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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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구조와 특징
3. 개발
4. 실전 투입
5. 탁월한 효과



1. 개요[편집]


PTAB (ПТАБ : ПроТивотанковая АвиаБомба[1] / 대전차 항공폭탄)

2. 구조와 특징[편집]


소련군독소전쟁에서 처음 실전에 사용했던 대전차용 항공폭탄이다. 이 폭탄은 1발에 2.5 kg 정도로 작고 가벼운데, 탄체 내부에는 1.5 kg의 성형작약이 내장되어 있어서 60~70 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하는 위력이 있었다. PTAB 항공폭탄은 주로 지상 공격기 일류신 Il-2의 폭탄창에 직접 280발을 장착하거나 또는 1발에 48발이 수납된 집속폭탄을 4발 장착할 수 있었다. PTAB가 주로 명중하는 부위는 전차의 장갑이 얇은 차체나 포탑 상부, 그릴로 덮은 엔진실 상부 같은 곳이어서 당대의 어떠한 중전차라 하더라도 관통하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3. 개발[편집]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제22중앙실험설계국(ЦКБ-22)에서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던 이반 A. 라리오노프(Иван Александрович Ларионов : 1906~1979)는 처음에 무게 10 kg의 좀 더 큰 탄체를 구상해 1942년에는 시제탄까지 만들었지만, 실험 결과 관통력이 필요 이상 크다는 것을 깨닫고 1/4 무게의 경량 폭탄을 설계하게 된다.

4. 실전 투입[편집]


독소전이 한창이던 1943년 초에 Il-2를 장비한 공격기연대에 먼저 보급되었고, 같은 해 쿠르스크 전투에서 처음 쓰였다. PTAB 폭탄은 가볍고 작아서 단좌 전투기Yak-9에도 수십 발을 장착할 수 있었고, 특히 전투폭격기로 개량된 Yak-9B의 보조 무장으로 흔히 쓰였다. 뿐만 아니라, 구식화된 복엽 훈련기인 폴리카르포프 Po-2에도 장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여러 기종에서 흔히 쓰이게 되자 PTAB의 소모량은 순식간에 크게 늘어났다. 소련군의 기록에 따르면 1943년 말까지 무려 1,171,340발의 PTAB이 투하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소모량은 더욱 늘어나서 1944년에는 5,024,822발까지 거의 5배나 폭증했으며 1945년 4월까지 3,242,701발, 모두 합쳐서 940만발의 PTAB가 독일군의 머리 위에 죽음의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5. 탁월한 효과[편집]


페트병 크기의 PTAB 폭탄 1발이 48발 내장된 PTAB-2.5-1.5(ПТАБ-2,5-1,5) 집속탄을 100 m 고도에서 떨어뜨리면 탄체가 흩어지면서 폭 15 m, 길이 200m의 면적을 커버했다. 종래대로라면 수평 폭격시 빠른 속도로 기동하고 있는 전차를 직격할 확률은 전통적으로 매우 낮았으나, 각 탄자가 확산되는 이 폭탄의 경우 대상을 타격하는 명중률은 극히 높았다. 장갑 관통력은 명중시의 각도에 따라 최소한 60mm로 시작해 90도로 직격될 경우는 최대 100mm까지 다양했다, 이러한 관통률 덕분에 정면에서도 2차 대전 전차들 전부 파괴할 수 있었고, 안그래도 장갑이 얇은 전차의 상부를 향해서 사용했던 것이다. 독일군이 자랑하던 중전차인 6호 전차 티거조차도 포탑의 지붕과 차체 상부 철판의 두께는 25mm에 지나지 않았고, 5호 전차 판터는 16~18mm에 불과했던 탓에 일단 명중되면 어디든 피해를 입히거나 전차 승무원을 살상할 능력이 있었다.

독일군의 전투 기록을 살펴봐도 이 신형 폭탄의 위력을 잘 알 수 있다. 무장친위대 제3사단 토텐코프 전차 부대는 쿠르스크 전역에서 하루에 270대의 전차와 각종 장갑차량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2] 이 전투에서 조사된 PTAB의 폭격 밀도는 2,000발 이상이 차량에 직접 명중해 피해를 입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PTAB의 매운 맛을 본 독일군은 기갑부대의 제대간, 차량간 간격을 넓혀 그에 대응했다. 그것으로 공습의 피해는 줄일 수 있었지만, 그러나 제대간 차량간 거리가 적정한 간격 이상으로 벌어져 버려 전투효율 또한 줄어들어 소련 지상군 간의 전투에서는 손해를 보아야 했다. 물론 이동 중 혹은 집결지에 있을 때 공습을 당하면 이런 대응책도 불가능했겠지만.

이 무기를 만들어낸 이반 라리오노프는 1944년 1월에 그 공로를 당으로부터 인정받아 레닌 훈장을 받았고, 승전 후인 1946년에는 스탈린 상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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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쁘로찌바땅코바야 아비아봄바[2] 당시 남서쪽 전선에서 방어선을 펼친 채로 있었는데, 프로호로프카 전투와 관련해 지원출격해서 돌아다니던 소련공군에 발각당해 거의 일방적으로 얻어터졌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