츠 정부가 해산 당하면서 국가가 일시적으로 소멸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연합 통치를 받으며, 동부 독일 쪽 영토[18]를 많이 잃어서 독일 민족 국가 중 역사상 가장 작은 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국토는 동서로 분단되어 이른바 서쪽에는 독일연방공화국, 동쪽에는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다. 독일군은 원래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냉전으로 인해 부활했다. 이후 베를린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 10월 드디어 독일 재통일을 이루었다. 초기에는 나치 인사들이나 지지자들이 그대로 요직에 올라 있어 옛 나치 잔재 청산과 전범 처벌이 굉장히 미진했지만 68운동을 계기로 진정한 의미의 탈나치화가 시작된 이후에는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전범들을 잇따라 체포하는 등 나치 잔재 청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전쟁 때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했다. 그리고 독일이 동유럽에 독일인을 이주시키고 전쟁 범죄를 일으킨 것의 반동으로 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가 일어났고,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포메른 등 폴란드와 소련에 합병된 구 독일령의 독일계 주민들이 대량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쫓겨나 실향민들이 되었다. 다만 집시 학살이나 과거 식민지에 대한 사과가 미진하다는 비판이 있으며, 이를 의식한 듯 2016년에는 나미비아의 헤레로족 학살 등을 사과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꽤 남아있어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냉전 때문에 공산주의 진영인 소련과는 애초에 관계 회복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후에 독일을 감시하던 국가들이 대부분 자본주의 진영이었으니.

일본 제국은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두 국가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옥쇄를 결의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손실이 예상되자 덴노의 명의로 항복을 선언하였다. 일본은 최소한 중일전쟁 이전에 넓힌 영토만큼은 보전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실질적으로 반쯤 본토 취급하던 한반도대만섬, 본토 일부였던 사할린 남부, 쿠릴 열도까지 전부 상실했으며 오키나와오가사와라 제도만 돌려받았다. 1945년 미 군정은 덴노제 지속을 승인했고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경제적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급격한 경제 발전과 50년이 넘게 자민당이 득세를 하면서 일본에서는 옛 우익들이 민주적으로 정치 권력의 주류가 되었고, 과거사 청산 및 단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우경화되었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하고 호소카와, 무라야마 등 역대 일본 총리들의 담화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도 했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무색하게도 정치인, 특히 우익 계열 정치인들의 과거 전쟁 범죄에 반성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독도, 쿠릴 열도, 센카쿠 제도영토 분쟁으로 러시아,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대립하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일전쟁을 치른 중국과의 갈등이 가장 심한데 과거에는 냉전 때문이었지만 현재는 보통 국가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8.3. 영향[편집]



8.3.1. 인권 존중과 현대 윤리의 대두[편집]


민간인군인 사망자를 모두 합하여 약 6,000만~7,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사망했다.[19] 이 전쟁의 여파로 서구권에서는 그동안 사회 주류였던 집단주의 사상이 쇠퇴하고 개인주의 사상이 대두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20]

2차 대전 이후 전쟁 기간 중 벌어졌던 끔찍한 대량학살과 전쟁 범죄 등에 대한 전 인류적 반성이 행해지면서 인권 경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전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며 인권 의식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 등을 존중하는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그와 동시에 개인 심리학 또한 크게 개선되고 발전했다. 이 덕분에 인류는 냉전이 시작된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데탕트를 맞이하기도 하고, 1960~90년대에 걸쳐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화적 번영을 누리게 된다.[21]

2차 대전은 참정권이 개선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치령 또는 식민지들은 본국에 대한 희생의 대가로 자치권의 확대를 요구했으며, 이를 계기로 자치령에 본국과 동등한 입법활동이 보장되거나 많은 식민지가 독립하는 등 변화가 생겼다(후술할 국민국가 탄생 문단 참조). 대부분 국가의 여성 참정권 역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크게 향상되었는데, 총력전의 여파로 여군 병과가 연구되었고, 특히 남성이 징병되면서 산업 공백을 충당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가 증가하였으며 여성이 경제활동을 담당하면서 여론을 형성하고 권리 확대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전후 페미니즘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유색인종의 참정권 또한 비슷한 시기에 크게 확대되어, 미국에서는 1965년 연방 투표권법이 가결되어 유색인종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되었다.


8.3.2. 반전 의식의 강화와 민주적 전쟁 억제[편집]


총력전을 겪고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이 군인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모두 겪는 것[22]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전체주의제국주의는 과거의 위상을 잃고 몰락했다. 또한 세계 대전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는 인식을 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2차 대전은 히로시마-나가사키로 대표되는 신무기 실험장의 각축전이었으며 이것들은 민간인이라고 전혀 피해가지 않았다. 현대무기를 동원한 초토화작전이나 핵폭탄의 공포까지 목격한 국민들과 각국 정부는 이제는 확실하게 이긴다해도 대충 배상금으로 뭉개버릴 수 없을 만큼 전쟁은 치를 대가가 큰 아주 비싼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23]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한 대립 구도가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했다.[24] 물론 강대국들간에 무력대결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고, 개발도상국들에 몰려다니며 눈가리고 아웅식 대리전장으로 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8.3.3. 현대 국제정세의 확립[편집]


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불안한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상대적으로 선악 구도가 명확했고[25]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26] 전후의 역사와 세계 질서를 완전히 결정짓게 되었다.

특히 2차 대전으로 인한 가장 중요한 국제적 영향은 세계 패권의 중심이 기존의 서유럽에서 새롭게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소련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무렵까지 세계의 중심이었던 대영제국이 바로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27]

특히 1941년 미국의 대추축국 선전 포고 전까지는 영국이 단독으로 대독일전을 수행하다시피 했기에 경제적 타격이 컸다. 특히 1940년에는 수도 런던이 대공습을 당하거나 영국의 생명줄인 해상 보급로에 중대한 위협이 가해지는 등 인도라는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생존조차 힘들었을 정도로 휘청이고 있었으며, 미국이 참전하면서 숨을 돌리기는 했으나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전쟁을 이끌면서 영국은 미국의 보조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결국 2차 대전을 끝으로 대영제국의 패권은 엄청나게 약화되었으며, 서유럽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소련냉전 체제가 본격화되었다. 프랑스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다른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도 막대한 전쟁 피해와 두 초강대국의 압박으로 인해 식민지를 청산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으며[28] 이에 따라 아시아아프리카에서 과거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였던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새로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카이로 선언에서 명시된 대로 광복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사실상 제국주의 시대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냉전 체제가 시작되면서 미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진영에, 소련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에 각각 여러 국가들을 가담시키며 쌍방 간 세력 경쟁을 본격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까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극초강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패권 다툼을 벌였다.

간혹 대리전의 형태로 전쟁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2차 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과거 국제연맹의 문제점과 과오를 되새겨 이와 같은 참혹한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세계적 통합과 협력 및 평화를 위해 유엔이라는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설하였고 이는 지금도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8.3.4. 현대 국가의 탄생[편집]


각 열강들이 가지고 있었던 식민지들이 독립하게 되면서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민국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전쟁이기도 했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또한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서 하나의 식민지로 묶여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민족, 종교, 이념 등에 따른 갈등이 일어나 많은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29]

이 전쟁을 기점으로 수많은 국가의 정치 체제나 정책이 바뀌었고 국가나 정권이 멸망하거나 재탄생하기도 했다. 독일 제3제국,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은 전쟁에 패배하고 나라가 연합국에 점령당해 멸망한 뒤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독일은 나라가 둘로 분단되어 자유 진영의 서독과 공산 진영의 동독으로 나뉘었으며, 일본GHQ를 통해 미국화된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이탈리아는 공화정으로 변모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지의 국가들도 엄청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서양 열강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되었다.[30] 다만 동유럽은 승전국의 하나로서 지역구 정리에 들어간 소련에 의해 공산화되거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 중국도 중일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운 마오쩌둥중국공산당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중국은 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된 지 4년 후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 공산화된다. 한국의 독립과 남북분단도 2차 세계 대전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한다. 종전 5년 후 한국 전쟁이 발발한다.[31]


9. 기타[편집]


  • 워낙에 거대한 전쟁이다보니 세계 최대/세계 최초에 이름을 올린 것들이 많다.
  • 이 부분은 논란이 있다. 일단 역사학계의 대세론 자체는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세계 최대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로 간주하지만, 당시 집계된 소련이나 독일의 사료가 매우 부족한 관계로[33] 역사학자들마다 견해가 다 다른 것이 사실이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만 해 봐도 웹사이트나 자료마다 레닌그라드 포위전, 대륙타통작전, 바르바로사 작전, 베를린 전투 등 세계 최대의 사상자를 낸 전투는 매번 달라지는 것이 일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전술했듯이 사료 부족의 문제도 있고,[34] 이 "사상자" 개념에 전투 도중 사망한 민간인을 포함시키느냐의 여부 때문이기도 하다. 상당히 물론 순위권에 드는 전투들이 거의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벌어진 전투라는 대에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 여기도 논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세계 최대의 공세"라는 뜻 자체가 중점을 과연 병력수에 두느냐 아님 동원한 총 장비의 숫자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바그라티온 작전이 세계 최대의 공세가 아니라고 주장한는 사람들은 바르바로사 작전과 비교하여 추축국이 동원 병력(+사단) 이 훨씬 더 많았다는 논리로 밀고 나가며,[37] 세계 최대의 공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소련군이 동원한 전차와 포병, 항공기 전력이 더 많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38] 판단은 각자의 몫.
    • 세계 최대의 전선
    • 세계 최대의 해전[35][36]
    • 세계 최대 규모의 사단이 동원된 단일 작전
    • 세계 최초의 핵무기 실전 사용

  • 사실상 근대 서구 문명이 만들어 놓은 모든 사조들이 복잡하게 얽혀들어가다가 격력하게 충돌, 폭발해버린 전쟁이라고 봐도 된다. 지금에야 민주주의가 기본 디폴트이지만 그때만 해도 왕정, 제정 등등 아직 꽤 많이 살아남아있었기에 민주주의가 지금처럼 절대적인 위치에 있지 않아 독재로 흐르는 데 큰 거부감이 없었다. 쇠퇴해가는 왕정과 막 파생된, 연약한 민주주의 사이에서 대공황을 딛고 자리잡아버린 극우파시스트 세력과 그에 결합한 원래부터 쭉 있었던 우생학/극단민족주의, 거기에 러시아 혁명의 성공으로 공산주의와 그에 반작용으로 오는 반공의 기조, 자유민주주의[39], 제국주의와 상반되는 의미의 민족주의까지 섞여들어간, 그야말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해버린 전세계적 사조 충돌의 현장이라고 봐도 좋은 정도. 당장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독소전은 극우 파시스트 세력과 공산주의 간의 극렬한 이념대립+인종/민족주의가 섞여들어가서 유래없이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이라고 봐도 좋다. 1차 대전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전근대의 패권/영토싸움(aka. 땅따먹기)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2차대전부터는 어느 정도는 신념전쟁의 형태를 띄었고 그것도 냉전과는 달리 다극적 형태를 띄었는 데, 서로에 대한 상상초월한 광기와 극렬한 증오가 파생되었던 건 이 때문. 한 나라에서도 여러 세력이 갈려서 외세를 끌어들이고 서로 대립하고 뒷통수치고 싸우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 전쟁을 계기로 극단민족주의/우생학[40]에 기반한 파시스트 세력은 퇴조하고 이때 식민지인들이 전투에 많이 참여한 것을 계기로 제국주의도 쇠퇴한다. 그리고 세계는 민주주의-자본주의/독재정-공산주의 양단으로 남게 된다.

10. 관련 어록[편집]





11. 관련 인물[편집]






12. 대체역사[편집]





13. 창작물[편집]


※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창작물만 나열.

제2차 세계 대전은 수많은 창작물[41]의 인기 소재이다. 현재까지도 국제 질서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는 대사건인 데다, 상대적으로 선악구도가 명확[42]하며,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는 연합국과 추축국, 그 하에서 분전하는 능력 좋은 패장들, 그리고 초중반 추축국의 선전 후 연합국의 드라마틱한 역전까지 실제 역사임에도 창작물스러운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각종 대체역사물의 식지 않는 떡밥이기도 하다.

한국 명칭인 제2차 세계 대전이라고 하면 그다지 감이 안 나지만, 영어로는 The Second World War, 혹은 World War II 라고 하기 때문에 시간여행물에서 미래의 등장인물들이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해 말하면 과거 제1차 세계 대전 내외 시간대의 등장인물이 세계 대전이 1차에서 끝나지 않고 한 번 더 일어난다는 사실에 멘붕하는 클리셰가 있다.


13.1. 영화[편집]





13.2. 드라마[편집]




13.3. 게임[편집]



비디오 게임 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 보드 게임, 미니어처 게임도 포함한다.


13.4. 만화·애니메이션[편집]



13.5. 소설[편집]




13.6. 에세이[편집]




13.7. 기타[편집]


  • 2차대전 전차개그
  • 디젤펑크
  • Clock Over Orquesta - 야이로와 카즈토의 개인 스토리에서 다룬다.
  • G.I. Joe(1세대) -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초창기 G.I. Joe는 이렇다 할 테마가 없는 밀리터리 피규어로 발매되었는데, 주로 제2차 세계 대전 시대의 군인들을 다루고 있다.


14. 관련 영상[편집]


  • 국방TV - 제2차 세계대전: ##


15.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