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시장경제 도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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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 시장경제 도입 과정
1.1. 국영 기업 개혁 과정
1.1.1. 기업 계획권 과정
1.1.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 조치
1.1.3. 국가 예산 납부권 및 소득 분배권
1.2. 가내작업반 개혁 과정
1.2.1. 기업 계획권 과정
1.2.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 조치
1.2.3. 국가 예산 납부권 및 자금 조달권
2. 2002년 시장경제 도입 과정
2.1. 국영 기업 개혁 과정
2.1.1. 기업 계획권 과정
2.1.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권
2.1.3. 소득 분배권 및 국가 예산 납부권 과정
2.1.4. 생산조직권 과정
2.1.5. 자금 조달권 과정
2.2. 서비스 산업 전면 허용
2.2.1. 상점 부문 개혁 과정
2.2.2. 식당 부문 개혁 과정
2.2.3. 가내작업반 및 가내편의서비스업 개혁 과정
2.3. 농업 개혁 과정
3. 2004년 - 2005년 시장경제 도입 실패 과정
3.1. 국영 기업 개혁 과정
3.1.1. 기업 계획권 과정
3.1.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권
3.1.3. 소득 분배권 및 국가 예산 납부권 과정
3.1.4. 생산조직권 및 고정자산매각권 과정
3.1.5. 자금조달권 과정
3.2. 무역회사 개혁 과정
3.2.1. 무역회사 설립과 와크의 획득
3.2.2. 수출품 생산 기지의 조성 및 첨단기술제품의 수출권 과정
3.2.3. 자금 조달권 및 경영 청부 과정
4. 2012년 시장경제 도입 과정
4.1. 운수 부문
4.2. 상점 부문 및 식당 부문 과정
4.3. 가내작업반 및 가내편의서비스 부문 과정
5. 2013년 시장경제 도입 과정
5.1. 농업 개혁 과정
5.2. 외화벌이 사업소 부문 개혁 과정
6. 2015년 시장경제 확립 과정
6.1. 국영기업 개혁 과정
6.1.1. 기업소 계획 과정
6.1.2. 가격 결정권 및 시장 판매 조치 허용
6.1.3. 자금 조달권 및 국가 예산 납부권
6.1.4. 생산 조직권 및 고정 자산 매각권
6.2. 금융 부문 개혁 과정
6.2.1. 현금 계좌 및 외화 계좌 개혁 과정
6.2.2. 상업은행 부문 개혁 과정
6.2.3. 자금대차계약 부문 개혁 과정
6.3. 무역 부문의 개혁 과정
6.3.1. 무역 허가의 취득 과정
6.3.2. 무역회사 자금 조달 및 수출품 생산기지의 확보
6.3.3. 무역 허가권의 임대 과정
7. 참고 자료



1. 1980년대 시장경제 도입 과정[편집]



1.1. 국영 기업 개혁 과정[편집]



1.1.1. 기업 계획권 과정[편집]


1984년 8.3 인민소비품 생산 운동이 전개되면서 8.3 전문생산조직을 기본생산단위인 중앙공업과 지방산업공장은 물론 비생산단위인 주민생활지역까지 확대할 데 대한 지시가 내려졌다.
지시와 함께 8.3인민소비품 생산 조직은 기본생산단위인 공장기업소들에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기존에도 공장기업소마다 생필품, 일용품을 생산하는 생필품 직장, 일용품 작업반이 존재하였다.
이 운동이 전개되면서 8.3 작업반이라는 명칭을 가진 생산조직들이 전국의 모든 공장기업소들에 대대적으로 증가되었으며 중앙공업일지라도 8.3 인민소비품 생산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의 시/구역, 군 단위로 당, 행정기관이 관리하였으며 1989년 전국에는 8.3 인민소비품 생산을 위한 생필품 직장과 작업반이 5 – 6만 개로 확대 조직되고 수십만 명의 생산자들이 참여했다.
제2경제위원회에 생필품생산지도소조를 설치하여 생활필수품의 생산을 지도 및 감독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조직은 생필품생산지도총국으로 확대 개편하였으며 군수공장들의 생필품 생산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휴자재를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제2경제위원회는 김정일의 지시를 관철한다는 측면에서 인민소비품 견본 전시회를 개최하여 김정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김정일은 군수부문에 일반 소비품 생산 공정을 확대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는데 특히 생산한 제품을 국제시장에 수출하여 외화를 확보하고 이를 가지고 군수경제를 자립시키도록 강조하기에 이른다.


1.1.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 조치[편집]


계획외의 생산품인 8.3 인민소비품에 적용되는 협의가격은 지역별로, 직매점 별로 상품별로 서로 다른 가격이 적용되었으며 협의가격의 가격합의는 견본품을 놓고 할 수도 있고 일정한 판매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결정할 수도 있으며 가격제정절차는 생산기업과 직매점과 협의하여 결정하고 협의가격에 대한 가격승인신청서를 지방가격제정기관에 제출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한다.
물론 국가제정기관의 관리 감독하이고 이러하게 적용된 협의가격은 일반 국영상점의 국정가격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8.3 인민소비품의 가격은 국영상점의 상품과 같은 품종의 상품은 가격이 싸고 국영상점에 없는 상품은 품질이 낮더라도 비싸게 판매된다.
8․3 인민소비품은 그 가격을 중앙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지방행정기관이 협의하여 정하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는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며 이점이 8․3 인민소비품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김일성이 8․3 인민소비품을 판매하는 직매점의 가격을 국영상점 가격의 1.5배로 하라고 지시하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지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직매점에서 판매되는 8․3 인민소비품의 가격은 국영상점에서 팔리는 비슷한 제품 가격의 5 - 6배가 되는 경우가 보편적으로 된 것이며 액상계획이 강조되면서 기업은 높은 가격을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고 기존의 생산 계획에 구속받지 않는 8․3 인민소비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8․3 인민소비품이 처음 도입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경까지는 유휴자재나 부산물로 생활필수품을 만든다는 8․3 인민소비품 생산의 기본 취지가 어느 정도 지켜진 것으로 보이는 데 기업의 생산 여건이 악화되고 액상계획이 사실상 유일한 계획지표가 됨에 따라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8․3 인민소비품을 활용하게 되었다.
북한의 관리체계에도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때 8.3 인민소비품 생산 및 처리에 관한 규정과 가내편의봉사업 규정이 연형묵 총리 주도하에 처리되어 사실상 시장경제가 암묵적으로 인정되었지만 국제시장에서 관심이 없어 별다른 수출 실적을 기록하지 못하여 재고만 비축하고 있다.
그 이유는 김정일의 지시가 분명히 있었으며 김정일은 이 과업을 장비가 좋고 기술 기능도 높은 제2경제위원회에 맡기려고 하며 군수공업 부문에는 군수품을 생산하고 남은 유휴자재로 고급생활필수품을 만들어서 국제시장에 내다 팔아 외화도 수입하고 인민들에게도 공급하여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이때 생산한 제품은 대부분 밥통, 전기밥솥, 전기후라이팬, 활석 돌판, 활석 석유곤로, 활석 돌솥, 양은솥, 식칼류, 전기다리미, 전기치료기, 활석 유골함, 수동 이발기, 고급가구, 양동이, 수레, 밥그릇, 국그릇, 접시, 꽃병, 도자기 제품, 수저통, 도시락, 우산, 소형 녹음기, 수도꼭지, 책상, 의자를 생산하였다.
민수용 페인트, 락카 유성 페인트, 수건, 스카프, 코팅용 니스, 안경, 민수용 고체 연료, 나프탈린, 식기류, 종이, 스피커, 변압기를 생산하며 그리고 장난감 제품으로 장난감 자동차, 전차, 자동 소총, 비행기, 북치는 곰, 춤추는 인형이 있으나 밑에 있는 자료를 통하여 군수공장에서 생산한 인민소비품도 직매점이나 혹은 외화상점으로 판매하고 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기사
흥남구두공장, 함흥구두공장, 함흥모방직공장, 함흥편직공장, 함흥제사공장 생필직장, 생필품 작업반은 품질 좋은 구두와 모포, 내복, 양말을 비롯한 갖은 소비품들을 생산하였으며 동흥산은하피복공장과 성천강피복공장을 비롯한 함흥시 안의 공장들에서도 8월 3일 인민소비품들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힘을 발휘하여 운동복을 비롯한 많은 인민소비품을 수매상점에 판매하였다.
북한은 1975년에 외화상점을 개설하였으며 이는 외국인 전용 상점으로서 내국인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이 또한 외화 현금의 북한 내 유통을 엄격히 제한하고 당국이 보다 많은 외화를 흡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한 것이며 김정일은 북송 재일교포와 같이 직접 외화를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조차 직접 외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통제하였으며 이 카드는 외화상점 내에서만 쓸 수 있도록 제한을 가하였다.
1980년대에 외화와 바꾼 돈표가 등장하고 나서는 상황이 다시 바꾸며 그 때부터 재일교포는 국가가 운영하는 외화교환소에 가서 엔을 외화와 바꾼 돈표로 바꾸고 그 돈표를 가지고 외화상점에 가서 물품을 구입하여 외화와 바꾼 돈표 자체가 매매의 대상이 되었다.
일반 주민이든 전문 장사꾼이든 교포로부터 외화와 바꾼 돈표를 구입해 이를 북한의 일반 주민에게 되파는 식으로 발전하였으며 1980년대 중후반 국영상점을 통한 상품 공급이 어려움을 가지자 상품 부족에 시달리게 된 일반 주민들은 외화상점으로 방문하여 수요를 충당하였다.
북한은 1986년 6월부터 내국인들도 외화상점을 이용할 수 있게 허용하였으며 나아가 1989년 7월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대도시는 물론 지방의 군 단위까지 외화상점들이 급속히 늘어나게 되어 여기에서 판매하는 군수공장에서 생산한 생필품을 구매하여 수요를 충당하였다.
북한에서도 식료품에 관련된 후방직장도 있어 강계트랙터종합공장과 강동정밀기계공장 그리고 룡성기계련합기업소 2월 11일 공장에 후방직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콩가공장이라는 후방사업을 진행하며 김정은이 콩가공장에 차려놓은 콩나물재배기, 콩우유기계, 콩고기기계, 콩착유기, 두부기계를 보며 콩가공품을 많이 생산하여 노동자들에게 빠지지 말고 공급해주어야 한다고 의지를 밝혔다.


1.1.3. 국가 예산 납부권 및 소득 분배권[편집]


계획지표를 100%을 수행하면 한 30% 정도가 계획대로 국가예산으로 공급될 것이며 30% - 40%은 휘발유라든지 하는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서 기업소 등에 판매되어 20% - 30%은 종업원들의 생활비 지급을 위해서 농민시장 등에 판매되며 결국 전체 생산물의 30% 정도가 공식적으로 국가예산에 납부하고 나머지 70% 정도는 농민시장으로 나가는 셈이다.
안주탄광연합기업소의 경우 1993년 이후 중앙으로부터 자재공급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계획 작성시 생산량의 일부 예를 들어 20%에 대해서는 그 사용처를 정하지 않고 탄광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 당국에 요청하였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가끔 종업원들에게 학습장을 줘서 팔아오게 했으며 판매하여 일정 금액은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게 하여 국정가격으로 판매하는 것보다 종업원 등을 통하여 농민시장 가격으로 판매하면 수입이 훨씬 높기 때문에 가끔 이러하게 한다.
주물직장에서 규격이 좀 큰 가마솥을 만들어 이러하게 만든 솥은 시장에서 잘 팔리고 종업원들에게 생활비 대신 이 가마솥을 가지고 가서 농민시장 등에 팔아서 생활비를 하도록 한다.
아울러 정확한 추이는 알 수 없지만 표에도 나타난 바와 같이 기업소기금 적립 한도액의 비율은 경향적으로는 1970년대까지 축소되는 경향을 나타냈으며 다만 1986년 4월의 정무원 결정 제20호에 의해 초과이윤에서 기업소기금으로 적립되는 한도액이 증액되었다.
​1960년 4월에 기업소기금 유보 비율을 계획이윤의 10%를 초과이윤의 90%를 유보할 수 있는데 반하여 단 2년 만에 계획이윤의 10%를 초과이윤의 50%를 유보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으며 1973년에는 계획이윤의 10%를 초과이윤의 20%를 유보할 수 있도록 변경하였지만 1986년 4월 리근모 총리의 주도 하에 정무원 결정 제20호에 의하면 계획이윤의 10%를 초과이윤의 50%를 유보할 수 있도록 증액이 확정되었다.


1.2. 가내작업반 개혁 과정[편집]



1.2.1. 기업 계획권 과정[편집]


가내편의봉사업은 소비품 생산과 편의봉사에 필요한 설비, 자재, 노력 등을 국가의 투자가 아니라 생산자와 봉사자 자신이 자체로 해결하며 가내편의봉사업은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활동인 경우에도 사회주의적 협동경리형태로 진행되는 특이한 형태이다.
한 과도적 사회인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시설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소비봉사적 수요를 보충해주는 생산봉사활동이며 자원성에 의거하여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로 조직된 경리 형태로써 생산 및 과제수행에 대한 의무성이 법적 성격을 띠지 않는다.
작업반원들이 공동출자금으로 낸 출자금이 자체경영운영자금이어서 국가예산 밖에서 생산 활동이 진행되며 원료, 자재를 자체로 해결함으로써 국가계획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
경영상 독자성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생산단위로 되는 경영단위이며 기관, 기업소와 생산관계에서 계약권을 가지며 계약분 외에는 직매점 또는 지정상점을 통해 직접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존에 공장에 소속되어 조직적으로 계획 생산과 계획외 생산에 참여하였던 가내작업반과 달리 8.3 가내작업반은 비조직적이며 자체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가내작업반의 이러한 특징은 개인부업의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북한은 가내작업반을 통한 개인업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가내작업반은 개인업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경리형태이며 국가가 소비수요를 충족시킬 경우 없어지는 임시적 성격을 가진다고 강조하였다.
판문점 경비소대장을 한 김남준씨의 증언에 따르면 1986년 초 연형묵 제1부총리의 아들 연희준이 김일성종합대학 2학년 재학중 입대하여 본인의 경비소대에서 근무하였으며 그는 팬티와 양말부터 의복, 생필품 등을 모두 외화상점에서 구매한 외제품을 쓰고 있어 충격의 공포와 함께 북한체제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증언하였다.
주체의 나라 북한이 외화의 천국으로 변해가고 있는 단적인 풍속도이며 생필품의 만성적 부족 현상이 계속되면서 외화상점에서만 어떤 상품이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북한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외화의 암거래가 성행하여 달러당 암시세가 공정 환율의 40배에서 50배로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으며 1980년대 기준으로 1달러가 원화 86원의 가격으로 돈표의 환율은 원화 43원의 가격에 암거래가 진행하고 있다고 증언하였다.기사
외화상점에 가면 그 앞에 농민시장처럼 판매원들이 줄을 대열을 잡아 지금 농민시장 장사꾼들의 원조인 셈이며 장사꾼들은 증언자에게 캐시미어 천을 구매하여 달라고 부탁하면 그럼 증언자들은 나에게 무엇을 해줄거냐고 질문한다.
그러면 이들은 쌀을 증언자에게 판매하겠다고 밝히면 거래가 성립되고 당시에는 외화상점에서 캐시미어 천과 옷의 재료 등을 많이 판매하였으며 증언자가 캐시미어 천을 구매하면 그들은 그것을 재봉기를 가공하여 옷을 생산하여 농민시장에 판매한다.
또한 증언자가 닭을 시식하고 싶다고 하면 여자들이 쓰는 스카프 한 장을 구매하여 큰 닭 하나를 시식하거나 혹은 농민시장에 판매하여 그런 방식으로 융통을 하게 되었다.
북한 주민이 정부의 감시를 피해 외화의 거래 장소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평양시 경흥상점 앞으로 보통강구역 황금벌역 부근에 위치한 경흥상점은 북한이 외화 획득을 위해 설립한 외화상점으로 이곳 주변에는 외화 암거래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람만 해도 1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미국 달러나 외화와 바꾼 돈표가 필요하여 이곳을 찾는 주민들의 수는 하루 약 500 - 600명 선으로 교환 비율은 미화 1달러당 외화와 바꾼 돈표는 2.174원에 환전이 되며 일반 원화는 54원의 환율로 돈표 1원의 환전 암거래가 진행하고 있다.기사


1.2.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 조치[편집]


8․3 인민소비품은 그 가격을 중앙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지방행정기관이 협의하여 정하기 때문에 기업이 원하는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며 이점이 8․3 인민소비품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김일성이 8․3 인민소비품을 판매하는 직매점의 가격을 국영상점 가격의 1.5배로 하라고 지시하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지시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직매점에서 판매되는 8․3 인민소비품의 가격은 국영상점에서 팔리는 비슷한 제품 가격의 5배가 되는 경우가 보편적으로 된 것이며 액상계획이 강조되면서 기업은 높은 가격을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고 기존의 생산계획에 구속받지 않는 8․3 인민소비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내작업반, 부업반에서도 국영이나 협동경리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품종을 제외한 품종으로 자수, 공예품, 초물제품, 장갑, 뜨개질 제품, 공구 등 일용잡화 위주로 생산하는데 집중을 하였다.
물론 옷감과 종이 그리고 농토산물이 존재하여 가내반을 조직할 수 있다면 의류, 식료품, 고려약 및 신발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1999년에는 이러한 식료품, 의복, 신발, 맥주 등 상당한 가내반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가내작업반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크게 일용잡화와 식료품으로 나누어지는데 일용품은 싸리광주리, 등잔, 모종삽, 가방, 모자, 의복, 구두, 운동화, 장갑, 참빗, 도마, 비누, 부채, 파리채, 방석, 돗자리, 가구류, 완구류, 액세서리류 등 일반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한다.
1958년 북한은 내각결정 140호에 따라 농촌시장을 폐지하고 대신 농민시장을 개설하였으며 농민시장은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는 급속한 경제 성장과 저가의 배급정책의 영향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민시장을 활성화시킬 데 대한 김일성의 지시로 상설 농민시장 개장이 붐을 이루는 등 다시 활성화되었으며 북한의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북한은 1999년 7월부터 쌀, 조, 수수 등 곡물과 담배, 채소류 등 일부 농산물에 대해서는 판매를 허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3. 국가 예산 납부권 및 자금 조달권[편집]


총 매출액에서 노동의 품질과 양, 출자 몫에 따라 각자의 분배 몫을 결정하고 판매 이윤의 5 - 10%는 일종의 거래수입금 형태로 북한 당국에 납부하여 1개의 작업반 인원은 평균 8 - 10명 정도이며 작업은 생산설비가 설치되어 있는 한 가정에 모집해서 작업하거나 각자 집에서 작업한 부분품을 모아서 완제품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3 - 5명이 단체로 할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가내반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동사무소에 신청하면서 허가를 받으며 행정경제위원회에 승인을 받은 뒤 별도의 가내반을 만들어 생필품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별도의 가내반을 설립해서 생필품을 생산하는 이유는 법적 문제와 행정적 문제가 발생할 시 북한 당국이 불법으로 트집을 잡지 못하게 함은 물론 문제의 처리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물건을 제조 및 판매하는 대가로 당국에 이윤의 5 - 10%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며 물건 제조시 설비는 주로 인근의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에서 매매한 설비 부품들을 조립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필요 자재는 중국 수입품과 자체 조달품을 반반씩 혼합해 활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제조하는 물품은 과자와 사탕 등 제과류는 공장기계를 집에다 설치하고 직접 제조하며 약품류는 과거에 고려약 제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서 민간요법으로 직접 원료를 추출하여 제조한다.
맥주는 원료를 사다가 집에서 직접 제조하고 병과 뚜껑은 별도로 외부에서 구입 또는 직접 제작하고 있으며 신발은 가죽이 부족하여 구두보다 운동화를 주로 만들고 있는데 공장에서 생산이 된 것과 모양이 거의 차이가 없으며 이러하게 가내반이 제조한 생필품은 제품의 품질이 아주 높고 중국 생필품에 비하여 가격도 싸기 때문에 농민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출처
원산시 가내작업반 관리소가 수십개의 가내작업반에 재봉기, 신발 밑창 단독사출기 등 각종 생산 설비를 갖추어 많은 인민소비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가내작업반의 성과의 비결은 가내작업반 관리소의 일꾼들이 공장기업소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 및 유휴자재의 수집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기사
1990년대 중반부터 PVC 신발 밑창 단독사출기, 범용 유압식 밑창 프레스, 인조고기 제조 설비, 신발갑피성형제조설비, 용접 설비 등 각종 제조설비가 개인기계업자에 의해 발명하면서 이러한 형태의 생산 활동이 전국적으로 보급되고 있으며 제조설비로 생활필수품을 제조하는 개인 기업가 또한 함께 증가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자본재에 대한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개인이 제조설비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소의 명의를 대여받으면서 등록해야 하며 기계제 생산은 전기의 의존율이 증가하면서 전기 공급이 가능한 공장기업소와 협력 하에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인과 합작한 공장에서 생산도 함께 증가하였으며 순천시의 제약공장 주변에는 제약업이 유행이면서 구두공장 주변에는 신발업이 발달하고 있어 원자재의 조달이 용이해야 하고 이와 같이 개인기업을 경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업소 혹은 가내반을 설립하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과업을 운영한 적이 있는 탈북자는 제과업을 운영하기 전에 우선 순천탄광기계공장 지배인에게 빵틀 몇 개를 제조해 달라고 주문하면 순천탄광기계공장에서 빵틀을 제조하면서 판매하고 그 판매 수익에서 이윤을 보장해서 노동자의 식량도 제공할 수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금성트랙터종합공장에서 공무작업반을 통해서 신발 밑창 단독사출기, 범용 유압식 밑창 프레스, 신발갑피성형제조설비, 인조고기 제조 설비 등 많은 제조설비를 생산하고 있어 현재는 제조설비를 개인에게 판매할 수가 있으며 공장기업소에는 유휴노동력 외에 기존의 제조설비와 원자재가 존재하면서 기계제작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2. 2002년 시장경제 도입 과정[편집]



2.1. 국영 기업 개혁 과정[편집]



2.1.1. 기업 계획권 과정[편집]


우선적으로 계획 작성에 있어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표는 국가계획위원회에서 계획하지만 나머지는 해당 기관 - 기업소에서 하며 특히 지방경제 부문은 공업총생산액이나 기본건설투자액 등 주요지표를 제외한 세부지표들은 도 - 시 - 군 자체 실정에 맞게 계획하도록 했다.
1990년대에 목격되었던 기업소 지표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며 기업들은 기본 생산물이 아닌 경우 자체적으로 생산지표를 개발하여 승인을 받으면 공식적인 계획지표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을 허용하였으며 이전에 생산 능력의 100%를 계획지표로 하달하였다면 이제 70%을 지표로 하달하고 나머지 30%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을 통하여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여 필요한 자재를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게 허용하였다.


2.1.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권[편집]


김정일은 가격제정권에서도 지방공업에서 생산한 소비품에 대해서는 그 가격제정권을 기업과 지방가격제정기관에 이양할 것을 요구하여 지방공업은 도, 시, 군의 책임성과 창의성을 높이도록 권한을 주고 풀 것은 풀어줘야 한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지방공업에서 생산한 소비상품의 가격, 규격 등은 국가적으로 원칙과 기준을 정해주고 상급기관의 감독 하에 공장 자체로 제정해 생산 및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국가가 설정한 생산계획에 대한 가격제정은 국가가격제정국이 지방에서 설정한 생산계획에 대한 가격제정은 지방가격제정기관이 기업 자체 생산 제품에 대한 가격제정은 기업이 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기업들이 종합시장의 등장 이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합법화되었다고 전하며 시장판매 생산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기업은 기본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인민생활필수품을 만들어 이를 종합시장에서 판매하여 현금을 조달하고 이를 국가납부를 하지 않는 생산유지비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9월경부터 농민시장에서 쌀 판매를 허용하였고 12월경부터는 공산품의 판매도 전면적으로 허용하였으며 7.1 경제개혁조치 이전까지 암시장 경제에서 안정을 찾고 있던 서민들의 생활이 폭등한 물가 때문에 엉망이 되자 민심이 흉흉하였다.
종합시장에는 개인 및 기관이 매대를 임대하여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시장 건물에 매대를 설치하기를 원하는 기관이나 개인은 평양시 인민봉사총국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며 신청인이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하여 결정 한다.
종합시장에 개인의 입점을 허용한 것은 큰 변화로 볼 수 있으며 지금은 통일거리시장에 있는 판매대의 약 5%는 공장기업소의 몫으로 할당되고 있고 쌀, 기름을 비롯한 중요지표상품의 한도가격을 설정하여 수요와 공급에 따라 10일에 한번씩 검토하여 한도 가격을 산출하고 있어 상품판매자는 시장에 시장사용료를, 국가에는 소득에 따라 국가납부금을 납부하게 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의 경제활동을 국가경제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다.
2019년에 황해북도농기계작업소에서 배풍식 공기계열기용 열풍 용선로를 개발하여 생산하였으며 이것을 발명공보에 수록이 되어 있으며 북한 전지역의 공장기업소에서 생산재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면서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실제로 순천시 건설 사업소 지배인으로 일했던 한 탈북민은 경제위기 이후 정작 건설업 대신 공장기업소에서 국수제조기계와 인조고기기계를 생산하였으며 기업을 운영하려면 자동차로 원자재를 수송해야 하는데 연유도 없고 타이어도 마모되어 자동차를 쓸 수가 없었다.
종합시장에 나가면 이런 것들이 다 존재하지만 정부에서 자금을 공급하지 못하니까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였으며 건설 사업소에도 각종 기계를 만드는 공구직장이 존재하면서 국수제조기계나 인조고기기계를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다.


2.1.3. 소득 분배권 및 국가 예산 납부권 과정[편집]


국가의 재정 수입 및 지출 항목을 조정했으며 국가납부금을 번수입에 기초하여 징수함에 따라 간접세 성격의 거래수입금을 폐지 이를 직접세 성격의 국가기업이익금에 통합시켜 국가기업이득금이라는 항목으로 예산수입의 원천을 단순화하여 감가상각금을 2002년부터 기업소에 재투자 자금으로 유보토록 한 데 이어 기업의 미사용 여유자금을 국가가 동원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하였다.
무역회사가 상부에 바쳐야 하는 자금이 있어 이윤의 70%를 납부하게 되어 있으며 나머지 30%는 해당 공장이 자율적으로 처분하는데 주로 공장의 재생산에 쓰라는 것이며 다만 신설공장에 대해서는 3년간 국가납부과제를 부여하지 않는다.
과도적 단계로 간주해 공장 설립 후 3년이 지난 때부터 납부하기 시작하여 관세와 국가납부금을 다 합쳐서 이윤의 17 - 18% 정도가 무역회사의 국가납부금이며 한 때는 30%를 넘은 적도 있었는데 무역회사들이 문제 제기를 해서 낮추어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2.1.4. 생산조직권 과정[편집]


생산 라인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규모에 대하여 지배인이 일정한 통제력을 실제로 행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증언을 하였으며 생산 라인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규모를 기업이 실제 조절할 수 있어 동일한 생산과정을 위해 투입되는 노동력을 20 - 30% 줄일 수 있었다고 증언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업은 이렇게 해서 줄이게 된 노동력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러한 노동력을 해고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생산과정에 대한 재조정을 통하여 절약한 노동력은 다른 부분 기업 외부의 활동 주택건설이나 도로교통 등에 활용한다고 하였으며 기업 노동력의 건설현장투입은 다반사로 이루어졌으며 1990년대 극심한 경제위기 시기에는 일거리가 없는 기업이 노동자를 이러한 공사현장에 대규모로 투입하기도 하였다.


2.1.5. 자금 조달권 과정[편집]


7.1 조치에서 허용된 기업의 현금거래권한을 대폭 확대하였으며 원래 북한에서는 기업이 현금거래를 할 수 있는 경우를 기업이 근로자에게 임금 및 보조금 등을 지급하는 경우 주민이 기업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하는 경우로 한정하게 되었다.
7.1 조치에서는 이에 더해 생산 정상화 물자나 경영용 물자, 계획에 맞물리지 못한 물자를 구입할 때도 현금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으며 기업이 유동자금을 국가재정을 통해 공급해 왔으나 은행 대출 등을 통해 자체 조달토록 함으로써 자금 조달의 효율성을 강화했다.


2.2. 서비스 산업 전면 허용[편집]



2.2.1. 상점 부문 개혁 과정[편집]


유통부문개혁 관련 특징으로는 북한이 상점 운영의 주체에 따라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상점과 기관. 기업소가 운영하는 일반상점으로의 이원화한 것을 들 수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업법 제81조는 상점, 식당, 봉사소 등을 운영하려는 기업소 등은 중앙상업지도기관의 승인 대신, 해당 상업지도기관의 영업허가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일반상점은 기존 국영상점을 기관, 기업소에 임대하여 자율 운영토록 한 위탁상점과 기관, 기업소가 개설한 직매점으로 구분되며 국가는 일부 실적이 부진한 국영상점의 운영권을 능력이 있는 기관, 기업소에 이관하여 국영상점과 일반상점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영업이 부진한 일부 국영상점을 기관, 기업소, 인민반에 임대 및 분양하고 대신 임대료를 징수하고 있고 가격은 국가계획에 따라 유통되는 상품의 경우에는 국정가격으로 판매하나 비계획상품의 경우에는 합의가격 형식으로 판매한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V씨는 평남 평성시의 경우 시안에 있는 국영상점 가운데 지금은 40% 정도만 남아 있으며 나머지 60%는 무역기관이나 개인이 인수해 수매상점으로 바뀌었다고 증언하였으며 평양 출신의 W씨는 처음에는 구역에서 한두개만 시범적으로 운영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거의 다 수매상점으로 돌아섰다고 증언하고 있다.
평양 출신의 R씨는 수매상점이 각 구역마다 5개에서 6개는 된다고 밝히고 있으며 평양 출신의 N씨는 내가 넘어올 때까지 평양 시내에 있는 국영상점들 중에서 대략 절반 정도가 수매상점으로 바뀐것 같다고 증언을 하였다.


2.2.2. 식당 부문 개혁 과정[편집]


식당 운영과 관련해서도 국영식당과 합의제식당으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국영식당은 국가가 합의제식당은 기관, 기업소가 경영하는 것이 원칙이나 개인도 수익금 제공 조건하에 국영식당을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식당 내 음식가격에 있어서는 국가가 정한 기본 메뉴는 국정가격으로 식당의 자체개발메뉴는 합의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국가는 식당 운영 수익의 일정액을 국가납부금 명목으로 회수하고 있는데 식당은 고객 유치를 위해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등 수익 위주의 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아내가 요리를 잘해서 식당을 설립할 생각을 하면서 2005년에 급양관리소로 소속을 옮겨 5년간 운영하면서 사회급양관리소에서 준 간판을 달고서 인근지역에서 꽤나 큰 국수집을 경영하여 수입에 관계없이 임대료 명목으로 한 달에 150만원씩 일정액을 납부하면서 사회급양관리소에서는 원자재 하나도 주지 않고 임대료만 받았으며 초기 자금은 개성에서 도굴한 골동품을 팔아 번 1만 달러를 이용하였다.
종합시장에 단골 거래처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무엇을 몇 kg씩 배송해달라고 전표만 발부하면 식당까지 배달해 주며 개고기(개장), 수산물(동태찜, 오징어볶음) 등 각가지 요리를 제공하며 이름은 국수집이지만 한 달에 150만원만 급양관리소에 납부하면 무슨 요리를 판매하든 밀주를 판매하여도 상관없었으며 수익은 본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매월 100만원 정도이다.
직원들에게 한 사람당 3,000원씩 지급하고 식량까지 공급하기 때문에 거의 5,000원을 공급하는 셈이며 마진은 닭 한마리를 1,500원에 매입해서 요리를 할 경우 2,500 - 2,800원에 판매하는 정도이며 식당 인근 대학생 1,800명이 매출을 많이 증가시켜주며 식당을 아무리 멋있게 하여도 손님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E씨가 직접 식당 위치를 선정하였다.
처음에는 3,000 - 4,000원짜리 국수를 판매하였는데 가격이 증가하며 사람들이 시식하지 못하며 그래서 E씨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그릇에 1,000원짜리 옥수수 국수를 판매하기로 하면서 500원에 판매해도 되지만 조미료를 첨가하고 값을 인상해서 1,000원에 판매하였다.
교원대학 식사가 형편 없었기 때문에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방문해서 큰 이득을 보면서 하루에 700 - 800그릇씩 판매하는데 70%는 학생들이 시식하고 보위부, 보안부, 검찰소, 사회급양간부들은 식당에서 공짜로 시식한다.
북한에는 약간이라도 간부라고 하면 어디에서든 공짜로 시식하지 돈을 지급하는 법이 없으며 이들이 검열을 나오면 잘 봐달라고 뇌물을 제공해야 하면서 사회급양관리소 소장과 초급당비서에게 설날, 김정일 생일과, 김일성 생일 등 명절 때 바나나 같은 남방과일, 돼지고기, 개고기, 수산물(송어, 고급어족) 5kg 정도를 집으로 배송한다.


2.2.3. 가내작업반 및 가내편의서비스업 개혁 과정[편집]


2004년 사회주의상업법에 의하면 중앙상업지도기관과 지방정권기관은 주민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수요에 맞게 전문, 종합봉사망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며 봉사업종을 실정에 맞게 정해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상점, 식당, 봉사소를 운영하려는 해당 기관과 기업소 및 협동단체는 해당 상업지도기관의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며 영업활동을 정해진 질서대로 하여야 한다고 수록이 되어 있다.
편의봉사기관과 기업소 및 협동조합은 편의봉사가내작업반과 가내편의봉사원을 널리 운영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편의봉사가내작업반과 가내편의봉사원의 조직과 배치는 상업지도기관이 하게 되어 있다고 밝힌바 사실상 사적기업설립권이 인정이 되었다.
3 - 5명이 단체로 할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가내반 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동사무소에 신청하여 허가를 받고 행정경제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아 별도의 가내반을 통하여 생필품을 제조하여 판매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이 물건을 제조하여 판매할 때 별도의 가내반을 만들어서 법적 문제와 행정적 문제의 발생시 북한 당국이 불법을 운운하며 트집을 잡지 못하게 함은 물론 문제 처리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물건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대가로 당국에 이윤의 3 - 10%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고 물건 제조시 설비는 주로 인근의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에서 거래하며 필요 자재는 중국 수입품과 자체 조달품을 반반씩 혼합해서 활용하고 있다.
과자, 사탕 등 과자류는 생산설비를 집에다 도입하고 직접 제조하고 있으며 약품류는 과거에 고려약 제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경험을 살려서 민간요법으로 직접 원료를 추출하여 제조한다.
맥주는 원료를 사다가 집에서 직접 제조하고 병과 뚜껑은 별도로 외부에서 구입 또는 직접 만들고 있으며 신발은 가죽이 부족하여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주로 만들고 있는데 공장에서 만든 것과 모양이 거의 차이가 없어 이러하게 가내반이 제조한 생필품은 제품의 품질이 아주 고급이며 중국 생필품에 비하면 가격도 인하되었기 때문에 농민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출처


2.3. 농업 개혁 과정[편집]


2002년부터 함경도 지역에서 시범 실시된 것으로 알려진 개인경작제도가 올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농장에서 옥수수를 심을 수 있는 땅만 골라 토지 비옥도를 감안해 농민 1인당 200 – 400평씩 나눠 주어 아들이 올해 농장 토지 350평을 개인경작지로 받았으며 이 제도가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고 밝혔다.
최근 발간한 북한소식 1호에서 북한 당국이 올해 3월부터 1인당 300평씩 토지를 배분한 뒤 토지의 질에 따라 상중하로 세금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농장은 개인에게 개인경작지용 비료 등을 지원하고 가을에 현금이나 곡물을 대가로 받아간다며 모든 농가는 개인경작지로 6개월 동안의 식량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협동농장의 곡식 생산량이 2000년 358만 톤에서, 2001년의 354만 톤으로 하락하다가, 2002년에 387만 톤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3년 415만 6천 톤으로, 2004년에는 424만5천 톤으로 증가하고 있어 북한이 2004년 들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협동농장 개인경작제도는 1980년대 초 중국이 개혁개방조치와 함께 단행한 농업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


3. 2004년 - 2005년 시장경제 도입 실패 과정[편집]



3.1. 국영 기업 개혁 과정[편집]



3.1.1. 기업 계획권 과정[편집]


우선적으로 계획 작성에 있어서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표는 국가계획위원회에서 계획하지만 나머지는 해당 기관 - 기업소에서 하며 특히 지방경제 부문은 공업총생산액이나 기본건설투자액 등 주요지표를 제외한 세부지표들은 도 - 시 - 군 자체 실정에 맞게 계획하도록 했다.
1990년대에 목격되었던 기업에 의한 계획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며 기업들은 기본 생산물이 아닌 경우 자체적으로 생산지표를 개발하여 승인을 받으면 공식적인 계획지표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는 타 기업들에 의해 수요가 많은 특정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이를 계획지표로 승인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제품에 대해서는 생산을 위한 물자조달, 가격책정, 판매 등에 큰 제약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을 허용하였으며 이전에 생산 능력의 100%를 계획지표로 하달하였다면 이제 70%을 지표로 하달하고 나머지 30%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물자교류시장을 통하여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여 필요한 자재를 다른 기업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게 허용하였다.
2004년부터 일부 공장기업소의 생산계획수립 - 임금결정 - 노무관리 등에 대한 지배인의 경영권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기업 운영의 융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가계획위원회가 전략지표 – 중요지표의 경우에만 현물계획으로 하달하고 나머지는 금액계획으로 하달하고 있다.


3.1.2. 가격 제정권 및 시장 판매권[편집]


2004년 이후 인플레이션 심화로 기업 채산성과 주민 생활고가 가중되자 북한은 가격 - 임금 제정에 대한 국가통제권을 추가로 완화하여 공장기업소가 자체 생산한 소비품 가격을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한편 기업소가 가처분 이윤 내에서 종업원의 임금을 자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부 경제단위의 임금지급 권한을 보다 확대했다.
2004년 김정일이 재가한 8월 11일 방침에서 공장기업소의 놀고 있는 생산 잠재력을 동원하여 계획외 수요가 있는 상품을 생산 및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며 모자라는 원료 및 자재는 시장에서 구입하고 생산품은 합의가격 또는 시장가격으로 판매한다고 되어 있다.
기업소가 종합시장의 등장 이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합법화되어 시장판매생산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기업은 기본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인민생활필수품을 만들어 종합시장에서 판매하여 현금을 조달하고 이를 국가납부를 하지 않는 생산유지비로 쓸 수 있으며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상품은 생필품 생산의 30%를 넘을 수 없으며 기업 제품의 시장판매가 부분적으로 허용되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기업소가 기본 생산물이 아닌 부산물로 제조한 소비품의 30%만 종합시장에 자율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하나 실제로 계획 생산에 기초한 기본 생산물의 시장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북한은 2004년부터 국영기업소 생산물의 종합시장 판매량을 아예 계획내 생산량으로 잡아서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3.1.3. 소득 분배권 및 국가 예산 납부권 과정[편집]


국가의 재정 수입 및 지출 항목을 조정했으며 국가납부금을 번수입에 기초하여 징수함에 따라 간접세 성격의 거래수입금을 폐지 이를 직접세 성격의 국가기업이익금에 통합시켜 국가기업이득금이라는 항목으로 예산수입의 원천을 단순화했다.
감가상각금을 2002년부터 기업소에 재투자 자금으로 유보토록 한 데 이어 기업의 미사용 여유자금을 국가가 동원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하여 종전 국가예산에서 지급되던 기업 재투자 자금의 일부를 기업이 자체 조달토록 함으로 재정지출요인을 축소했다.
2004년부터 임금의 상한선을 폐지하고 국가납부금 외 나머지 이윤 내에서 자체배분을 허용하는 등 기업의 임금결정 및 지급 권한을 대폭 확대하였으며 조총련 잡지 조국은 평양신발공장은 임금을 1만 원으로 선교편직공장도 현재 4,000원에서 3 - 5배 인상할 계획이라고 보도하였다.
무역회사가 상부에 바쳐야 하는 자금이 있어 이윤의 70%를 납부하게 되어 있으며 나머지 30%는 해당 공장이 자율적으로 처분하는데 주로 공장의 재생산에 쓰라는 것이며 다만 신설 공장에 대해서는 3년간 국가납부과제를 부여하지 않는다.
과도적 단계로 간주해 공장 설립 후 3년이 지난 때부터 납부하기 시작하여 관세와 국가납부금을 다 합쳐서 이윤의 17 - 18% 정도가 무역회사의 국가납부금이며 한 때는 30%를 넘은 적도 있었는데 무역회사들이 문제 제기를 해서 낮추어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3.1.4. 생산조직권 및 고정자산매각권 과정[편집]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 출신의 탈북자는 생산 라인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규모에 대하여 지배인이 일정한 통제력을 실제로 행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증언을 하였으며 생산 라인에 투입되는 노동력의 규모를 기업이 실제 조절할 수 있다.
경제개혁조치 이후 동일한 생산과정을 위해 투입되는 노동력을 20 - 30% 줄일 수 있었다고 증언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업은 이렇게 해서 줄이게 된 노동력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러한 노동력을 해고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04년 국가가 직접 공장기업소에 노동력을 배치해 왔으나 최근에는 노무관리의 유연성 증대를 위해 기업이 유휴 노동력을 탄광 - 농장 등에 스스로 파견하는 것을 허용하고 독자기업설립시 일정액의 설립금 은행 예치를 의무화하고 예치 금액중 70% 정도는 다시 은행대부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하여 기업소가 보유한 국가설비는 은행에 그 재산액을 등록하고 은행에 감가상각비를 납부 및 설비를 거래할 때는 은행절차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3.1.5. 자금조달권 과정[편집]


노력동원체계의 중요 대상은 노동성이 지방은 도, 시, 군에서 장악 및 이용하며 시, 도에 남는 노력으로 독립채산제 기업소를 조직할 권한을 주고 기업소가 생산 책임을 지는데 맞게 노력 관리 권한도 부여한다고 밝혔다.
지방경제관리기관에 잉여노동력을 활용해 독립채산제 기업을 설립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예산제 기관도 독립채산제 혹은 반독립채산제 기관으로 전환해 기업관리 및 기업 실패의 자율화를 확대하여 기관, 기업소에 경쟁 개념을 도입하면서 국가재정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이다.
노동력은 기업소의 요구에 따라 공급해 남는 노력은 여러 형태의 경영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며 군수공업 관련 회사 외에 성, 중앙기관 직속 무역회사를 없애고 모두 동등한 경영권을 가진 독립회사로 전환한다.
독립채산제, 반독립채산제 규정을 재검토하여 기업소의 자산 규모에 따른 국가납부금 납부 방법으로 개정하여 기업소는 국가계획 하에 기업소 자체 자금으로 확장이 가능하며 국가납부금을 낸 다음의 기업소 자금은 전적으로 기업소에 처분 권한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식품가공업으로 대표적인 것이 국수공장과 인조고기 공장이며 이들은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거나 저렴하면서도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식품들이며 이들 품목을 생산하려면 기계 설비도 있어야 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필요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국수공장 및 인조고기 공장은 주요 국영공장의 생산기지로 등록한다.
이 기지는 통상 해당 국영공장의 더벌이 과제 수행이라는 합법적 형태를 띠고 국수공장 같으면 대개 다음과 같은 방식이며 마른 국수를 생산하는 황해남도의 어느 한 개인기업은 기계공장 산하로 들어갔다.
공장의 건물 일각에 자기의 국수 생산기지를 설립하고 자기가 선발한 노동자, 자기의 설비, 자기가 구입한 원자재로 국수를 생산하면서 이를 대기하고 있는 도매상들에게 유통하면서 그 이윤의 일부를 공장 측에 이관하며 개인 기업가는 기지장이라고 불리며 경영상 공장과는 독립이지만 이윤 분배와 자원대여, 법적 수속은 양자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으로 되어 있다.
인조고기(콩으로 만든 돼지고기 맛이 나는 음식) 공장 사례도 흥미로우며 북한의 B시(농촌 제외 시 인구 20만 명)에서 1999년에 처음으로 인조고기가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B시에 거주하는 개인 수공업자에 의해 생산되었는데 원래 이들은 중국 수입 대두로 콩기름을 생산해서 농민시장에 판매하던 개인 콩기름 제조업자들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인조고기가 큰 인기를 누리자 그들은 안주에 가서 콩으로 제조한 고기의 생산기술을 배우고 그 생산기계를 모방해 생산설비를 제작한 후 자체적인 제품 생산에 성공한 것이며 인조고기 공장을 설립하려는 개인은 우선 인맥이 있는 국영공장의 간부와 의논해 공장으로부터 생산기지 설치 및 운영권을 승인받은 후 자신이 해당 기지 책임자가 된다.
B시에서 처음으로 인조고기가 생산되기 시작한 해(1999년)로부터 9년이 지난 2008년 현재 B시에는 10명 이하 규모인 인조고기 생산기지가 7 – 8개소로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경우 돈주들이 기업소를 인수하여 운영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 본인이 내세운 대리인을 통해 인수하는 것도 가능하면서 인수하였을 경우 기업소에 대한 인사권도 존재하여 이 경우에도 돈주가 인수할 수 있는 공장기업소의 규모는 제한적으로 300여명 정도 되는 4급 기업소와 5급 기업소는 존재하지만 중앙공업에 존재하는 공장기업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3.2. 무역회사 개혁 과정[편집]



3.2.1. 무역회사 설립과 와크의 획득[편집]


무역회사는 무역거래의 당사자이며 무역거래는 법에 따라 설립되고 영업허가를 받은 무역회사가 하여 무역회사의 설립조건은 다음과 같으며 1. 명칭과 기구, 2. 규약, 3. 업종 및 지표, 4. 영업장소, 5. 자금원천, 6. 필요한 전문가와 보장성원, 7. 대외시장에 실현할 수 있는 상품생산기지 또는 기술, 서비스 원천이다.
무역회사를 설립하려는 기관, 기업소, 단체는 중앙무역지도기관에 회사설립신청문건을 내야 하며 중앙무역지도기관은 회사설립신청문건을 검토하고 내각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무역회사는 중앙무역지도기관에 등록하고 영업허가를 받아야 한다.
영업허가를 받은 무역회사는 무역거래에서 당사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지니며 무역당사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는 해당 법규에 따르며 무역회사는 영업허가를 받은 범위에서 무역거래를 하여야 하고 허가받지 않은 업종, 지표의 무역거래는 할 수 없어 무역회사는 계약을 정확히 맺고 무역거래를 하여야 하며 중요무역계약을 맺으려 할 경우에는 해당 계약서를 중앙무역지도기관에 내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무역회사는 승인된 업종과 지표로 다른 무역회사 또는 기관, 기업소, 단체의 위탁을 받고 무역거래를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계약을 정확히 맺고 이행하여야 하며 무역회사는 자금거래를 정해진 은행을 통하여 하며 결제는 신용장결제방식을 기본으로 하여야 한다.
수출기지를 새로 조성하거나 첨단기술제품,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개발하여 판로를 개척한 무역회사에게는 특혜를 주며 일반 경제단위가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제품, 기술, 서비스 원천을 개발하였을 경우 무역거래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3.2.2. 수출품 생산 기지의 조성 및 첨단기술제품의 수출권 과정[편집]


보안서에서 7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는 A씨는 매부와 동업하여 당기관 산하 외화벌이 기지(해주)로 파견을 나가 개인광산은 돈 있는 개인이 광산 책임자를 찾아가 이윤을 바치겠으니 갱 몇 개를 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설립된다.
개인은 광산 하나를 통째로 살 만한 여력이 없으므로 광산의 갱 일부를 인수받아 수익금을 입금하는 형식으로 사업을 벌이고 금을 발견하면 광산 책임자에게 돈(5천 – 1만 달러)을 주고 갱을 산 후 국가에 개발제의서 등을 바친다.
외국(중국) 자본을 유치할 수 있으면 합영회사형태가 되는데 당국에서는 이런 방식을 환영하며 자본이 있다고 이런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무역회사와 같은 국영기업의 명의를 빌려야 하고 아무리 국가가 돈이 없고 국영기업이 힘이 없어도 개인이 혼자 부를 축적하게 하지는 않고 국가와 수익을 나누도록 한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몰리브덴을 캐어 정광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였으나 가격 인하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1년 만에 접고 금으로 품목을 바꿔 판로는 몰리브덴의 경우 국내 수요가 없고 주로 중국으로 가서 밀매하는 방식이었으며 문제는 가격 반응이 느려서 중국에 나갔을 때 톤당 가격이 국내에서 예상했던 가격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황해도에서 신의주까지 운송비도 만만치 않았으며 반면 금은 앉은 자리에서 금 거간꾼에게 판매할 수 있고 생산량도 많고 단가가 높아서 유리하여 공장은 24시간 가동하면 노동자들은 한 조에 10명씩 3교대가 일하고 한 조당 8시간 일을 하며 굴안을 발파해서 금광석을 광차에 실어 내오면 그것을 자그마하게 사람 손으로 파쇄한다.
파쇄한 금광석은 원통이 된 파쇄기 안에 넣어 밀가루처럼 가루로 만들면 기술자 손을 거쳐 시약 처리를 하여 금괴를 생산하여 광산 옆에 별도로 순금제련공장을 만들고 승인을 받아 순도를 높여서 무게와 부피를 줄이기 위해 국경으로 광석을 나르는 트럭운반횟수가 줄어들며 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기업소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금괴를 생산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며 금광석 자체를 그냥 중국에 넘기는 것보다 금광석에서 금을 제련하여 생산하면 더 많은 이윤이 남아 금광석에서 금뿐만 아니라 은도 함유되어 있어 은괴도 생산하여 판매하면 이윤이 광석으로 넘기는 것보다 몇 배가 남기 때문이다.
제조업에 가까운 누가 봐도 불법적인 수공업 생산도 공공기관이나 더욱 상위기관의 명의를 빌린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며 일반적인 식료 가공품이나 의류 등이 아닌 아예 소형 용광로를 설치해 알루미늄 잉곳을 만드는 것도 인민보안성의 명의를 빌린다면 별다른 제재 없이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알루미늄 잉곳을 생산하지는 않았으며 애초에 알루미늄 잉곳을 운반하고 장사꾼들 사이에 거래를 중개하며 매출을 올리다가 주변 사람과 아예 우리가 잉곳을 생산하여 보자고 하여 생산을 시작하였다고 밝혔다.
소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하여 확대재생산을 하며 상당한 규모의 알루미늄 잉곳을 생산하였으며 해주 제련소에서 알루미늄 광석을 구매하여 다리 밑에 설치한 소형 용광로에서 알루미늄 잉곳을 생산하여 판매하였다.
알루미늄은 녹는점이 쇠보다 낮은 700도에서 용해되며 이러하게 만든 알루미늄 잉곳은 중국에 수출하여 이런 알루미늄 잉곳의 생산과 해외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개인 명의가 아닌 인민보안성의 외화벌이 사업소 명의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각의 통일적 지도 밑에 중앙무역기관에 의해 일원적 관리와 통제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국가의 통일적 지도체제는 당과 군이 독자적으로 행해왔던 무역활동을 무역상의 지도하에 무역활동을 하도록 일원적 무역체제로 개혁하였다.
국가의 무역지도를 돕기 위한 비상설기구로 국가무역지도위원회를 신설하였으며 이 위원회는 국가의 무역정책을 집행하며 무역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문제를 정기적으로 토의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무역법은 대외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납부금이나 관세의 합리적 조절과 장려금의 적용 등과 같은 무역촉진정책을 담고 있어 법안에 수록되어 있는 수출원천기지 혹은 생산기지를 새로 조성하거나 LED TV데스크톱 컴퓨터,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높은 제품을 개발하여 판로를 개척한 무역회사에게는 특혜를 주도록 하고 있다.
일반경제단위가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새로운 제품, 기술, 서비스 원천을 개발하였을 경우 무역거래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 무역자유화에 따라 무역회사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20%까지 보유할 수 있던 것을 40%까지 보유 한도액을 대폭 높였다.
국영무역회사에 의한 독점체제를 무너뜨리고 무역의 주체를 확대하면서 일정한 조건을 마련한 북한의 기관, 기업소, 단체는 모두 무역회사 설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면서 북한 무역관리체제의 자율성을 높였다.


3.2.3. 자금 조달권 및 경영 청부 과정[편집]


일반 경제의 무역회사나 특수 경제의 무역회사이든 해당 기관 - 기업소에 원래부터 근무하였던 사람이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경우보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경영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인민무력부 산하 무역회사의 경우 군부가 직접 경영하는 것보다는 민간인을 영입하여 회사 경영을 청부하는 경우가 더 많아 이 민간인은 대개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여 무역회사를 경영하여 국가로부터 운영 자금을 지원받기도 하고 운영자금이 모자라서 돈주에게 대부를 받기도 한다.
박기원이라는 이름의 평안남도 순천시 기업가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는 수공업 수준의 소규모 돌 공예품 가내작업반에서 출발하여 이를 순천 수출 돌 공예품 공장으로 발전시키며 중국의 문화 오락 산업을 참고로 해서 국가 허가를 받은 종합서비스센터를 설립하였다.
대동강의 골재를 원료로 사용하여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를 위한 부재공장도 설립하고 운영하며 아파트 신축 등 건설업에도 투자하였으며 이러한 순천 수출 돌 공예품 공장과 부재 공장과 종합서비스센터 등의 종합체인 금강산 무역회사의 사장이 되어 여러 개의 기업소와 수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무역회사의 사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2010년대 중반에 평양에서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을 운영하는 어떤 개인 사업자는 지역행정기관과 교섭하여 체육성 산하의 후방공급사업을 보장한 명목으로 부지를 받아 공장을 건설하였다.
중국 대방에서 개인 투자를 받아 중국산 설비를 설치하고 원료를 수입하여 식품을 생산하는데 초기 투자비로 5만 달러가 들어갔으며 이 사람은 해당 기관에 수입금을 상납하기로 비공식적으로 합의하고 해당 기관 간부로 입직하여 생산설비는 국가 재산으로 등록하였다.
이 공장은 국가로부터 정식 노력 폰드를 받아 30여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그러하지만 생산과 판매 등 공장의 경영권은 이 사람이 갖고 있고 생산품은 고유의 상표를 달아 비공식적으로 국영상점이나 종합시장 등에 판매한다.
수입금 상납분을 제외한 나머지 수익금을 생산에 재투자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 재산의 사용권과 수익처분권은 보장하며 해당 기관의 승인을 받아 이 공장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거나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속권을 포함한 양도권도 보장하고 있다.
A씨는 매부와 동업하여 당 기관 산하 외화벌이사업소 책임자로서 부기지장을 맡아 광석 생산을 총괄하여 CEO, 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기지장은 A씨의 사촌 매부로서 판로 운영을 돌보았고 투자금으로는 매부가 2만 달러, 본인이 1만 5천 달러를 투자해 3만 5천 달러를 모아 매부는 외화벌이로 돈을 모은 사람으로서 해외 판로를 책임졌고 A씨 본인은 보안원 출신으로 해외경험은 없었고 생산을 책임졌다.


4. 2012년 시장경제 도입 과정[편집]



4.1. 운수 부문[편집]


시외버스나 택시의 같은 경우 도나 시, 군 인민위원회 운수 사업부의 형태로 시외버스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며 자신이 축적한 자금이나 사금융을 통하여 조달한 자금으로 중국 등으로부터 버스를 확보한 개인이 버스와 함께 이 운수 사업부 등에 소속되어 형식적으로 국가 기관에 의하여 공급된다.
하지만 실제 투자와 운영은 개인이 담당하는 서비스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국가 기관이 제도적 안전장치를 제공하고, 자금력과 운영 능력을 갖춘 개인이 이 제도적 안전장치를 활용하여 투자하고 운영하는 이 방식은 현재로써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국가는 이러한 형태를 통하여 재정자금을 투자하지 않고도 철도 서비스의 약화를 보완할 수 있는 시외버스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수 서비스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획득할수 있어 투자와 운영을 담당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서비스 공급 결과 발생한 수입의 일부를 배분하지만 투자 자산의 몰수나 형사적 징벌의 위험을 줄인 채 합법적으로 영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4.2. 상점 부문 및 식당 부문 과정[편집]


2010년 사회주의 상업법에 의하면 중앙상업지도기관과 지방정권기관은 주민지역의 특성과 인민들의 수요에 맞게 전문, 종합봉사망을 합리적으로 배치해야 하며 봉사업종을 실정에 맞게 정해주어야한다고 되어 있으며 상점, 식당, 편의봉사망을 운영하려는 기관, 기업소, 단체는 중앙상업지도기관의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며 영업활동을 정해진 질서대로 하여야 한다.
도매상업기업소를 통해서만 공급받던 모든 소비품들을 국영상점도 생산단위로부터 직접 구입할 수 있게 하며 국영상점망은 일부 소비품을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어 그 소비품의 가격을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한다.
종래 개인들이 기관 명의를 이용하여 국영상점을 운영하는 현상이 확산된 현실을 인정하여 개인들의 국영상점투자를 양성화하며 상업성에 도매상업센터을 설치하여 수입 상품의 국영상점공급을 관리하며 상업유통개선의 기대효과를 보면 국영유통망의 활성화와 함께 주민들의 시장이용억제를 도모하며 그간 관행화된 국영유통망에 대한 개인투자를 허용함으로써 국영상점의 투자재원확대를 꾀한다.
주민들은 국영상점이 아닌 시장을 통해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조달했으며 2000년대 들어 시장화가 진전되고, 2002년 7.1 경제개혁조치, 8.3 노동자 확대 조치 등으로 시장유통망은 급격히 팽창하게 되었으며 개인은 기관, 기업소의 명의를 빌려 국영상점을 임대해 장사를 계속했다.
최근 북한의 국영상점은 경영이 어려워지자 개인들이 국가의 명의를 등록하는 동시에 이윤의 일정액을 상납하면 국영상점에 들어가 상점을 경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종전에는 식료품, 공업품, 채소, 약국 등 국영상점이 각 구역별로 있었는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경영이 곤란해지자 개인들이 기관 - 기업소 명의를 빌려 이곳에 들어가 물건을 파는 현상이 증가하였다.
여기서 국가기관의 소속이 되어 국영상점을 운영하는 개인은 일반적으로 1차 도매상으로부터 충분히 상품을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비교적 돈이 많은 상인들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상인들과 차별화되었다.
1차 도매상으로부터 신용을 얻어 외상으로 물건을 대량 가져올 수 있는 사람들이며 또한 국영상점의 주 고객은 다른 지역에서 대량으로 상품을 차판으로 날라다 파는 도매상이 된다.
판매하는 상품도 종합시장에 파는 상품도 있으나 예를 들면 건축자재를 비롯해 밥솥, 컴퓨터, 냉동기 등 가전제품 등 비교적 값이 나가는 중기를 취급하는 곳, 가구, 옷장, 경대와 같은 가구도 취급하는 곳이 많다.
바꿔 말하면 종합시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차별화된 상품을 파는 곳이 많아 물론 상점의 이름은 품목별로 분류된 것이 아닌 대성동이라면 대성상점, 류경동이라면 류경상점 등 그 지역의 이름을 딴 상점들이 많다.
그러나 국영상점에서 파는 상품의 가격은 종합시장보다 조금 낮고 더욱이 이윤의 70%를 국가에 납부하여야 하기 때문에 운영이 잘 안 될 경우 오히려 종합시장에서 장사하는 소매상인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다.
평안남도의 소식통은 평안남도 성천군의 한 국가식량배급소에서 쌀과 강냉이를 비롯한 각종 알곡을 장마당 상인들을 대상으로 도매하고 있으며 지난달부터 성천군의 한 여성 돈주가 식량배급소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고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쌀 도매가게로 활용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다.
성천군에는 군 인민위원회 상업부에 소속되어 시장가격으로 식량을 팔고 있는 식량판매소가 몇 년째 운영되고 있다면서 식량판매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식량배급소를 개인 돈주가 임대해 쌀 도매소를 개업하면서 식량판매소와 판매경쟁을 벌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업부 소속 식량판매소에서 판매하고 있는 국내 쌀 1kg 가격은 내화 4,150원, 개인이 임대한 식량배급소에서 도매하는 쌀 1kg은 내화 4,000 - 4,100원 선이라고 덧붙였다.
두 판매소의 쌀 가격은 별로 차이가 없지만 실제 수익금을 본다면 배급소를 임대한 개인 돈주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으면서 식량판매소의 수익금은 대부분 지방정부 자금으로 납부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쌀 도매소의 수익금은 30%만 국가 양정에 소속된 식량배급소 자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는 업주의 차지가 된다고 설명했다.기사
평안북도 신의주 소식통은 무역 거래를 하면서 많은 돈을 모은 돈주들이 중국에서 200kg 가량 되는 냉장고를 들여와 고기 상점을 차렸으면서 돈주들이 갑자기 고기 상점을 차린 것은 주민들이 고기를 많이 찾자 오랫동안 대량의 고기를 저장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일반 주민들은 물론이고 돈주, 간부들에게도 종합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덜 싱싱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저장소서 파는 고기가 인기가 좋다면서 종합시장 고기는 싱싱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상하거나 말라 비틀어지기 때문에 냉동고에 잘 보관된 싱싱한 고기가 맛이 좋다고 설명하여 고기상점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 고기상점기업소 같은 형식으로 운영되며 당국은 허가를 내주고 고기상점 이익의 10%를 납부받는다.기사
최근 정보기술봉사소라는 이름으로 평양은 물론 지방에도 한국의 PC방 같은 곳들이 많이 생겨났으며 컴퓨터를 소유한 사람들이 많아 컴퓨터게임이 일상화되어 최근 북한에서 휴대전화가 확산하면서 모바일 게임도 활성화가 되어 가는 추세라고 전했다.기사
평안남도 소식통은 평성시 소재 개인 투자 상업시설 2곳의 운영 실태와 이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 놓인 공장 3곳의 실태를 파악해 상세히 전해왔으며 먼저 지난 2017년 평성시 은덕동에 건설된 종합봉사시설 평성원을 언급하며 디자인도 화려하고 잘 꾸려져 있어 운영이 잘 되고 있다고 전했다.
목욕탕과 사우나, 이발소, 오락실, 식당, 상점 등이 들어서 있는 평성원은 과거 환율장사를 하던 여성 돈주가 투자해 건설하였으며 현재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복합상업시설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기사
중국의 한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정부 차원에서 세금을 징수하기 위하여 개인사업자들을 상대로 규정을 만들었다면서 안내 규정 책자에는 각종 업종별 세금납부항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다.
북한이 발급한 안내서에는 개인들이 운영하는 목욕탕, 안마방, 미용실을 비롯한 편의서비스업종 분야에 대한 세금항목이 다 적시되어 있으며 국가가 각 사업자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은 규모가 작은 경우(매출: 100달러 - 150달러), 한달에 30 - 50달러(비율 : 30%), 규모가 큰 경우(매출 : 250달러 - 300달러)에는 70 - 100달러(비율 : 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평양과 신의주를 비롯한 도시에는 개인사업자들이 상당히 늘어났으면서 이들은 대부분 상점과 편의점 등 사업장을 만들고 경영하여 매출을 올리고고 있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기사


4.3. 가내작업반 및 가내편의서비스 부문 과정[편집]


2013년 8월 내각 상무조는 식당 등 사회급양부문과 목욕탕 – 이발 – 수리 – 가공 등 편의봉사부문의 문제점을 검토한 결과 국가가 필요한 물자들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지역마다 봉사조건이나 수요가 다른데 서비스 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해준 점이 문제라면서 자체로 서비스 활동을 하도록 권장하고 국가가 관여하지 말 것을 건의한다.
내각 상무조는 알곡 – 고기 – 채소 – 땔감 등의 원자재와 화장비누 – 땔감 – 천 등 편의봉사용 자재들을 자체로 확보하게 하고 가격도 편의봉사부문 기업소들이 자체로 제정하여 가격 기관에 등록하고 적용하되 다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이발 – 미용 – 목욕은 지방인민위원회가 땔감 – 휘발유를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국정가격으로 서비스하도록 하자고 건의 및 시행한다.
2010년 이후 사회주의상업법에 의하면 중앙상업지도기관과 지방정권기관은 주민지역의 특성과 주민의 수요에 맞게 전문, 종합봉사망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며 봉사업종을 실정에 맞게 정해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상점, 식당, 편의봉사망을 운영하려는 해당 기관과 기업소 및 협동단체는 해당 상업지도기관의 영업허가를 받아야 하며 영업활동을 정해진 질서대로 하여야 한다고 수록이 되어 있다.
편의봉사기관과 기업소 및 협동조합은 편의봉사가내작업반과 가내편의봉사원을 널리 운영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편의봉사가내작업반과 가내편의봉사원의 조직과 배치는 상업지도기관이 하게 되어 있다고 밝힌바 실질적으로 사적기업설립권이 인정이 되었다.
국가계획기관과 무역기관, 해당 기관은 편의봉사용 자재와 부속품을 계획에 맞물려 보장하여야 하며 상업지도기관은 편의봉사용 자재, 부속품을 정상적으로 공급하여야 한다고 밝히며 현재의 사회주의상업법으로 인하여 현재 무역회사를 통한 자재를 조달받을 수 있는 여건이 달성이 되었다.
데일리 NK와 연결이 성공한 북한 주민이 증언하여 개인이 돈이 있다면 건물을 임대하여 가내반을 신설하여 소비품을 생산하거나 택시업을 해도 되고 이러하게 능력과 재력에 따라 업종을 선택해도 된다고 전해왔다.
이젠 대부분의 업종에서 서비스가 발달되어 고객 유치를 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운영하는 가내반에서 주민들이 두부콩으로 물망으로 내려 두부를 생산하여 판매하거나 옥수수나 다른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 국수를 생산하거나 또 즉석에서 만두피도 생산할 수 있어서 일반 주민들은 물론 장사꾼들도 적극적으로 분업을 활용하고 있다.
가내반을 하고 있는 주민이 옥수수나 콩을 비롯한 영업활동에 필요한 곡물들을 도매로 공급하려는 곳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또 두부나 국수를 판매하거나 만두를 만들어 파는 장사꾼들과도 연계되어 있다.
통옥수수를 쌀로 만드는 과정에 생기는 가루로 소주를 제조하는 상인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도 여러 장사꾼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은 서비스가 잘 되어 있는 가내반을 선택하기 때문에 고객 관리를 위해 너도나도 품질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배달이나 정확한 수량에서도 정확성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기사


5. 2013년 시장경제 도입 과정[편집]



5.1. 농업 개혁 과정[편집]


현재 일인당 1,000평 규모의 토지가 부여되고 이 토지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개인과 국가가 60% - 40%의 비율로 분할하게 된다고 말했으며 처음에 농민들에게 1,000평 규모로 땅을 분할하다가 효과가 나타나면 다음해부터 1정보, 2정보 이렇게 점차적인 방법으로 증가하게 된다고 말해 북한이 농업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도단계를 설정하였다.기사
평안북도 한 지방 농가의 실례를 들면서 4식구가 딸린 한 가족은 포전담당제로 3,000평을 임대받아 농사를 경작해 국가에 수매를 하고도 옥수수 3.5톤을 수확했다면서 협동농장 분배 몫까지 합쳐 식량 4톤을 장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안남도 벌방 지방의 한 주민은 평안남도 지방에서는 농민 1인당 1,000평 기준으로 토지를 분할해주었다면서 그러다가 가을에 농장에 할당된 군량미를 충당하기 위해 개인에게 30%를 분배하고 국가에 70%를 수매하도록 조치해 농민들의 불만이 거셌다.기사
지난 2013년부터 황해북도의 미곡, 봉산협동농장 등에 시범적으로 포전담당책임제가 도입되었다면서 분조 단위는 농장원 3 - 5명으로 구성되고 한 세대에 농장원이 세 명이면 가족단위로 땅을 분할해주었는데 분조원 한 사람당 1,700평씩 총 5천 평을 분배받았다고 밝혔다.
농장 작업반에서 분조마다 약간의 비료를 공급하고 경작용 소와 농기구도 사용하도록 하였다면서 처음으로 자기 땅을 보유하게된 농민들은 파종부터 수확까지 악착 같이 농사지어 농장에 70%의 알곡을 납부하고도 한해 필요량을 충족시킬 만큼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포전담당책임제는 국가에 생산량의 70%를 납부하고 분조원들이 나머지 30%를 분배해 보유한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2018년부터 생산실적이 우수한 일부 농장은 농장 재량으로 분배비율을 정할 수 있게 변경되었다.기사
지금까지 포전담당책임제는 분조 농민들에게 땅을 무료로 임대하고 농사를 경작하게 한 뒤 수확한 알곡 현물 가운데 70%를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를 개인이 처분하도록 하였다면서 그러나 올해부터 재령군 농장에서는 땅을 유료로 임대하는 대신 수확한 알곡 30%만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 70%의 알곡을 농사꾼이 보유해도 된다고 농장 간부가 직접 말했다고 설명하였다.
농장원들은 정말 농사꾼이 70%의 알곡을 보유하게 된다면 농사에 필요한 비료와 영농자재 비용을 제하고도 한해 먹을 식량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반기고 있다면서 그러나 농경지 한 평당 내화 2,000원의 임대료를 반드시 선불로 납부해야 하며 1년 기한으로 땅을 임대하고 있어 현금이 없는 농민들은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기사
문덕군협동농장은 포전담당책임제를 시행하면서 농민 1인당 1,500 - 1,700평의 땅을 임대한 다음 농장에서 알곡종자를 대주고 가을에 수확한 알곡 현물을 농민 60%, 농장 40%의 비율로 분할하는 방식이었다면서 그런데 올해는 농경지를 농민들의 농사자금 동원 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임대하면서 혼자서 3,000평에 달하는 경작지를 임대받은 농민들도 있다고 설명하였다.
농장에 자금이 없어서 종자를 비롯한 비료 등 영농물자를 농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농자금을 댈 능력이 있는 농민들에게 경작지를 많이 임대해 생산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며 트랙터와 모내기 기계는 농장 승인하에 사용할 수 있지만 연료는 자체 해결해야 한다.
조선로동당에서는 포전담당책임제 방식을 개선해 농민들의 생산 의욕을 증가하려 하지만 농민들에게 임대한 농경지의 경작권을 1년으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해마다 농민들이 임대받는 농경지가 변경되고 있어 자기 농지이라는 관념이 없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토지 관리가 안 되어 농민들이 농사기술 개발에도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기사
토지임대규모는 농장별로 조금씩 차이가 나며 그러나 도입 초반에는 협동경리포전이 상당 면적이 존재하다가 점차 개인경리포전이 확대되면서 농장원당 토지임대규모도 증가하며 포전담당책임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농장의 경우 농장원 가구수와 해당 토지의 등급을 고려해 책정되는데 대체로 농장원 1인당 1,500 ~ 3,000평 정도이다.
임대받은 토지에 대한 농장원의 경작권은 공히 1년만 보장받으며 1년이 지나면 임대 토지의 규모와 위치를 모두 재조정하면서 제도를 도입한 농장들은 해당 포전에 대해 필요한 비료, 박막 등 필수 영농자재를 어느 정도 공급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무상 공급이 아니라 생산물에서 비용을 공제하는 유상 공급이었으며 자재 공급량은 수요량에 크게 부족하므로 의미가 있는 생산을 수확하려면 임대 포전에 대해 경작자인 농장원이 사실상 자체 자금을 투입해서 자재를 매입해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포전담당책임제의 파급 효과를 파악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도입 초반에는 어느정도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평안남도 개천시 7협동농장의 경우 경작 조건은 비료, 종자 등 자재를 국가에서 투입하고 생산물에서 비료값, 종자값, 물값 등 경비를 제한 나머지의 70%를 국가에 납부하고 30%를 경작자가 보유하는 것이었다.
생산물 분배와 처리권은 국가에 납부해야할 납부량을 우선 보장한 나머지는 전량 농장원들에게 현물을 기본으로 분배하고 농장원들의 여유 알곡은 그들의 의사에 따라 합의가격으로 국가가 수매하거나 생활용품과 교환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북한 종합시장에서의 가축매매는 닭이나 오리, 토끼, 그리고 새끼돼지 등도 존재하고 있으며 도시 주변에 살고 있는 농민이나 개인들이 필요한 식량 혹은 공업품을 비롯한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가내축산반에서 사육하고 있는 가축들을 농민시장에 판매하게 된다.
닭이나 토끼가 제일 인기가 있으며 특히 토끼는 북한 전체 학생들이 꼬마과제로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가정을 물론하고 토끼가 필요하게 되면서 강아지를 판매하거나 새끼돼지를 판매하기도 하면서 새끼돼지는 봄이나 가을에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사료 문제나 도살 문제 등으로 봄과 가을로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 같으며 소식통과의 전화통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구체적인 가격에 대해 알아보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쉬우며 아쉬운 부분은 다음 기회에 해결하기로 하였다.기사
북한 내부 소식통은 데일리 NK와의 통화에서 황해남도 군부대에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품목도 다양해졌다고 언급하였으며 황해남도는 우리와 휴전선을 접한 대표적인 육군 밀집 지역이며 대부분의 지역에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서부전선의 최전방이다.
이곳은 민간인보다 군인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곳이라 부대 사정도 쉽게 알 수가 있다면서 급식된 강냉이밥의 양이 이전보다 1.5배 정도 증가하였으며 반찬도 부대원료기지에서 생산된 채소와 자재로 만들어진 제철 김치와 다양한 반찬들이 나온다고 밝혔다.
군부대들에 식자재 공급이 증가한 것은 식자재를 생산하는 후방기지의 생산량이 증가한 데 원인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소식통은 후방기지에서도 분조를 활성화해서 계획량 이상은 개인이 분배하도록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였다고 밝혔다.
군부대 별로 부식 공급을 위한 자체 부업지를 운영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며 군부대 부업지에서는 두류 농사는 물론이고 염소 방목도 하고 있는데 두부나 콩비지, 콩나물 등 두류로 만든 다양한 음식들을 일상적으로 공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후방기지에서 생산된 버섯과 각종 채소들도 공급되고 있으며 부대 내 부식물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언급하였으며 2월 8일 건군절에는 돼지고기국도 공급되면서 병사들이 만족감이 후방사업이 잘 되는 부대들에서는 월 1회 정도 고기를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기사


5.2. 외화벌이 사업소 부문 개혁 과정[편집]


평양 지질 탐사대나 평안북도 고속버스 여객 사업소 그리고 대동강 축전지 공장 같은 대부분의 독립채산제로 전환된 기업소나 사업소에서 대부분 양어장이나 가내축산반에 사용할 목장을 건설하여 생산재를 매입해 목장과 양어장을 통해서 양식용 물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건물 옥상에 물탱크를 설치해 가지고 물고기를 양식하며 열대 붕어와 잉어, 열대 메기, 룡정어 등 어종이 굉장히 다양하며 생산되는 열대 메기의 어획량만 봐도 1톤 가량이 초과된다고 밝혔다.
정상적으로 양어 시스템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생산재를 매입하면서 양어장과 가내축산반용 목장을 개발하고 온도나 습도, 사료 등 이런 것들을 개발하면서 옥상에서 양어와 사육을 하고 있다.
바로 평안북도 고속버스 여객 사업소에는 건물 옆에 옥상에 양어장 구조물을 건설하거나 가내축산반용 목장을 보유하여 돼지, 닭, 오리, 꿩, 토끼 등을 사육하면서 일부는 직원에게 공급하고 있어 양식한 열대 메기 혹은 룡정어와 철갑상어는 종합시장이나 고기상점에 판매하면서 보유한 이윤으로 기업소나 사업소의 유지비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는 기업소법과 양어법에 의거하여 양어사업소나 혹은 기업소로 별도로 등록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와 함께 북한의 더벌이 과제를 부여하여 이제 기업소가 국가 계획외 생산을 허용하면서 자금이 여유가 존재할 경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업들을 장려하고 있다.MBC 기사
데일리 NK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전원회의에서 인민경제에서 말단 공장기업소에 이르기까지 정규화된 국가경제질서와 보고 체계, 내부 규율을 세우는 사업을 재정비할 데 대한 지시를 하달한다고 밝혔다.
지방공장기업소와 소규모 기업소들 역시 국가기관에 철저히 설립하여 허가받는 기구 개편을 재정비하라고 밝히면서 이 같은 사업을 내각 총리가 책임지고 추후에 조선로동당에 보고하라는 지시도 이어졌다고 밝혔다.
책임자를 꼭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업을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존재하면서 그만큼 현재 더벌이 사업이 상당부분 가내축산반용으로 활용 중인 목장과 양어장도 사실상 양어사업소나 가내축산반을 설립하여 등록하는 절차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데일리 NK 기사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후방 기지중에서도 돋보이는 목장을 둘러보니 연건평이 2만여평이나 되는 규모로 이 건물의 1 ~ 3층은 오리들이 무려 7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엄청난 오리들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오리 외에도 돼지는 3,000여 마리가 재래식으로 사육되고 있었으며 이 축사동의 돼지 외에도 별도의 초현대식 축사에서 통합생산체계을 적용한 가내부업축산반이 또 존재하는데 이곳에서 돼지를 기르는 담당자는 혼자서 이 가내부업축산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후방기지에서는 양어장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양식되는 물고기들 중에서도 메기 양어장이 가장 인기가 증가하면서 저희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서는 메기들이 많은 메기 양어장이 큰 자랑거리라고 밝혔으며 2019년 기준으로 메기 생산량이 마침내 20톤을 달성하였다고 언급하게 되었다.노동과 세계 기사


6. 2015년 시장경제 확립 과정[편집]



6.1. 국영기업 개혁 과정[편집]



6.1.1. 기업소 계획 과정[편집]


가장 중요한 제도적 변화는 국가기업이익금과 거래수입금 납부의 기준이 되는 국가지표로서 기업소지표가 새로 도입된 것이며 이와 관련된 법제는 2014년, 2015년에 개정된 기업소법과 2015년 개정된 인민경제계획법이다.
인민경제계획법에 따르면, 종래에 구분이 없었던 계획지표를 중앙지표, 지방지표, 기업소지표로 구분하고 있으며 내부 교육문건을 보면 국가계획위원회가 직접 작성하는 중앙지표는 전력, 석탄, 지하자원, 강철, 시멘트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생산물을 대상으로하여 전체 계획지표의 30% 수준으로 한정되고 나머지 70% 정도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기업소지표와 지방지표인 것으로 나타난다.
중앙지표는 물량계획으로 시장가격보다 매우 낮은 국정가격이 적용되는 지표이며 또한 2015년 개정된 기업소법에서는 기업소지표에 대해 기업소가 수요자 기관, 기업소, 단체와 주문계약을 맺은 데 따라 자체로 계획화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계획경제 밖에서 기업 간에 시장가격으로 음성적으로 이루어졌던 영역을 기업소지표를 통해 국가계획 영역 안으로 포함시키겠다는 의미이며 기업소지표 도입은 중앙지표를 축소하는 대신 금액으로 납부하는 액상계획을 강화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6.1.2. 가격 결정권 및 시장 판매 조치 허용[편집]


확대된 가격제정권에 의해서 국영기업은 국가가 원료, 자재를 공급해주지 못하여 기업이 자체적으로 원료, 원천을 찾아 생산한 모든 제품에 대해서 독자적인 가격제정권을 갖는다고 한다.
기업소지표로 생산한 제품뿐만 아니라 국가 계획 위원회와 도 – 시 – 군 인민위원회에서 시달하는 지표라도 국가 등이 원료, 자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여 기업이 자체적으로 원료, 자재를 구입하여 생산한 제품, 그리고 수요자와 주문계약하여 생산한 제품 등 기업소지표 가격 제정 표준 세칙에서 규정한 모든 상품에 대해서 가격을 제정할 수 있게 하였다.
2014년에 기업이 가격을 제정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대학에서 첨단 기술 제품을 수요자와 계약에 따라 생산하여 내화, 외화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과주문 계약으로 생산한 제품 가운데 외화로 원가를 보상하여야 할 제품의 외화 가격 등이 포함되었다.
공장기업소가 자체로 혹은 수요자와 합의하여 가격을 정할 수 있는 지표는 ①. 교류몫, ②. 국가가 보장해주지 못하여 공장기업소가 자체로 원료원천을 찾아 생산한 상품, ③. 주문과 계약에 따르는 임가공제품, ④. 생필제품, ⑤. 인민생활조 수입 상품을 비롯하여 협동화폐소환율로 역교환하게 되여있는 지표, ⑥. 일부 기호품의 가격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제외한 국가계획위원회 계획화 지표들은 국가유일도매가격을 적용하며 국가계획으로 공급된 자재 - 화공품 - 귀금속 등 국가통제품도 합의가격으로 정할 수 없고 공장기업소가 제정한 가격은 국가가격기관에 등록하고 적용하는데 가격은 원가를 보상하고 확대재생산을 실현할 수 있게 하면서도 수요와 공급관계를 고려하여 시장보다 낮게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업은 다음과 같은 상품은 계획에 정한 것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수가 있으며 결국 현물 계획에 의해 생산한 제품 중 공급처가 확정된 계획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제품을 기업이 자체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 수단의 경우 주문 계약에 따른 판매와 함께 사회주의 물자 교류 시장을 통하여 판매하도록 하고 있으며 기업이 판매권을 가지는 소비품, 생활 필수품, 소농기구 등은 도매기관과 소매기관 등 국영 유통망뿐만 아니라 종합시장, 직매점 등과 직접 계약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은 2012년 11월의 상업성 지시에 의해 시장에 기업의 매대를 설치하고 생산한 제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어 공장기업소는 자기가 위치한 지역시장에 실정에 맞게 매대를 전개하여 평양, 함흥, 청진시에서 시안의 다른 구역시장들에도 실정에 맞게 공장기업소 매대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영소비재기업이 종합시장에 생산한 제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게 공식적으로 허용하였으며 국영상점망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도 모색하고 있어 도매상점뿐만 아니라 소매상점도 기업 등으로 소비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함으로 상품을 소매상업기업소에 직접 공급하는 비중을 높였다.


6.1.3. 자금 조달권 및 국가 예산 납부권[편집]


2011년에 개정된 국가 예산 수입법에서 국가 예산 수입 항목의 기본 골격이 2001년 이전과 거의 유사하게 변경되었으며 7.1 경제개혁조치 이후에 합쳐졌던 법인세와 부가가치세가 다시 분리 되었고, 주민들의 시장 사용료를 주요 원천으로 하는 기타 개인 소득 납부금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국가예산수입법의 개정 내용이 발표될 당시에는 이전 제도로의 회귀 정도로 받아 들여졌으며 그러나 2014년 이후 예산 관련 법제의 개정 내용이 알려지면서, 실제 내용 면에서 2001년 이전 제도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제도 변화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무역회사가 상부에 바쳐야 하는 자금이 있어 이윤의 70%를 납부하게 되어 있으며 나머지 30%는 해당 공장이 자율적으로 처분하는데 주로 공장의 재생산에 쓰라는 것이며 다만 신설공장에 대해서는 3년간 국가납부과제를 부여하지 않는다.
과도적 단계로 간주해 공장 설립 후 3년이 지난 때부터 납부하기 시작하여 관세와 국가납부금을 다 합쳐서 이윤의 17 - 18% 정도가 무역회사의 국가납부금이며 한 때는 30%를 넘은 적도 있었는데 무역회사들이 문제 제기를 해서 낮추어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국경연선지역 함경도 지역의 경우에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밀무역이라든가 밀수, 골동품 판매로 돈을 번 사람이 해당 함경도 ○○군 구역 당위원회 간부과에 사업을 하여 지방산업식료공장의 지배인 자리를 얻었다.
국가가 원천자금이나 원자재를 공장기업소에 투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돈주가 지배인이 되어서 자기 돈을 투자해서 식료공장을 운영하여 그는 기업의 원자재를 사면서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여 이를 종합시장에 시장가격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밀무역을 합법적으로 한 셈이며 내부로 직함을 얻어 들어가는 일은 대안의 사업체계에서 운영을 책임진 내부자들과의 연줄 또는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담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강선구역 ◯◯공장을 인수한 돈주 A씨는 철강 생산을 위한 설비를 갖추기 위한 초기 투자비용이 40만 달러에 달하였으나 가동 2년 만에 원금을 회수하였으며 그 이유는 노동력과 토지, 건물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전기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며 뿐만 아니라 부차적으로 공장의 일정 설비나 심지어 해당 공장의 노동력도 활용 가능하여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가동되지 않는 공장들이 적지 않아 이러한 공장기업소가 돈주의 표적이 된다.
평안남도 증산협동농장에 돈주가 운영하는 소규모의 제련소가 들어와 은을 제련하기 시작했다며 이 은제련소는 원래 도시에 있는 국영 공장을 임대해 공장시설을 가동했는데 지난 봄에 농장건물과 땅을 싼 값에 빌려주겠다는 농장간부의 제안에 따라 공장을 농장으로 옮긴 것이라고 밝혔다.
돈주가 운영하는 은제련소는 농장의 돈사 일부와 그 옆의 부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한달에 200달러 정도의 임대료를 내고 있다며 이 같은 임대료는 도시에서 국영공장 건물을 임대했을 때보다 10분의 1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어서 돈주의 입장에서는 여간 유리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은 제련소를 운영하는 돈주는 은광석을 증산 농장에서 30리 정도 떨어진 직동 광산에서 불법으로 인수하고 있다면서 은광석 차량을 작업현장까지 운송할 때도 농촌 지역은 도시보다 사법기관 단속이 느슨해 뇌물 비용까지 감소시킬 수 있어 매우 유리하다고 밝혔다.
평안남도 소식통은 몇 년 동안 국영공장 건물을 임대하여 중유를 정제하는 사업을 해온 돈주도 국영공장과 임대 계약을 서둘러 해지하고 임대료가 싼 농장 부지로 작업장을 옮겼다고 덧붙였다.
개인 돈주들은 콩기름을 생산하자해도 반드시 국영공장 건물을 임대해 수익금을 나눠 줘야만 개인사업을 할 수 있었다며 생산에 필수인 전기와 설비, 건물은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개인돈주들은 국영공장에 수익금의 30% 이상을 꼬박꼬박 바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돈주들은 도시에 집중되어있는 국영공장을 임대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농촌의 농장시설을 임대한다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면서 시장경제원리에 머리가 트인 농장간부들이 먼저 싼 임대료를 제시해 도시지역의 제조업체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농장자금확보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기사
평안남도 소식통은 이어 공장기업소의 노임은 쌀 1kg도 살 수 없을 만큼 보잘것 없다며 공장기업소에서 주는 노임은 노동자들 자체가 아예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6년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확실히 늘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3개 기업이 또 세워졌으며 세차장, 주유소, 피복 공장, 경유 생산기지 등 사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기사
평안남도 소식통은 탄광기계공장의 건물 한 동이 신발을 만들려는 돈주에게 임대되어 이곳에서 신발이 생산되고 있다고 말하며 공장 간부들은 돈주가 생산하는 제품이 종합시장에서 충분히 팔릴 수 있는지부터 검토한다.
만약 상품성이 좋은 제품을 생산한다고 판단하면 돈주에게 공장 건물을 임대해 주는 것이며 돈주는 그 공장에 전기가 제대로 보장되는지는 확인하고 공장 간부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대략 판매 이윤의 30%를 임대료로 지급하기로 합의한다고 말하였다.기사
평안남도 소식통은 8월 24일 요즘 종합시장에 순천탄광연합기업소가 생산한 시멘트가 풀리면서 각종 건설장에서 시멘트 부족 사태를 벗어나게 되었다면서 시멘트공장에서 생산되는 시멘트보다는 강도가 낮지만 미장용 시멘트로서 품질이 쓸만하여 종합시장에서 수요가 많다고 밝혔다.
순천탄광연합기업소가 자체로 운영하는 시멘트생산기지는 석탄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콘크리트 동발을 생산하기 위해 4년 전 착공하여 지난 5월 완공되었으며 결국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석탄 수출길이 막혀서 탄광의 운영 자금이 부족하여 석탄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자 콘크리트 동발 대신 시멘트를 생산해 시장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순천탄광연합기업소의 시멘트의 생산 능력은 1년에 5만톤 정도이고 시멘트생산기지가 위치한 곳은 1990년대 폐허가 되어버린 순천화학연합기업소 부지로 은산군에서 가까운 위치라고 덧붙였다.
시멘트생산기지가 순천화학연합기업소 부지에 건설된 이유는 수십년간 버려진 순천화학연합기업소의 부지를 활용하면서 시멘트 생산의 주요 원료인 석회석 매장지가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며 공장기업소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을 받는 순천화력발전소도 근거리에 있다고 밝혔다.
다른 평안남도 소식통도 중복으로 증언하여 순천탄광연합기업소는 기업 규모도 크지만 수뇌부가 자리 잡은 평양의 공장들과 평양 시민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평양화력발전소에 석탄 연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탄광이라면서 이 때문에 지도부 입장에서도 순천탄광연합기업소의 정상적인 생산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석탄의 수출이 막혀 탄광에 우선 공급되어야 할 채탄 장비와 설비들을 도입할 자금이 부족해 석탄의 생산이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평양의 전기 사정도 긴장해왔다고 밝히며 이에 북한 내각은 자력갱생 정신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평양화력발전소에 석탄 공급을 정상화하라고 탄광 간부를 설득하여 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탄광의 간부들은 순천에 매장된 석회석과 무연탄 등 지역자원으로 시멘트를 생산해 종합시장에 판매하고 그 자금으로 탄광 자재와 설비, 종업원들의 노임을 해결하기로 결심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멘트생산기지 건설을 시작하였고 건설 자금은 순천탄광연합기업소에 소속된 탄광들과 탄광기계공장 등에 할당하였다고 설명했다.
또 시멘트는 국가의 건설과 개인 부동산 건설 등 주민들의 살림집 보수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건자재로써 언제든 종합시장에서 현금화 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현재 탄광 소속 시멘트생산기지에서 판매하는 시멘트 1톤의 가격은 50달러라고 전하였다.기사
기업소법 수정보충안에는 개인사업기지의 국가 납부금을 탕감해주며 외화벌이 및 무역 활동을 장려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국가 납부 과제(현금 또는 현물)를 10% 수준으로 축소시키고 더 많은 몫의 이윤을 개인 사업자가 유보할 수 있게 하였다.
간부들에게 이익의 10%만 납부해도 좋다는 점을 내걸고 기업소 설립을 독려하라고 지시하였으며 국가기업이익금을 30%에서 10% 규모로 전면 축소시키고 거래수입금을 40% 규모로 결정함에 따라 현금 보유 한도액을 50% 규모로 대폭 늘렸다.
다만 이를 명확히 법령에 게재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 소식통은 개인에게 차려지는 몫을 높여 놨으니 그만큼 개인 사업이나 외화벌이를 더 많이 하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기사


6.1.4. 생산 조직권 및 고정 자산 매각권[편집]


생산 조직권은 노동자를 줄이거나 늘리며, 노동자를 새로 받아들이거나 내보내는 권한을 의미하는데, 시장경제에서의 통상적인 고용과 해고의 권한과는 내용이 다르며 국영기업에서 노동자를 내보내는 것은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 노동자를 받을 의사가 있는 다른 국영기업에 노동자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기업에 생산조직권을 부여하였다는 것은 개별적인 노력이 불필요하거나 남을 때에 기업 상호간에 합의하여 노력을 내보내거나 받아들이는 조절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전에도 기업 사이에 노동자를 주고받는 것은 가능하였지만 다만 노동행정기관의 승인을 받는 등 절차가 매우 복잡하였는데 이제 노동자를 주고받는 기업 간에 합의만 이루어지면 노동행정기관이 생산 파견장을 발급해 주도록 제도를 간소화하였다.
한기범 국정원 차장이 반론을 제기한 내용에 따르자면 근로자들의 담당책임제는 기계설비와 토지시설물 등 국가적 또는 협동적 소유의 재산을 개별 근로자에게 고정적으로 담당시켜 책임지고 관리하게 하는 제도이다.
공업부문에서는 기대 및 작업장 담당 책임제, 농업부문에서는 포전담당책임제, 국토 부문 혹은 도시경영부문에서 구획담당제를 적용하며 담당책임제 조직 운영과 관련한 원칙을 규정하고 기업소에서 자체 실정에 맞게 구체적으로 집행하게 한다.


6.2. 금융 부문 개혁 과정[편집]



6.2.1. 현금 계좌 및 외화 계좌 개혁 과정[편집]


현금계좌는 특히 기업소들이 입금한 현금범위에서 큰 제한없이 인출할 수 있고 다른 기업소에 물품 대금을 송금할 수도 있으며 특히 기업소가 시장에서 물자를 구입한 후 현금으로 대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을 때 기존에는 현금인출한도가 극히 제약되어 있었으나 2014년경부터는 대금 지급사유가 타당할 경우 신청금액 전부를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완화되었다.
현금계좌의 개설절차도 2013년에는 예산소속에 따라 담당 상위 은행을 거쳐 중앙은행의 승인을 받아야 했던 것이 2014년부터는 기본 계좌가 개설된 해당 은행 지점의 자체 결정만으로 개설이 가능하도록 완화하는 등 단계적으로 제도 내용의 수정 및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어 현금계좌를 개설한 기업소는 경영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현금을 화폐유통법시행세칙에서 정한 수입금 항목에 따라 현금계좌에 입금한다.
외화계좌의 외화를 사용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협동환율을 사용하여 내화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으며 다만 외화계좌의 경우 외화 현금으로 출금하는 것이 아니라 송금에 의한 결제를 원칙으로 하고 현금으로 출금하는 경우 그 용도를 특정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시장 환율에 근접한 협동 환율을 적용하여 내화현금과 교환은 허용하고 있다.


6.2.2. 상업은행 부문 개혁 과정[편집]


북한의 지방에는 국영인 조선중앙은행 지점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보통 중앙은행 도 은행이나 중앙은행 도지점으로 불러 로동신문이 전한 전국재정은행 일꾼대회 토론자 중에는 중앙은행 함경남도 정평 지점 과장 중앙은행 평양시 대성지점 지배인 등 중앙은행 지점 간부들이 포함돼 있었다.
함경북도 은행은 중앙은행 지점이 아닌 새로운 지방상업은행 조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함경북도 은행 총재라는 직함은 상당한 독립성을 인정받는 자리임을 시사해 주목되며 최근 우리 정부도 북한에 새로운 지방상업은행이 설립된 사실을 파악하고 배경을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기사
평안북도 소식통은 데일리 NK와의 통화에서 상업은행에 돈을 넣으면 10% 정도 이자를 주며 1년마다 이자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게 소문이 좋게 나고 있다고 전했으며 북한의 예금금리는 연 5%대로 알려져 있어 상업은행 금리는 기존 금리보다 두 배 가량 높은 셈이다.
지금 같이 시장이나 어디나 장사가 안 되는 분위기에서 10% 이자를 보장해 준다는 이야기가 돌자 몇몇 돈주는 수만 달러 정도를 은행에 돈을 예금하기도 한다면서 지난해 돈을 예금한 사람이 올해 은행으로부터 이자를 확실히 보장받았다는 이야기에 큰돈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북한 주민들은 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주로 사금융을 주로 이용해왔으며 2009년 단행된 화폐개혁과 급작스런 자산 몰수를 지켜봐 왔기 때문이라 그동안 힘겹게 모아두었던 자금이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고 볼 수 있어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소에 대출해주는 경우도 있다며 상업은행 측이 자금을 끌어 모아서 기업소에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기사


6.2.3. 자금대차계약 부문 개혁 과정[편집]


기업소가 주민의 유휴화폐자금을 동원하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어​ 돈주와 기업소는 자금대차계약을 맺고 은행은 이 과정이 법과 제도를 준수하여 이루어졌는지 관리 및 감독하며 계약이 성사되고 나면 자금이 주민에게서 기업소로 넘어가서 우선 주민은 기업소에 대부해줄 자금을 은행에 예치한다.
은행은 은행 소유가 된 자금을 기업소에게 넘겨주면 북한으로서 사유재산이 국유기업으로 이전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이 상당히 완화되며 개별 기업소는 모두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소가 주민에게 자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경우에 기업소 소유 자금을 압류 및 추심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상업은행은 자금의 조달과 중개를 간접적으로 수행하지만 북한의 상업은행이 간접적 자금 중개를 수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북한은 은행의 유휴화폐자금 동원 중개 조치를 통해 회색지대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져 온 돈주와 기업소 간 자금대차계약을 제도 내로 편입하고, 이 과정에서 상업은행의 역할을 회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6.3. 무역 부문의 개혁 과정[편집]



6.3.1. 무역 허가의 취득 과정[편집]


북한에서 개별 경제 단위가 무역 허가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며 수출입 지표가 분명하게 있어야 하며 북한에 투자를 하겠다는 중국 등 해외 파트너의 동의서가 필요하며 여기에는 확약서 또는 계약서가 구비되어 있어야 하고 무역단위가 어느 규모로 어떤 지표를 갖고 어떻게 무역을 해서 얼마만한 수익을 거두겠다는 경제타산서가 구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이것들이 다 준비가 된 조건하에서 해당 단위들과 합의를 보아야 하고 대외경제성, 외무성, 국가안전보위부, 국가계획위원회 등의 단위들과 합의를 보고 난 다음에 김정은에게 보고를 올리며 그리고 김정은이 비준을 하면 그 날짜가 무역 단위 창립일이 된다.
북한의 개인 사업가들은 3급 이상의 기업소에서 발급하는 와크(무역허가증)를 빌려 중국과의 무역 사업을 할 수 있었으며 당국이 앞으로는 5급 기업소까지 당국이 와크를 배당하기로 함으로써 개인은 조금 더 쉽게 와크를 허가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5급 기업소까지 와크 허가 권한을 갖게 되면서 개인들이 와크를 발급받기 위해 납부하던 대여료나 뇌물 비용도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다만 북한 당국은 와크 발급 조건은 까다롭게 심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며 와크 발급 전 중국 측 대방(무역상)의 존재가 반드시 확인돼야 하고 한국산 물품이 반입되거나 물건 수급 과정에 한국인 사업가가 개입됐는지 등을 철저하게 조사한다는 것이다.기사


6.3.2. 무역회사 자금 조달 및 수출품 생산기지의 확보[편집]


일반경제의 무역회사나 특수경제의 무역회사이든 해당 기관 - 기업소에 원래부터 근무했던 사람이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경우보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경영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인민무력부 산하 무역회사의 경우 군부가 직접하는 것보다 민간인을 끌어들여 회사 경영을 맡기는 경우가 더 많아 민간인은 자신의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서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국가로 운영자금을 제공받기도 하고 운영자금이 모자라서 민간 사채업자로부터 대부를 받기도 한다.
돈주 등 개인들은 와크를 보유한 국영 무역회사의 무역지도원(현재는 무역부원) 또는 국영 무역회사의 특정 지역 기지장 - 지사장 또는 외화벌이 사업소장의 신분을 취득하고 사실상 개인 수출업을 영위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광산, 탄광, 수산기지처럼 자체적으로 수출원천을 창출하는 개인 사업체를 가지고 있어 대부분은 자기 자금으로 사업체를 설립하고 노동자들도 고용하며 그리고 때로는 자체 자금으로 설비투자를 하고 때로는 중국 측으로부터 선투자를 받기도 한다.
평안남도의 소식통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수출에 의한 외화벌이가 어려워진 무역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내수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면서 돈주를 끌어들여 많은 자본을 투자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대형 상점들과 공장을 세워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순천시만 놓고 봐도 군 소속 무역회사가 돈주들을 영입해 그들을 각각 기지장으로 임명하고 순천시 강포동 농경지에 부재공장과 샘물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면서 이 공장들이 완공되면 상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물론 생산 공장 노동자들도 자본주의 방식으로 공개 채용하고 노임도 시장경제 방식에 입각해 지급한다는 소식이 번지고 있어 지역 주민들은 시장경제가 인민을 먹여 살릴 것이라 기대한다.기사
함경북도 소식통은 최근 평양시를 비롯한 각 지역에 돈주들이 운영하는 외화벌이 기업소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외화벌이 신설 기업은 시내 공장기업소 책임간부들과 결탁해 건물 일부를 임대받아 같은 건물 안에서 동거살이식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돈주들은 간부들에게 일정한 돈을 바치고 국가 소유의 기업소 건물을 임시로 빌려 자신만의 기업을 운영하면서 과거에는 신규 부지를 승인받아 건물을 지어 기업을 운영했지만 보다 저렴하고 시간이 절약할 수 있는 기존 국가 건물을 임대받아 기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외화벌이 기업을 설립한 돈주들은 서로 건물 짓기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훗날 국가소유로 빼앗겨 빈털터리로 나앉는 경우가 많으면서 하지만 공장 기존 건물이나 부지를 임시 이용함으로써 당국의 이 같은 강도 행위에 방패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기사
북한 김정은의 먹는 문제 품질 향상 정책에 따라 평양시 인민위원회와 구역 인민위원회는 돈주가 제출하는 공장건설계획서를 허가하고 북한에서 김일성 - 김정일 생일 등 국가 명절 시기 및 육아원 - 애육원에 공급 담당을 조건으로 내걸고 돈주들은 시장에서 얻은 이윤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판단에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식품 사업에 뛰어 들었다.
만경대구역에만 경흥은하수식료공장,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선흥식료공장 등이 가까운 거리에서 사탕과 과자, 햄, 순대, 맥주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락랑구역 대형강냉이가공공장에서 옥수수로 국수와 과자를, 보통강구역 운하대성식료공장, 보통강묘향상점 식품 공장 등지에서는 100여 가지의 식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돈주들은 여기서 종합시장의 힘을 과신하여 국가계획부분을 간과한 댓가로 북한 당국은 평양시민과 체육인, 애육원 공급에만 관심을 두면서 종합시장 판매량을 한정하는 등 판매 전략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기사
평안남도 소식통은 전망 좋기로 소문난 이곳 유흥시설의 실질적인 운영자는 능라88무역회사 순천시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 남성이라면서 이미 이 운영자는 체육 - 오락 - 유흥시설이 완공되기 전부터 당자금을 바치기 위해 고급식당과 중국합영수출피복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능라88무역회사 순천시 지사는 중국에서 원단을 받아 노동자들을 고용해 피복 제작해 수출하는 한편 석탄 수출도 하고 있어 특히 3층짜리 건물 1층은 서양 피자점을 비롯한 고급 식당이 운영되고 있고 건물 주변에 넓은 공지가 있어 주차장으로도 이용된다고 전했다.기사


6.3.3. 무역 허가권의 임대 과정[편집]


무역단위는 정치 위계제 내 지위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와크가 정해지고 정치 위계제 내 상부에 있는 단위는 수익성이 높은 품목을 다량으로 수출입할 수 있는 허가권을 받을 수 있지만, 위계제 내에서 하부에 있을수록 와크는 적어진다.
정치적으로 우위에 있는 단위들은 와크를 많이 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수출입원천확보능력도 갖추고 있으며 때문에 이 단위들은 자신의 수출입원천조달능력에 따라 제의서를 통해 와크를 추가로 확보하여 자체적으로 생산 및 교역을 한다.
낮은 단계에 있는 단위는 수출입 원천 조달과 허가권 확보가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구조에 있고 허가권의 임대는 상당히 다양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어 중국 파트너와 결제 방식이 현금이 아니고 물품일 경우 그 물품을 수입해 와야 하는데 수입 허가권이 없을 경우 허가권을 임대받는다.
무역회사의 사장 및 정치적 위계제 내 상부에 있는 간부들은 와크를 통해 국가에 바쳐야 하는 외화는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 허가권이라는 경제활동권리를 가지고 개인적인 장사를 해서 이익을 최대화하였고 인센티브가 더 많이 주어지는 쪽으로 와크를 활용하게 되는데, 와크 임대가 그 방식이 되는 것이고 허가권이 일종의 사유물처럼 취급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데일리 NK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내달 15일부터 평안북도 신의주, 룡천, 의주와 남포특별시에서 이뤄지는 밀무역을 허용하기도 결정하여 군이나 내각 등 국가 기관에 속한 무역회사뿐만 아니라 이 회사에 등록된 개인 밀수도 허가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은 밀무역 승인을 받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하며 와크(무역허가증)를 받기 위해서 외화를 상납해야 하고 수입 물품에 국가가 지정하는 품목을 반드시 포함시켜 절반 이상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는 것이라 기존에 와크를 가지고 있는 회사나 개인도 이번에 허용된 밀무역에 참여하기 위해선 외화를 내고 다시 무역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와크에 명시돼 있는 수입지표 수입할 물건에 대한 계획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며 북한은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밀무역의 수입지표에 쌀, 밀가루, 콩기름(식용유), 사탕가루(설탕), 맛내기(조미료) 등 식료품을 반드시 포함시킬 것을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전자제품이나 옷을 주로 수입했던 무역업자라 하더라도 국가가 지정한 식료품을 수입지표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무역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이고 국가 지정 수입품에 맛내기 등이 포함된 것은 지난달 17일 채택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내각의 공동결정서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밀수를 허용하면서 식료품을 지정 수입품으로 강제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며 더욱이 북한은 식료품을 지정량만큼 반입한 후에 50%는 반드시 국가에 납부해야 하고 70%를 납부할 경우에는 애국헌납증서를 발급해 준다는 유인책까지 내놓았다.기사
​평안북도 동림군의 주민 소식통은 국영무역회사 주도의 국경 밀무역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면서 요즘 동림군 종합시장에 나가보면 수입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고 있고 코로나 사태로 품귀현상을 빚던 중국산 조미료가 눈에 띠고 있으며 가격도 하락하였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다.
소식통은 김일성 생일 이전부터 종합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입 식자재와 조미료는 밀무역이 일부 재개되면서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라면서 태양절 이후에도 밀무역을 통해 중국산 식자재와 조미료가 계속 종합시장에 들어오면서 수입 식자재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기사


7.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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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의 정치 Ⅱ: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 실험기의 공장 사회와 노동자 - 김화순 | 현대북한연구 | 20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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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외화 통용 실태 분석 - 이석기 | 산업연구원 |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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