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티라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9세와 헤센카셀의 루이제의 3남 3녀 중 3녀로 다섯째 아이다. 하노버 왕국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세자의 아내이며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 영국 왕비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 러시아 황후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막내 여동생이다. 그리스 왕비 프레데리키의 친할머니 관계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1853년 9월 29일 코펜하겐의 옐로우 팰리스에서 태어났다. 티라의 위로는 2명의 오빠와 2명의 언니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언니들인 알렉산드라와 다우마와 함께 방을 썼다고 한다. 부모 모두 왕족이었지만 왕가와는 먼 친척이었기 때문에 평범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프레데리크 7세가 아이 없이 죽은 후 그의 먼 친척인 티라의 아버지 크리스티안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자 집안 분위기도 변화하게 된다. 크리스티안 9세가 왕위를 계승하던 1863년에는 둘째 오빠인 빌헬름 왕자가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고, 첫째 언니 알렉산드라가 영국의 앨버트 에드워드 왕세자와 결혼하며 왕세자비가 되었다. 1866년에는 둘째 언니 다우마가 알렉산드르 황태자와 결혼하여 러시아의 황태자비가 되었다.
2.2. 혼담과 사생아 출산[편집]
어머니 루이제 왕비는 티라 또한 언니들처럼 좋은 혼처를 찾아주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의 빌럼 3세와 혼담이 오갔지만, 티라보다 36살이나 많았기 때문에 그녀가 거절했다.
하지만 좋은 혼처를 찾기도 전에 18살의 티라는 빌헬름 프리만 마체르라는 기병 장교와 사랑에 빠져 임신해버리는 사고를 쳤다. 그리스 국왕이던 둘째 오빠 요르요스 1세는 아테네에서 몰래 아이를 낳게 했다. 티라는 공식적으로 황달에 걸려 "아프게" 된 것으로 하고, 1871년 11월 8일 아테네에서 마리라는 딸을 낳았다. 마리는 이후 덴마크 가정에 입양되어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1964년 사망했다.
아이의 생부인 빌헬름 프리만 마체르는 크리스티안 9세와 면담한 후 1872년 1월 권총으로 자살했다. 당시 국왕과의 면담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황상 국왕이 자살하라고 종용한 듯.
2.3. 결혼[편집]
비밀리에 출산한 티라는 1878년 12월 하노버 왕국의 왕세자였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2] 와 코펜하겐에서 결혼했다. 하노버 왕국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에 가담 한 후 프로이센에 합병되었기 때문에 왕위는 명목상의 지위일 뿐이었지만 두 사람은 3남 3녀를 낳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밀 출산의 여파인지 티라는 아기 울음소리에 극히 예민해하며 싫어했다는 말이 있다.
2.4. 말년[편집]
아들 3명 중 장남과 차남이 먼저 요절했다. 다행히도 3남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가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와 결혼해 자녀를 낳아서 현재까지 하노버 왕조의 후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1923년 11월 14일 사망하고 티라는 그보다 10년 정도를 더 산 1933년 2월 26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그문덴에서 눈을 감았다.
3. 여담[편집]
- 언니들인 알렉산드라, 다우마와 똑같이 생겼다. 굳이 따지자면 둘째 언니인 다우마와 좀 더 비슷하다.
- 남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조지 3세의 증손자로서, 법이 개정되기 이전인 1917년까지 영국의 왕자비이기도 했다.[3]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08:52:24에 나무위키 덴마크의 티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빌헬름이라는 기병 장교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 덴마크 가정에 입양되어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살았다.[2] 하노버 국왕 게오르크 5세의 장남이다. 한편으로는 올케인 그리스의 올가 왕비의 이종사촌이기도 하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의 어머니 하노버의 마리 왕비가 올가의 어머니 알렉산드라 대공비의 언니다.[3] 1917년 이후 국왕의 손자까지만 왕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단, 하노버 왕가는 카를 에두아르트 일가와 마찬가지로 작위 박탈법(1919년 3월 28일 발효, 적국(독일) 편에 서서 싸운 영국 귀족들의 작위를 박탈함)으로 영국의 작위가 몰수된 것이다.[4] 조지 2세의 외손자이다.[5] 프레데리크 5세의 3녀이자 조지 2세의 외손녀이다.[6] 조지 2세의 외손자이다.[7] 프레데리크 5세의 3남이다.[8]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그리스의 왕비 프리데리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