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번 W. 바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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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35대 부통령
앨번 윌리엄 바클리
Alben William Barkley


파일:앨번 바클리.jpg

출생
1877년 11월 24일
미국 켄터키주 그레이브스 카운티
사망
1956년 4월 30일 (향년 79세)
미국 버지니아주 렉싱턴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재임기간
제35대 부통령
1949년 1월 20일 ~ 1953년 1월 20일
정당


서명
파일:바클리 부통령 서명.svg
학력
에모리 대학교
버지니아 대학교 법학대학원
배우자
도로시 브로워 바클리(사별)
제인 러커 해들리 바클리(재혼)
자녀
데이비드 바클리 외 2녀
종교
개신교 (감리회)[1]
의원선수
5(상원)
7(하원)
의원 대수
63 ~ 69(하원)
70, 73, 76, 79, 84(상원)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기타



1. 개요[편집]


미국의 제35대 부통령


2. 생애[편집]


1877년 켄터키주에서 태어났다. 바클리에게는 7명의 남매들이 있었고, 부모는 농부였다. 그는 에모리 대학교버지니아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후 그는 법률가가 되어 검찰관과 재판관을 지냈다.

그 후 그는 1912년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7선을 하다가 1926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되며 상원 의원이 되었다. 그러다 1948년 바클리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 제의를 수락하였고 미국 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제 35대 미국 부통령이 되었다.

부통령 재임기간 그는 자신의 의회에서의 오래된 정치경력을 토대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갔다.[2] 그런 그는 트루먼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였으나[3], 나이와 민주당 내 압박 등 여러 리스크 때문에 대통령이라는 꿈을 포기하였다.

그 후 전직 부통령의 신분으로 1954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였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상원의원 취임 1년 후인 1956년 사망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필요시 선거인단)
당선 여부
비고
1912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켄터키 제1선거구


22,591 (64.47%)
당선 (1위)
초선
1914
18,407 (65.90%)
재선
1916
30,029 (63.67%)
3선
1918
19,998 (66.78%)
4선
1920
50,635 (64.34%)
5선
1922
9,492 (69.96%)
6선
1924
41,861 (66.95%)
7선
1926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켄터키 제3구역
286,997 (51.84%)
초선
1932
575,087 (59.15%)
재선
1938
346,735 (62.03%)
3선
1944
464,053 (54.81%)
4선[4]
1948
미합중국 부통령 선거[A]
미합중국
24,179,347 (49.06%, 303명)
초선
1954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켄터키 제1구역
434,109 (54.46%)
5선[5]


4. 기타[편집]


  • 첫 번째 부인이 사망하자 자신보다 30살 이상이 어린 제인 러커 해들리 바클리와 결혼하였다.

  • 1912년부터 1954년까지 자신이 출마한 모든 선거에서 전승을 하였다.

  • 바클리의 손자가 부통령 재임시절 Veep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이는 현재 미국 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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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로회 집안에서 자랐고, 본인도 장로회 신자였으나 감리회로 개종하였다.[2] 사실 이 당시만해도 부통령이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부통령의 권한이 강해진 것은 월터 먼데일 이후[3] 사실 이때는 대통령의 3선 이상을 금하는 수정헌법 25조가 이미 나왔었다. 그러나 이는 트루먼의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나왔기 때문에 트루먼은 수정헌법에 영향을 받지 않고 3선이상 계속 출마할 수 있었다.[4] 1949년 미합중국 부통령 취임을 위해 사퇴[A] 대통령 후보는 해리 트루먼[5] 전직부통령 신분으로 당선, 1956년 사망[6] Veep이라는 미국 부통령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도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