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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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성허준 일대기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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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의보감



1. 개요
2. 줄거리
2.1. 상권
2.1.1. 산음으로
2.1.2. 유의태 밑에서 7년
2.1.3. 유의태의 과거
2.1.4. 창녕 성대감
3. 등장인물
3.1. 허준
3.2. 유의태
3.3. 허준의 가족들
3.4. 유도지
3.5. 김민세(삼적대사)
3.6. 안광익
3.7. 궁녀 정씨/부인 정씨 자매
3.8. 임오근
3.9. 양예수
3.10. 구일서
3.11. 내의원 과거시험 치러가던 의원들
3.12. 버드네 마을 사람들
3.13. 이명원
3.14. 미사
3.15. 정작
3.18. 공빈 김씨 소생 왕자들



1. 개요[편집]


이은성이 집필한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이은성이 묘사한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1965년 노정우 박사가 <인물한국사>에 발표한 논문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읽고 지어낸 이름이다. 2000년 2월 1일 노정우는 유이태의 후손 유철호에게 진주에 거주하는 한의학자 허민으로부터 전화 통화하면서 들은 산청의 전설적인 명의 유이태를 진주 근처의 대성 진주 유(柳), 의로울 의(義), 클태(泰), 유의태(柳義泰)로 이름을 지어내어 허준의 스승으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노정우는 자신의 논문 오류를 알고 '거창 유씨에 미안하다.'라고 유철호에게 밝혔다. 따라서, 이것을 알고 소설 동의보감을 읽어야 한다. 허준은 산청에 온 적도 없고 산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으며, 허준의 조모 친정은 산청군 신안면이 아니고, 경기도 시흥시 서면(현재 광명시청 근처이다)에 있었다.

이은성은 1975~76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집념에서 허준의 생애와 동의보감의 집필 과정을 그렸다. 이어 이를 영화화한 1977년 영화 집념의 각본도 집필했다. 이를 바탕으로 1984년부터 부산일보에서 발행하는 '일요건강'에 '소설 동의보감'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은성은 허준이 의원이 되고 동의보감을 편찬한 뒤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애를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 4권으로 완간하고자 하였으나, 1988년 추권까지만 쓴 상태에서 서울 올림픽 특집극을 집필하다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1]으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사실 추권의 분량이 춘과 하에 비해서 짧은 걸 알 수 있는데, 추권도 완전히 완성이라곤 할 수 없다.[2] 남은 유고는 1990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매됐다.

한국어 문장이 펼칠 수 있는 표현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한국 대하소설의 명작 중 하나로, 특히 여러 상황을 절묘하게 한 문장 안에 모두 표현함으로써 종합적인 묘사를 하는 작가의 솜씨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허준이 창녕 성대감 댁에 불려가 정경부인의 중풍을 고치는 그 순간을 묘사한 부분을 감상해보자.

성대감이 열어젖힌 그 방안에는 반신불수에서 가까스로 자리에 일어나 부축받은 채 매듭이나 맺다 풀었다 하던 노마님께서 허준이 야차(夜叉) 같은 모습으로 "일어서시오."를 연호하고 있는 그 앞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있었다. 부축하려는 딸을 허준이 고함쳐 내치자 이윽고 노마님은 허준의 유도를 따라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대청 마루로 나서고 있었다.

"손 내리지 마시오. 무릎을 드시오. 더 더 무릎을 드시오. 고개를 드시오."

허준의 고함과 자기 눈을 의심하는 그 경악에 찬 가족들의 눈길 속에서 반신불수였던 마님이 허준을 따라 육간대청을 한바퀴 돌며 마구 눈물을 쏟고 있었다. 감격한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외쳐댔고 성대감이 "허의원, 허의원!" 하고 체모도 잊은 채 허준을 쓸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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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성, 소설 동의보감 상권, 창작과비평사 (1990), pp. 298-299.

읽다보면 극중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에 손에 땀을 쥔다는 것이 어떤지를 알게 해준다. 또한 당시 시점에서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조선시대의 문화, 궁중 예법 등을 상세히 묘사하였으며, 이는 후대의 다른 작품에서 꽤나 많이 인용되었다.[3]

발간 당시에는 한의학 붐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후에도 스테디셀러를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책이다. 특히 현재까지 나온 허준에 대한 역사적 인식창작물은 대체로 이 소설 동의보감으로 형성된 이미지가 매우 크다.

허준이 충청도 진천의 버드내라는 마을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과거 시험을 놓치게 되는 부분은 7차 교육과정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던 바 있다.[4]

2. 줄거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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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상권[편집]



2.1.1. 산음으로[편집]


용천 군수 허륜의 얼자 허준은 군수의 자식이라는 위광에 힘입어 사대부의 복식을 하고 용천에서 거들먹거리고 있으나 신분의 한계 때문에 입신양명은 언감생심이고 동헌의 이방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좌절하여 용천의 왈패들과 어울리며 술에 취하고 주색잡기에 여념없는 퇴폐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적들의 공격으로 귀양을 간 전 종친부 부령 겸 시약청 조제 이정찬의 딸 이다희와 우연찮게 만나게 된다. 이정찬이 시약청의 조제로 입직하던 날 명종의 승하로 정적들의 모함으로 귀양을 가게 된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까지 따라갔던 다희는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자 적소를 이탈하여 과거 아버지를 고쳐준 적이 있는 의원 유의태를 찾아 용천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의태는 원래 영남 산음 사람으로 중국산 약재를 구하기 위해 잠시 의주에 들렀을 뿐, 진작에 의주를 떠난지 오래라 다희는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적소로 돌아가다가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용천에 발이 묶이게 된 것이다.

한편 아버지로부터 양민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주겠다는 말을 듣게 된 허준은, 우연찮게 알게 만난 미녀 다희에게 관심을 보이고 수하인 양태를 데리고 다희가 숨어있는 도공촌에 들르게 된다. 양태는 천한 신분의 분풀이를 하기 위해 다희 부녀를 취조하고 다희를 겁탈하라고 종용하지만 다희에게 진심으로 반했던 허준은 거부하고 발길을 돌리려 한다. 이때 다희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쓰러지면서 다희는 허준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양태가 급히 의원을 데려와 치료하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허준은 장례를 도와주고, 허륜으로부터 다희의 옛 정혼자가 다희 부녀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다희와 함께 다희의 옛 집을 보기위해 한양으로 가기로 한다. 한양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로부터 산음 현감에게 보내는 서찰과 정착할 집을 살 거액의 돈을 받고 배를 타고 한양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길잡이로 따라나선 장번사령이 돈을 모두 가지고 달아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장번사령을 잡기 위해 길을 나선 허준과 다희 앞에 다희의 옛 정혼자인 김상기가 나타난다.

이때는 다희와 허준이 혼인하기 전 이었는데 반색하며 나타난 김상기는 다희에게 아버지의 신원이 회복된다고 알려준다. 이 말을 들은 허준은 다희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여겨 속으로 절망하는데 잠시 기뻐한 다희는 김상기에게 알려줘서 고마 당신들이 파혼을 고한 후 아버지는 죽어갔고 자신도 죽었다며 자신에게는 이제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한 정인이 있다고한 알려준 후 허준과 함께 산음으로 떠난다. 허준은 다희가 신원이 회복됨에도 천민 신분인 자신을 선택한 것을 듣고는 다희와 혼인한 뒤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겠노라 속으로 다짐한다.

산음으로 내려간 허준은 기대를 품고 산음 관아를 찾아가지만 허륜의 친구라는 정 현감은 이미 노모를 모시기 위해 몇달 전에 사직했다는 말을 듣고 좌절한다. 하지만 험상궂게 생겼으되 마음씨가 좋은 산음 공방 구일서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 방을 얻어 산음에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배탈로 쓰러진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허준은 유의태의 의원을 방문한다. 거기서 귀신같이 환자가 앞으로 살지 죽을지, 고칠 수 있다면 병이 어떠며 치료법이 어떤지를 살펴내는 유의태를 보고 허준은 저도 모르게 배멀미로 배가 꼬인 것 뿐이니 뜨거운 물로 발이나 씻으면 그만이라는 유의태에게 배를 탄 적이 없다고 하지만 유의태는 그런 허준을 보고 냉소를 지을 뿐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후 구일서에게 유의태 밑에서 의술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유의태의 의원에 찾아간 허준에게 들어온지 오래된 자칭제자 장쇠, 영달, 꺽새 등은 감히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먹물 티가 나는 허준을 무차별 구타한다. 이에 허준은 용천에서 배운 택견으로 이들을 제압하지만 뒤에서 병부잡이 임오근이 장작개비로 머리를 후려쳐 기절한다. 하지만 유도지가 허준의 무술을 보고는 호기심을 느껴 의원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고 허준은 의술에 입문하게 된다.


2.1.2. 유의태 밑에서 7년[편집]


허준은 약초꾼으로 첫 산행에 나서지만 도라지 몇뿌리 외에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그를 망신시키려는 꺽새의 음모로 가짜 약초만 가득 가지고 하산하게 되어 유도지 앞에서 망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유의태는 변명하려는 고참 제자들에게 네놈들 수법은 이미 알고 있다고 묵살한 후 허준이 캐온 도라지의 상태를 칭찬하면서 그를 약재 창고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분개한 제자들이 항의하자 유의태는 의원은 33가지 물을 알아야 하는데 너희들이 아는 물은 몇가지나 되느냐고 간만에 제자들에게 물의 가짓수를 가르쳐주면서 의술 강의를 하게 되고 허준은 그 모습에 감동받아 의술에 대한 심지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아들 도지에게 8의론을 가르쳐주면서 유도지를 큰 의원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유의태의 따스함 모습을 엿보고 "저마다 의원이노라 행세할지라도 이 세상이 진실로 기다리고 바라는 의원은 오로지 한 부류 심의 뿐"이라는 그의 철학에 감동을 받게 된다.

약재창고를 꿰어 찬 허준을 왕따시키는 제자들의 성난 눈깔 속에서 허준은 계속 의술에 정진하고, 유의태 친구라는 괴승 삼적대사 김민세를 만나게 된다. 유도지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거 시험을 치러 갔다가 낙방 후 술 취한 폐인으로 전락한다. 허준은 이 소동 와중에 유도지의 방에서 걸레질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병부를 베끼다가 유의태에게 들킨다. 유의태는 허준이 자신의 방을 몰래 드나드는 것이 아니냐고 매섭게 추궁하지만 허준이 유도지의 방을 청소하다가 줏은 것이라고 변명하자 의심을 거둔다.

허준은 자신의 뛰어난 필체 덕분에 부산포나 임오근을 몰아내고 자신이 병사 마루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유의태는 허준의 글솜씨를 오만방자한 붓재주라고 비웃으면서 서툰 언문이라도 약이름 또박또박 쓰면 그게 약방문이라고 야멸차게 대꾸한 후 "증과 험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걸 모르고 입으로 외고 머리로 기억만하여 의원양 들어? 가증한 것들."이라고 면박 주고 나가버린다. 하지만 유도지가 허준의 글솜씨를 눈여겨보게 되면서 이후 허준과 유도지가 친구가 되는 부수적인 효과를 낳는다.[5][6]

이 무렵 구일서가 세도가 댁 무덤을 파헤친 백정 변돌석이라는게 밝혀지면서[7] 나로도로 달아나게 되고, 허준은 그의 도주를 도우면서 인체 해부를 갈망했던 부술의 달인인 안광익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구일서가 떠난 후 6년 동안 허준은 허겸, 허숙영 남매를 슬하에 두고 유의태 밑에서 지낸다.

허준네 어머니는 떡장수를, 아내는 삯바늘질을 하면서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병사에도 변화가 있어 장쇠[8], 부산포[9]가 떠나고 상화와 병문, 병덕 형제가 새로 들어온다. 임오근과 도지의 서로 간에 알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역시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허준은 둘 사이에 끼어 난감한 처지인데 가장 역할을 못해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던 중 떠났던 부산포가 허준에게 아들 낳게 해주는 사업[10]을 같이 하자고 찾아오면서 허준은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부산포의 말에 크게 고민하지만, 그 날 밤 겨드랑이에서 악취가 나는 액취를 부끄러워한 처녀가 목을 맨 것을 부모가 발견해서 들춰업고 찾아오면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허준은 처녀를 살려냄은 물론이고 액취를 고치는 단방문도 가르쳐주었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허준의 집을 드나들게 된다.

이에 유의태의 부인 오씨가 허준이 자신의 집을 배반했다면서 번 돈을 모두 내놓고 쫓아내라고 난동을 부리지만 유의태는 허준의 처방전을 보더니 그간 노심초사한 흔적이 보인다며 오히려 칭찬해준다.

오씨는 그 뒤에도 돈을 내놓으라고 발광했지만 다른 제자들이 허준의 집을 방문하고 환자들에게도 물어본 바 허준이 일체의 사례를 받지 않았다는 답변을 해서 허준이 무고함이 밝혀진다. 무안함에 얼굴이 붉어진 오씨가 스승의 허락도 구하지않고 의술을 했다고 지적하자 유의태는 냉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도지도 오씨가 창피했던지 외면한채로 병사로 들어가버리자 아무말도 못하고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데 허준은 유의태의 반응을 보고 자기 의술이 인정받았다는 것을 기뻐한다.

이날 유의태의 집에 유의태의 친구 안광익과 그의 연인이자 삼적대사 김민세의 처제 궁녀 정씨가 찾아오면서 허준은 문제의 안광익과 드디어 대면하게 되며, 안광익이 양예수의 처방을 임의로 바꾸었다가 고문을 당해 절름발이가 되었으며, 신성군의 등창을 멋대로 째서 치료했다가[11] 대역부도의 죄를 쓰고 투옥되었으나 신성군의 등창이 완치되면서 풀려났으되, 안광익을 믿고 신성군을 내어준 궁녀 정씨는 미친 자의 칼에 임의로 왕자를 내어준 죄를 추궁받아 음독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안광익이 살려내어 그녀를 업고 궁궐담을 넘어 내의원을 박차고 나왔다는 과거사를 알게된다. 안광익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유의태는 유도지가 제법 재주가 있지만 의원으로의 그릇이 부족하다면서 한탄하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안광익은 게딱지같은 내의원 별것도 없는데 괜히 먹물 먹고 한양말 쓰면서 잘난척하는 유도지를 타일러서 백성이나 돌보게 하라면서 유도지가 유의태와 양예수가 원수지간인 걸 아느냐고 묻는다. 그 과정에서 안광익의 입으로부터 유의태가 과거 어의 양예수와 구침지희의 대결을 펼쳤다는 것을 듣게 된다.[12]

2.1.3. 유의태의 과거[편집]


20년 전, 명종 시절, 31세의 젊은 의원 유의태는 취재를 치르러 한양까지 상경하였으나, 너무나도 자신이 잘 아는 시험문제에 완벽한 답을 써냈음에도 낙방하고 벼슬의 벼자도 모르고 살아온 아버지가 자식이 관복 입고 임금님 모시게 되었다면서 "네가 되겠느냐, 네가 되겠느냐"라고 무려 수십리길을 배웅나왔던 것을 떠올리며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시험지가 분실된 것이 틀림없다고 시관인 김민세에게 따진다. 그러자 내의원에선 실수따윈 없으며, 시험지가 접수되었는지 확인해달라는 유의태의 부탁도 거절하였다. 이에 분노한 유의태가 어의 양예수가 취재를 주무른다는 더러운 소문이 사실이냐고 따져 물었고,[13] 양예수가 직접 나타나 유의태와 마주한다.

양예수는 어디 감히 촌구석 의원이 내의원 문전에서 행패냐고 꾸짖고, 어중이떠중이 불평불만을 다 들어줄만큼 내의원이 한가하지 않다고 유의태의 이의제기를 일축한다.

양예수: 네 정도 재주는 삼태기로 건질 만큼 많더니라.

유의태: 내가 묻고 있는 건 나으리의 재주도 그 삼태기로 건질 만큼 많은 재주에 속하는지 알고 싶소.


이에 유의태는 양예수에게 구침지희로 자웅을 겨루자고 제안한다.[14] 유의태는 만약 자신이 지면 눈알 하나를 파주겠다고 하였고, 양예수가 지면 유의태의 버선코에 이마를 조아리고 이름을 세번 외친 후 술 한상 차려내기로 하였다. 대결을 위해 어느 기방까지 간 양예수는 술안주도 안되는 네놈 눈깔 어디쓰느냐 라고 짐짓 큰소리를 치면서 대결 시작하지만 일곱번째 호침을 닭에게 찔러넣는 순간부터 양예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하면서 유의태에게 스승이 누구냐고 캐묻기 시작한다. 양예수가 찌르지 못하자 유의태가 설마 닭이 불쌍해서 못찌르겠다는 헛소리 할거냐면서 찌르라고 마구 재촉한다.[15] 여덟번째 장침에 이르로 양예수는 아예 찌를 곳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유의태는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가르쳐주면서 양예수를 조롱한다.

아홉개의 침이 다 들어가자 유의태의 닭은 건강하게 구구거리면서 마당을 돌아다녔지만 양예수의 닭은 몇번 푸득거리더니 곧 죽고 말았다. 이에 내의원 의원들이 유의태에게 이놈은 의원이 아니라 닭백정이라고 적반하반 막말을 하면서 달아나려 했지만, 유의태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양예수를 막아선다. 양예수는 짐짓 태연한 척 백번도 해줄 수 있다고 유의태는 조선 제일의 명의라고 한번 외치고 가려 하지만, 유의태가 서슬 퍼러게 두번 더 외쳐서 세번을 채우라고 요구하자 한번 더 외치고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런 양예수의 뒤에 대고 유의태가 약속대로 술상도 내오라고 비웃고, 내의원 관원들이 약속대로 술 한상을 차려주라고 돈을 내긴 하는데 동시에 유의태를 개잡듯 두들겨팬다. 하지만 유의태는 맞으면서도 승리감에 가가대소하였고 양예수는 그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술까지 끊고 만다. 이후 유의태는 고향에 내려가 한양으론 발길도 하지 않고 심의의 길을 걷게 된다. 대신에 친구들의 폭행을 말렸던 김민세가 밤에 찾아와 친구가 된다.[16] 문제의 닭은 안광익이 몇년있다 찾아갔을때도 건강하게 잘 지냈다고 한다.

유의태와 양예수의 침술대결 구침지희는 산청군 생초면 월곡리 유이태 후손인 거창유씨 가문에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2.1.4. 창녕 성대감[편집]


구침지희 얘기에 한창 빠져 있던 허준에게 갑자기 아들 허겸이 달려와 아내 다희가 동네 우진사에게 도둑으로 몰려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한다. 격노한 허준은 우진사 댁으로 달려가서 영문을 데라고 하지만 우진사의 하인들은 우진사의 권세를 등에 업고 허준을 개처럼 다루면서 마당으로 끌고 간다. 자초지종이 무엇인고 하니, 우진사 마누라의 저고리 비단 한감이 없어졌는데, 평소에 한양 시절에 아껴둔 옷감을 팔던 다희가 삯바느질하러 와서 훔쳤단 누명을 쓴 것이었다. 이에 허준이 자신이 병자들을 돌봐주고 받은 것이라서 둘러대고 자신이 허륜의 얼자임을 숨기고 산청까지 온 사실은 숨겼으나, 양반에게 눈빛이 무엄하다고 역시 매질을 당한다. 마침내 허준 부부와 같이 매질당하던 진짜 범인인 늙은 여종이 사실 자신이 흠쳤다고 자백해서 고문은 끝났으나 피투성이가 되어 쫓겨나는 허준 부부에게 우진사 내외는 보상은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분명히 허준이 누명을 쓴 것임에도 산청 사람들은 허준을 도둑놈으로 음해하면서 허준 내외를 노골적으로 따돌렸고, 그 소문이 병사로 퍼지자 꺽새, 영달도 좋다고 찧고 까불면서 주접을 떤다.

한편 신분의 벽을 느낀 허겸은 허준이 써준 천자문을 불태워버리고 자꾸 병사로 아버지를 찾으러 온다. 허준은 괜히 공짜밥먹는 재미를 들여주지 않기 위해서 허겸을 애써 모른체 하지만 허겸은 자꾸 아버지에게 달라붙으면서 그간 할머니랑 자다가 아버지랑 자겠다고 자꾸 졸라대고 막막한 신분의 벽에 허준은 처자식과 노모만 없었다면 그냥 변돌석을 따라가 나로도에서 낚시나 하면서 살수 있었을 것이라고 좌절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날 유의태가 갑자기 허준을 불러 창녕 성대감 댁에 가서 중풍 든 마님을 치료하라고 지시한다. 반드시 유의태를 데려오라는 분부를 받은 성대감의 아들이 대체 이자가 누군데 데리고 가라는 것이냐면서 항의하자 유의태는 믿어볼만한 아이라면서 지금 당장은 병사에 위급한 환자가 많아 갈 수 없으 먼저 허준이 치료를 하고 있으면 자신이 4,5일 후에 따라가겠다고 한다. 허준은 유의태를 위해 준비된 가마를 타고 창녕으로 가게 되었으며, 허준 일가는 물론 병사 전체가 허준이가 큰갓 쓴 양반들이 가져온 가마타고 성대감네에 가게 되었다고 발칵 뒤집힌다. 특히 임오근이 질투에 차서 허준이만 아니었으면 자기가 가는 것이었다면서 어쩔 줄 몰라했고,[17] 오씨가 상화를 불러서 허준이 단순히 심부른 간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성대감댁 마님을 치료한 것인지 당장 실토하라고 추궁한다. 이에 유도지가 심부름이면 상화가 갔지 언제 허준이 갔냐면서 아버지가 자신보다 허준이를 더 믿는 모양이라고 역시 질투심에 씹어뱉는다. 분을 참지 못한 오씨는 유의태에게 찾아가서 드잡이를 하는데 대화가 가관이다.

오씨: 허준인지 그 아이가 당신에게 무어요?

유의태: 무어라니?

오씨: 그 놈을 창녕 모모한 댁으로 떠나보낸 걸 다 알고 있소.

유의태: 그게 무슨 감출 일이던가, 알고 맡고 하게.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려 들지 말고 건너가오.

오씨: 쓸데없는 일? 자식의 장래에 얽힌 일인데 쓸데없는 일이란 말이오?

유의태:...

오씨: 왜 말 못하시오. 자식도 의원 아니오. 자식이 의원이람 아비란 사람이 의당 일부러 잘 낫는 병자를 골라주어 그 집 젊은 의원 병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도록 해줘야 옳고 여기저기 대가집일랑 일부러라도 기횔 만들어 내 자식을 보내어 안면을 넓혀주고 이름이 드러나도록 해줘야 옳지.

유의태: 부인 말이 일리가 있네.

오씨: (패악을 부리며) 지금 와서 일리가 있다니 무슨 일이오. 나도 다 들었소. 지금 허준이가 간 집이 창녕에서는 모모한 대감댁이라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아오.

유의태...?

오씨: 그런 아까운 데를 자식을 젖혀놓고 다른 것들을 보낸 사유를 말하란 말이오.

유의태: 돌아가시오.

오씨: 대답해요.

유의태: 중풍의 혈행을 다스리는 건 침이오. 그리고 그 침을 잡는 법은 도지의 분야가 아니고.

오씨: 어째요?

유의태: 또 대가집 대가집 하나 그 대가집이란 일이 성공이 됐을 때는 사례가 후한 법이나 반면 실패했을 땐 그 추궁도 매운 법이외다.

오씨: (반색하며) 아니 그럼?

유의태: 그럼 이라니?

오씨: 옳지 그럼, 허준이 그놈을 이 기회에 아예 죄를 씌워 내쫓을 셈으로?

유의태: 죄를 씌운다는 건 또 무슨 소린가?

오씨: 그놈은 애초부터 우리 집을 배반했던 놈 아니오.

유의태: (실소) 죽도록 좋은 일만 골라서 해도 못다 하도록 사람의 일생이 짧은데 어찌 뻗어나는 싹을 짓밟는 악행을 하리.


한편 창녕에 다다른 허준은 도열한 성대감댁 권속들의 마중을 받으면서 으리으리하기 그지없는 성대감의 아흔아홉칸 저택으로 들어서게 된다. 저택에 들어가니 하인들 뿐만 아니라 문중의 갖은 선비들까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성대감이 위엄있지만 부드럽게 허준을 환영하면서 듣던 것보다 젊다고 한다. 성대감의 아들이 허준이 유의태가 아니라 유의태의 제자라고 소개하자 성대감은 격노하여 창녕엔 의원이 없어서 산음까지 사람을 보낸줄 아냐면서 제 어미의 병인데 어찌 이리 무심하냐고 아들을 꾸짖고, 당장 다시 사람을 보내서 유의태를 잡아오라고 지시한다. 서릿발같은 분위기에 집안 어르신들조차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치만 살피는데, 사랑방으로 들어가려는 성대감에게 허준이 안받아준다면 할 수 없지만 자신 또한 의원이라고 항변한다. 허준을 안내한 늙은 선비가 허준에게 어느 안전이라고 언성을 높이냐고 꾸짖지만 허준은 병은 의원이 고치지 높은 벼슬의 위세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고 맞받아치고 선비들이 일제히 허준에게 삿대질을 해대며 호통친다.

그러자 허준에게 관심을 보인 성대감은 네 재주가 스승보다 낫다는 말이냐고 비웃고, 허준이 자신 또한 의원이지 유의태를 욕보이는 말은 하지 않았다면서 돌아가려 하자 성대감이 허준에게 서라고 명령한다. 허준을 안내해온 백발 선비가 어서 허리를 굽히지 못하겠냐고 호통치자 허준은 자신도 모르게 병을 고치러 왔지 굴신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반항하고 말고 선비들조차 경악한다. 자기도 모르게 반항한 허준 스스로도 자신이 미쳤나 싶어 고개를 숙이고 성대감의 처분을 기다리지만, 성대감은 병자를 보여주라고 지시한다. 성대감의 직접 설명을 받으며 중풍에 걸린 마님의 진맥을 무려 반식경이나 살핀 허준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경우 인기척을 없애고, 배개를 반의 반으로 낮추며, 환자의 눈을 피로하게 하는 지나치게 밝은 불빛을 줄이고, 환자가 제일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대소변을 받는 일인데 요강을 즉시 비워 공기를 환기하고, 환자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게 조치한다.

다음날 허준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물어본 성대감은 허준이 직접 물을 떠와서 약을 달인다는 말에 유의태 이름은 들었어도 유의태 제자 이름은 들은 적이 없으니 만약 조금이라도 일이 서툰 것같다면 즉시 유의태를 데려오기 위해서 허준이 어떻게 약을 조제하는지 보러 찾아간다. 허준이 인사함에도 받아주지도 않고 안방에 들어간 성대감은 어머니를 돌보던 딸에게 오빠들 시키고 이제 가서 잠 좀 자라고 하는데, 딸이 허준도 잠을 못잤다고 두둔하자, 정성으로 낫는 병이면 진작에 나았고, 의원이 병을 치료하기 전엔 의원 대접할 필요가 없다고 묵살하는데, 허준이 들어와 성대감에게 환자가 이제 겨우 잠들었으니 환자의 잠을 방해하지 말고 나가라고 지시한다. 일개 의원이 지시하는 상황에 어이없는 건 둘째치고 성대감은 약처방이 유의태가 내려준 것인지부터 묻지만, 허준은 유의태가 환자를 보지 못해서 처방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지었다고 대답한다. 이에 성대감은 온갖 의원들이 와서 자신이 치료할 자신이 있다고 독한 약을 마구 먹여 환자를 괴롭히는 것을 봤다면서 치료할 자신이 있는지를 추궁한다. 허준은 솔직하게 자신 없다고 하고 배운 의술과 정성으로 애쓰는 소임을 다할 뿐, 다짐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성대감에게 당장 나가라고 마주 호통을 치고, 성대감은 무명의 의원의 패기에 신선함을 느끼면서 안방에서 나간다.

허준의 패기와 정성에 성대감 댁의 허준에 대한 대접도 날이 갈수록 좋아져 처음에 행랑채에서 머물면서 식사는 청지기방에서 개다리소반에 반찬 두어개 정도 받았으나, 이틀 후에 큰아들의 작은 사랑으로 숙소가 바뀌었으며, 며느리들의 지휘 아래에 종 둘이 통영산 소반 위에 가득 음식을 올리고 거기에 번상에 부가 반찬까지 올리는 등 귀빈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한약으로 마님의 기력이 회복되자 허준은 목욕재계를 하고 침을 놓기 시작한다. 허준은 성대감에 젖가슴 사이에 상완이란 혈자리를 반드시 짚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성대감은 이를 수락한다. 이어 배꼽 아래 한치 음교에 침을 놓아야 한다고 허준이 설명하자 성대감도 안색이 창백해졌고 죽은 듯 누워있던 마님이 차라리 못나아도 침을 맞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외친다. 허준은 숱한 부인들이 죽을 병에 들어도 부끄러운 곳을 보이지 않아 목숨을 잃는다면서 아직 세상에 여자 의원이 없으니 참고 견뎌야 한다고 외친다. 결국 성대감은 아들들을 물리고 손수 아내의 하반신을 노출시켜 침을 맞게 한다. 침 시술이 끝난 후 성대감이 허준과 겸상을 차려놓고 저녁을 먹자고 하지만 녹초가 된 허준은 세수를 하자마자 기절해서 잠들고 만다.

한편 8일째 되던 날 약속했던 유의태 대신에 임오근이 오는데, 임오근은 청지기에게 마님의 환후가 한결 가벼워졌단 말에 경악하고, 성대감이 유의태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도 그러려니 하는 모습에 또 경악한다. 그리고 성대감 식구들이 허준을 마치 일가인양 다정하게 극진히 모시는 것을 보고 거의 절망을 느낀다. 그리고 열흘째 되던 날 새벽, 허준은 중풍이 들어 수년 운신도 하지 못했던 마님을 마침네 걷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집안은 그야말로 감동의 울음바다가 되고 창녕 사람들은 허준을 약사여래처럼 우러러보게 된다.

3. 등장인물[편집]



3.1. 허준[편집]


주인공. 소설적 허구가 반영되어 실제 허준의 삶과는 다르다는걸 감안하고 봐야한다.

용천 군수 허륜의 얼자로 한량같은 삶을 살았으나[18] 훗날 아내가 되는 이다희, 그리고 의술 스승이 되는 유의태와의 만남으로 점점 변화하게 된다.

유의태 밑에서 7년동안 의술을 공부했고 면천을 위해 어의가 되고자 일단 내의원 과거시험을 목표로 잡게 된다.

그러나 최초의 내의원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버드네' 라는 마을에 엮여서 여러모로 고초를 겪는다.[19] 발단은 버드네란 마을 어귀에 들리게 되었을때 그에게 통사정한 농부 부부의 호소를 허준이 듣고 넘어가준 것이었다. 농부 부부만 고쳐주려고 가려고 했지만 허준이 농부 부부를 고쳐준게 소문나자 마을 사람들이 너나할거 없이 허준 앞으로 와서 자기들도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발길을 붙잡은 것. 허준은 이들을 보느라 한양까지 가야하는데 써야할 며칠을 낭비하게 된다.[20][21]

겨우 버드네를 떠나 한양 가려고 했더니 길잡이 해준다는 청년이 사기를 쳐서[22] 또 그의 노모를 돌봐주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하다가 청년이 그에게 말을 구해다준다고 절도죄를 저질러[23] 졸지에 함께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러나 그 고을 현감[24]이 나중에 허준의 사정과 버드네 사람들의 호소를 듣고 허준을 풀어준 다음 말까지 줘서 겨우 한양으로의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의 출발이 너무 늦었던 탓인지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과거시험을 놓치게 된다. 허준은 그 길로 고향에 돌아오게 되지만, 한때 그를 내쳤던 스승 유의태가 그의 소식[25]을 들은 후 마음을 바꿔서 그를 다시 제자로 받아준다.[26][27]

유의태 밑에서 허준은 버드네 시절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실력 좋은 의술을 선보이는 의원으로 유명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버드네에서 마지막으로 봐주게 된 청년네 노모가 청년의 실수로 실명하게 되고[28] 그 청년이 자기 노모 고치라고 악을 쓰며 허준에게 따지러오는 사태가 발생한다. 허준은 유의태의 지도 하에 눈먼 노모를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고[29] 사람들에게 유명해진다.[30]

나중에 허준은 스승 유의태가 반위()로 죽어가다가[31] 자살하자,[32][33] 그의 유지를 받들어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34]

유의태 사후 허준은 다시 한 번 내의원 과거시험에 도전하고 수석으로 합격한다. 그러나 당시 내의원의 실세인 어의는 과거 스승과 의술실력 경쟁을 했다가 진 양예수였다. 양예수 일파의 견제를 받아 그는 수석 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고 혜민서란 곳에 발령된다.[35][36] 그러나 허준은 혜민서 발령에도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일을 열심히 한다.[37][38]

허준은 혜민서에서 일하다가[39] 구안와사 증세를 가진 환자를 치료하게 된다. 환자가 치료기간 도중 허준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고 군것질을 해 하루가 좀 더 걸려서 낫긴 했으나 보통 닷새 안에 치료될 증세를 나흘만에 치료한 것. 마침 어의 양예수는 공빈 김씨의 남동생 김병조의 구안와사를 치료하던 중이었는데, 양예수의 세력을 꺾고 허준을 대항마로 삼으려는 정작 덕분에[40] 허준이 양예수 뒤를 이어 김병조의 치료를 맡게 된다. 이후 허준은 김병조의 패악질에 고생하고,[41] 중간에 김병조가 구안와사 외에도 암 초기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42] 암도 치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된다.

허준은 치료과정에서 김병조의 패악질에 시달려 발을 다치기도 하고[43], 김병조를 꾸짖고 자기 편을 들어주던 공빈이[44] 김병조에게 흔들려 도로 압박당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선조가 나서서 다시 허준을 도와 김병조의 패악질을 막아준다. 그러나 정한 기한 내에 김병조의 병의 차도가 보이질 않아 위기에 처한다.[45] 허준은 자신의 실패를 이용하려는 양예수 일파에게 김병조 치료 실패의 책임으로 손목이 잘려나가 의원 일을 영원히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허준이 위험해지자 그를 위해 몸을 날려 허준을 도와준 내의원 친구와 그를 따르는 의녀 미사 등 주변인이 어찌어찌 짧게나마 시간을 벌어준다. 그 와중에 김병조의 상태가 확실하게 나아지고,[46] 허준은 결국 풀려난다.[47] 허준이 김병조의 병들을 낫게 한 것으로 인해 그는 내의원 직급도 상승하고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허준은 한때 사이가 서먹해진 유도지와 다시 재회하게 된다. 유도지는 중국 사신을 따라갔다가[48] 중국의 의술서를 가져와서 허준에게 건네준다. 허준은 중국의 의술서를 보고 학구열이 동해서 중국에 방문하고 싶어하고, 정작의 도움으로 기어이 중국에 가게 된다. 허준은 자신이 가지게 된 의술서의 저자 이시진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끝내 만나지는 못한다.[49] 그러나 허준은 그의 소식을 들은 뒤 자기도 조선 전체의 약초들을 찾아 정리하는 등 조선의 의술서를 만들어볼 꿈을 가진다.


3.2. 유의태[편집]



허준의 스승으로 묘사된 유의태(1652-1715년 2월 27일)는 숙종 어의를 지냈으며, 홍역 치료의 태두로서 조선인 최초로 홍역 치료서 <마진편>을 저술하였고, 질병 예방을 주창하였으며, 일생동안 5도(정도, 효도, 시도, 의도, 수도)를 실천하였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귀천, 친소, 민간과 빈부를 차별하지 않고 백성을 위하는 위민 정신,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을 펼치면서 죽었던 사람을 살린다는 신의, 환자가 의원을 따르게 하여 병을 치료하는 심의로 불려진 산청의 전설적인 명의 유이태 이름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허준의 의술 스승.[50] 그의 신념은 모든 병을 고치는 의사와 모든 환자를 차별없이 치료하는 것이다. 허준의 스승답게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51] 내의원 양예수와 의술을 겨뤄 이긴 적이 있다. 그러나 양예수 일파에게 찍혀서 내의원이 될 실력을 지녔음에도 과거에 낙방하게 된다.[52]

매우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성품을 지녔다.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헌신이야말로 의원의 첫째 자질임을 강조하며,[53] 고위 양반과 엮인 허준이나 개인의 영달을 쫓아 가난한 민중들을 돌보지 않고 취재를 보러 떠나버린 자기 친아들과 수제자와는 의절하기도 했다. 허준의 경우 허준이 과거시험까지 포기하고 가난한 민중들을 무료로 돌봐준 것을 알고 마음을 돌려 그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러나 아들과 수제자인 임오근의 경우 자기들의 태도를 반성하지 않고 그의 비방만 원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무것도 주지 않고 의절해버린다.

그의 태도에 실망한 부인과도 사이가 틀어지고[54] 수제자인 임오근마저 유의태의 슬하를 떠날 것을 결심, 그간의 정을 고려해 유가고약의 비법이라도 가르쳐 줄 것을 청했으나 유의태가 그마저 들어주지 않자 유의태에게 상해를 입히고 금품까지 갈취해 떠난다. 이후 유의태는 아들과 의절하게 된 원인이 허준임을 개의치 않고 허준의 의술을 시험해보기까지 하며 그를 자기 제자로 도로 받아주고, 허준이 치료해줬다가 사후처리가 잘못되어 맹인이 된 환자를 허준이 다시 치료하는데도 도움을 주며, 나중엔 말기암 환자가 돼서 죽어가게 되자 자살하여 허준에게 갓 사망한 시체를 해부할 기회까지 준다.

소설에선 풍체가 큰 김민세, 안광익, 허준[55]과 달리 왜소한 신체로 묘사된다.



3.3. 허준의 가족들[편집]


  • 손씨
허준의 어머니. 미천한 신분으로 고생해가며 허준의 뒷바라지를 했다. 허준을 아낀다.
허준의 어머니는 영광김씨이다.
  • 이다희
본래 반가[56]의 딸로 김상기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사건을 겪은 후 허준과 이어지게 된다. 허준과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각각 하나씩 두었다.

  • 겸이
허준의 아들로 집의 맏이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는 청년이 되어 허준에게 가족들을 보살필 것을 당부받는다.


3.4. 유도지[편집]


유의태의 친아들. 허준과 동문수학한 사이이며 교제를 맺기도 했다. 중권에서 그는 내의원 과거시험에 붙어 합격하지만, 금의환향하고 돌아왔다가 아버지 유의태에게 오히려 박대당한다. 그가 유의태와 달리 속물적인 마음가짐으로 내의원이 되어 개인의 영달이나 챙기려 한 것을 유의태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 반대로 그의 어머니 오씨는 그에게 기대를 많이 걸고 그를 아낀다.

이후 유도지는 아버지에게 정말로 실망해 유의태와 의절하고, 내의원에서 왕자를 맡아돌보는 요직을 담당하게 된다.[57] 나중에 그와 동문수학 사이의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한동안 서로 접점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내의원 내부의 인사이동 시기가 다가오자 유도지는 허준과 손을 잡고자 한다.

이유인즉슨 허준과 유도지 모두 유의태의 관련자인데, 내의원 실권을 쥔 어의 양예수는 유의태와 의술을 겨루다가 패배한 이후 유의태에게 악감정을 품었기에 자기와 허준 모두 유의태 관련자라는 이유로 양예수에게 찍혀 나쁜 자리(혜민서)로 떨어질걸 우려해서였다. 그래서 유도지는 급한 마음에 허준과 접선해 편먹기라도 하려고 했던것이다. 그러나 허준은 유도지와 입장이 비슷한 대다수 내의원들과 달리 양예수에게 찍혀 나쁜 자리로 떨어지는걸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고 둘이서 편먹는건 무산된다. 그러나 유도지의 우려와 달리 양예수는 유도지를 혜민서에 떨구지 않고 다른 왕족을 돌보는 자리를 맡겼다.

부친인 유의태와 달리 의원으로서의 자질은 그다지 출중하지 못하다. 내의원 취재를 보러 떠나기 직전 유의태의 지기인 김민세가 던진 질문에 명쾌히 답하지 못해 '학습이 모자란다'라는 평을 듣는다. 유도지가 내의원에 임관한 이후, 어의 양예수는 유도지의 역량이 그 아버지이자 자신의 앙숙인 유의태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점을 알고서 유의태에게 던지는 야유의 뜻[58]으로써 유도지를 궐내 요직에 배치하기도 했다.

유도지는 유의태와 사이가 매우 나빠진 채로 의절했으며, 내의원에 임용된 허준과도 이전의 떨떠름한 관계를 유지하며 애써 거리를 둔다. 유의태의 작고 소식을 허준으로부터 전해듣고도 일부러 부친의 무덤조차 찾지 않았다. 그러나 사신 행차를 따라 파견 의원으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후로는 허준과의 사이가 급격히 누그러진다. 허준이 김병조의 구안와사 및 반위를 치료할 때 양예수와의 극한갈등 속에서 한사코 유의태의 가르침을 옹호한 것을 알고는 감명을 받은 것이다.[59]

이후 유도지는 허준을 찾아와 아버지와 의절했던 과거에 대해 애통한 감정을 토로한다. 이미 보직이 높아진 허준에게도 예우를 갖춰 대하며 사신 행차길에서 입수한 귀중품들을 선물하는 등 이전의 앙금은 해소된 모습을 보인다. 이 선물들 중 서적인 <중원의인전>은 중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의학사와 의원들에 대해 기록한 것으로 허준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으며, 허준이 온갖 병의 치료법에 대해 체계적인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겠다는 발상을 하는 단초가 된다.

유도지는 작가 이은성의 부고로 완결되지 못한 극후반의 전개에서도 계속 등장할 예정이었다. 미완결 분량을 요약한 내용에 따르면 어의가 된 허준은 유도지를 보좌의관으로 지명해 측근으로 두는데, 이는 은사인 유의태를 기리는 인사임용이었다. 그러나 유도지는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몸을 사린 나머지 신하로서의 체통도 사명도 버리고 도망가버린다.(...) 국난 중에 신하가 몽진 행렬을 이탈하는 행위는 삭탈관직이나 그 이상의 처벌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중죄이나 어떻게든 정상참작 내지는 복권이 될 예정이었던 듯하다. 선조가 승하한 이후 허준이 귀양길을 떠나자 유도지 또한 동행하여 동의보감의 편찬에 한몫 거들게 되기 때문.


3.5. 김민세(삼적대사)[편집]


유의태의 지인으로 안광익과 함께 3인방이 절친한 친구이다. 유의태의 다른 지인이기도 한 안광익과 결혼한 궁녀 정씨의 언니와 결혼한 사이(매부)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걸승 차림을 하고 문둥병 환자들을 돌보며 문둥병 치료에 힘을 쏟고 있다. 원래 스님이 아니라 내의원 의관 출신이라 출가 후에도 육식을 거리낌 없이 하여 봉은사 주지인 휴정이 그의 악식을 타박하기도 했다. 그래서 술을 곡차, 고기를 떡이라 부르면서 먹고있다. 몸집은 안광익 처럼 큼직한편으로 곰처럼 큰 몸에 손은 기형처럼 작다고 묘사되어있다.

과거의 그는 내의원 소속으로 젊은 나이에도 그 실력 덕에 양예수의 눈에 들어 편애를 받고,[60] 어의 자리를 거머쥘 가능성이 있는 뛰어난 의원이었다. 하지만 그가 궁녀 정씨의 언니와 결혼하고 난 뒤 3년만에 어렵게 본 아들이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김민세의 아들이 자취를 감춘 후, 김민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들의 실종이 문둥병 환자들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61] 김민세는 아들의 흔적을 찾다가 아들의 신발이 있는 어떤 문둥병 환자 가족의 집까지 오게 된다. 김민세는 그 가족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의 집에 있는 쇠스랑으로 문둥병 환자 가족 넷[62]을 모두 죽여버린다. 이후 그 집을 나온 김민세는 자기 아들의 옷을 걸치고 있는 문둥병 환자 소년을 발견한다.

김민세와 마주친 소년은 자기는 사람을 해치지 않고 물고기와 뱀만 잡아먹는다고 항변하고, 걸친 옷[63]은 아버지가 줬다고 말한다.[64] 마침 그들이 있던 강가엔 비가 오고 있었기에 김민세는 문둥병 소년을 데리고 길을 건넌 후 그 소년을 숨겨둔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신발만 들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간 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에 김민세의 아내는 충격을 받고 아들의 신발을 빼앗아들어 그 길로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된다.[65]

김민세는 (추측이지만) 자기 아들의 원수의 아들이자 자기를 원수로 두게 된 문둥병 소년을 양자로 거두게 된다.[66] 그는 이후 양예수의 밑에서 물러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떠도는 인생을 살게 된다. 일단 좀 위험한 관계의 우려가 있는 양자도 길상이라 불리게 되어 김민세와 동행하게 된다.

김민세는 허준과 만난 후 허준에게 면천할 방법으로 내의원이 되는 길을 알려주고, 허준은 이 말에 따라 내의원 과거시험을 보러가게 된다. 허준도 그의 태도에 감명받은듯하나, 김민세와 같은 길을 걷는걸 바로 택하지는 않았다.[67]


3.6. 안광익[편집]


유의태, 김민세와 함께 절친한 친구이자 뛰어난 의원이다. 잠깐 언급되지만 고향은 강원도 정선.

작중에서 이 3인방의 의술은 비할데가 없으나 어린시절부터 사람의 신체에 심취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살아있는 인체의 내부를 보고싶어 한다. 부술에 매우 능하며 당시 사상적 한계로 금기시된 칼을 이용한 수술에도 능하고 살이 터지거나 부러진것을 꿰매어 잇는것도 용한 인물, 호랑이도 침 하나로 잡을 만큼 뛰어나 유의태도 인정할 정도지만 유의태의 구침지희 일화를 듣자 침술은 자신보다 유의태가 더 낫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또한 관상에 능하다고 표현되어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괴인 기믹이 강하다. 엄격함이 강조되는 유의태, 덕성이 강조되는 김민세와 달리 이 사람은 현실주의와 의술을 닦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밸리즘을 보여주며 시신 해부를 망설이는 허준에게 네가 그리 숭배하는 유의태라고 환자 죽인 적 없을 것 같냐고 비웃기까지 한다.

기골이 크고 장대하며, 광대뼈가 불거져나오고, 왕방울 같은 큰 눈에 이글거리는 눈빛, 메기 같은 큰입에 털복숭이여서 산적 같은 얼굴이지만 특이하게 치아는 쥐 이빨처럼 하얗고 작으며 가지런하다고 한다. 김민세와 동서관계로 김민세의 아내는 궁녀 정씨의 언니고, 안광익의 아내는 궁녀 정씨다.

첫 등장은 궁녀 정씨와 걸인 행상으로 유의태 집에 의탁하는것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언급 상으로는 백정 마을로 스스로 들어가 치료를 해주며, 대가로 남의 무덤을 파해쳐서 해부하는걸 의뢰하는 등 구일서와 인연이 있는것으로 나온다.

원래 내의원 의원이었는데 사사건건 양예수 및 양예수의 졸개들의 처방에 시비를 걸었고, 양예수가 처방한 약을 자기 멋대로 몰래 바꾼게 들통나서 하옥돼서 다리 하나가 그때 박살난다. 이후 갓 태어난 신성군의 등에 종기가 나서 엎드리지조차 못하고 앓고 있자 옥체에 칼을 댈 수 없다고 고약만 처방하는 내의원들의 모습에 칼을 들고 왕자의 방으로 찾아가 종기를 째서 고름을 짜내서 단박에 왕자를 치료해냈다. 이 때문에 왕자에게 칼을 들이댔다고 대역부도의 죄를 쓰고 의금부에 투옥되지만 왕자의 등창이 씻은듯이 치료되면서 즉각 석방된다. 하지만 왕자의 유모 궁녀 정씨는 미친자의 칼에 임의로 왕자를 내준 죄를 추궁받고 약을 먹고 자결을 시도한다.[68] 이에 안광익은 정씨를 치료해낸 다음에 떠나는데 그전부터 정씨와는 서로 내심 사랑하는 사이였던지 안광익이 떠나자 궁녀 정씨가 대궐담을 넘어 안광익을 찾아 오면서 함께 야인으로 살게 된다.

인체를 해부하고 싶은 것이 소원인데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할 수 있는데도 유의태의 시신은 허준이의 몫이라며 해부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파문된 허준에게 자신의 제자가 되어 부술을 배울 생각이 있냐고 제안한 적이 있으며, 이후 유의태가 죽자 9개월간 허준과 함께 전국을 일주하며 김민세와 함께 그를 가르치고 취재에 응시하러 한양으로 가는 허준과 작별했다고 간단히 언급되는 것이 마지막 등장이다. 원작에선 말년의 허준과 함께 질병 구제를 같이 하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3.7. 궁녀 정씨/부인 정씨 자매[편집]


김민세의 아내(언니)와 안광익의 아내(여동생)으로 안광익의 아내는 원래 궁녀였다.

김민세의 아내 부인 정씨는 아들이 참혹하게 죽은 사실을 알게 되자 아들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우물로 몸을 던저 자살한다.

안광익의 아내 궁녀 정씨가 출궁하게 된것은 왕자 신성군의 몸에 종기가 생겼을때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신성군을 담당하던 궁녀 정씨는 안광익이 칼을 대는 시술을 하는걸 방조하였고 안광익은 왕자가 완치되어 죄를 물지 않게 되었으나 궁녀 정씨는 이를 방조한 죄로 하옥되었다. 이에 약을 먹고 자결을 시도하나 안광익이 치료해주고, 또한 정씨를 업고 궁궐 담을 넘어 탈출하게 된다.

궁녀 정씨가 안광익의 치료를 눈감아 준것은 안광익이 정씨 자매의 부모를 치료해준적이 있어서 그 의술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광익을 따라 유의태 집까지 도망온 궁녀 정씨는 이후 잠시 유의태 집에 의탁했다가 김민세가 보살피는 문둥병 환자가 모인 마을로 들어가 안광익과 김민세를 도와서 문둥병 환자를 치료하는데 전념하며 이 와중에 안광익과 결혼하게 된다.

궁녀 출신이지만 의술에 대해 약간 아는것이 있는것으로 묘사되며, 눈매가 곱고 하얀 피부의 기품있는 모습과 몸가짐을 하고있다고 묘사된다.

3.8. 임오근[편집]


유의태 문하의 제자 중 최고참으로서[69] 병사에서는 황초잡이[70]를 보직으로 맡고 있다.

허준이 의술을 익히고자 유의태의 수하를 방문했을 때, 텃세를 부리는 장쇠 등과 주먹다짐을 벌이자 장쇠에게 합세해 장작개비로 허준을 후려쳐 기절시키며 등장한다. 첫 등장부터 작중에서 퇴장할 때까지 허준과는 여러모로 악연을 맺는 인물이다.[71] 자기중심적인 인성 탓에 유의태의 의원을 찾는 병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은 주지 못하고 있는데, '유의태의 수제자라고 모가지 뻣뻣이 하고 돌아다니던 눈알이 당나귀 멩쿠로 노오란 놈'이라는 욕이나 다름없는 뒷담화를 병자로부터 듣기도 한다.

의술은 대단치 않으나 유의태의 제자들 중에서는 가장 나은 학식을 갖추고 있다. 꺽새, 영달, 장쇠 등이 보여주듯 유의태의 제자들 상당수는 글조차 깨우치지 못한 문맹이다. 그러나 유의태의 제자 중 부산포와 임오근만큼은 읽고 쓰는 데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72] 그리고 임오근은 부산포의 속된 인간성으로 보아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 내심 자신만이 유의태의 후계자 자격을 갖췄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자부심은 결국 임오근과 허준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원인이 된다.

등장 초기에는 장쇠와 영달 등과 합세해 끈질기게 허준에게 텃세를 부리지만, 시간이 지나자 주막에서 시간이나 때우는 다른 일꾼들과는 달리 발품을 팔아 약초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허준의 열정을 인정한다. 이후 과거의 악연을 털고 허준과 가까워지며, 유의태의 부인 오씨에게 허준이 약초 공부에 쏟는 노력과 정성을 언질해주기도 한다.

유의태 밑에서 여러 해를 머물렀음에도 정작 가진 의술은 보잘것없다. 8년을 보고 배운 짬밥 덕에 약재의 품질 감별 정도를 그럭저럭 해낼 뿐, 정작 병자를 진맥하고 치료하는 요령엔 문외한이나 다름없으며 의학적 지식 또한 책에서 본 짤막한 내용을 겨우 읊는 경지를 넘지 못하고 있다.[73] 유의태의 부재를 틈타 만만해 보이는 치질 환자를 직접 진료하겠다고 나서다 유도지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왜 나서나'라는 면박을 당하기도 한다. 이에 지지 않고 유도지에게 맞서지만 유의태가 돌연 나타나 침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말문이 막힌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지나 임오근은 허준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된다. 유의태의 제자임에도 병자들을 사사로이 진료했다는 의혹을 받은 허준이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하며 결국 유의태로부터 인정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임오근은 허준보다 8년을 유의태 문하에서 더 배웠다는 자부심이 무너진 것은 물론, 내심 눈독을 들였던 유의태의 후계자 자리마저 허준에게 뺏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유의태가 창녕 성대감의 부인을 진료할 사람으로 다름아닌 허준을 지목한 일은 임오근의 질투에 기름을 붓는다.[74] 허준만 없었다면 임오근 자신이 성대감 댁에 파견되었을 거라는 망상은 덤.[75] 결국 임오근은 유의태가 자신을 제쳐놓고 허준을 수제자로 삼았다는 확신이 들 경우 유의태의 문하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수틀리면 유의태의 보호를 받는 안광익의 수상쩍은 행적을 관가에 고발해 유의태까지 파멸시키겠다는 흑심을 품는다.

며칠 뒤 유의태의 지시로 경과 확인을 위해 성대감의 집을 방문한 임오근은 허탈감에 빠진다. 내심 허준의 치료가 실패하길 바랬던 임오근의 기대와는 달리, 허준이 성대감 일가의 극찬 속에서 성대감 부인의 풍병을 고쳐낸 것이다. 성대감은 고마움의 표시로 내의원 입격에 도움이 될 천거의 글, 소개장을 허준에게 써 준다. 그리고 허준처럼 내의원 입격에 뜻을 두고 있던 임오근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멘붕에 빠진다. 그는 자신 몫의 소개장까지 받아줄 것을 허준에게 빌다시피 요청하나 허준은 애초에 될 일이 아니라고 여겨 거절한다. 임오근은 격노한 나머지 허준의 뒷통수를 돌로 내려찍으며 피 터지는 난투극을 벌인다. 이 다툼 이후로 허준과 임오근의 관계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틀어지고 만다.

앙심을 품은 임오근은 그 길로 유의태에게 돌아가 허준이 받은 소개장의 정체를 고자질한다. 결국 유의태는 세도가의 권력을 빌어 의원이 되려는 자는 내 문하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허준을 파문하고 만다. 허준이 파문된 이후로는 유의태를 음해하려던 계획을 접고 계속 유의태 휘하에서 잡일을 맡는다.[76] 수제자의 차림새를 하고 있다는 작중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허준이 파문된 시점에서 유의태의 수제자로 공인받은 듯하다. 그런 와중에도 허준에 대한 앙심을 잊지 않아서 허준을 찾아오는 병자들을 거짓말로 헛걸음치게 만들기도 한다.[77]

그러나 임오근의 리즈시절은 길지 않았다. 유도지가 내의원 취재에 입격하는 과정에서 애원하는 병자를 뿌리치고 간 것이 탄로나자 유의태가 격노한 것이다. 유의태는 아들과 의절한 것은 물론, 유도지와 동행했던 임오근 또한 그 자리에서 파문한다.[78] 게다가 영달과 꺽새 등 다른 제자들이 이 일로 임오근을 위로하긴커녕 오히려 임오근의 수제자 자리를 뺏을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결국 임오근은 막다른 곳에 몰렸음을 알고 마지막으로 유의태의 방을 찾는다. 그 자리에서 임오근은 고향으로 돌아가 생계라도 이어갈 수 있게 의원으로서의 지침과 유가고약의 제조법을 알려달라 요청한다.[79] 그러나 일찍이 허준에게 그랬듯 한번 눈밖에 난 자에게 매몰찬 유의태는 임오근의 통사정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분노한 임오근은 촛대가 박힌 송곳으로 유의태에게 상해를 입히고, 문갑 속의 돈을 훔친 뒤 병사 안의 병부[80]까지 탈취해 달아난다.[81] 소설 속 임오근의 등장은 여기까지이며 이후의 행보는 나와있지 않다.[82]

허준과 상화 정도를 제외하면 유의태의 제자들은 사실 모두가 '의원으로서 삼가야 할 품행'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며, 임오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임오근이 그나마 다른 제자들에 비해 나은 점은 영달이나 꺽새 등의 다른 제자들처럼 진료를 미끼로 병자의 돈을 뜯어내는 수작을 벌이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이다.[83] 주워들은 얕은 지식으로 섣불리 의원 행세부터 하려는 공명심, 의원의 체신을 세운답시고 병자에게 친절한 제스쳐는 가급적 하지 않는 뻣뻣함 등은 작중 등장인물들에게조차 비판받는 임오근의 흠결이다.

3.9. 양예수[편집]


선조어의.

그는 내의원의 최고봉이자 실세로 실력은 어의답게 뛰어나지만 의원으로써의 마음가짐보단 권력욕과 명예욕이 더 강한 인물이다. 그의 목표라 함은 3대째 왕을 모시는 어의가 되는 것.

양예수는 이임보[84]의 조선판이라 할만큼 내의원 내에서 철저하게 정치질을 했다.[85] 자신에게 견제되지 않을법한 실력자들이나 실력자가 아니어서 견제의 이유가 없는 내의원들은 잘해주지만 유의태처럼 자기 눈에 찍히거나 견제대상이 된 이에겐 가차없다. 허준도 양예수의 정치질에 피해를 봤다.[86] 양예수의 이런 행보를 관리 정작은 맘에 들어하지 않아 훗날 허준을 대항마로 세울 계획을 꾸린다.

양예수는 원래 자기 후계자였던 김민세의 자리를 위해 유의태를 견제하여 내의원이 되지 못하게 술수를 부린 적이 있었으며, 이에 분노한 유의태와 의술 실력을 겨뤘다가 패배하는 바람에[87] 유의태와 그의 직계 제자 허준에 대한 강한 악감정을 갖고 있다. 김민세가 문둥병 환자 가족에게 자기 아들을 잃은 후 나환자들을 고치기 위해 양예수 밑을 영영 떠나버려서 다른 후계자를 기르는 중이라 결과적으로는 상관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양예수는 아직도 그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어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가 실력이 없음을 알고도 조롱의 의미로 왕족을 돌보는 자리로 배정시켜주고, 허준에겐 혜민서라는 비인기 부서로 발령보내는 등 술수를 부렸다.

이후 선조의 총애를 받는 공빈 김씨의 남동생 김병조가 구안와사 건으로 내의원의 진료를 받게 되자 본인이 그를 담당해 자기의 명예를 드높일 꿍꿍이를 품는다. 양예수는 물론 다른 의원들에게도 구안와사는 보통 닷새 안에 낫는 쉬운 병이었지만 양예수는 구안와사를 고치기 어려운 병인 것마냥 가식을 떨고, 이 와중에 김병조가 구안와사 외에 반위(암)을 앓고 있다는 것도 진단했으나 이걸 숨긴다.[88] 그러나 본인이 구안와사를 어려운 병인것마냥 말한게 동생을 걱정하던 공빈을 자극해, 공빈이 안절부절하다 결국 허준을 끌어들이게 됨으로써[89] 자승자박 꼴이 난다.

결국 김병조의 치료는 양예수에서 허준에게로 넘어가버린다. 그러나 허준이 김병조를 약조한 기한 내에 고치지 못한 것 같자 양예수는 이때다 하고 허준의 손을 잘라내 영원히 의원 일을 못하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김병조가 완치되었다는 사실이 먼저 닿아 허준은 구사일생, 양예수는 어의에서 전의감으로 물러나게 된다. 사실상 3대 왕의 어의를 맡겠다는 그의 꿈은 이 시점에서 물거품이 된 것이다. 추가로 양예수가 자리이동을 하게 되어 그의 내의원 내부에서의 실권이 줄어들어 이전처럼 대놓고 정치질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양예수는 어의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내의원에서 권력을 어느 정도 쥐고 있어서 임진왜란 대피 시점에서도 허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한다.


3.10. 구일서[편집]


본명은 변돌석이 라는 백정으로 안광익이 아버지를 치료해주고 대신 사람의 신체를 해부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고자 도굴을 하다가 아버지도 죽고 도망자 신세가 된다

구일서라는 가명으로 산천땅에서 자리를 잡아 허준을 도와준다. 그러나 결국 본명이 탄로나 다시 쫒기는 신세가 되며, 거제도로 도주한다. 훗날 정여립의 반란에 적극 호응하여 민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3.11. 내의원 과거시험 치러가던 의원들[편집]


허준이 첫 내의원 과거(의과)시험을 치러가는 길에 만난 의원들. 처음엔 허준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허준의 소문은 일단 알고 있어서, 허준의 정체가 드러나자 바로 시선을 쏟는다. 자신들이 모여있던 곳에 가난한 농부 부부가 들이닥쳐서 자기 가족 좀 치료해달라 사정하자 허준을 제외한 대다수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허준의 명성을 믿고 따라나서서 농부 부부네 아버지를 치료하는 것을 도와준 것이 정상구와 우공보로, 이 두 사람[90]이 나오는 부분은 국어 교과서에서도 나온다.

  • 정상구
허준을 도와준 의원 중 하나. 봉화 출신으로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 처음에 유도지, 임오근과 주막에서 공부를 하며 등장했으며 허준이 버드네 사람들을 따라가는거보고 허준인지 하준인지 어설프게 배운 놈들이 지 실력 뽐내려고 저런다고 비웃으며 자려다가 허준이 창녕 성대감 마님 중풍을 치료한 허준이란걸 알고 경악해서 튕겨일어난다. 샘이 난 임오근이 그리 허준이가 보고싶으면 따라가라고 하자 정말로 정상구 등을 이끌고 허준이가 어떻게 사람 치료하는지 보러가자고 따라나선다. 본래 중도에 만난 허준, 우공보와 함께 과거시험을 보러 갈 뻔 했으나 버드네에서의 일 때문에 이는 무산된다.
허준, 우공보와 비교하면 셋 중 가장 개인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허준이 버드네의 빈민들을 봐주다가 시간을 지체할 거 같자 혼자서 자리를 떠서 과거를 보러가기를 택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이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낙방한 듯하다.

  • 우공보
허준을 도와준 의원 중 하나. 단양 출신이다. 허준의 소문을 들어 미리 알고 있던터라 허준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먼저 보였다. 본래 중도에 만난 허준, 정상구와 함께 과거시험을 보러 갈 뻔 했다.
허준 때문에 들르게 된 버드네 마을에서 몰려드는 빈민들 덕에 시간 지체하기 싫었던 정상구가 먼저 떠나자, 조금 더 오래 남아서 허준과 함께 빈민들의 치료를 돕는다. 하지만 둘이서 빈민들을 돌보다가 시간을 더 지체하게 되자 결국 견디다 못해 허준에게 갈길을 제촉한다. 정상구만큼은 아니지만[91] 이쪽도 현실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이 허준보다 더 강한 편이다.[92]
그러나 허준은 빈민들의 치료를 우선시해 시간을 더 지체할 것을 감수하고,[93] 그에게도 도움을 받은 빈민들은 허준에게만 매달리면서 오히려 그를 욕한다.[94] 결국 우공보는 허준을 더 기다릴 수도 없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도와줬는데도 오히려 욕이나 먹자 화가 난 끝에 허준을 뒤로하고 혼자 길을 떠나게 된다. 이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낙방한 듯하다.


3.12. 버드네 마을 사람들[편집]


허준이 내의원 과거시험을 치르러 한양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된 '버드네' 라는 마을의 빈민들.[95] '무지렁이' 란 수식어가 나올 만큼 배운 것 없고 가난에 찌들고 아프지만 그렇기에 평소 제대로 의원의 신세를 지지 못해 진료가 매우 고픈 이들이다. 자기들의 사정이 우선인 탓에 이기적이고 적반하장적인 면모도 보이지만,[96][97] 본성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며 오히려 순박하고 나름 은혜와 양심을 아는 면모도 보여준다.[98]

  • 농부 부부
병든 농부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농민들이다. 내의원 과거시험을 치르러 가는 의원들이 모인 곳에 들러 자기 아버지[99]를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허준, 정상구, 우공보를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이를 거부한다. 셋 중 특히 허준의 도움으로 자기 아버지가 낫자 둘 다 크게 고마워한다. 그러나 이 부부는 허준을 붙잡고 식사를 대접하려고 마을에서 이거저거 구하러 갔다가 마을에 허준 일행의 소문을 다 내고 만다.
자기들 때문에 허준 일행의 발이 마을 사람들에게 묶일 위기에 처하자 걱정되었는지 자기 입장만 호소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허준 일행의 사정을 대변해주고, 같이 마을 사람들을 도왔음에도 결국 박대당한 우공보를 이 둘만 끝까지 배웅해준다.

  • 농부의 아버지
허준이 진단한 결과에 의하면 반위(암)이 상당히 진행된 중환자. 그는 많이 아파서 그런지 신경이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처음엔 그는 허준도 치료비를 요구할 것이라고 여겨서 치료를 거절했으나 허준이 돈보다는 사람 목숨 구하는 일이 먼저라고 부드럽게 말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허준에게 살려달라고 빈다. 허준의 치료를 받은 뒤 몸이 어느 정도 나아지게 된다.[100] 원작에서는 반위가 이미 너무 진행돼서 몇달 안에 목숨을 떨굴 환자라고 허준이 진단하고 뒤에 등장은 없으나 위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 버드네 마을 사람들
농부 부부의 부주의로 허준 일행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병을 치료해달라고 모여든 사람들.
가난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가벼운 병도 고칠 기회가 없었으며[101] 이들 중엔 꾸준히 살펴야할 중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102] 허준 일행의 입장보단 자기들이 진료받고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인지라 허준 일행의 사정을 알아도 신경 안 쓰고 자기 병 고쳐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허준이 자기들을 위해 헌신하자[103] 할 수 있는만큼의 도움과 보답을 하려 한다.[104]
나중에 허준이 말 절도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관가로 가서 그의 억울함을 호소해, 허준이 풀려나는것에 도움을 준다. 결국 허준은 풀려나고도 과거시험을 놓쳤으나, 좌절한 것도 잠시. 한양에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마을에 들러 지난번에 미처 못 치료한 환자들마저 말끔히 싹 다 진료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 마을 촌로
버드네 마을의 어르신. 버드네 마을 사람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는걸 보면 마을에서 나름 입지가 있는 인물.
허준의 바쁜 사정을 듣고서도 슬쩍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호소하며 마을 사람들을 한나절[105]이라도 봐줄 것을 부탁하는 모습을 보인다.
허준이 환자들을 보자 마을 사람 몇몇과 함께 허준의 진료를 돕고, 허준을 위해 귀한 씨암탉을 잡고, 허준이 먹으라고 저녁상을 차려주기도 한다. 별것도 아닌 질환으로 허준을 귀찮게 하는 환자들에게 욕도 퍼부어주는 등 버드네 주민들 중에서는 허준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인물. 버드네 마을 사람들 중 아직 치료 못 받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허준과의 이별시간을 늦추려 하자 허준을 위해 그들을 가로막아준다. 이후 촌로는 마을 사람들 몇몇과 함께 허준과 이별할 땐 장원급제를 빌어준다.

  • 만석
처음 나올 때 '떠꺼머리 청년' 이라 칭해진 청년. 몸이 아픈 노모를 모시고 산다. 덩치는 산만한데 머리는 상당히 모자란 편이다. 원래 숯쟁이 집안의 아들로, 본인도 숯쟁이를 했으나 숯연기 때문에 어머니가 폐병을 얻어 고생하자 숯 굽는 것은 그만두고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머니에게 고깃국을 얻어다주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정상구와 우공보가 허준이 이름난 명의라고 호들갑을 떨자 눈을 빛내며 따라나서게 된다. 허준이 마을을 떠날 때를 노려 허준에게 한양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친 다음 외딴 곳에 있는 자기 집으로 유인한다. 사기당한걸 안 허준이 화를 내며 자기도 시간이 없다고 하자 자기 노모 고칠 것을 우선시하며 허준에게 매달리다가 안 될 거 같자 칼[106]을 들고 아예 허준을 공격한다. 그러나 허준이 왕년의 싸움실력을 보여 역으로 그를 무장해제시키고 수세로 몰아붙인다.
이후 만석의 노모가 끼어들어서 싸움이 무산되고, 그의 노모의 상태를 본 허준은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결국 치료를 해준다. 이후 허준을 위해 말을 구해다 주겠다고 하는데 허준은 그가 말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반색하며 부탁했지만, 말을 구해오겠노라 하고 말을 훔쳐왔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허준까지 말 절도 교사범 누명을 쓰고 감옥 가게 만든다.[107] 이 누명 건은 다행히 버드네 사람들의 탄원을 들은 진천현감 김상기가 해결해준다.
허준이 다시 산음에 돌아와 스승 밑에서 의원 일을 할 때 갑자기 자기 노모를 데리고 찾아와 화를 내며 자기 노모 고쳐내라고 한다. 이유인즉슨 허준의 처방전에 부자[108]가 포함되어있던 것이었다.[109][110] 이 사건 때문에 허준네 고을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허준의 나쁜 소문이 퍼지고 한동안 허준의 평가는 추락하게 된다.[111]
이후 그는 허준이 어머니 병을 고칠 때까지 허준네 집에서 술주정을 부리며 죽치고 있다가, 어머니의 병이 낫자 바로 기뻐하며 울고 웃는다.

  • 만석의 어머니
만석의 아픈 노모. 허준이 치료를 위해 부자탕을 복용하게 해서 몸상태가 호전된다. 이후 아들의 말 절도 탓에 허준까지 누명을 쓰자 관원들에게서 허준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려 허준을 감싸기도 하고, 버드네 마을 사람들에게 허준의 소식을 알려준다.
그러나 만석이 계속 희석하지 않은 부자탕을 과다복용시킨 탓에 실명하게 된다.
이후 허준이 그녀의 눈을 고치자[112] 떨어지던 허준의 평가가 도로 호전된다.

나중에 허준을 존경해 따르는 의녀 '미사'가 스스로 버드네 사람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라고 밝힌다. 미사가 허준을 존경하게 된 데에도 버드네에서 허준이 무상진료를 해준 일과 관련이 있다.

이들의 행적을 요약하자면 여러모로 허준에게 곤경도 주고 기회도 준 사람들. 허준은 이 사람들 돌보다가 과거시험도 놓치고 말 절도범이란 누명도 썼지만 이들을 위해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헌신한 끝에 유의태의 눈에 다시 들었다. 그리고 허준의 처방전과 환자 사후처리 문제로 인해 버드네 출신의 자기 환자가 맹인이 되는 사고가 벌어졌지만 그 환자를 완벽하게 고쳐냄으로써 다시 한 번 명의로써의 입지를 다지고 평가를 회복한다.


3.13. 이명원[편집]



허준보다 햇수로 3년 선배로 부자연한 감정을 떠나 동료로서의 우정을 보인다

3.14. 미사[편집]


허준이 내의원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만난 의녀. 버드네 마을과 같은 지역 출신이기에 허준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큰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113] 허준의 내의원 시절 초기부터 임진왜란 피난 시절까지 온갖 고생을 같이 하면서 허준을 충실히 따른다.


3.15. 정작[편집]


소윤의 거물 정순붕의 아들으로 실존인물이다.

소윤 몰락 후에 의원의 길을 걷는다. 즉 양반 출신 의원, '유의'이다. 양예수의 독재에 맞서 내의원을 개혁을 꿈꾸면서 허준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다.

3.16. 선조[편집]


당시 조선의 왕. 후궁 중 공빈 김씨를 매우 총애해 공빈의 동생 김병조에게도 어의를 붙여주는 특혜를 배풀었다. 그러나 공빈 김씨가 죽고 나자 다른 후궁의 슬하에서 본 어린 왕자들에게 더 관심을 주는 모습이 나온다.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왜군이 수도까지 점점 다가오자 원래 역사에서처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궁을 버린 후 피난간다.[114]


3.17. 공빈 김씨[편집]


허준이 내의원이 되었을 적에 선조에게 가장 총애받던 후궁. 그녀는 선조와의 사이에서 가장 먼저 아들을 둘(임해군, 광해군)이나 본 후궁이었고 선조의 총애를 등에 업어, 왕족도 아닌 자기 남동생 김병조에게 내의원 어의를 붙여줄 정도의 영향력이 있었다.

그녀는 성격이 크게 모난 사람은 아니나 동생 걱정이 과하고 동생 일에 공사구분을 흐리게 한다는게 문제였다. 그녀가 가진 '총애받는 후궁' 의 권세는 그녀의 동생 김병조가 내의원인 허준에게 선을 넘는 패악질을 부르는데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115] 그녀 자신은 김병조보다는 공사구분을 하는 편이기에 김병조가 허준에게 부상까지 입히자 이 건으로 김병조를 꾸짖고 허준을 보호해줌으로써 허준의 우군이 된다.[116][117]

이후 셋째아이(딸)를 출산하다가 난산 과정을 겪고 사망한다. 확실한건 태아가 출산될 때 머리가 아닌 다른 신체부위부터 나왔다는 것이지만,[118] 어째서인지 그녀의 자세한 사망 원인은 왕실 내에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에둘러졌다.[119] 실제로 그녀가 난산을 겪고 사망한 이유는 그녀가 춘약(...)을 복용한 것이 몸을 악화시켰고 출산 때까지도 악영향을 준 것이었다. 공빈 김씨가 스스로 몸을 악화시켰다가 죽게 된 것은 왕의 총애를 잃지 않기 위한 그녀 나름의 발버둥의 결과였다.[120]

그녀의 사후 선조의 관심과 총애는 그녀가 낳은 아들들(임해군, 광해군)에서 다른 후궁들과 그녀들이 더 늦게 낳은 왕자들에게로 옮겨간다.


3.18. 공빈 김씨 소생 왕자들[편집]


선조와 공빈 김씨의 장남. 소설 내에서 임해군은 원래 역사에서처럼 엄청난 망나니로 나오진 않는다. 임진왜란 편이 묘사되기 전에 작품이 미완결 유작이 된 탓인지, 임해군은 작중에서 그렇게까지 인상 뚜렷한 행적을 보인것도 아니고 비중도 크진 않다. 어릴때야 갓난쟁이라 대사도 없고 그나마 10대에 들어서 키가 훌쩍 커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공빈이 죽은 후 신성군에 홀딱 빠진 선조를 보면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면서 공빈이 총애한 허준을 불러 종종 대화를 나누곤 한다. 다만 나중에 망나니가 되는 것을 암시하는 듯이 선조가 신성군만 총애하네 어쩌네 떠드는 것이 위험하는 것을 알고 입단속을 하는 광해군과 달리 서슴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아 광해군이 옆에서 말린다.

선조와 공빈 김씨의 차남. 소설 내에선 아직 어린아이로 나온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총애는 순식간에 동생들에게로 돌아가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광해군은 허준을 포함한 내의원 사람들에게 좀 더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려서는 허준의 자녀들이 있다는 말에 동무를 하고 싶으니 상궁들 치마폭에 숨겨서 데려오라고 어린 꾀를 내는 귀여운 모습이 주로 나오지만 나중에 일찍 철이 들어 임해군을 제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구상된 원고에서는 허준에게 영창대군을 총애하는 아버지가 세자를 바꾸지 않게 자신의 편이 되달라고 부탁하지만 허준이 의원은 의원의 직무만 할 뿐이라고 거절하자 그와 틀어졌다가 다시 화해한다는 플롯이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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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은 고혈압[2] 작가의 말 대신 실린 편집자의 말에서는 심장이 터졌다(!)는 표현을 썼다.[3] 예를 들어 만화 초반부에 나오는 궁중 용어와 문화는 소설 동의보감의 표현을 상당수 차용한 것이다. 두 작품의 해당 부분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수 있다(...) 인터넷에 널리 알려진 '왕이 중전이나 후궁과 동침할 때 옆 칸에 나이든 상궁들이 들어가 앉아 감시한다.'는 이야기도 이 소설에서 묘사된 내용을 옮긴 것이다.[4]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허준에서는 22회에서 다뤄졌다.[5] 유도지는 허준의 글솜씨를 보고 처음에는 석공이 쓸줄도 모르는 글을 새기는 것처럼 흉내내는 정도로 생각했으나, 허준이 자신도 어려워서 손놓은 어려운 의서를 몰래 가져다 읽는 걸 보고 그의 학식이 높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식으로 교제를 청하게 된다.[6] 여기에 유도지가 취재 응시 썰을 풀면서, 허준을 가리키면서 첫번째 시험이 약재 서른 댓가지를 불러주는대로 한자로 써야 하는 것이니 이 사람 정도는 글을 배워야 한다고 하여 허준이 여기에 자신감을 얻는다.[7] 구일서(변돌석)가 무덤을 파헤치려고 한 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를 잡다가 받쳐서 죽을 뻔한 것을 안광익이 구해줘서 그가 인체해부를 갈망하는 것을 알고 그에게 해부용 시신을 구해주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다가 들통났었는데 원작에서는 구일서가 스스로 나선 것이지 안광익이 요구한 것은 아니다.[8] 산삼 세뿌리, 오사 한마리를 잡아서 바로 약방을 떠났다.[9] 약초꾼으로 더이상 풀릴 길이 없자 유의태에게 욕을 하고 자신의 애인 병사 하녀 유월이를 데리고 떠났는데 이후 거창에서 유의태 문하에서 쌓은 약초지식으로 약재상을 차려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돈다.[10] 중국 의서 득효방에 나온 '전녀위남법'으로 돈벌자고 하지만 의서에 나온 것일뿐 실제로 되지않는 사기에 가깝다.[11] 드라마상 재미를 위해 유의태는 침술, 김민세는 탕약, 안광익은 부술의 대가로 각각의 전공분야가 다른 것으로 나오는데, 돌 지난 핏덩이에게 수술을 했다는 말에 유의태는 드물게 탄식같은 탄성을 내지른다.[12] 1999년 허준에서는 구침지희를 이야기해주는건 유도지다.[13] 나중에 밝혀지지만 양예수는 유의태의 침술이 뛰어난 것에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 + 자신이 후계자로 점찍은 김민세의 자리도 위헙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유의태를 떨어뜨린 것이 맞았다.[14] 안광익은 양예수가 아니라 31세의 젊은 유의태가 먼저 제안했다는 말에 유의태가 자기보다 몇년은 빨랐다고 탄식한다.[15] 이때 기생 한명이 끼어들어 저래서야 닭이 아니라 고슴도치 꼴이 아니냐면서 미물이라지 어찌 불쌍하지 않냐고 농담한다.[16] 안광익의 언급을 보면 나중에 소문이 발전하여 유의태가 침묵하는 양예수의 입을 부젓가락으로 지졌다는 둥 비수로 억지로 열었다는 둥 하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17] 임오근은 급기야 영달과 함께 소주를 퍼마시면서 만약 유의태가 자신이 아니라 허준을 수제자로 삼으면 반드시 안광익의 존재를 고변하여 유의태 집안을 파멸시키겠다고 이를 간다. 한편 영달은 허준이가 지 잘난 맛에 마구 침 쑤시다가 다리 부러져서 올 것이라고 낄낄댄다. 사실 임오근도 허준이 중풍 고칠 리가 없다고 믿으면서 유의태가 하필 허준 보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18] 이때 허준이 왈패들과 어울려 살아본 적이 있어서인지, 중권에서 보기보다 전투력이 제법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19] 이 부분이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20] 여기까지는 허준 본인이 버드네 마을 사람들의 빈곤하고 아픈 사정을 두고볼 수 없어서 자기 시간을 희생한 것이긴 했다.[21] 이 버드네에서의 사건 때문인지 중권에서 허준의 지인이 '웬수 같은 버드네' 란 말을 한 번 했다.[22] 이 청년은 허준이 계속 다른 사람들을 고쳐주고 떠날 때를 노려서 한양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겠다고 허준을 속이고 자기네 집에 가서 병걸린 노모를 봐주게 유도한 것이었다. 청년 입장에서야 자기 사정이 급해서 그랬다지만 허준 입장에선 뜬금없이 당한 민폐 그 자체. 물론 이때쯤 허준도 정말 시간이 없어서 크게 화를 내고 길을 뜨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 입장만 호소하며 막무가내로 허준을 붙들고 늘어진다. 그러다가 청년은 허준을 붙잡기 위해 기어이 허준 상대로 칼질까지 시전하려든다. 이 칼도 마을에서 도둑질한거다 허준은 이 때 보따리로 청년의 칼을 막고, 왕년의 몸싸움 실력을 선보여 청년을 무장해제시킨다.[23] 청년이 허준에게 노모를 고친 대가로 말을 주겠다고 했다. 허준은 그가 정말로 말을 가진 줄 알고 기뻐했지만 가난한 청년에게 그런게 있을리가 없었다. 청년은 허준을 위해 남의 말을 훔치려다가 걸려버렸다. 고을 관리들은 청년을 잡은 후 허준이 청년에게 말을 절도해오라고 시킨 줄 알고 허준까지 함께 도둑 취급을 했다.[24] 하필 허준의 아내 이다희의 정혼자 김상기였다.[25] 버드네에서 무료로 의료봉사를 해주느라 과거까지 못 보게 된 것.[26] 그냥은 아니고 환자들의 비방을 모두 허준 스스로 작성하게 하고 유의태에게 인정받는 시험을 치렀다.[27] 유의태는 이 과정에서 허준을 받아준 반면 자기 아들과 수제자를 내쳤다. 허준과 달리 그의 아들(유도지)과 수제자는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내의원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만 생각하고 어려운 백성들을 내쳤기 때문이었다.[28] 청년이 허준의 처방전 중 초기 처방전만 꾸준히 계속 노모에게 복용하게 만들어서 과다복용한 약의 독성으로 시력을 잃은 것이었다. 허준이 청년의 노모의 상태를 낫게 하기 위해 만든 처방전 중에 부자가 있었다. 부자는 급한 상태의 환자의 상태를 완화시키는데 효력이 있으나, 독성이 강한 약이어서 장기적으로 쓸 때는 에 희석해서 써야 했는데 허준이 당시 급하게 처방을 쓴 것과 청년이 일자무식이어서 부자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던 것, 허준의 처방대로 약을 준 동네 의원은 돈만 받느라 부자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은것, 마지막으로 고을 현감이 청년에게 약 지으라고 돈을 많이 준 것이 합쳐져서 대환장 사태를 만들었다.[29] 치료 마지막 단계에서는 유의태의 지시 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노모를 치료했다. 물론 이것도 유의태가 허준을 한 사람의 의원으로 독립시키려는 의도였다.[30] 이때 사람들은 환자의 위중함보다는 허준 VS 유의태로 의술실력 서열놀음(...)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31] 상태가 말기암이어서 치료방도가 없다고 나온다.[32] 신체에 대한 유교적 인식 탓에 해부를 꺼리는 그 당시 의료계의 풍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갓 사망한 시신을 탐구할 기회를 제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유의태는 얼음골이라는 은밀한 곳에서 자살한다.[33] 얼음골은 이름대로 한여름에도 얼음이 끼어서 녹지 않는 장소인데, 은밀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여름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시간을 벌 목적도 있었다[34]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유의태의 친구 둘이 설득하여 의지를 잡고 스승을 해부하고 해부된 인간의 신체를 똑똑히 눈에 새기게 된다. 하권에서 임진왜란 관련 서술을 보면 이 때 허준이 스승을 해부하지 않았더라도 시체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겠지만.[35] 혜민서는 한양에서 일반 백성들을 치료해주는 내의원 부서이다. 혜민서는 다수의 백성들을 상대하는 의료소인만큼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어서 업무강도는 매우 높으나 취급이 박한 곳이다. 내의원들은 여기 발령되지 않으려고 다들 발을 동동 구른다. 대다수의 내의원들은 어려운 과거까지 보고 궁에 입성한만큼 왕실 인원들만 전담하는 편하고 명예로운 직급만 원하기 때문.[36] 허준의 선배 내의원이 된 유도지도 허준처럼 유의태와 접점이 있었기에 (허준은 유의태의 제자, 유도지는 유의태의 친아들. 그리고 양예수는 유의태에게 의술로 패배한 이후 그에 대한 악감정이 매우 강하다) 양예수에게 찍혀 혜민서로 발령날까봐 전전긍긍하다 허준과 편먹고 이 사태를 피하려고까지했다. 정작 양예수는 유의태에 대한 조롱으로 유도지의 자리를 늘 좋은 곳으로만 배정해줬다.[37] 그가 개인의 영달이나 안위에 신경쓰지 않고 가난한 민중을 진심으로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내의원 권력구도 따위에도 관심이 없고 거기에 더해 유의태 관련자라는 이유로 양예수에게 찍혀서 친한 사람들이 내의원 내에서도 얼마 없었다.[38] 한편 양예수 중심의 권력구도로 돌아가는 내의원 체제를 고치려는 관리 '정작' 이 그를 양예수의 대항마로 눈여겨보게 된다.[39] 그가 혜민서에서 일하던 시절 그는 일이 끝난 다음에도 자기 집으로 몰려든 백성들을 무료로 진료해주었다. 그러나 혜민서 의원은 엄연히 공직이기에 혜민서 일 외에 추가로 의원을 더 꾸려선 안 되었다. 허준이 비록 무료로 의료봉사를 한 것이지만 규정에 걸릴 위험이 있는 짓을 무단으로, 그것도 장기적으로 한 것도 사실. 나중에 양예수 일파에게 이 사실이 걸려서 허준이 위기에 처할 뻔 하기도 한다.[40] 정작은 양예수의 의중에 따라 양예수 파벌이거나 양예수에게 위협이 안 될법한 사람들만 좋은 자리를 얻고 허준처럼 실력이 있어도 양예수에게 사적인 악감정을 사거나 위협이 된답시고 견제당하는 내의원 실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양예수의 기세를 꺾고 내의원 체제 개혁을 노렸다. 마침 양예수와 같은 시기 같은 증세를 지닌 환자를 허준이 진료하자 딱 양예수와 허준을 비교감으로 삼아 허준이 잘 되기를 노린 것.[41] 김병조는 왕족은 아니나 선조의 총애를 받는 공빈 김씨의 남동생이었다. 공빈은 가족이라고 김병조를 아꼈고 권력과 위세를 이용해 김병조가 어의에게까지 진료받을 수 있게 해줬다. 김병조는 안 그래도 성격이 좋지 않았는데 누나 덕을 보게 되자 내의원들 상대로도 패악질을 부릴 정도로 거들먹거렸다. 게다가 자기 기준으로는 빨리 낫지 않는데 자꾸 침 박고 약 먹고 하는지라 짜증이 누적된 것도 있었다.[42] 허준 말고 양예수도 김병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예수는 김병조를 이용해 자기의 명예를 드높이고 어의 자리를 확고히 할 생각밖에 없어서 그 당시 불치병이던 암에 대한 사실은 숨겼다. 그리고 웬만한 의원들도 닷새 안에 고치는 쉬운 병인 구안와사 쪽만 밝히고 고치려고 한 것.[43] 그냥 다친 정도가 아니라 무거운 바둑판을 집어던져서 그걸로 발등을 찧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였다고 언급된다[44] 공빈은 김병조와 허준이 있는 곳으로 오다가 김병조가 허준을 패악질로 괴롭히는걸 다 들었다. 그리고 공빈은 김병조가 허준에게 바둑판을 던져 발을 다치게 하는 것도 모두 봤다. 김병조가 아무리 총애받는 후궁의 동생이라도 이런건 선을 넘은 짓이었다. 그래서 공빈도 보다못해 김병조를 꾸짖고 허준더러 김병조에게 가거든 자기에게 미리 연통을 넣으라고까지 했다. 이유는 허준이 다음에도 혼자가면 또 김병조의 패악질에 시달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45] 사흘 내로 암과 구안와사 모두 고치겠다고 했는데 사흘 되는 시점의 유시까지도 차도가 안 보였다.[46] 구안와사 증세와 암의 특징인 멍울 모두 없어졌다.[47] 한편 양예수는 허준을 치워버리는데도 실패했고, 본인 역시 김병조가 암환자임을 알았지만 이를 부러 밝히지 않았다는 것까지 제 입으로 실토하는 바람에 자승자박한 꼴이 되었다. 그는 두 차례 왕을 모신 어의였고 3대째 왕의 어의도 맡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이 사단으로 인해 본인의 실책이 드러나고 전의감 쪽으로 직책이동을 당한다. 양예수 일파였던 그의 후계자뻘 의원은 내의원 대다수가 가기 싫어하는 혜민서 쪽으로 좌천되게 된다.[48] 외국 사신이 오면 사신의 상태를 보기 위해 왕실에서 내의원 의원을 붙인다. 이 직책은 말도 없이 일행들을 따라다녀야하는 고된 직책이기에 내의원들 사이에선 혜민서처럼 별로 인기 없는 직책이다.[49] 이시진은 강직한 의원이자 관리였지만 어느 시점에서 권력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전국을 해매며 약초 찾고 책 쓰느라 대외적 소식은 끊긴 상태라고 한다. 즉 허준이 접선할 수 있는 사람들 중 이시진의 행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50] 정작 모델이 된 인물인 유이태는 허준보다 150년은 더 후대의 인물이다.[51] 유의태는 당시 불치병 취급받던 반위(암)를 앓는 환자를 고쳐낸 적도 있었다.[52] 그가 양예수를 실력으로 앞질러버린 것도 있고, 당시 양예수가 밀어주던 후계뻘인 내의원 김민세의 길을 닦고자 양예수가 경쟁자의 위험이 있는 유의태를 내친 것도 있다. 여하튼 내의원 내부의 권력과 관련된 정치질로 인해 내의원 자리를 얻지 못한 것.[53] 단 여기에는 설정충돌로 보일 수 있는 점도 있다. 유의태는 작중 초반 치료될 가망이 없어보이는 환자가 방문하자 진료를 거부하고 '송장이 걸어들어왔다'라는 퉁명스러운 일갈로 환자를 돌려보내기도 하며, 불치병(간경화 내지 간암으로 추정)에 걸린 환자에게는 '자네는 결혼하지 않았으니 일찍 죽어도 여한은 없다'라며 직설적으로 시한부 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강조하는 '병자에 대한 배려'와는 거리가 있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다만 유의태가 '살릴 수 있는 병자는 최선을 다해 구제하되, 가망 없는 병자에게는 다가올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또한 의원의 역할'이라는 가치관에 역점을 뒀다면 이러한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유의태가 죽음을 담담히 달관하는 생사관을 가졌다는 사실은 허준을 위해 자진을 택한 그의 최후 행보를 통해 입증되기도 한다.[54] 부인 오씨는 아들 유도지와 비슷하게 속세의 이득과 명예를 추구하는 성격이며 아들을 아꼈다. 그런데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아들을 갖다가 남편이 그저 자기랑 안 맞는다고 내쳐버리니 화가 난 것.[55] 힘이 장사로 묘사된 안광익이 똥집이 무겁다고 투덜될 정도다[56] 양반가[57] 유도지는 몰랐으나, 양예수가 유도지에게 요직을 쥐어준건 유의태를 조롱하기 위한 의도였다. 양예수가 보기에 유도지는 그렇게 특출난 의술을 지닌 자는 아니라고 한다.[58] '유의태 네가 출중한 의원이라 뻐겼지만 결국 네 아들을 이 정도 수준으로밖에 키워내지 못했다' 정도의 의미였다고 한다. 어의 자리에 집착한 양예수는 김민세 정도를 예외로 뒀을 뿐, 차기 어의가 될만한 경쟁자를 견제하고 도태시키는 정치질을 임기 내내 서슴지 않았다. 즉 유도지는 궐내 요직에 배치해봤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할 평범한 재능이라는 조롱을 양예수로부터 받은 셈이다.[59] 유도지는 유의태의 아들임에도 유의태의 의술을 은근히 경시하고 있었다. 전국의 모든 의원들이 몰려드는 내의원 취재에 입격한 자신과는 달리, 유의태는 비록 명망은 높지만 산골 의원으로서 은인자중하고 있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준이 유의태의 가르침대로 불치병인 반위를 치료하자 유도지는 비로소 유의태의 의술이 어의 양예수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임을 깨닫게 된다. 뒤늦게나마 부친 유의태에게 못난 아들로서는 참회를, 부족한 의원으로서는 존경심을 느낀 것.[60] 이 과정에서 내쳐진게 유의태. [61] 마침 문둥병 환자들이 병을 낫게 하려고 사람의 장기를 먹으려고 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물론 속설대로 한다고 병이 나을 리는 없고 오히려 문둥병 환자들의 인상만 흉흉하게 할 뿐이다.[62] 부부와 두 딸.[63] 김민세의 아들 길상이의 옷.[64] 나중에 양예수가 김민세가 이 소년을 거뒀다는 이야기를 듣자 '네 자식을 잡아먹은 문둥이의 아들' 이라고 부른다. 소년이 직접 김민세의 아들을 해친건 아닐지 모르나 이전의 정황으로 봤을 때 (문둥병자 가족의 집에 김민세의 아들의 신발이 발견되었고, 김민세의 아들과는 접점이 거의 없을 문둥병 소년이 김민세네 아들의 옷을 걸친 채 김민세에게 다급히 나는 사람을 해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자기 아버지가 그 옷을 줬다고 하는 점, 사라진 김민세의 아들은 문둥병자네 집에 남은 신발 한 짝과 문둥병자 가족의 아들의 옷으로만 그 흔적이 남았을 뿐 본인이 산 채로 등장하지 않은 점 등) 김민세의 아들은 소년의 가족이자 김민세가 죽였던 그 문둥병 가족들에게 죽임당했다는게 확실해보인다. 그리고 문둥병자 부부가 자기 아들에게 김민세네 아들의 옷을 시체로부터 빼앗아 입혀줬던 걸로 보인다.[65]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부터 존재한 한센병 환자의 어린아이 간 빼먹기라는 괴담을 반영한 이야기이다. 무려 조선왕조실록에 이 괴담을 현실로 만든 사례가 실렸을 정도이다. 이외에도 태국에서도 1950년대에 한센병 환자가 자기 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어린아이를 죽여 잡아먹은 사례가 실제로 존재했다.[66] 김민세의 지인들이 김민세가 거둔 양자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는 말을 했다. 김민세는 소년에게 원한감을 가지지 않은 반면 소년은 김민세에게 분명히 원한을 가지고 있으며 뒷치기할 우려가 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김민세도 안광익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그의 양자에 대한 경고를 들었지만 양자에게 그의 가족을 죽였던 사건으로 인해 보복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넘겼다.[67] 이유는 역시 문둥병과 관련이 있었다.[68] 정씨가 안광익에게 왕자의 치료를 맡긴 이유는 정씨의 부모님이 안광익의 치료를 받아 씻은듯이 나은 적이 있기 때문.[69] 허준이 막 유의태 문하에 들어간 시점에서 임오근은 유의태의 제자가 된 지 8년째를 맞이했다. 유의태의 제자 중 임오근 다음가는 연배는 7년차에 접어든 부산포이다.[70] 황초는 조선시대에 보편적으로 쓰인 촛대 중 하나로서 원통형의 밀랍으로 만들어져 누런 빛을 띤다. 황밀초라고도 불린다. 즉 '황초잡이'는 불 밝힌 황초를 받쳐들고, 의원이 주야에 관계없이 환자의 환부 등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인 것. 작중에서는 유의태의 진료행위를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기에 뭇 제자들이 선망하는 보직으로 묘사된다.[71] 1999년 MBC 드라마 '허준' 등을 통해 코믹한 호감형으로 변모한 임오근의 캐릭터는 원작 소설에서의 임오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드라마 버젼의 임오근은 다소 약삭빠른 면모는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유들유들하고 친근하며 소탈한 캐릭터이다. 반면 여기서 소개하는 원작 소설의 임오근은 의원의 위신만을 앞세워 늘 병자들에게 무뚝뚝한 자세로 일관하고, 경쟁자로 여긴 허준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해 폭력까지 휘두르는가 하면, 결국 유의태의 문하를 떠나면서 스승인 유의태에게도 절도와 폭력을 가하는 인성 나쁜 소인배이다.[72] 그나마도 부산포의 경우 글을 쓸 때 온갖 종류의 서체를 함부로 뒤섞어 쓰며 소위 '체계없이 배운 티'를 마구 낸다.(...) 결국 유의태의 제자들 중에서 허준을 제외한다면 학식을 제대로 갖췄다 할 수 있는 인물은 임오근 하나인 것.[73] 이는 임오근을 포함한 제자들이 체계적인 의술 교육을 받지 못하는 까닭이 크다. 유의태는 제자들에게 '알아서 배워라'란 마인드로 각종 잡일이나 맡길 뿐 그 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의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나마 임오근 및 부산포와 같은 고참 제자들은 주요 보직을 맡아 유의태의 진료행위를 지근거리에서 보고 들을 기회가 있으니 비교적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꺽새나 허준처럼 짬이 부족한 제자들은 약초나 캐고 물이나 긷는 막노동을 도맡으며 기약없는 세월을 보내는 형편이다. 후일 임오근을 수제자로 인정한 유의태가 유도지의 내의원 취재 공부에 임오근이 합석하는 것을 허용하자 임오근은 적극적으로 학습에 임한다. 적어도 다른 제자들처럼 '게을러서' 의술 역량을 키우지 못한 케이스는 아니라는 것.[74] 이 대목에서 임오근은 가마에 앉아 길을 떠날 허준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렇게 되는 것이야말로 내 평생의 소원'이라고 곱씹는다. 그가 허영심에 쩔어 의원을 지망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 가마에 실려 지체높은 자의 병을 진료하러 가는 허준의 부담감과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할지는 안중에 없다.[75] 이 부분에서 굳이 허준의 경쟁상대를 꼽으라면 유도지라면 몰라도 임오근은 아니었다. 이미 유의태의 부재시에 병자의 진료까지 유도지가 도맡는 마당에, 임상 경험조차 변변히 쌓지 못한 의원 코스튬 플레이어(...) 임오근을 왜 유도지를 제쳐놓고 파견하겠는가? 더군다나 창녕 성대감은 제법 권력이 있는 인물이라 임오근 같은 얼치기를 함부로 보낸다면 감당 못할만큼 뒷일이 커질 수 있었다.[76] 경쟁자인 허준이 없어진 이상 수제자 자리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유의태를 해코지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또한 이 시점에서 유의태는 창녕 성대감 댁에 2차 진료를 갈 때 임오근을 동행시키고, 유도지의 취재 시험공부에 임오근이 참석하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임오근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황초잡이 등 허드렛일이나 시켰던 초반 전개와 비교하면 아무리 수제자로 인정했다 해도 임오근에 대한 대우가 너무나 달라진 것이다. 유의태가 소개장 건으로 허준을 모함하는 임오근의 의도를 '진정한 의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의 직언'(...)으로 오인한 나머지 이런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을 개연성이 있기는 하다.[77] 허준이 이미 산음땅을 떠났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78] 임오근은 격노한 유의태 앞에서 '서방님이 그 병자들을 따라갔더라면 낙방이 확실했을 것'이라며 유도지의 역성을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책임을 피하지 못할 마당에 오히려 매를 번 것.[79] 임오근은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유의태를 죽이겠다는 각오를 했다.[80] 내원한 병자의 신상명세 및 병의 호전상황과 처방내역 등이 적혀 있는 기록지. 임오근은 술에 취할 때 유의태의 병부들만 확보하면 의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근자감을 자주 보여주었다. 유의태와의 관계가 막장까지 다다르자 결국 실행에 옮긴 것이다.[81] 다만 그가 유의태에게 이와 같은 짓을 한 것은 나름대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임오근은 무려 14년 동안 의술을 배워 자립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유의태 밑에서 아무런 금전적 댓가 없이 황초잡이 등의 잡무를 도맡았다. 그러한 14년간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병자를 외면한 유도지를 방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의태에게 파문 통보를 받은 것이며,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게 도와달라는 마지막 부탁조차 무시당한 것이다. 물론 유의태가 한때나마 임오근을 수제자로 여겨 직접 의술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취재에 응시하도록 도운 정황은 있다. 그러나 겨우 그것이 14년간의 무급노동에 대한 만족스러운 보상이 될 수 있겠는가?[82] 이 임오근이란 캐릭터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임오근이 한때 계획했던, 안광익의 수상쩍은 행적을 고발해 유의태를 음해하겠다는 음모가 결국 맥거핀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 이은성의 작고로 미완성된 최후반부 내용에 따르면 안광익은 동의보감을 완결한 노년의 허준과 동행해 의약 연구에 전념하기로 되어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안광익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다고는 볼 수 없으니 결과적으로 임오근이 안광익과 궁녀를 고발하지 않았거나, 고발했더라도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유의태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와도 같이 결별한 임오근의 행보치고는 그 뒷얘기가 빈약한 감이 있다. 물론 유의태가 이 시점으로부터 오래잖아 별세하기 때문에, 안광익을 고발해 유의태를 해코지한다는 임오근의 계획이 '때를 놓쳐서' 유야무야되었을 개연성은 있다. 혹은 임오근 자신도 유의태의 슬하를 뛰쳐나올 때 절도와 폭행을 범했기 때문에, 뒤가 캥겨 공권력을 이용해 볼 생각을 차마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83] 병자를 오만하게 내려다보곤 하는 임오근의 품성을 고려한다면 사실 그런 면마저도 '잡스러운 인간들과 흥정하기는 싫어서'가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84] 당나라 시대의 간신배로 정치질과 권모술수에 있어 철저하기로 유명했다.[85] 둘의 정치질의 방식이 비슷하다. 둘 다 자기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이들에게 주로 자리를 줘서 편먹기를 시전하고, 자기에게 위협이 될만한 이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이용해 견제하는걸 반복하는 행보를 보였다. 차이점이라면 이임보의 경우 직접적인 거대 파벌을 만들지 않고 자기 편들과도 적당히 거리를 뒀지만, 양예수는 대놓고 자기를 위시하는 파벌을 내의원 안에 떡하니 만들어놨다.[86] 허준은 내의원 과거시험 수석 합격자이기 때문에 처음 자리를 배정받을때 좀 더 좋은 곳에 발령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예수의 유의태 관련 악감정과 정치질로 인해 대다수 내의원들이 가기 싫어하는 혜민서 자리에 보내지게 되었다.[87] 유의태가 제안한 구침지희 대결(각자의 닭에게 침 9개를 찔러넣어, 닭이 죽는 측이 지는 대결) 에서 지는 바람에 "유의태는 조선 천하 최고의 명의다"라고 세 번이나 말하는 굴욕을 겪었다.[88] 반위(암)는 지금도 고치기 어렵고 옛날엔 고친다를 떠나 거의 불치병 취급이었다. 양예수처럼 실력이 뛰어난 의원도 고칠까말까 하는 위험부담이 큰 병이니 괜히 반위라는 사실을 알려 자기가 그 병을 진단한 책임까지 지는 위험부담을 지기는 싫었던 것.[89] 우연의 일치로, 양예수와 허준은 동시기에 구안와사 환자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준이 자기가 담당한 구안와사 환자를 나흘만에 치료한게 공빈의 귀에까지 들어간것. 사실 여기엔 허준을 양예수의 대항마로 삼으려던 정작이 어느 정도 손을 쓴 것도 있었다. 양예수도 이를 눈치채고 나중에 정작에게 뭐라고 하며 앙심을 품는다.[90] 사실 세 사람이 될 뻔했으나 한 사람(이름이 나오지 않는다)은 버드네가 너무 오지에 있어 시간이 걸리자 중간에 따라가길 포기하고 되돌아갔다.[91] 정상구는 자기에게 불이익이 미칠 것 같자 바로 자리를 떴지만, 우공보는 허준과 남아서 어느 정도의 시간적 불이익을 감수한걸 보면 정상구보다는 조금 더 이타적이라고 할 수는 있다.[92] 허준은 반대로 빈민들에 대한 이타심이 너무 강해서 우공보가 답답하게 볼 만큼 비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헌신하는 면모를 드러낸다.[93] 우공보에게 먼저 가라고까지 한다. 막상 혼자서 버드네 사람들의 치료를 반복하다가 지치게 되자 우공보가 남아있으면 도움이 되었을거라 잠시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와서[94] 허준과 우공보의 태도가 다르긴 하나 결국 둘 다 갈길이 많이 남은 과거 응시생들이었다. 이들은 말도 없고 문자 그대로 걸어서 닷새 안에 제천에서 한양까지 가서 시험장에 자리잡고 시험을 처야했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의과는 정기적으로 시험이 실시되지도 않아 지금 놓치면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장장 1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바로 다음해에 다시 치러진 건 순전한 요행). 하지만 그들에게로 모여 치료를 요청하는 버드네 빈민들은 평소 보기 힘든 의원이 자기들을 무상으로 진료해주자 당장 그들을 붙잡고 자기 병을 고치는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런건 알 바 아니라는 태도를 더 많이 보였고, 자기들을 잘 봐주는 허준을 자꾸 떠나게 만드려는 우공보를 일단 아니꼽게 본 것이다. 우공보 입장에선 그들의 태도가 배은망덕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보였겠지만 말이다.[95] 이들 역시 국어 교과서의 소설 동의보감이 실린 부분에 나온다.[96] 허준이 급하다는 사정을 농부가 말해줘도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매달린다던가, 허준과 함께 자신들을 도와준 우공보가 허준에게 당연히 가야할 길을 재촉하자 자기들에게서 허준을 데려갈까봐 걱정되어 외려 나쁜놈 취급하고 욕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인다. 허준에게 사기친 청년도 허준을 속였으면서 적반하장식으로 허준에게 칼빵까지 먹이려들었다.[97] 이기적인 모습이지만 비난할 수만은 없다. 누구나 남의 사정과 자기 또는 자기 피붙이의 목숨(글자 그대로 의미) 중에서 비교하면 후자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작중에도 '본시 남의 골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 병자의 심리올시다' 라는 말이 나온다.[98] 허준에게 먼저 도움받은 농부는 자기로 인해 허준이 곤경에 처하자 허준의 입장을 대신 항변해줬다. 마을 촌로도 허준이 자기들 때문에 희생을 치르고 있음을 알고 약속된 기간이 되면 허준을 보내주자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마을 사람들도 허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서 없는 살림에 허준에게 씨암탉을 대접하려 하거나 밥상을 대접해주는 등 나름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준에게 사기치고 그를 해하려 했던 청년도 허준이 노모를 치료해주다가 절도범으로 몰리자 노모와 함께 몸을 던져 허준 대신 관원들에게 매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허준이 말 도둑이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자 버드네 사람들은 허준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관가로 가서 호소하여 그를 구명하는데 성공했다.[99] 농부 아내에겐 시아버지.[100] 허준은 그를 치료한 후 농부 부부가 비싼 약을 의원에게 처방받을 처지가 못 됨을 알아서 농부 부부에게 일상에서 구하기 쉬운 약재들을 구해 처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101] 지역 의원들 입장에선 돈이 안 되기에 이런 환자들을 저가나 무상으로 진료해주지 않는다. 즉 이들이 진찰을 받으려면 거금이 있어야하는데 다들 빈민이어서 돈 쥐기는 하늘의 별따기. 게다가 이들은 무지해서 상태를 방치하거나 의도치않게 처신을 잘못해서 악화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가진 병이 악화되는것도 시간문제. 중증을 앓는 사람들이라면 허준같이 실력이 높으면서도 무상진료를 해주는 의원을 만난다는 우연이라도 얻지 않는한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102] 허준은 그들의 이런 신세를 보고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해 기꺼이 과거시험장까지 갈 시간을 허비하기로 한다.[103] 이 당시 허준은 과로사하지 않을지 의심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을 진료하기 위해 엄청나게 과로했다. 며칠간 먹지도 자지도 않을 정도.[104] 버드네 사람들은 없는 살림에 허준을 위해 상도 차리고,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땡전 몇 푼을 모아 허준에게 노잣돈으로 쓰라고 주기까지 한다.[105] 하루의 5~6시간쯤. 반나절은 하루의 3시간쯤이다.[106] 버드네 마을의 집들 중 한 곳에서 훔친것이다.[107]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허준이 관원들에게 맞을 것 같자 만석이 몸으로 허준을 감싸는 모습을 보이고 자기 잘못일 뿐이며 허준은 죄가 없다고 항변하며 빨리 한양에 보내주라고 울부짖는다.[108] 투구꽃에서 나오는 한약재. 독성이 강해 다룰 때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약이다.[109] 허준은 만석이네 사정에 부자탕을 계속 복용시킬 순 없을거라 해서 1회성 처방으로 부자탕을 먹이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만석이 말 절도 사건 이후 허준과 함께 풀려나면서 그를 동정한 고을 현감은 어머니 돌보라면서 제법 많은 돈을 쥐어주게 되었고, 약에 무지했던 만석은 초기 처방전만 가지고 (약이 잘 듣는거 같으니) 계속 부자탕만 먹였다. 원래 부자는 독하기 때문에 꿀을 써서 중화를 해야 했지만, 절기상 꿀을 구하기 어렵자 만석은 그냥 꿀을 빼고 부자탕을 뻔질나게 지어서 어머니에게 먹였고 동네 의원도 부자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고 계속 초기 처방전대로만 약을 처방해줬다. 요약하자면 만석의 노모는 아들에 의해 눈이 먼 것이었다.[110] 허준은 만석이 초기 처방 이후 사후처리를 잘못했음을 분명히 말했지만, 본인도 만석의 무지와 그들 가족의 사정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것을 반성했다.[111] 작중에서 사람들이 비난할 거리가 생기면 흥미 위주로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나온다.[112] 치료 중반까지는 유의태의 지시를 따르고, 유의태의 의도에 따라 (= 언제까지 남의 치료방식만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 치료 마지막 단계에선 남의 지시 없이 스스로의 방법으로 그녀를 치료했다.[113] 처음에 그녀는 허준에게 존경심과 동경으로 시작해서 점점 존경심 외에 연심도 품게 되었다. 그러나 허준은 엄연히 아내가 있었기에 미사에게 그런 쪽으로 관심을 주진 않았다.[114] 그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과 신하들이 피난간 후 비어버린 궁은 나중에 궁에서 일하던 하인들에 의해 불타고 약탈당한다.[115] 공빈 김씨의 동생 김병조는 원래 성격이 좋지 못한 자였으며 공빈의 권세를 등에 업어 더욱 교만한 자세로 행패를 부렸다.[116] 그러나 이후 김병조가 병 갖고 뭐라고 하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허준이 김병조의 병을 고치는데 성공하자 다시 우군이 된다.[117] 그녀와 김병조의 아버지는 강직한 성품이어서, 왕족도 아닌 아들의 사적인 병으로 내의원까지 동원하는 자식들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118] 이를 의학용어로 비정상위, 이상 태위라고 한다. 태아가 거꾸로 있거나(둔위, 역아) 태아가 가로로 누워있거나(횡위), 태아가 산모의 등뼈와 45도를 유지하게 되거나(사위) 등이 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해있어도 안면위, 이마위 등 정상위보다 비정상적인 태위도 있다. 출산의 때가 가까워질 때에도 태아의 위치가 비정상적이라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한다. 지금이야 의료기술의 발달로 사전에 확인 가능하고 수술로 산모와 아기 모두 살릴 수 있지만, 옛날엔 출산 전까진 태아의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없었기에 이 건으로 난산-사망에 이르는 산모들이 꽤 되었다.[119] 허준같은 내의원들 대다수에게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120] 궁 내부의 여인들은 왕비부터 궁녀까지 모두가 왕을 둘러싼 경쟁구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공빈 김씨는 이런 상황에서 총애를 잃지 않고자 매력을 유지하려고 춘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그녀의 몸을 망치고 끝내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