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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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의 부마
공화후 왕영 | 恭化侯 王瑛

시호
정의(定懿)
작위
공화백(恭化伯)
공화후(恭化侯)
본관
개성 왕씨

영(瑛)

현허(玄虛)
부모
부친 강릉공 왕온
모친 명주 김씨로 추정[1]
형제자매
2남 4녀 중 장남 [ 펼치기 · 접기 ]
장경왕후 김씨
대령후비(大寧侯妃) 김씨[1]
광정태후 김씨
선정태후 김씨
공화후 왕영(王瑛)
왕작(王鷟)

배우자
승경궁주 왕씨[2]
자녀
1남 1녀
딸 - 왕영녀 왕씨
아들 - 광릉공 왕면
생몰연도
1126년(인종 4년) ~ 1186년(명종 16년) 10월 10일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1. 개요[편집]


고려의 왕족.

이름은 왕영(王瑛, 1126 ~ 1186), 자는 현허(玄虛)이다.

문종의 아들인 조선국 양헌왕 왕도의 손자이자, 강릉공 왕온의 아들로 작위는 공화후(恭化侯)이다.


2. 생애[편집]


어려서부터 성품이 침착하고 조용하며 욕심이 적었다. 학문에 깊이 뜻을 둬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에 오른 뒤에도 과거에 응시하려 해 의종이 기특하게 여기지만 종실로 과거에 응시함은 관례가 아니라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30대에 인종공예태후의 딸인 승경궁주와 혼인한 뒤 공화백(恭化伯)에 책봉된다. 명종 즉위년인 1170년 왕이 종친들의 작위를 높일 때 공화후(恭化侯)로 승진한다.

말년에는 불교에 심취해 불경을 탐독하고, 재(齋)[3]를 지내는 날이면 계율을 지킴으로 몸을 정결히 하였다. 명종 16년인 1186년 모월 10일 61세의 나이로 사망해 빈소를 금선사(金善寺)에 마련한다. 명종은 공화후가 사망했다는 소기에 수일간 조회를 멈췄으며 정의공(定懿公)으로 추증한다. 이듬해 8월 우봉군(牛峯郡)[4] 동쪽에 장사지낸다.


3. 가족관계[편집]


  • 부: 강릉공 왕온
    • 누이: 장경왕후 김씨
    • 누이: 대령후비 김씨[5]
    • 누이: 광정태후 김씨
    • 누이: 선정태후 김씨
    • 본인: 공화후 왕영
    • 부인: 승경궁주 왕씨[6]
(+ 며느리: 화순궁주 왕씨)[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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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장사(平章事) 안경공(安敬公) 김고(金沽, ?~1123, 명주 김씨(溟州 金氏))와 경원군부인(慶源郡夫人) 경원 이씨(慶源 李氏)의 딸로 추정[2] 인종의 장녀[3] 승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양을 올리면서 행하던 불교 의식[4] 현재 황해북도 금천군[5] 인종의 차남 대령후 왕경의 부인으로 공화후 사후 강릉공 왕온의 아들인 광릉공 왕면을 길렀다.[6] 인종의 장녀[7] 의종의 삼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