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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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형과 형태
2.1. 스란치마
2.2. 끌리는 스란치마
2.3. 쌍스란치마
2.4. 대란치마



1. 개요[편집]


조선 여성의 예복용 치마. 치마는 예복용과 평상용이 있는데, 스란치마는 적의(翟衣)나 원삼(圓衫), 당의(唐衣) 등의 예복 차림을 할 때 같이 입는 예복용 치마이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민가에서도 혼례를 치를 때 신부가 착용하였다.


2. 유형과 형태[편집]


스란치마는 평상용 치마보다 치마의 폭이 넓고 길이가 길며, 치마의 무릎 부분이나 밑단에 스란단을 배치한다. 스란단은 무늬를 금사(金絲)로 짜 넣거나, 금박(金箔)을 직접 찍거나 금박 찍은 스란을 덧대는 형태로 장식한다.

스란치마는 배치된 스란단의 수에 따라 1단과 2단으로 나타나며, 스란단의 위치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스란단이 1단 있는 경우, 16세기에는 치마 중간인 무릎 부분에 위치하지만, 조선 말기로 가면서 치마 하단으로 내려간다.

출토 유물을 보면 모란, 연꽃, 포도, 동자 등 다양한 문양이 나타난다.

파일:전통 여성 혼례복.jpg

혼례를 할 때 입기도 했다.


2.1. 스란치마[편집]


파일:스란치마(덕혜옹주)_국립고궁박물관.jpg
덕혜옹주 별문생고사 부금 스란치마[1]

스란단이 한 줄만 있는 경우에는 스란치마라고 한다.


2.2. 끌리는 스란치마[편집]


파일:다운로드.jpeg-53.jpg

원주원씨 스란치마

파일:원씨1.png

파일:원씨2.png

은진송씨 스란치마

파일:송씨1.png

파일:송씨2.png


2.3. 쌍스란치마[편집]


파일:스란치마(청주한씨)_석주선기념박물관.jpg
청주 한씨 스란치마[2]

위의 출토 복식은 중종문정왕후의 딸인 의혜공주의 손녀[3]광주 이씨 가문의 이집일(李執一: 1574~1613)에게 시집 갔다가 일찍 죽으면서 함께 묻힌 의복이다. 치마 중간 부위에 28cm 너비로 동자포도무늬를 금실로 짠 스란단을 두 줄로 댄 것을 볼 수 있다.[4] 이렇게 스란단이 두 줄일 때는 '쌍스란치마'라고 한다.

전교하기를, "남색 비단 동자(童子) 포도(葡萄) 쌍슬란(雙膝襴)과 연변(蓮邊)에 이금(泥金)으로 그린 치맛감 9폭을 대궐로 들이라." 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10년 5월 23일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이 말한 '쌍슬란(雙膝襴)'이 바로 쌍스란치마이다.


2.4. 대란치마[편집]


파일:대란치마(영친왕비)_국립고궁박물관.jpg
영친왕비 별문단 부금 남대란치마[5]

조선 후기로 가면, 치마의 무릎 부분과 하단에 스란단이 1단씩 배치되는 '대란치마'가 등장한다.

즉, 17세기 이전에는 2단의 스란단이 치마의 무릎 부분에 있는 형태의 '쌍스란치마'였다가 17세기 이후에는 스란단이 각각 치마의 무릎 부분과 하단에 놓인 형태의 '대란치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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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혜옹주가 입던 옷으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영친왕 부부로부터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던 것을 2015년 국립고궁박물관에 다시 기증하였다. [2] 1979년 4월 20일 경기도 시흥시광주 이씨 선산에서 이장 작업 중에 출토된 복식 유물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3] 의혜공주는 청주 한씨 가문의 청원위 한경록을 부마로 맞이하였으므로 손녀도 청주 한씨인 것. 이름은 알 수 없다. [4] 치마 맨 끝에는 스란단이 아니라 금선(金線)을 두른 것이다. [5]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