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카와 세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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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반딧불이의 묘(1988) 세이타.jpg

요코카와 세이타
Seita Yokokawa /横川 淸太

성별
남성
나이
향년 14세[1]
가족
부모님, 여동생 요코카와 세츠코
직업
고베 중학교 3년생
성우
일본
타츠미 츠토무
한국
김일

1. 개요
2. 상세
3. 작중 행적
4. 평가



1. 개요[편집]


반딧불이의 묘의 주인공.


2. 상세[편집]


고베 출신으로 중학교 3년생. 작중 만 14살. 아버지는 일본 해군 장교(대위)로, 과거 회상이나 숙모의 말로 비추어 볼 때 원래부터 꽤 부유한 집안으로 묘사된다. 군국주의 시절인 일본 제국에서 아버지가 일본 제국 해군의 장교였으니, 그 가족인 세이타네는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3. 작중 행적[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5년 6월 5일 일어난 고베대공습 당시 먼저 대피한 어머니와는 니혼마츠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이 지나가고 집합 장소인 세이타가 졸업한 국민학교#에서 재회한 어머니는 공습에 휘말려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다음 날 사망하고 만다.

이 때문에 늦둥이 여동생 세츠코와 니시노미야에 있는 먼 친척 아줌마네 집에 가서 신세를 지게 되지만, 친척 아줌마한테 구박을 받으며 지내다가 결국 친척 아주머니의 잔소리에 견디다 못해[2] 세츠코를 데리고 친척집을 나와 근처 방공호로 옮겨 산다.

친척집을 나오고 처음 얼마 동안은 남매끼리 보금자리를 꾸려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곧 생활비가 떨어지자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문에 지금껏 조금씩 거래해오던 농가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농가 아저씨도 자기네들도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라며 거절하고, 지금이라도 친척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급에 도움 되는 생활을 하는게 어떻냐며 조언을 하지만, 그래도 세이타는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점점 암울해져가는 생활 중에 세츠코가 영양실조에 걸려 앓게 되자[3],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남의 밭을 털다가, 들켜서 실컷 얻어맞고 파출소에 끌려 가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습 상황에서 빈집털이를 하며 생계를 겨우 이어 나간다.

후반부에 세츠코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해지자, 세이타는 어떻게든 세츠코를 살리려고 고베로 가서 어머니가 남긴 저금을 찾던 중 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했고 아버지가 승선했던 순양함대도 난파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아버지의 사망도 짐작하게 된다. 그래도 당장 세츠코를 살리는 게 급선무였기에 세츠코에게 수박을 먹이고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하지만, 결국 이날 세츠코는 죽는다. 원작에서는 이미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연못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돌아와 보니 세츠코는 죽어있었다. 결국 세츠코를 화장하고 방공호를 영영 떠났다.

한 달이 지난 뒤 세이타는 산노미야역에서 거지꼴[4]을 한 채 부랑아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방공호를 떠난 세이타는 폐허가 된 거리 위를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지내고 있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돈도 다 바닥난 뒤라서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조차 못 하고 굶주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9월에 접어들면서 암시장이 열리자 그곳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혹한 세이타는 입고 있던 옷에 신발까지 다 팔아치워가면서 얼마 동안이나마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다.[5] 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 팔 물건조차 없는 신세가 되자 아예 기차역 구내 기둥에 기대어 자리잡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처지가 되었다. 작품 맨 첫 부분의 고개를 푹 숙인 채 산노미야역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는 세이타가 보이는데, 부랑아가 되어버린 세이타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이타는 방공호를 떠난 뒤로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굶는 날도 계속되자 야윌대로 야윈 세이타의 얼굴이랑 몸은 온통 때로 뒤덮였고 지독한 악취까지 풍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옷차림이라도 멀쩡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배가 너무 고파 입고 있던 옷에 신발까지 팔아치우는 마당에 새 옷을 사 입을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거리 위에서 떠돌아다니는 나날이 계속되자 바지랑 런닝셔츠는 완전히 누더기가 되어버렸고, 비위생적인 상황이랑 겹쳐 이까지 생겨났다. 신발도 팔아버려 맨발로 다녀야 했지만 눈 앞에 닥친 굶주림에 비하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옷가지에 신발도 다 팔아치우고 나자 다시 굶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행인들이 세이타를 불쌍히 여겼는지 가끔씩 먹을 걸 주고 지나가서 그걸로 굶주린 배를 달랠 수 있었다.[6] 하지만 그나마도 매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물로 허기를 달래는 날이 늘어만 갔다.

맨발에 누더기옷을 걸친 남루한 행색을 한 데다가 제대로 씻지 못해 몹시 지저분했던 세이타는 역무원들이랑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무시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행인들은 굶주림에 지쳐 주저앉아있는 세이타를 보고 막말을 하곤 했으며, 역무원들은 종종 세이타를 역 밖으로 내쫓았다.[7] 그렇게 쫓겨났다가 한 번 산노미야역 구내로 다시 들어오면 아예 기둥에 기대어 자리잡고 주저앉아 뿌리를 내리다시피 하며 어떻게든 버텼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 거리 위를 헤매는 것보다는 거지 취급을 받더라도 역 구내에서 지내는 게 더 나았다. 운 좋게 행인들이 동정심에 주는 음식도 얻을 수 있었고, 역 화장실에서 수돗물이라도 마음껏 마실 수 있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을 정도로 버티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물로 허기를 달래는 날이 계속되자 영양실조로 인한 설사까지 점점 심해졌다. 이미 세이타는 방공호에서 생활할 때부터 만성적인 설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부랑아 생활을 하며 굶는 게 일상이 되자, 돌이킬 수 없이 심해진 나머지 지독한 설사가 계속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로 뛰쳐들어가야만 했다. 다리에 힘이 빠진 나머지 한 번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겹게 되었다. 일어날 때 다리가 후들거려 한 손으로 벽을 짚은 채 기둥에 몸을 기대야만 했고, 그렇게 해서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중에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버려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은 채 앉은 자리에서 한걸음도 못 움직이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사가 멈춰줄 리 없었고, 코 앞에 있는 변소에 기어갈 힘조차 없어진 세이타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설사를 하고 말았다. 앉은 자리 주변으로 계속 배설물이 번져 누렇게 변하자 부끄러워진 나머지 도망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고, 결국 급한 대로 손 닿는 범위 안에서 흩어져 있는 먼지로 누런 부분이나마 덮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손 닿는 범위가 한계가 있다 보니 그것마저도 잘 되지 않아 자리 주변으로 누런 배설물이 번진 채 그대로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맨발에 누더기옷을 걸친 몹시 지저분한 소년이 앉은 자리에서 설사를 하고, 그걸로 모자라 주변으로 번진 배설물 위로 손을 막 움직이고 있으니 지나가는 행인들이 보기에는 굶주림으로 미쳐버린 부랑아가 자기가 싼 똥을 가지고 노는 걸로 보였다.[8]

결국 세이타는 1945년 9월 22일 밤[9], 앉아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객사하고 만다. 죽기 얼마 전부터는 의식이 흐려져 초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 힘도 없어 푹 숙여야만 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가자 부랑아 생활 내내 자신을 괴롭혀왔던 배고픔이나 갈증도 더 이상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옆으로 쓰러졌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죽기 직전에는 날짜 감각조차 상실한 나머지 오늘이 며칠인지 계속 생각하지만 결국 못 떠올리고 죽고 만다. 이 날은 세츠코가 방공호에서 죽은 뒤 정확히 한 달이 지난 날이었고 전쟁고아법이 통과한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부랑아가 된 뒤로 하루하루 굶주림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세이타는 자신이 죽은 날이 며칠인지 생각조차 못 했다.

굶어죽은 세이타의 시체는 거적떼기조차 덮여주는 이 없이 쓰러진 채로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윽고 밤이 되자 역무원들이 세이타가 쓰러져 죽은 걸 발견하고, 또 (부랑아가)죽었냐고 말하며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온통 이로 들끓고 있는 옷 속에서 세츠코의 뼈가 담겨있던 캔을 발견하지만 다른 역무원이 그냥 버려라고 하는 바람에 세츠코의 뼈는 그대로 역 밖으로 내던져지고 만다. 이후 역무원들은 기둥마다 자리잡은 부랑아[10]들을 살펴보다가, 세이타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한 어린 부랑아 소년을 보고, 눈이 흐리멍텅한 게 죽을 때가 멀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11] 시체는 다른 죽은 부랑아들의 시체와 함께 화장되어 납골당에 무연불로 안치된다.

영화는 사후세계에서 재회한 것으로 보이는 세이타와 세츠코가 함께 영화가 개봉된 당시인 80년 대[12]에 고층 빌딩이 들어선 고베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만약 남매가 요절하지 않고 80년대까지 살아있었더라면 아마 세이타는 50대 중후반이며 세츠코는 4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4. 평가[편집]


영화나 애니에서 이런 류의 캐릭터는 대부분 소년소녀가장 속성을 지닌(즉,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이 바짝 든 애어른 캐릭터)인 반면에, 세이타는 그렇지 않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철없는 중학생의 모습 그대로이며 이런 묘사가 현실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 역시 지속적으로 구박은 해도, 밥을 따로 먹는 상황에서도 세이타가 안 치우고 그냥 둔 설거지거리를 궁시렁 대면서 설거지를 하는 등 아예 나쁘게 대한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입이 늘어난 것에 대한 걱정과 배급활동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지 않는 세이타를 보면서 식량부족에 대한 불안에 계속 쪼아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묘사에서도 빈둥빈둥 놀고 있는 세이타를 보고 어이없어 하는 숙모의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초반에는 공습 이후로 일하던 공장과 학교가 타버려서 못 간다는 이야기에 납득은 해주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후 저녁에 공장에 일하는 하숙인에게 전황에 관해 물어보는데 하숙인은 '다른 공장이 타버려서 남아있는 공장에 일거리가 전부 몰리고 있다'는 말을 한다. 즉, 세이타는 마음만 먹으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에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놀고먹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으며 이 외에도 철없이 피아노를 치며 세츠코랑 노래를 부르는 행동에 결국 화가 난 친척 아주머니가 지적을 하자 아니꼽다는 표정을 짓는다. 밖으로 안 나간다고 쳐도 철부지 동생 간수라도 잘 하고 집안일이라도 빠릿빠릿 하면서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면 친척 아주머니가 미미하게나마 그를 조금 더 좋게 봤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따로 도쿄에 있는 친척도 있지 않냐는 말을 하며 사라지자 주소를 모른다고 칭얼거리기만 한다.

사실 세츠코가 오래 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원래는 부잣집에서 늘 잘 살았고 가난한 환경들로 바뀌었고 무턱대고 자립심들도 많이 부족한건 사실이다. 8월에 접어들면서 세이타와 세츠코는 돈이 떨어져 가진 물건들을 팔아 먹을 걸 마련하고, 나중에는 그나마도 구하지 못해 개구리를 잡아먹고 심지어 공습 중에 도둑질까지 하는 등 비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남매의 유일한 희망이던 아버지도 죽은 것으로 밝혀져 친척집을 제외하고는 거두어 줄 사람이 없는 천애고아가 된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세이타는 친척집에서 스스로 뛰쳐나왔기 때문인지,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고생하면서도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최소한 세츠코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유일한 연줄인 친척집에 도움을 요청이라도 하는게 합리적인 생각이었지만, 세이타의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세츠코의 죽음은 전적으로 자존심 때문에 여동생을 죽게 만든 세이타에게 책임이 있다.

[1] 시대 배경을 통해 1931년생으로 추정. 한국 나이로 치면 16살. 세츠코와 마찬가지로 영양실조 및 아사.[2] 사실 친척 아줌마가 구박했다고 해봐야 친척 남매들과 식사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부분과 잔소리를 듣는 수준이었다. 평화시에도 자기 아이 키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하물며 어려운 전쟁통에 남의 아이를 맡아주는 상황이라면 그 정도 대우는 특별히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즉, 어려운 시절에 기여도가 없는) 세이타 남매에 대한 차등 대우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시는 전시 배급 체제라 도나리구미에 속해서 방화활동 등을 하면 구청에서 나온 배급계에서 쌀이나 식량 물품을 암시장보다 훨씬 싼 값으로 살 수 있었다. 배급이라고 해서 공짜는 아니었고 배급표와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 친척어른 입장에서 보자면, 세츠코는 4살밖에 안 되니 이해해도 이미 중학교 3학년인데도 아무것도 안 하는 세이타가 얄미울 만도 하다. 다만, 원작에서는 세이타는 방화활동에 참여하지만, 감독이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한다.[3] 세츠코를 목욕시키려고 옷을 벗기니, 영양실조로 인해 온통 종기가 나 있고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해 돌멩이를 음식이라고 하면서 먹는 상황까지 간다.[4] 이 때 세이타의 모습이 작품 초반부에 적나라하게 보여지는데, 다 해져 누더기가 된 바지와 런닝셔츠 한 벌만 몸에 걸친 채 맨발로 다니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이타에게 배고픔과 가난은 남의 일이었지만, 방공호에서 나온 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남루한 모습을 하고 하루하루 버티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5] 처음에는 어머니의 유품이자 유일하게 세이타에게 남아있던 물건인 낡은 기모노를 팔아서 보름 정도를 연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입고 있던 교복이랑 다리에 차고 있던 각반에, 신발까지 팔아서 먹을 걸 구해야만 했고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마지막으로 남은 바지마저 팔 생각을 할 정도로 비참함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결국 바지는 팔지 않는 걸로 했지만, 이미 세이타의 모습은 누더기옷을 걸치고 맨발로 다니는 등 거지와 다를 바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사실상 거지신세가 되어버린 세이타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는 기차역 밖에 없었고, 결국 아예 산노미야역 구내에 자리잡고 그곳을 거처로 삼아 부랑아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6] 피난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먹을 걸 챙겨서 왔는데,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더 이상 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음식들을 기차역 구내에 자리잡은 부랑아들에게 주고 갔다. 세이타도 가끔 운좋게 먹을 걸 얻을 수 있었는데, 사실상 역 구내 화장실에서 수돗물로 물배를 채우며 연명하던 세이타에게는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7] 애니 판에서는 행인들이 세이타보고 “더럽다, 죽었나, 미군들이 들어오는데 역에 이런 게 있다니”라고 한마디씩 내뱉고 지나가는 걸로 묘사된다. 드라마에서는 더욱 적나라하게 묘사되는데, 세이타의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앉아있던 부랑아 소년보고 지저분한 녀석이라고 욕하면서 빗자루로 쳐서 쫓아내고, 옆에서 구걸하던 다른 소년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온다.[8] 생각해보면 매우 비참한 상황인데, 이제 세이타는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기어갈 힘도 없어 앉은 자리에서 설사를 하고 소변을 보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움직일 힘이 없는 이상 먹을 걸 구하러 역 밖으로 나가거나 물을 마시러 갈 수도 없게 되었다. 누가 세이타 주변으로 먹을 걸 가져다주거나 움직이는 걸 도와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배고픔과 갈증으로 고통받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지나가는 행인들은 단지 굶주림에 정신이 이상해진 부랑아가 앉은 자리에서 똥오줌을 지리고, 그걸 가지고 노는 걸로 오해를 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9] 한국의 날이었으면 광복절 해방 후 한 달 뒤에 사망했다는 뜻이다.[10] 산노미야 역에는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수십명이 역 구내 기둥마다 기대어 주저앉은 채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11] 세이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부랑아들은 옷에 신발까지 다 팔아버린 뒤였고, 더 이상 팔 물건도 없어 먹을 걸 구할 수 없게 되자 물이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산노미야 역으로 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음식은 거의 못 먹고 물로 배를 채우며 연명하다보니 영양실조에 걸리는 건 기본이었고, 결국 세이타처럼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하나둘씩 쓰러져 죽어나갔다. 눈에 초점이 사라진 시점이면 이 소년도 배고픔 속에서 물로 배를 채우다가 결국 움직일 능력조차 상실한 채 앉은 자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12] 반딧불이의 묘가 일본에서 개봉된 날짜는 1988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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