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토 (r1판)

편집일시 :

1. 로마의 정치가 대(大) 카토
2. 로마의 정치가 소(小) 카토
3. 일본의 성씨
3.1. 실존 인물
3.2. 가상 인물
4. 헝거 게임의 등장 인물
6. 일본의 대표적인 철도 모형 제조 브랜드
7. 일본의 건설 장비 제조업체
9. 그린호넷의 등장인물



1. 로마의 정치가 대(大) 카토[편집]


카르타고에 대한 강경파이자 스키피오를 견제한 인물

로마정치가이자 문인. BCE 234 ~ BCE 149. 풀네임은 Marcus Porcius Cato. 2번 항목 인물의 증조부로, 대(大) 카토라고도 한다. 별명은 현명한 카토(Cato Sapiens), 오래된 카토(Cato Priscus), 감찰관 카토(Cato Censorius).[1]

동시대의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우스[2]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는 대조적으로, 로마가 그리스화하는 것에 반대하였으며,중소 농민을 보호하고 반(反)카르타고 정책을 펼 것을 주장하였고 라틴 산문 문학을 개척하는데 기여하였다. 저서로 《농업론》, 《기원론(起原論)》 등이 있다. 집정관 시절 스페인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개선식을 열었다.

"Carthago delenda est"(카르타고는 멸망해야 합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3]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더 이상 카르타고를 존속시킬 수는 없다는 의견을 가진 강경파였기 때문이다. 별 상관없어 보이는 연설을 한 후에도 저 말은 꼬박꼬박 붙였다고 한다. 기승전돔? 그리고 로마는 후에 정말로 카르타고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4].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한니발 바르카를 패퇴시켜서 일약 로마의 대스타가 된 이후 스키피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가자 어떻게든 스키피오를 정계에서 축출하려고 발악했던 걸로도 유명하다. 단, 스키피오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게 아니라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로마 공화정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로마 원로원 의원은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토 역시 당시의 다른 의원들처럼 노예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서 투자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토가 청렴결백하다는 존경을 받는 것은, 그는 투자를 통해 이득을 챙기기는 했지만 총독 재임시 속주민들을 수탈하지 않고 공명정대한 통치를 펼쳤으며, 로마로 돌아온 후에도 압정에 고통받는 속주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여러 번 나섰기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변방이었으며 가혹한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히스파니아(오늘날의 에스파냐, 즉 스페인) 속주민들을 위해 많이 나섰는데, 이는 카토 본인에게 경제적, 실질적 이득이 전혀 되지 않았고 속주 수탈을 통해 뱃속을 챙기려는 다른 원로원 의원들의 반발만 샀지만 카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카토: 난 카르타고를 따끔하게 소금칠 할 수 있는 차가운 로마 남자... 하지만 내 속주민에겐 따뜻하겠지... 카르타고: 근데 우리한테는 왜 그랬어요ㅠㅠ

첫 아내인 리키니아가 죽은 뒤, 자신의 노예 살로니우스의 딸 살로니아를 자유민으로 만들어주고 그녀와 재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5] 당시 카토에겐 이미 장성한 아들인 리키니아누스가 있었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죽자 카토와 동침하는 살로니아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카토가 살로니아와 결혼하겠다고 나서자, 자기가 노예 애인을 반대해 화가 나서 모욕을 주려고 이러느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에 카토는 나는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런 아들을 더 가지고 싶어서 결혼하는 거라고 달랬다. 리키니아누스는 살로니아와 자신의 동생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카토보다도 먼저 죽어서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이 살로니아로부터 이어진 가계는 2번 인물로 흐르게 된다.


2. 로마의 정치가 소(小) 카토[편집]


키케로와 함께 공화파의 거두로서 카이사르에 맞선 인물

B.C.95~B.C.46. 1번 인물의 증손자. 풀네임은 Marcus Porcius Cato Uticensis. 소(小)카토라고 한다.

소 카토는 젊은 시절 당시 전형적인 귀족 젊은이처럼 대대장으로 경력을 시작하였는데 스파르타쿠스, 마케도니아 전쟁 등에서 휘하 대대를 지휘하면서 유능한 군인으로 병사들의 인기를 얻었다. 그 경력으로 재무관에 당선한 뒤 대담하게도 독재관 술라 치하의 밀고자들을[6] 탄핵하였다. 하지만 술라의 빽으로 인해 이러한 고발이 소용없게 되자 실망한 카토는 재무관을 사임하였다. 이러한 태도로 민중 사이에 유명해진 카토는 그 유명세 때문인지 호민관이 되기도 전에 원로원 의원으로 발탁되었고 그 뒤 얼마 안있어 호민관에 당선된다.

호민관이자 원로원 의원이었던 카토는 카틸리나의 음모 때 집정관 키케로를 지지하여 카틸리나를 재판없이 처형하는데 일조하였고 그 와중에 카이사르가 그 음모에 연루되어있음을 주장하기도 하였다.[7][8] 그 뒤에는 옵티무스의 일원이 되어 기존 체제를 흔드는 움직임을 여러차례 보여왔던 폼페이우스를 정치적으로 공격하였다. 훗날 폼페이우스가 동방에서 귀국한 뒤 개선식과 집정관 선거를 치르게 해줄 것을 요청하자 원로원을 움직여 양자택일을 강요하게 만들었다. 그 뒤 법무관을 지낸 뒤 총독으로 부임하여 지금의 포르투갈 지역을 제패한 성과를 거두고 귀국한 카이사르에게도 이러한 양자택일을 강요하였으며 그 결과 폼페이우스는 집정관 직을 포기하고 개선식을, 카이사르는 개선식을 포기하고 집정관 출마를 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 이후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에 의한 삼두연합이 결성되고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당선되는 일이 생긴다. 그 해에 법무관에 당선된 카토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퇴역병들을 위한 농지법을 내놓자 그걸 회의 때 장광설로 방해하는 등의 일을 벌였고, 훗날 폼페이우스가 원로원에 넘어온 이후 로마에 민중의 큰 지지를 받는 클로디우스가 정적에게 죽임을 당하는 큰 소동이 벌어져 폼페이우스를 독재관으로 선출해야하는 상황이 되자 독재관을 주는 대신 단독 집정관을 주어야한다고 주장하여 관철시키는 등의 까칠한 모습을 보였다.[9][10]

이러한 옵티무스쪽에서의 활약과 본인이 반대한 정책들 때문에 호민관 이후로 카토는 민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고 집정관 선거에서 번번이 낙선하였다. 하지만 카토는 원로원 의원들의 신임을 받은데다 혼인으로 인맥을 쌓아두었으므로 정치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발휘하였다.

스토아 철학을 신봉한 인물로 항상 검소하게 살았다.[11] 1차 삼두정치 당시 키케로와 함께 3두 정치가들에 대항하는 가장 큰 거물이었고, 공화정을 옹호하며 카이사르와 싸우다 패하자 자살하였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을 읽으면서 배를 스스로 찔러 죽었다.[12]

파일:Charles_Le_Brun_-_Suicídio_de_Catão_de_Útica.jpg
자결하는 소 카토. 샤를 르 브룅 작, 1646년경

소 카토의 자살이 워낙 임팩트 있어서인지, 단테신곡에서 연옥의 섬을 지키는 수호자로 소 카토를 등장시킨다. 신곡에서는 자살자들이 모두 지옥에 가 있지만 소 카토만큼은 예외다.

당시 로마에 유행하던 그리스 문화 유행을 비꼬며 항상 라틴어를 쓴 것으로 유명하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와 함께 로마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다. 로마에서 '검소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대체로 카토를 존경한 이들로 보면 된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벌해서 일약 로마의 대스타가 되자 어떻게든 카이사르를 축출하려고 발악했던 걸로도 유명하다. 이유는 증조할아버지와 같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버지는 다르지만 같은 어머니를 둔 동복누이 세르빌리아는 카이사르의 애인이기도 해서 사적으로도 둘 사이는 별로 안 좋았던 듯하다.

이에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기원전 63년 카틸리나 반란 모의 사건당시 카토는 카이사르가 이 반란의 배후 중 하나라 주장하며 카이사르를 공격했다.[13] 한창 말이 나오던 중에 카이사르가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카토는 그것이 내통의 증거라며 공격했고 카이사르는 개인적인 편지라며 응수했다.

결국 카토의 말에 못 이긴 카이사르가 그 편지를 카토에게 주었는데 편지를 읽은 카토는 얼굴을 붉히며 "이 주정뱅이 같으니라구!"라고 소리지르고는 편지를 카이사르에게 던졌다. 그 편지는 바로 세르빌리아와 주고 받은 연애편지였던 것.

참고로 누나인 세르빌리아[14]는 카이사르 암살자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어머니이다. 브루투스는 아버지를 일찍 잃었기 때문에[15] 삼촌인 카토의 막강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카토의 카이사르에 대한 반감은 브루투스에게 이어졌고 결국 카토가 죽고 2년 뒤인 기원전 44년에 그는 카이사르를 암살한다. 그러나 브루투스 역시 시대의 흐름을 막아내지 못하여 그리스에서 카이사르의 후계자들에게 패하여 죽는다. 카토의 아들 역시 필리피 전투에서 전사했다.

카토는 타협할 줄 모르는 완고한 태도와 그 특유의 열혈 파이터적 기질로 인해 주위의 미움을 많이 사 자주 고발당했는데 무려 44(!)번이나 고발당했다. 물론 전부 무죄방면되긴 했지만 카토는 44번이나 법정에 서서 스스로를 변호해야만 했다고 한다.

후세의 평가에서는 카이사르와 끝까지 맞서면서 공화정을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그가 독재자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민주 투사로 여기는 의견이 많지만, 이는 당대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서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의 공화정은 민중(평민)의 정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귀족들을 위한 정부였으며, 원로원 체제 이래 공화정의 정부가 해온 일은 '귀족 권익을 지키기 위한 민중 탄압'으로 요약된다. 이를 개혁하고 원로원과 귀족들이 독점하였던 대토지를 민간에게 나눠주려고 한 것이 그라쿠스 형제였으나, 이러한 시도를 원로원은 형인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를 대낮에 스키피오를 대표로 내세우고 의원들이 직접 달려들어 패싸움 끝에 살해하고, 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원로원 최종권고[16]를 발동하여 그 지지자 3000명과 함께 처형시키는 걸로 답하였다.

이후에도 이러한 원로원의 초법적 조치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폭력적인 술수는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카토는 위의 언급된 필리버스터 등을 통하여 원로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첫 호민관 당선 이후로 다시는 선거에서 당선될 수 없었던 것이며, 그런 그를 원로원 의원들이 지지하던 것도 이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귀족 중심의 원로원과 정면으로 대립하면서 민중과 퇴역병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겠다고 몸소 나선 사람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였으니, 당시 로마 시민들 입장에서는 카토키케로로 대표되는 원로원 세력이 구시대적 기득권층으로 비춰졌고, 그들에 맞선 카이사르를 영웅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드라마 로마에서도 타협을 모르는 깐깐한 성격으로 나와 배경지식 없이 드라마에 표현되는 모습만 보면 악역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소한 복장을 입었다는게 반영된데다 색도 검은색이어서 흰 옷을 입은 다른 원로원 의원들보다 튀어보이며 키케로, 카이사르보다 어린 인물임에도 너무 늙게 묘사되었다. 그리스에서 카이사르와 대치하던 폼페이우스가 지구전을 펼치려 할 때 영광의 승리 운운하며 정면승부를 요구해 패전의 원인 제공을 했으며 이후 메텔루스 스키피오와 함께 북아프리카로 가서 카이사르와 대적하지만 끝내 패하고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뒷간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떠나 단검으로 자결한다.


3. 일본의 성씨[편집]


한자加藤
히라가나かとう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법가토
통용 표기카토, 카토우, 가토
최영애-김용옥 일본어 표기법카토오

기원은 카가(賀)지역의 후지와라(原)씨.


3.1. 실존 인물[편집]




3.2. 가상 인물[편집]



4. 헝거 게임의 등장 인물[편집]


파일:external/images3.wikia.nocookie.net/200px-CatoNormal.jpg

영화판에서의 배우는 알렉산더 루드위그.[20] 영화판에서 이름의 발음은 케이토에 가깝다.

제2구역에서 자원한 프로 조공인으로 유력한 우승후보이자 1권의 실질적인 메인 빌런. 오만하고 잔인한 성격이다. 게임에서 쓴 주 무기는 칼과 창. 게임 전에 보인 시범에서 10점을 기록했다.

게임이 진행되는 중에 캣니스에 의해 동료 프로들이 차례차례 죽어나가고 보급품을 다 날아가자 이놈은 내가 죽여야 한다며 분노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서 제3구역의 조공인 소년을 보초를 제대로 안섰다는 이유로 열폭하면서 팀킬(...).

캣니스, 피타, 카토 3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캣니스와 피타는 카토가 무언가를 피해 달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게임 진행자들이 희생자들의 DNA를 합성한 변종 늑대[21]들을 투입한 것. 캣니스와 피타는 덩달아 따라서 뛰고 게임이 시작되던 코뉴코피아의 뿔 위로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뿔에 올라온 카토는 거의 멘붕 상태에서 피타를 인질로 삼지만[22] 그때 피타가 카토의 손에 X표시를 하자 캣니스는 화살을 카토의 손등에 쏘고[23] 머테이션 늑대들이 있는 바닥으로 나가떨어져 물어뜯긴다.[24] 그리고 캣니스는 고통받는 카토를 화살로 자비 사살해준다.

여담으로, 같은 구역에서 온 클로브가 죽을 때,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둘이서 살아남는 걸 바랬으니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다만 이 때는 같은 구역에서 두 명이 살아남으면 공동 우승자가 된다고 모두가 믿던 시점이라, 방송을 위한 기믹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과 상관없이 팬들 뇌리에는 커플로 엮이지만

메인빌런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프로조공인을 양성하는 1, 2, 4구역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18세가 되면 자원하게 되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조공인이 되기를 원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 헝거게임에 참가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끊임없이 세뇌당해온 것은 기본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과 무언의 강요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판에서 카토가 난 내 구역의 긍지밖에 모르고 살아왔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어떻게 보면 카토 역시 캐피톨이 만들어낸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5. 디그레이맨칸다 유우의 별명(?)[편집]


원인은 "되감기는 도시" 편 녹화 후의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음향 믹서 T씨가 자꾸 "카토, 카토"하고 어떤 인물을 불러댔고, 다른 사람들은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T씨가 "사쿠라이 군이 맡은 사람 말야"라는 말에 그제서야 칸다를 얘기하는 건 줄 알고 핀잔을 주었다.

문제는 그 후. 이 소식을 들은 칸다 역의 성우 사쿠라이 타카히로가 녹음 현장에서 T씨를 향해 "카토입니다. 오랫만이군요"라는 식으로 인사해버린 것. 이후 저 별명이 쫘악 퍼졌다.

여담으로 작가는 저 해프닝을 듣고 절규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단행본에 특별 만화로 수록되고 드라마 CD에서도 등장하는 등 거의 공식화되었다. 칸다 본인은 싫어하는 듯하지만.

D.Gray-man 애니메이션 스태프들은 대부분 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6. 일본의 대표적인 철도 모형 제조 브랜드[편집]


株式會社 關水金屬(주식회사 관수금속)
창립 쇼와 32 년 8 월(1958년)
대표이사 가토 히로시

관수금속(카토금속)에서 생산하고 있다. 가성비가 가장 좋아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공식 사이트 http://www.katomodels.com/)

주식회사 관수금속 항목 참고.


7. 일본의 건설 장비 제조업체[편집]


카토 제작소 항목을 참고.


8. 일본도시[편집]







9. 그린호넷의 등장인물[편집]


그린 호넷의 운전사이자 사이드킥...이지만 실제론 진주인공 취급을 받는다. 과거 드라마판의 배우는 이소룡. 2011년판 영화에서는 주걸륜이 열연했다. 자세한 내용은 케이토 항목 참조 바람.


10.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인물[편집]


히가시카타 카토 항목을 참고.

[1] 감찰관 카토라는 별명은 그가 워낙 감찰관 직을 잘 수행하였기에 붙은 별명이다. 카토는 로마의 전통적 가치와 도덕을 중시하였고 감찰관이 된 후 이를 어기는 이가 있다 싶으면 가차없이 원로원에서 쫓아냈다. 하도 감찰관으로 유명하다보니 오히려 집정관에 오르지 못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기원전 194년에 차석 집정관으로 당선되었다.[2] Titus Quinctius Flaminius. 친그리스주의자였으며 집정관이 된 후 키노스케팔라이(Cynoscephalae)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기원전 196년 코린트에서 개최된 이스트미아 제전에서 그리스의 "자유"를 선언한 후엔 일부 그리스인들에게서 신으로까지 숭배되었던 인물이다. 프로콘술이 된 후에도 앞장서서 마그네시아, 테살리아, 프티오티스, 에우보이아, 로크리스 등 여러 그리스 도시들에게 일정 수준의 자치를 부여해주었다. [3] 이는 사실 축약본(?)이고, 원문은 "Ceterum censeo Carthaginem esse delendam'(덧붙여, 제 생각으로는 카르타고는 반드시 망해야 합니다)"이다. 문법적으로 뜯어보자면 'Carthago delenda est'라는 문장 자체가 censeo의 목적어로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Carthago delenda est'를 대격+부정사로 쓴 것이다. 이렇게 안긴 문장을 대격+부정사 형태로 표현하는 문법을 Accusativus cum Infinitivo 라고 하며, 줄여서 AcI라고도 부른다.[4]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키도록 여론을 지핀게 대 카토이다.[5] 카토는 이미 늙어서, 살로니아가 아이를 가졌을 당시 이미 80이었다고 한다.[6] 당시 술라 치하에서는 살생부를 작성하여 유력 정치가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나눠가지는 상황이었다. 이때 이 정치가들의 약점을 찾아내 밀고하는 역할을 하는 자들을 밀고자라고 불렸는데 이런 자들을 카토가 탄핵한 것이었다.[7] 카이사르는 카틸리나를 재판없이 처형하는데 반대했다.[8] 만약 연관되었다는 증거가 있었다면 카이사르 역시 탄핵되었을 것이고 실제로 카토와 키케로도 벼르고 있었겠지만 증거가 전혀 없어서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다.[9] 사실 이건 로마에서 불법이었다. 옵티무스들은 공화정을 지킨다고 했지만 정작 그 공화정을 지켜야 할 옵티무스들이 더 공화국의 법을 어기는 아이러니를 보였다.[10] 거기다 정작 독재자를 암살하고 공화정을 지키겠다던 브루투스도 일생 동안 돈을 빼돌려 횡령했던 일도 있었고, 오히려 독재자라고 비판받던 카이사르가 오히려 공화정의 주체인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원로원들의 부정부패를 척살하는 등의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명시해 공화정의 모순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11] 그런데 정작 카토 본인은 금욕주의를 주장했으면서 술을 매우 좋아하여 거의 입에 술을 달고 산 애주가였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소설 클레오파트라에서는 이를 두고 "금욕적인 술고래 카토라니, 웃기지 않는가?"라고 비아냥거리는 대목이 나온다...[12] 죽기 직전 지인들을 초대해 만찬을 하며 지인들과 탑수스 전투에 대한 언급 한마디 없이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했다고 한다. 토론 당시 카토는 소크라테스를 예로 들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은 죽어서도 자유롭다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자살할 때 아무도 들이지 못하게 한 뒤 배를 찔렀으나 죽지 않았고 설마했던 가족들은 신음소리를 듣자마자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창자까지 찢어진 배를 봉합했지만 카토는 거부한 뒤 배를 다시 절개하고 자신의 내장을 끄집어 내며 겨우 죽었다고 한다.[13] 당시 마침 카틸리나를 카이사르가 변호하기도 했다. 키케로의 공박에 밀려 실패했지만. 덕분에 변호를 마치고 나오면서 엄청난 아유와 공격을 받아서 주변사람들이 그를 보호해야 했다고 한다.[14] 카토와는 아버지가 다른 누나였다. 세르빌리아는 카이피오와 리비아의 딸이다[15] 브루투스의 아버지는 집정관 레피두스(제2차 삼두일원의 아버지)와 함께 술라의 보수파에 반기를 들었으나 폼페이우스의 신속한 대처로 생포당하고 처형되었다.[16] 집정관이나 독재자에게 모든 권한을 양도하는 조치. 현대의 계엄령과 비슷해 보이지만 계엄령은 엄연히 긴급한 사태가 벌어졌을 경우 법률을 근거로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법적인 조치인 원로원 최종권고와는 다르다.[17] 과거에는 한자를 음차해서 불렀기에 가등청정으로 알려졌었으나, 현대에는 드라마 방영 등으로 고유명사인 가토 기요마사로 알려지게 되었다.[18] 치치시마섬 식인 사건 참조.[19] 울트라마린 챕터의 모티브를 보아 상단의 로마 정치인에게서 따왔을 가능성이 높다. [20] 전혀 안어울리지만, 피타 멜라크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이 리얼했던 건가 그리고 드라마 바이킹스에서 비요른 아이언사이드로 현재 열연 중인 배우다.[21] 2권 캣칭파이어에서 일부러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을 뿐 진짜 희생자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 나온다.[22] 원작에서는 딱히 특별한 대사가 없지만 영화에서는 이 때 카토가 캐피톨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요지의 대사를 한다. '난 어차피 죽은 목숨이잖아. 항상 그랬잖아. 그게 그들이 원하는 거잖아?' 잔인한 악역인 줄로만 알았던 카토도 사실 캐피톨에 의한 피해자일 뿐이었음을 드러내주는 의미심장한 부분.[23] 이때 캣니스보다 이 X의 뜻을 정확히 1초늦게 알아차려 털린다. 안습[24] 책에서는 이게 몇 시간이고 지속된다. 지못미. 그리고 헝거 게임 위키에서는 카토가 캣니스의 화살을 막기 위해 입은 갑옷을 머테이션들이 물어뜯느라 오래 걸린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아니 그럼 그 몇시간동안 주구장창 얼굴만 뜯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