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르 카시야스/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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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 이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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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에서 또 다른 레전드와 악수하는 카시야스

카시야스는 1997 FIFA U-17 월드컵에 차출되면서 국가대표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스페인 U-17 축구 대표팀은 이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했는데, 그는 이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다. 그 후 카시야스는 후에 17세 이하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다. 2년 후 그는 같은 해에 FIFA 세계 유소년 챔피언십과 UEFA-CAF 자오선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처음에는 후보였지만, 그는 클럽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어 곧 주전으로 도약했다.

카시야스는 2000년 6월 3일 19세 14일의 나이로 스웨덴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UEFA 유로 2000에는 스쿼드에 뽑혔으나,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에 밀려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명단에 등록되었다. 처음에는 유로 2000때와 마찬가지로 카니사레스의 후보로 뽑혔지만, 카니사레스가 샤워를 하다 향수병이 떨어져 힘줄을 다치는 어처구니없는 부상을 당하면서 졸지에 카시야스는 겨우 만 21세의 어린 나이에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그는 16강 아일랜드전에서 페널티 킥승부차기에서 2번을 막아내며 스페인의 8강 진출을 이끌어내는 영웅으로 등극했다. 8강전에서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지만[1] 승부차기에서 패배 탈락[2]의 쓴 맛을 맛보았다.[3]

2002 월드컵: 5경기 5실점


2. UEFA 유로 2004, 그리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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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카시야스는 스페인 국대에서 페널티 킥, 공중 볼 그리고 예능에 강점을 가진 리버풀의 골키퍼 페페 레이나나 비야레알의 디에고 로페스, 플라잉 니킥과 1:1 상황에서는 탁월한 실력을 자랑하며 발을 이용한 빌드 업에도 혹은 상대 선수에게 패스함으로써 경기를 뒤집는 크랙적인 능력에도 능한 바르셀로나의 빅토르 발데스, 10년 동안 후보였다가 이적해서 주전 되더니 사모라 상 덜컥 받아 버린 안드레스 팔롭, 마누엘 알무니아 등 우수한 골키퍼들을 밀어내고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카시야스는 유로 2004 예선에서 단지 네 골을 내주며 전 경기를 소화하였다. 그는 노르웨이을 상대로 한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오슬로에서 3 대 0으로 승리하며 클린 시트를 기록했다. 당연히 유로 2004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참가했고 조별 예선 3경기 동안 단 2실점만 내주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그리스에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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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월드컵에서도 주전 선수로 활동했으며, 특히 조별리그 1차전과 2차전에서는 라울 곤살레스 대신에 주장 완장을 달고 뛰기도 했다.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는 휴식으로 결장. 하지만 16강전에서 프랑스에게 3:1로 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물론 카시야스의 탓은 아니다. 동점골은 프랑크 리베리파트리크 비에라와의 2 대 1 패스로 순식간에 1 대 1 찬스가 나와 먹혔으며, 세트피스에서의 두 번째 실점은 카시야스가 몸을 던지는 방향을 보면 막을 확률이 훨씬 높았으나 세르히오 라모스가 몸으로 막으려다 굴절시켜 골을 넣어버렸다. 3번째 골은 지네딘 지단의 클래스가 뛰어나 막기 어려운 골이었다.

유로 2004: 3경기 2실점
세이브 14회
선방률 88%

2006 월드컵: 3경기 4실점
세이브 13회
선방률 76%


3. UEFA 유로 2008[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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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08 당시 카시야스의 활약상

2008년 라울 곤살레스가 유로 2008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카시야스는 라울 곤살레스를 대신해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물론 라울의 마지막 A매치가 2006년 9월이었기에 그 후부터 계속 카시야스가 스페인의 주장이었으나 메이저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주장을 맡은 것이다. 그는 유로 2008 D조 조별 리그에서 러시아와 스웨덴과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그리스전에서는 페페 레이나에게 자리를 넘기며 휴식을 취하였다.

이탈리아와의 8강에서 혈전 끝에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잔루이지 부폰을 상대로 벌인 승부차기 대결에서 잔루이지 부폰이 1개의 킥을 막아낸 반면 카시야스는 다니엘레 데 로시안토니오 디 나탈레 2개의 킥을 막아내며 4:2의 스코어로 스페인이 4강에 진출하였다.

카시야스는 조별 리그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게 골을 내준 이후 8강, 4강, 결승까지 클린 시트를 기록하였다. 2008년 6월 29일, 카시야스는 독일과의 결승전에서도 무실점 경기를 해내며 대표팀의 1 대 0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서 그는 유럽 선수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린 최초의 골키퍼 주장이 되었다.

유로 2008: 5경기 2골 실점 3경기 무실점
세이브 21회
선방률 91%


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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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골이 터지자 환호하는 모습
2009년 9월 5일, 벨기에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5-0으로 이기면서 카시야스는 안도니 수비사레타가 세운 56경기 최다 무실점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고, 2009년 9월 9일 에스토니아와의 경기에서 수비사레타의 스페인 국가대표팀 최다 무실점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11월에는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국가대표로서 100번째 경기에 출전하면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역사상 3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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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당시 카시야스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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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번을 상대로 슈퍼 세이브를 하는 카시야스
2010 월드컵은 카시야스의 선수 경력 사상 최고의 대회였다. 사실 카시야스는 2009-10 시즌 때 폼이 살짝 떨어진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그러나 그는 이 월드컵에서 동물적인 감각을 선보이며 스페인의 승승장구를 이끌어냈다. 월드컵 8강전에서 파라과이의 페널티킥을 막아내어 4강 진출의 영웅이 되었다.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아이고.......결승전에서는 네덜란드의 스타 플레이어 아르연 로번과의 일대일 상황을 두 번이나 막아내며 스페인의 첫 FIFA 월드컵 우승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카시야스는 7경기 동안 2실점만을 허용하면서[5] 전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게 수여하는 야신상을 수여받는 영예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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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이 확정된 직후 가장 먼저 기쁨의 포옹을 나눈 마드리드바르셀로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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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af17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이케르 카시야스.[6][7]}}}
여담으로 결승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리포터인 자신의 애인 사라 카르보네로에게 기습 키스를 했다. 팀은 우승에다가 페어 플레이 상, 자신은 야신 상을 탔기에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그랬다고 한다.

2010 월드컵: 7경기 2골 실점 5경기 무실점
세이브 15회, 선방률 88%


5. UEFA 유로 2012[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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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12 당시 카시야스의 활약상

5월 30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82분에 페페 레이나와 교체되어 투입되었다. 이 경기에서 4-1 완승을 따내면서 카시야스는 국가대표로서 95승째를 기록했다.

카시야스는 유로 2012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여지없는 모습으로 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8강 진출을 놓고 조별 리그 당시 마지막 3차전 크로아티아전에서 패배할 경우에는 이탈리아와 아일랜드의 경기 결과에 따라서 스페인이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 크로아티아가 초반에 매서운 맹공으로 스페인을 몰아쳤고 루카 모드리치의 크로스를 받은 라키티치가 수비수를 따돌리고 그대로 헤딩으로 골 문에 꽂아넣는 슛을 시도했지만 카시야스가 말도 안되는 반응 속도로 쳐 내면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 내었다. 이후 헤수스 나바스의 골로 스페인은 8강에 진출했고 당시 이반 라키티치는 인터뷰에서 스페인 최고의 선수로 단연 카시야스를 꼽았다.

4강 포르투갈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첫 번째 키커 주앙 무티뉴의 킥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카시야스가 내뿜은 위압감은 결국 포르투갈의 네 번째 키커 브루누 알베스의 실축까지 이끌어냈고, 스페인은 승부차기 끝에 포르투갈을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기존에 세계 넘버 1 골키퍼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이탈리아의 부폰과의 대결도 흥미로웠던 부분인데, 이미 앞선 수상 경력에서 보듯이 이미 부폰과는 역대로 봐도 동급,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보는 이들도 많지만 국내를 비롯해서 아직까지는 부폰과의 비교에서 카시야스의 열세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로 2008을 포함해서 이번에도 이탈리아와의 연이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현존 세계 원탑 골리로써의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는 한편, 이미 부폰과는 동등하게 역대 최고 골키퍼의 반열에 올랐음을 여실히 입증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리가 확실해진 4:0 상황, 크게 뒤진 데다가 부상 불운으로 인해 수적 열세까지 겹쳐 사실상 저항이 불가능해진 상대 팀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심판에게 인저리 타임 3분을 적용하지 않고 게임을 끝낼 것을 요청하는 대인배스러운 면모를 보여줘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를 종료시킬 권한이 없는 추가부심에게 요청했다는 게 함정.

심판! 심판!

상대 팀을 존중하십시오.

이탈리아를 존중하십시오.

4-0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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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카시야스는 조별 리그 첫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5경기에서는 모두 무실점을 거두면서 509분 무실점의 기록을 세워, 이탈리아의 디노 조프가 세운 494분 무실점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결승전 승리를 통해 카시야스는 축구 역사상 최초로 국가대표 100승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유로 2012: 6경기 1실점 5경기 무실점
세이브 15회
선방률 94%

이때만 해도 카시야스는 전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서 압도적인 실력과 포스, 그리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멘탈까지 겸비한 완전체였다.


6.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편집]


다음 월드컵 개최국인 브라질에서 열린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3경기를 출전했는데, 결승전에 올랐지만 브라질에 패해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대회 직전 시즌인 2012-13 시즌에 소속 팀에서 역대급 부진 및 구설수에 올랐던 카시야스였지만, 이탈리아전에서 6차례의 유효 슛을 효과적으로 선방하며 MoM으로 선정되는 등 클래스를 입증했다. 이후 팀을 결승전으로 이끌었으나, 브라질에게 3대0으로 대패하는 바람에 우승엔 실패했다.

그리고 이 대회 이후 카시야스와 스페인에게는 추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7.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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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I조 핀란드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클린 시트를 기록했다. 소속 팀에서 벤치에 앉는 날이 많아지자 스페인 대표팀도 고민에 빠졌으며, 현지 언론들은 바르셀로나의 빅토르 발데스의 출전을 전망하며 카시야스의 벤치행을 예상했으나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은 카시야스를 신뢰했다. 이날 출전으로 스페인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150경기에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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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4일자 본선 조별 리그[8] 첫 경기인 지난 결승전의 리턴 매치인 네덜란드전에서 5-1 참패를 당한다. 디에고 코스타가 얻어낸 샤비 알론소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스페인은 전반 44분 로빈 반 페르시에게 환상적인 헤딩 골을 허용한 후 무너지기 시작한다. 후반 네덜란드의 맹공에 제대로 멘붕이 찾아온 카시야스는 연속 골을 허용하기 시작하는데, 세 번째 골에서 공중 볼 위치 선정 실수를 드러내더니, 수비수의 백 패스를 형편없는 볼 터치로 처리하여 반 페르시에게 네 번째 골을 헌납하는 추태마저 부리고 만다.[9] 결국 다섯 번째 골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아르연 로번에게 완벽하게 제쳐지면서 네 발로 기어다니는응? 굴욕을 선보이며 대참사의 정점을 찍고 만다. 물론 뒷공간을 아낌없이 내주고 휙휙 제쳐지는 수비진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카시야스 본인의 퍼포먼스도 너무도 좋지 않아 다음 경기 주전 보장조차 힘들어졌다고 여기는 시청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폭풍처럼 털린 후 카시야스에게 붙은 별명은 다름 아닌 카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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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충격이 컸는지 이튿날 훈련장에서도 마음 고생이 심한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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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음 경기인 칠레전에도 출전하였지만 네덜란드전과 별다른 폼 차이 없이 2실점을 하며 스페인은 디펜딩챔피언 2차전만에 탈락 확정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는 스페인 국가 대표 주전 자리도 위태위태해진 상황. 호주와의 최종전엔 후보 골키퍼 레이나가 그 대신 출전하여 클린 시트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감했다.[10] 다행히 스페인 국내 여론이 지난 몇 년간 할 만큼 해 준 대표팀에 대해 크게 비난을 하고 있지는 않아서 공항에서 엿을 뒤집어쓴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진 않았다. 아무튼 이 대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지고 있는 골키퍼들의 미친 듯한 활약과 맞물려 카시야스는 그가 얼마나 처참한 부진을 겪고 있는지 온 몸으로 웅변하며 브라질을 떠나야 했다. 더군다나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부폰이 맹활약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비교된다. 물론 골키퍼만 잘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기에 부폰의 이탈리아는 결국 조별 탈락[11]을 했다.[12]

국대 주전만 위태하면 차라리 다행인데 소속 팀에선 카시야스가 하락세임을 확신하고 아예 그를 바겐 세일할 것이라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물론 오피셜은 아니지만, 현지에선 레알이 코스타리카의 8강 신화를 이끈 레반테의 케일러 나바스 골키퍼와 강력히 연결되는 등 예사로이 넘길 분위기는 아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한 경기 최다 실점의 불명예를 안고 브라질 월드컵을 마감하는 듯했으나, 브라질이 독일에 1:7과 네덜란드에 0:3 참패로 치욕적인 기록은 줄리우 세자르가 가져가게 되었다.[13]

2014 월드컵: 2경기 7골 실점 0경기 무실점
선방률 50%


8. UEFA 유로 2016[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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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9일에 열린 슬로바키아와의 UEFA 유로 2016 예선 경기에서 스페인이 2-1로 패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특히 선제골을 먹히는 상황에서 카시야스의 결정적인 실수가 패인으로 작용했는데, 유라이 쿠츠카가 찬 슈팅이 정면으로 날아왔는데 카시야스는 이 상황에서 갑자기 몸을 오른쪽으로 날렸다. 이에 델보스케 감독은 "자세히는 못 봤지만 볼이 이상하게 휘는 바람에 그가 속은 것"이라며 그를 두둔했다. 이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수비 벽이 카시야스의 시야를 가렸으며, 슈팅이 휘면서 카시야스의 시야에 들어올 무렵에는 이미 완전히 반대로 꺾였기 때문에 카시야스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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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코어드에서는 카시야스에게 5.3점을 주며 워스트를 주었다. 참고로 MOM으로 선정된 쿠츠카가 위에서 카시야스를 낚아 득점에 성공한 그 선수다. 다만 이거 후스코어드평점이다. 후스코어드는 축구계에서 위닝 평점급(...)위상으로 그다지 의미를 부여할 만한 평점은 아니라는 것은 축구에 오래 관심을 가졌다면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10월 13일에 열렸던 룩셈부르크와의 UEFA 유로 2016 경기에서 다비드 데 헤아에게 밀려 벤치 신세가 되었다. 데헤아가 아직 A매치를 3경기밖에 안 뛰어서 딱 잡아 평가 할 순 없지만 이 경기에서 준수한 활약을 선보인 걸로 보아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세대 교체를 피할 순 없을 듯하다.

2015년 9월 5일, 슬로바키아와의 유로 2016 예선전에서는 스페인 국가대표 주장으로서 100번째 경기를 치렀고, 무실점을 기록하며 2-0으로 이겼다.

2016년 3월 27일, 루마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로서 개인 통산 166번째 경기를 치르면서 유럽 선수들 중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15-16 시즌이 끝난 뒤 치러진 유로 2016 본선[14]에서도 역시 데헤아에게 주전 골리 자리를 내주며 벤치를 지켰다. 그동안 이케르 카시야스가 지키던 스페인의 골리 자리가 세대 교체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16강에서 이탈리아에게 0-2로 패배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15] 델보스케 감독의 마지막 대회였던 유로 탈락 후 카시야스가 SNS에 자신의 트위터에 람보 2 의 마지막 장면을 올리며 은퇴를 암시하는 듯했지만, 나중에 스페인 매체 아스는 카시야스는 대표팀 은퇴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델보스케 감독은 카데나 세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스페인 대표팀 선수들에게 은퇴 메세지를 보냈지만 카시야스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출처 주전 골키퍼 자리를 데헤아에게 준 코칭 스태프와 감독의 결정에 불만을 가졌고, 그래서 스태프와 관계가 그저 그랬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경기한 카시야스에게 감사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국내외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국대든 소속 팀이든 명확하게 폼이 하락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한결같이 카시야스를 대표팀에 기용하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지지를 보냈던 델보스케였기 때문에 어떻게 카시야스가 델보스케에게 그럴 수 있냐는 것. 심지어 무리뉴가 옳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관련하여 스페인 언론 엘 문도에서는 “골키퍼 코치가 카시야스에게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몸상태를 물었고, 이를 선발 출장으로 받아들였다. 경기 시작 5시간 전 라디오에 카시야스가 선발로 나온다고 보도되었다. 코칭 스태프들은 이걸 카시야스가 유출했다고 믿고 있으며 배신으로 여기고 있다”라고 보도했다.출처

2016년 7월 4일 카시야스의 트위터에 델보스케 감독의 은퇴 축하 트윗이 올라왔다. 그리고 델보스케와의 화해 소식도 들려왔다. 출처 후에 델보스케는 인터뷰에서 카시야스와의 의견 대립이 아버지와 아들 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같은 것이었다고 밝혔으며, 이를 언론에 말했던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카시야스는 그가 라인업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설명을 미리 해 주었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델보스케는 선발 라인업 결정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스타일이기에 대립이 일어난 모양.출처 이후 골닷컴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델보스케와 카시야스의 충돌에 대해 굉장히 놀랐다고 인터뷰를 했다. 출처

유로 2016 이후로는 스페인 주전 골키퍼는 데헤아로 굳어졌으며, 주장 자리도 세르히오 라모스에게 넘어가 앞으로 카시야스가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골키퍼로서 출전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 것이다.

8.1. 이후 행보, 국가대표 및 선수 은퇴[편집]


결국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베테랑 서드 키퍼는 레이나면 충분하며 베테랑 대신 신예 골키퍼인 케파 아리사발라가를 데려가는게 좋다고 판단된듯. 그러나 결과적으로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으며, 데헤아 역시 한 차례 치명적인 실책과 더불어 명성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2018년 기준 만 37세라는 나이와 하락한 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대 은퇴 선언을 하지 않았다. 마누엘 노이어와 함께 201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데헤아가 경쟁자이고, 주장 자리도 넘어가 사실상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에서 왜 아직까지 은퇴 발표를 하지 않는지는 불명. 아직까지 국가대표 복귀 욕심이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이후 상단에 언급된 심근경색으로 인해 선수 커리어 지속 자체가 불투명해졌고, 결국 2020년 2월 12일부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스페인의 골문을 지켰던 카시야스의 대표팀 커리어도 공식적으로 마감되었다. 한창 잘 나가다가 에 폼이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결국 용두사미로 국가대표 커리어가 안타깝게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1] 특히 박지성의 발리슛을 한손으로 막아내는 모습이 압권이었다.[2] 8강 5위[3] 이 때 황선홍의 킥은 성공률이 낮은 땅볼 슛이었던데다 카시야스가 방향을 읽고 공을 안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아쉽게도 겨드랑이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훗날 황선홍도 그 승부차기 킥은 자신의 실수였다고 말했다.[4] 스페인과 그리스 모두 1승 1무 1패로 동률이었고 승자승, 득실차까지 같았기 때문에 다득점(그리스는 4득점 4실점, 스페인은 2득점 2실점)으로 순위가 갈렸다. 그리고 이렇게 간신히 올라간 그리스는 유로 2004의 챔피언이 되었다.[5] 이는 1998 월드컵의 프랑스, 2006 월드컵의 이탈리아와 함께 역대 최소 실점 우승이다.[6] 잔피에로 콤비, 디노 조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골키퍼 주장이 되었다. 이후 위고 요리스도 골키퍼 주장으로써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면서 현재까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골키퍼 주장은 총 4명이다.[7] 여담으로 카시야스는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골키퍼 주장 중에서 만 29세로 최연소 기록을 가지고 있다.[8] 32강 조별리그[9] 지난 대회 8강전에서도 이런 장면을 보인 전적이 있었다. 그때는 간신히 걷어냈지만..[10] 대회 23위[11] 대회 22위[12] 심지어 부폰보다 한 살 어린 팀 하워드도 이 대회에서 정말 건재함을 과시했다. 물론 그 역시 16강전에서 미친 듯한 활약을 하고도 1 대 2로 팀이 패해 탈락(15위)해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13] 그런데 카시야스가 스스로 참사의 빌미를 제공하며 조별 리그 탈락(23등)을 이끈 것과는 반대로 세자르는 미네이랑의 비극 안에서 골키퍼로서 할 수 있는 선방은 최대한 했다. 잔실수도 거의 보이지 않으며 대회 내내 준수한 활약을 했다. 문제는 브라질 수비가 자동문. 그리고 경기 영상을 다시 보면 알겠지만 7점 이상 먹힐 상황을 오히려 세자르가 막아냈다고 보는 게 맞다. 세자르가 그러한 수준의 선방 쇼를 펼치고도 대패한 걸 보면 아무리 선방을 잘해도 골키퍼가 막을 수 있는 실점 상황엔 분명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게다가 처참하게 깨지긴 했지만 어쨌든 월드컵 4위로 마쳤다.[14] 첫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15] 16강 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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