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츠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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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츠카사가

파일:타카츠카사 가몬.jpg
타카츠카사 가문의 가몬
타카츠카사 모란
鷹司牡丹

본성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 코노에류(近衛流)
가조
타카츠카사 카네히라(鷹司兼平)
종별
공가(公家)(섭가)
화족(華族)(공작)
출신지
야마시로국 교토
(山城国京都)
근거지
야마시로국
도쿄
지류
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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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츠카사씨(鷹司氏)
타카츠카사 마츠다이라가(鷹司松平家)
타카츠카사 노부히로가(鷹司信熙家)

당주
제28대 타카츠카사 나오타케(鷹司尚武)[1]
1. 일본의 성씨
2. 실존인물
3. 가공인물



1. 일본의 성씨[편집]


鷹司.
일본의 성씨 중 하나. 후지와라 가문의 분파로서 고셋케(五摂家)의 하나이다. 고노에 가문에서 분가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가문의 당주는 공작 작위를 받았다.

1546년 가문이 한 번 단절되었으나 오다 노부나가의 도움으로 니죠 가문 출신 양자인 타카츠카사 노부후사가 1579년 당주가 되어 가문을 부흥시켰다. 노부후사의 딸 다카코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와 결혼했다. 노부후사의 막내아들 마츠다이라 노부히라는 타카츠카사 가문 출신이었으나 기슈 번 초대 번주 도쿠가와 요리노부의 둘째딸과 결혼하고 마츠다이라 성을 허락받아 타카츠카사-마츠다이라 가문을 세웠다. 노부히라의 아들 노부키요는 이후 고즈케 요시이번 1만석의 다이묘가 되었고 그 후손들이 막부가 끝날 때까지 번을 다스렸다.

막말 시기의 정치적 성향으로는 조슈 번과 친했다. 1863년 조슈 번이 잠시 중앙정치에 진출했을 때 타카츠카사 스케히로를 관백으로 내세웠다. 이 시기에 친조슈 존황양이산조 사네토미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등 조슈의 이익을 대변했지만, 아이즈 번사쓰마 번이 주도한 1863년 8월 18일의 정변으로 실각했다. 금문의 변 당시에는 쿠사카 겐즈이 등 조슈 패잔병이 타카츠카사 저택으로 피신해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할복했고 저택은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스케히로는 조슈와의 관계가 의심되어 저택 근신 처분을 받았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야 사면되었다. 그는 사이온지 긴모치의 친할아버지이기도 했다.

2. 실존인물[편집]



3. 가공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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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사본청의 현임 제9대 총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