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통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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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타임라인
2.1. 창당
2.2. 1차 통합 '한국의희망'
2.2.1. 진행
2.2.2. 합당 합의문
2.2.3. 보도
2.3.1. 진행
2.3.2. 합당 합의문
2.3.3. 반응
2.3.3.1. 비판
2.3.3.2. 옹호
3. 여담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개혁신당과 각 정당들의 통합 과정에 관련해 서술한 문서.


2. 타임라인[편집]



2.1. 창당[편집]


2024년 개혁신당 창당대회

이준석천아용인이 중심이 되어 신당을 창당했다.


2.2. 1차 통합 '한국의희망'[편집]




2024년 1월 24일, 양당의 합당을 선언하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우리는 서로의 비전과 가치에 동의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려면 ‘과학기술 선도국가’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신당’이 ‘한국의희망’입니다. ‘한국의희망’이 ‘개혁신당’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합당을 선언합니다.

한국의희망 X 개혁신당 과학기술 비전 발표문 중}}}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양향자 대표의 한국의희망의 합당.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진행되는 제3지대 통합 논의 중 처음으로 실행된 합당이다.

2.2.1. 진행[편집]


개혁신당(이준석)과 한국의희망(양향자)은 창당 당시부터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실제로, 여의도재건축조합의 라이브 방송을 통해 무려 4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 [사실상]

개혁신당 당직자들의 국회 소통관에서의 정책 발표 기자회견 등을 양향자 대표와 대변인들이 대신 잡아주는가 하면, 창당대회 장소까지 예약해주고, 창당대회 축사에는 오렌지색 복장을 맞춰 입기도 했다. 개혁신당 역시 천하람 창당준비위원장에 의하면 한국의희망과의 합당을 염두에 두고[1] 주황색을 당색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이처럼 양당 간 합당은 이전부터 사실상 확실시된 것처럼 논의되었고, 1월 24일 결국 합당이 발표될 예정이다. # 당명은 개혁신당으로 정해졌으며 한국의희망이라는 이름은 당의 슬로건 중 하나로 존치하게 되었다.[2]

1월 24일 오후 2시경 합당이 확정되었다. # 이로써 개혁신당은 창당 4일만에 원내정당과의 합당을 선언한 정당이 되었다.

원래 양향자 의원은 합당시 한국의희망이라는 당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과학기술 중심의 정강정책을 우선시해야 합당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달았으나, 같은 날 백브리핑에서 이준석 대표의 말에 따르면, 실질적인 당명 변경은 총선이 끝나는 직후 논의해서 변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혁신당이라는 이름 그대로 창당된 것도 신당이 당명이 자주 바뀌면 인지도를 얻는 부분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 여긴 이준석 대표의 의견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일단 총선까지는 개혁신당이라는 당명을 쓰기로 하고, 총선 직후부터 논의하여 당명을 바꾸자는 제안을 양향자 의원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합당 과정에서 최진석 상임대표를 비롯한 상당수의 한국의희망 당직자들이 이탈했다. # # 이들은 양향자 대표가 정치 본연의 의미를 회복하겠다는 다짐은 내버린 채 기존 정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며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인 당의 운영과 제3지대 세력과의 연대를 비판하며 탈당했다.

그러나 양향자 대표는 상임대표와 당직자들 탈당 이전에도 2023년 10월 20일자 인터뷰 등 "가치와 비전에 대해 진정성있게 토론한다면 누구라도 함께 할 수 있다"라고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

이에 최진석 상임대표의 탈당은 과거 이준석 대표와의 악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진석 상임대표는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 시절 양당체제에 대해 "생각없는 유권자들"이라며, 유권자들을 비난한 적이 있다. 이때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양당의 대안이 소위 국개론"이냐며, 최 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

천하람 최고위원의 말에 따르면 합당 진행 당시 양향자 대표에게 그냥 이야기 잘 통하는 사람끼리 서로 재미있는 정치 해보자라는 말을 듣고 양향자 대표가 수용했다고 밝혔다.

1월 29일 발표에 따르면 총선 후 당명을 개혁신당에서 한국의희망으로 개명한다고 밝혔다.#

1월 31일 합당 절차가 완료되었다.

2.2.2. 합당 합의문[편집]


}}}

한국의희망 X 개혁신당 합당 합의문}}}

2.2.3. 보도[편집]


'당명'만 남았다...이준석‧양향자 신당 합당 초읽기
이준석 개혁신당-양향자 한국의희망, 오늘 합당 공동 발표 예정
이준석 개혁신당-양향자 한국의희망 '합당'…제3지대 연대 본격화
이준석 개혁신당-양향자 한국의희망 오후 2시 합당 발표
[속보] 이준석·양향자, 합당 선언...'제 3지대' 중 첫 사례
이준석·양향자, 합당 선언
[속보] 이준석 개혁신당-양향자 한국의희망 '합당'... "비전·가치 동의"
100이준석·양향자 합당…제3지대 우측 먼저 ‘중텐트’
이준석-양향자 손잡고 "총선 후 '한국의희망' 개명"


2.3. 2차 통합 '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편집]




2024년 2월 9일, 제3지대 정당 4자의
합당을 선언하는 김용남 개혁신당 정책위의장


2024년 2월 9일 개혁신당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 정치모임 원칙과 상식이 제3지대 통합 합당을 이루었다.

2.3.1. 진행[편집]


김용남 개혁신당 정책위 의장과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이원욱 원칙과 상식 의원은 2024년 2월 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3지대 통합신당 합당 합의문'을 발표했다.

통합 신당명은 '개혁신당'으로 정해졌다. 대표직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같이 개혁신당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으며,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새로운미래, 새로운선택, 원칙과 상식이 각각 1명을 추천하기로 했다. 그 외에 여러 합의가 있었지만 비공개하기로 했다.

2.3.2. 합당 합의문[편집]


}}}

제3지대 통합신당 합당 합의문}}}


2.3.3. 반응[편집]


금태섭 공동대표는 통합신당 당명을 개혁신당으로 한 것에 대해 "당명에 대해서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정하자 공모를 하자는 얘기가 중간에 있었는데 이미 늦어진 통합을 서두르기 위해서는 이미 나와있는 당명 중에 하나를 골라서 하기로 결정했다"며 "당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모습, 힘을 모으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종민 공동대표는 당명과 관련해 "이낙연 대표가 양보하고 결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지율이라든가 선점 효과 때문에 이준석 대표가 우위에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주장이나 예상이 있을 수 있지만 지도체제 문제는 4개 세력이 합의해서 결정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당명은 기존 개혁신당에서 조금 더 우선권(을 갖거나) 혹은 유리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당 전체를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4개 세력이 힘을 모아서 함께 해서 하자는 합의가 담겨 있기 때문에 통합의 의미가 당명 때문에 퇴색되거나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낙연 공동대표가 총괄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총리도 하고 당대표도 하고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며 "총선 전략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이원욱 의원은 "이준석 대표와 이낙연 대표는 결을 달리한다. 이번 선거에서 노장층의 조화로운 지도부가 구성돼서 결을 달리 하는 지지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공동 대표와 총괄선대위원장 체제를 이낙연 공동대표에게 부탁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낙연 대표는 그런 것을 안 맡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보겠다는 얘기도 했지만 저희가 부탁을 드려 맡게 됐다"고도 했다.

김 공동대표는 이낙연·이준석 공동 대표의 출마 여부는 "두 분이 출마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다. 조만간 각각 발표할 것'이라며 "통합 과정에서 논의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원욱 의원도 "출마가 통합의 전제 조건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원욱 의원은 "새로운미래 측에서는 당명에 대해 결정을 하는 걸 굉장히 힘들어했다"며 "김종민 공동대표가 1차적인 결단을 하고 그 와중에서 이낙연 공동대표와 통화하면서 설 전에 합당 절차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보해달라고 부탁의 말씀을 계속 드렸다. 이 문제에 대해 이낙연 공동대표가 커다란 결단을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김용남 의장은 '최종적 합의라고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 협상 참석자들이 전권을 부여 받았다고 강조한 뒤 "최종적인 합의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역구 출마도 예고했다. 김종민 공동대표는 "지역구 출마를 하는 정당으로 가려면 지금 통합해야 한다. 비례정당으로 가려면 3월에 해도 된다"며 "지역구에서도 양당 독점 체제를 깨는 후보를 발굴해서 출마시키겠다는 것이 통합 결단에 가장 큰 이유다"고 했다. 출처

제도권 언론에서 개혁신당의 탈당 릴레이와 합당 후폭풍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국민의힘의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이 "온갖 세력이 잡탕밥을 만든 개혁신당은 ‘페미친문좌파 정당’이 됐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게시했다.

장예찬 페이스북 캡처


2.3.3.1. 비판[편집]

채널A에서 보도한 온라인 상 비판내용

각 당의 당원들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하거나[3] 충분한 설명도 하지않은 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밀실합의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심지어 개혁신당 당대표 특보인 이영랑 특보와 문성호 대변인, 홍준연 전 구의원도 밀실 합의라는 뉘앙스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이 비판은 1차 통합 대상이었던 한국의희망과의 합당 당시에도 재기된 비판이다. 당시 한국의희망 당직자 여럿이 반발해 이탈한 바 있다. 특히 4개 정당들 중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조직을 구성하고있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당원들 사이에서 이러한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밀실합의 논란에 대해 당일 저녁, 여의도재건축조합 유튜브 채널에서 해명 방송을 하였다. 방송에서 이준석 대표는 당 내에서 제기되는 소위 "자강론"에 대해, 비례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15%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으며 결국 바른미래당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합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의 해명을 하였다. 그러나 일부 당원들은 정작 쟁점이 되는 걸림돌에 대한 해명 요구에 당 내부의 합의 내용은 선거 전략으로서 일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번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해명이 명백한 밀실 야합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고 합당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을 토로하면서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당원 게시판을 통해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합당 전 각 당원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없기도 했거니와, 설명이 있었다고 한들 과거 통합진보당, 바른미래당은 우습게 만들 정도로 복잡하고 많은 계파 덕에 각 당원들로부터 반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물론 합당 직전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회동을 가지는 모습 등을 전조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옥지원의 경우는 현재까지도 이준석 대표의 성접대 의혹을 주장하면서 합당하더라도 계파활동시 언젠간 터질 폭탄이라는것이 분명한 상태인데다, 류호정같은 경우만 해도 이준석을 지지하는 당원들로부터 상당히 대척점에 서 있는 인사들이며, 합당을 주도한 김종민만 해도 조국 사태 당시 조국을 가장 열렬히 비호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이준석과 공동대표를 맡게된 실질적 당대당 합당의 새미래측 수장인 이낙연만 하더라도 기존의 개혁신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일관되게 비판해오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오랜 기간 국무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또한 현재 이재명과의 당내 갈등에서 밀려났을 뿐 21대 총선에서는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을 지휘하여 현재의 민주당 중심의 국회를 만든 지분이 크기도 하다. 따라서 2030 남성 중심의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 지지층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 및 21대 국회의 파행 운영, 조국 사태, 인국공 사태 등 각종 사회적 병폐를 야기한 주요 책임자임에도, 이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오롯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로 오히려 합당 이후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할 명목으로 문재인 정부를 감싸는 행태는 해당행위가 아니냐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김영선 새로운미래 책임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기존의 4당 체제로 그대로 갈 시 총선에서 기호번호가 14번까지 밀릴 수도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이 나와 합당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으며, 기존의 당원들에게 합당 사실을 사전에 알리거나 당원들과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좀 더 보완이 필요했고 설 연휴기간 동안의 극적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의견을 냄과 동시에 조만간 김종민 새로운미래 대표 측에서 새로운미래 당원들에 대한 양해 및 사과의 이야기가 있을것 같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측 모 인사가 SNS에 '개혁신당이 당명 외에 모든 것 내려놓는 파격적인 양보를 했다'고 쓴 후 급히 수정했다. 이로 인해 정말로 합당 과정에서 당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통째로 넘긴 것이 아니냐며 기존 개혁신당 측 당원들에게 거세게 비난 받고 있다.

2024.2.11. 방영분 정치인싸에 출연한 김성회는 (1) 이준석 대표는 '해쳐모여용 플랫폼정당인가', '대선은 어떻게 할것인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할 것이며, (2) 이낙연 대표는 '개혁신당을 통한 수권정당 추구는 결국 반문에 가담하는 것, 反민주계열-親보수의 집권연장 아닌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이며, (3) '류호정 문제는 어떻게 답할 것이냐?'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김재섭은 이준석 대표가 가지고 있던 선명성이자 장점이 희석되고 퇴색되는 통합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천아용인의 '용'을 담당했지만 국민의힘 잔류를 택한 김용태는 개혁신당의 행보가 "뺄셈의 캐스팅보트"라며 "실질적 정치개혁과는 관련 없다"고 평가절하 했다. 국민의힘의 혁신이 대한민국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김재섭과 김용태 모두 이준석이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시절에는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2.3.3.2. 옹호[편집]

2024.2.11. 정치인싸에서 친이준석 성향 평론가 장성철은 '동굴 속에 있는 자는 동굴만큼 하늘이 보인다. 여의도라는 동굴을 벗어나야 한다'라면서 옹호론을 펼쳤다.


3. 여담[편집]



  • 민생당이관승호남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미래와 합당 교섭을 벌였지만, 이 결정으로 통합 개혁신당이 출범하는 와중에 버림 받은 모양새가 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많은 보조금으로 딜을 봐 뒤늦게나마 개혁신당으로 합류할수는 있겠으나, 그동안 새로운미래와 해왔던 협상이 엎어진 모양새라 민생당 입장에선 아쉬운 시나리오가 되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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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2-12 13:12:58에 나무위키 개혁신당/통합 과정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상] 이 토론 하나로 각 당 지지층 간의 충돌 가능성은 사전에 거의 사라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인 반도체 기술에 대한 논의가 긴 시간동안 이뤄졌기 때문.[1] 한국의희망은 남색과 주황색을 당색으로 하고 있었다. 창당 과정에서 개혁신당은 네이비(=남색)를 당색으로 고려하기도 했었다. 이 역시 한국의희망과의 합당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2] 양향자 대표는 당명 수용을 제3지대 빅텐트 합류의 조건으로 밝힌 바 있다.[3] 개혁신당은 당원들에게 제3지대 통합에 대한 설문을 진행하던 도중에 통합을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