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한국대사관에서 넘어왔습니다.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이 중국에 설치한 외교공관.
2. 역사[편집]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은 1992년 한국과 중국 간 수교를 하면서 생긴 공관이다. 그리고 1997년 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되고 난 뒤 주 홍콩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관할권이 주 영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주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이관되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이곳에 진입하면 중국 공안의 체포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한 탈북에 성공할 수도 있기에 이곳에 진입하려고 기를 쓰며, 그 때문에 인근에 공안들의 감시가 철저하다고 알려져 있다.[1]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이 전하는 실상을 보면 근래에는 외교적 마찰을 이유로 아예 한국 대사관 및 외교관들이 탈북자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법과 국적법에 따라 명백한 국민인 북한이탈주민들과 북한 주민들을 거부하다보니 오히려 비판을 받는다.#
2019년에 대사관 등급을 '나'급으로 낮춰졌는데, 젊은 외교관 중심으로 일하는 것에 거부감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조치이다.##
3. 대사관[편집]
주소는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 제3사관구 둥방동로 20호(中国 北京市 朝阳区 第三使馆区 东方东路 20号)이다.
베이징시, 톈진시, 허베이성, 산시성, 칭하이성, 내몽골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의 영사업무를 관할한다.
영사 업무로 출입 시 전용 출입구가 있으며, 여권 확인 후 입장이 가능하다.
3.1. 영사관 및 출장소[편집]
순서는 개설 순서이다.
주 광저우 대한민국 총영사관
4. 대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주중대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14대 주 중화인민공화국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정재호.
권영세, 김장수, 노영민 등 정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거쳐갔다.
5. 조직[편집]
- 정무부
- 영사부
- 경제부
- 운영지원부
- 문화원
- 국방무관부
6.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국군 포로 출신 탈북자 장무환 일병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없느냐며 도움을 요청하자 "하.. 없어요"라는 전화상으로 막말하여 논란이 일어난적이 있다. 외교부/비판 참조.[3]2006년에 이 사건이 재발굴되자 그때서야 사과했다.
2000년에도 납북자 이재근 씨가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피신해 주중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지만, 대사관 직원이 “당신 세금 낸 적 있어”라며 “국가에 부담을 주지 말라”고 쌀쌀맞게 전화를 끊어 파문이 일기도 했었다#
2010년에는 관할 공관인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상하이 한국 영사 섹스 스캔들이 일어났다.
2011년 12월 13일에는 누군가 쇠구슬을 대사관 건물에 발사하여 대사관의 강화유리 창문이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위키백과기사 쇠구슬의 크기로 보아 공기총으로 발사한 것이 아니라 새총으로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쇠구슬을 발사한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7. 관련 문서[편집]
[1] 한창 외교공관을 통한 탈북이 성행했을 때에는 이로 인해 한국 및 서방 대다수의 대사관의 진입에 대한 감시가 철저했으며, 베이징 외에도 북중국경과 가까운 선양이나 대련의 한국 외교공관 역시 삼엄한 감시를 받았다.[2] 중국 대사관보다도 훨씬 일찍 개설된 곳으로, 개설 당시는 중국과는 미수교상태로 영국령 홍콩인 주영대사관 산하에 있었다.[3] 해당 사건은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알려졌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11:57:45에 나무위키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