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 어린이선교원 흉기난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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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위
2.1. 어른들의 대응은 적절했는가?
2.2. 선교원의 안전은 적절했는가?
3. 사건 이후
4. 관련 기사


1. 개요[편집]


2002년 9월 4일 50대 정신질환자서울특별시 광진구의 한 교회 어린이선교원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원아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2. 경위[편집]


2002년 9월 4일 낮 12시 30분경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있는 한 교회의 지하주차장을 통해 지하 1층 식당에 50대 남성 황 아무개가 불쑥 들어왔다. 식당에서는 이 교회가 운영하는 어린이선교원[1]에 재원 중인 원아들이 선생님과 점심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아이들에게 식사 지도를 하고 있던 27세 문 모 교사는 황 아무개를 보고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 교사는 당시 교회 건물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수공사를 하러 온 인부려니 생각하면서도 불길한 생각이 들어 아이들을 식당에 방치한 채 1층에 올라가 35세 방 모 원감에게 식당에 내려가 보라고 전했다.

그 사이 식당에서는 주방 아주머니[2] 39세 김 모 씨가 아이들을 챙기고 있었는데 김씨도 황 아무개가 손으로 아이의 배를 톡톡 치는 행동을 하자 무섭다는 느낌이 들어 문 교사처럼 아이들을 식당에 방치한 채 1층으로 올라갔다.

방 원감이 식당에 내려왔을 때 이미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보호자가 눈 앞에서 사라지자 황 아무개가 주방에서 식칼을 들고 아이들에게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황 아무개가 무차별적으로 휘둘러댄 칼에 아이들은 신체 곳곳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방 원감이 침착하게 이리로 오라고 소리쳐 황 아무개의 주의를 흐트러뜨렸고 그 사이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지나가던 시민들이 황 아무개를 붙잡았다.


2.1. 어른들의 대응은 적절했는가?[편집]


유아교사아이들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3] 문 교사로서는 낯선 외부인이 들어와서[4] 아이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리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그 낯선 외부인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식당에 두고 원감에게 올라가서 보고한 것이 너무나 큰 실책이었다. 아이나 주방 아주머니를 대신 올려보냈어야 했다.

주방 아주머니로서도 낯선 외부인의 침입에 무서운 생각이 들어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직 식사를 다 마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과, 범죄 도구로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는 식칼을 낯선 외부인 눈 앞에 노출시켰다는 점은 너무나 크나큰 실수였다.

그나마 방 원감이 침착하게 이리로 오라고 소리치며 범인의 주의를 흐트러뜨렸던 것이 더 끔찍한 사태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을 막을 수 있었다.


2.2. 선교원의 안전은 적절했는가?[편집]


유치원어린이집의 경우 현관 앞에 인터폰을 설치하여 외부인의 목적 없는 방문을 막을 뿐더러 부모 또는 부모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이 아닌 한 아동을 절대로 인계하지 않는다. 영유아보다 이용자의 연령대가 높은 지역아동센터나 키움센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보안관이 근무하여 외부인[5]의 목적 없는 방문을 통제한다.

반면 교회는 출입문이 열려 있는 한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다.[6] 지나가던 행인이 교회 화장실에서 용변을 해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교회 건물 내에 있는 선교원이나 유치부실, 유초등부실 등 어린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황 아무개 같은 정신질환자나 성범죄자 등 위험한 외부인에게 쉽게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교사의 자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치원 교사는 대학의 유아교육과를 다니며 유치원 정교사 자격을 취득해야 하며 어린이집 교사는 보육교사 자격을 취득해야 하지만 선교원은 교회가 지역사회 선교를 위해 설립한 시설이다 보니 상기한 자격증이 없이도, 유아교육이나 아동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심지어 고졸 학력만으로도 교사가 될 수 있었다. 해당 교회에서 유치부 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여성을 선교원 교사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유아교사로서의 소양과 자질이 매우 부족한 경우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유치원 교사, 어린이집 보육교사보다 더한 박봉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3. 사건 이후[편집]


이 사건 이후 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현관에 초인종이나 인터폰, CCTV를 설치하여 외부인의 무목적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또 선교원이 설립 시 신고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감독이 소홀하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건 이후로 많은 선교원들이 어린이집으로 전환한 데다 저출산까지 겹쳐 선교원의 수가 눈에 띄게 급감한 상태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소홀도 언론의 지적을 받았다. 사건 당일 KBS 뉴스 9 관련 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 관리는 이 사건 이후에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이 있고 불과 5개월 또 다른 정신질환자에 의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방화 사건이자 대량살인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 후 황 아무개는 구속되었으며 당시 조사에서 '아침에 집을 나서 근처 총신대역(서울지하철 4호선)에서 지하철을 탔으나 어느 역인지는 모르고 내렸다”며 횡설수설했으며 "김일성이 죽인다고 해서 교회에 들어갔고, 교회에 들어가 이곳저곳에 숨었는데도 계속 죽인다고 해서 식당 구석으로 숨어 들어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후의 정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

4. 관련 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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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치원어린이집과는 다른 시설이다. 교회에서 지역사회 선교를 위해 유치원 및 어린이집보다 저렴한 원비를 받고 영유아들을 보육하던 시설이었다. 선교원에 재원 중인 원아들은 그 선교원을 운영하는 교회 유치부에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2] 해당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3] 이 사건 3년 전에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도 소망유치원(현재는 폐원) 교사들이 원아들과 떨어져 있던 사이에 일어나 소망유치원 원아들 18명이 참변을 당했던 것이다.[4] 하술하겠지만 그 선교원이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위험한 외부인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교회 건물 내에 있던 것이 문제를 키웠다.[5] 학부모라도 정당한 이유 없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출입할 수 없다.[6] 일례로, 몇몇 교회에는 노숙인이 들어와서 식사를 해결해 가거나 쉬었다 가는데, 교인들은 이들을 ‘나자로 아저씨‘라고 부르며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적극적으로 쫓아내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