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남무 법전

덤프버전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83D8B 0%, #445C91 20%, #445C91 80%, #483D8B);"
[ 펼치기 · 접기 ]


파일:code_of_ur_nammu.jpg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우르남무 법전의 모습.

1. 개요
2. 상세
2.1. 내용



1. 개요[편집]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성문법.[1] 인지도는 함무라비 법전이 넘사지만 사실 이쪽이 300년 이상 더 오래됐다. 우르 제3왕조의 초대 국왕 우르남무가 기원전 2100년에서 기원전 2050년 사이에 만들었다. 함무라비 법전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상징하는 법전들 중 하나로 꼽힌다. 서판 내용은 수메르어로 기록되어 있다.


2. 상세[편집]


우르남무 법전의 첫번째 사본은 현재 이라크니푸르 지방에서 두쪽난 채로 발견되었다. 이후 미국의 아시리아학자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2]가 1952년 번역했다. 하지만 번역 당시에도 법전 사본이 두 조각이 나버린 상태였고, 글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을 정도로 훼손 상태가 심해서 서문과 5개 조항만을 겨우 해독했을 정도였다고. 훗날 크레이머는 우르남무 법전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운이 좋았다고 회고하기까지 했다. 현재 이 사본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서 고이 보관 중이다. 이후 우르에서 더 많은 서판들이 발견되며 총 57개의 법전 조항들 중 30개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서문에는 우르 제3왕조의 초대 국왕 우르남무가 법전을 직접 썼다고 명시해놨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우르남무의 아들이자 우르 제3왕조의 최고 명군으로 꼽히는 슐기 왕이 법전을 작성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법전은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보다도 300년 일찍 만들어진 법전으로, 훗날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다른 법률에도 영향을 줬다. 예를 들어 '~했을 경우, ~로 처벌한다' 식의 조항 구성이 이 우르남무 법전에서 유래했고 서문-본문-결문 식의 구성도 여기서 왔다.

함무라비 법전과 다른 점도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에 충실한 함무라비 법전과는 달리, 우르남무 법전은 신체적 상해를 입혔어도 폭력 대신 재물로 보상하도록 했다. 물론 살인, 강도, 간통, 강간 같은 중범죄는 얄짤없이 사형을 때렸다.

우르남무 법전은 세계 최초의 성문법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당시 우르 제3왕조의 사회상을 보여준다는 점에도 그 가치가 높다. '루갈'이라 불리는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유민 계급과 노예 계급으로 나뉘었다. 자유민 계급은 '루'라고 불렀고 노예 계급의 경우 남자는 '아라드', 여자는 '젬'이라고 불렀다. 자유민인 루 계급은 결혼하기 전 청소년 시절까지는 '두무-니타'라고 불렀으며 결혼해서 가정을 차리고 나면 '구루스'라 불렀다. 자유민 여자는 '무누스'라 불렀는데 결혼 전 처녀일때는 '두무-미', 결혼한 유부녀는 '뎀', 사별한 과부는 '누-마-수'라 했다. 과부는 재혼이 가능했다.

1탈렌트는 60미나이며 1미나는 60셰켈이다. 참고로 1셰켈은 8.3g 정도 쯤 된다.


2.1. 내용[편집]


우르남무 법전의 서문은 전형적인 메소포타미아식 서문으로 우르남무에게 왕권의 정통성을 수여한 난나우투 신을 언급하며 '대지의 평등'에 대해 써놓았다. 아래의 내용은 우르남무 법전의 서문, 그리고 그 아래는 총 57개의 법조항 가운데 현재까지 보존된 30개의 조항이다.

엔릴우르의 왕권을 난나에게 넘긴 이래, 그때 닌순에게서 태어난 아들 우르남무가 그를 낳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공평과 진실의 원칙에 따라,... 그런 다음 우르의 왕이자 수메르아카드의 왕인 강력한 전사 우르남무가 도시의 영주 난나의 힘으로 우투의 진정한 말씀에 따라 그 땅에 평등을 확립하였다. 그는 저주, 폭력, 다툼을 추방했고 월간 보리 90구르, 양 30마리, 버터 30실라를 성전에 바치도록 하였다. 그는 청동으로 만든 실라 도량형을 제작했고 1미나를 표준화하였으며, 1미나에 맞추어 한 셰켈의 은을 돌 무게에 맞추었고,... 고아는 부자에게 팔려가지 않았고 과부는 힘센 자에게 넘어가지 않았으며 한 셰켈의 사람이 한 미나의 사람에게 팔려나가지 않았다.

- 우르남무 법전의 서문.


  • 1.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면, 그 자를 죽인다.
  • 2. 사람이 절도를 저지르면, 그 자를 죽인다.
  • 3. 사람이 납치를 저지르면, 그 자를 감금하고 15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 4. 노예가 다른 노예와 결혼하고, 그리고 그 노예가 자유로워진다면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 5. 노예가 다른 자유민과 결혼한다면, 그 노예는 가장 먼저 낳은 자식을 제 주인에게 바쳐야 한다.
  • 6. 사람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다른 사람의 처녀 아내와 사통한다면, 그 사통한 남자를 죽인다.
  • 7. 사람의 아내가 다른 사람을 원하여 잠자리를 함께 하면, 그 여자를 죽여도 된다. 허나 남자는 풀어준다.
  • 8. 사람이 강압을 받아 다른 사람의 여자 노예와 잠자리를 함께 하면, 그 남자는 5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 9. 사람이 첫 아내와 이혼한다면, 남자는 여자에게 1미나의 은을 물어야 한다.
  • 10. 만일 이혼할 아내가 이미 이전에 한번 이혼을 당했던 여자라면, 남자는 여자에게 반 미나의 은만 물어도 된다.
  • 11. 만일 남자가 과부와 그 어떠한 결혼 계약도 없이 정을 통했을지라도, 그 어떠한 은도 물지 않아도 된다.
  • 13. 사람이 주술을 벌인 혐의로 고발되었다면, 로 정화시험을 치러야 한다. 만일 무고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를 고발한 자는 3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 14.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간음한 죄로 고발했다면, 그리고 강의 시련을 통해 아내의 무고가 입증되었다면 그녀를 고발한 사람은 은 3분의 1 미나를 갚아야 한다.
  • 15. 예비사위가 예비장인의 집에 들어갔다면, 하지만 예비장인이 예비사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의 딸을 주었다면, 예비장인은 기존 예비사위에게 예비사위가 가져왔던 지참금의 2배를 되돌려주어야 한다.
  • 16. 만일 (...)[A]한다면, 그는 2 셰켈의 은을 재어 주어야 한다.
  • 17. 만일 노예가 도시 경계 밖으로 도망쳤다면, 그리고 어떤 자가 노예를 잡아 주인에게 되돌려주었다면, 주인은 잡아준 자에게 2 셰켈의 은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 18.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쳐서 빠지게 하였으면, 반 미나의 은을 재어 주어야 한다.
  • 19.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발을 잘랐다면, 10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 20. 사람이 난투 중에 몽둥이로 다른 사람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면, 그는 1미나의 은을 물어야 한다.
  • 21. 사람이 청동 칼로 다른 사람의 코를 잘랐다면, 그는 3분의 2미나의 은을 물어야 한다.
  • 22.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빨을 쳐 빠지게 하였다면, 그는 2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 24, 만일 (...)[A]한다면, 그가 노예를 소유하고 있다면, 그는 10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만일 그가 노예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그는 그가 소유한 다른 것으로 대신 물어야 한다.
  • 25. 사람의 여종이 제 여주인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무례하게 군다면, 소금 1리터로 그녀의 입을 씻도록 한다.
  • 26. 만일 여종이 제 여주인의 권위를 빌어 행동하는 자를 때린다면, (...)[A]한다.
  • 28. 사람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위증한 것이 밝혀진다면, 그는 15 셰켈의 은을 물어야 한다.
  • 29.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이 선서를 철회한 경우에는, 소송가액의 범위 내에서 변제를 해야 한다.
  • 30. 만일 사람이 남의 땅을 몰래 경작하다가 고발당한다면, 그는 토지의 소유권을 거부당하고 경작물을 빼앗긴다.
  • 31. 만일 사람이 물길을 터서 남의 밭에 홍수를 내어버렸다면, 그는 물에 잠긴 토지 1이쿠 당 3 쿠르의 보리를 물어야 한다.
  • 32. 만일 사람이 소작 목적으로 토지를 빌려주었는데, 토지를 빌린 자가 농사를 짓지 않아 황폐하게 되었다면 그는 지주에게 1 이쿠 당 3 쿠르의 보리를 물어야 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1 00:59:29에 나무위키 우르남무 법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사실 엄밀히 따지면 '세계 최초의 성문법'은 아니다. 초기 왕조 시대에 '우루카기나 법전' 이라는 게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 이것은 기원전 24세기 도시국가 라가쉬의 왕 우루카기나가 만든 법전으로 연대만 따지면 우르남무 법전보다도 더 오래됐다. 하지만 우루카기나 법전은 원본이 아예 소실된 상태고, 다른 유물에 언급되거나 인용되는 식으로만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성문법은 우르남무 법전이 맞다.[2] 러시아-유대계 미국인이며 수메르 역사와 수메르어의 최고 전문가. 아시리아학에 관해서만큼은 세계 최고 석학으로 꼽힌다.[A] A B C 텍스트가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