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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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1928년
쌍계사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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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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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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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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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불
1. 개요
2. 상세
3. 목록
3.1. 지리10경
3.1.1. 천왕봉 일출
3.1.2. 피아골 단풍
3.1.3. 노고단 운해
3.1.4. 반야봉 낙조
3.1.5. 벽소령 보름달(벽소명월)
3.1.6. 세석평전 철쭉
3.1.7. 불일폭포
3.1.8. 연하선경
3.1.9. 칠선계곡
3.1.10. 섬진청류
3.2. 사찰
3.2.2. 천은사
3.2.3. 대원사
3.2.4. 쌍계사
3.2.5. 법계사
3.2.6. 실상사
3.2.7. 영원사




1. 개요[편집]


지리산의 다양한 관광 자원들을 정리한 문서.


2. 상세[편집]


2018년 한해 지리산을 찾은 방문객은 300만명이 넘는 3,308,833명이다. 이는 전국의 국립공원들 중 방문객 수 3위에 해당하는 인원이며[1],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산악형 국립공원들 중에서는 1위에 해당한다. 2016년부터 해마다 방문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금도 천왕봉 탐방객, 노고단 탐방객, 지리산 종주 코스 탐방객 등 수많은 국립공원 탐방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또한 봄에는 철쭉을 비롯한 다양한 꽃을, 여름에는 계곡과 피서, 그리고 푸른 산과 운해를,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상고대와 설경을 즐기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특히 지리산에는 칠선계곡, 백무동 계곡, 피아골, 뱀사골, 대원사 계곡 등 수많은 계곡이 흐르고 울창한 숲이 잘 발달해 있다. 지리산은 면적이 넓기 때문에 수많은 계곡과 숲이 형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도 많다. 때문에 휴가철이자 피서철인 7월과 8월이 되면 전국 최다 탐방객을 자랑하는 북한산보다도 많은 탐방객들이 시원한 계곡과 울창한 숲을 즐기러 찾아온다.[2]


3. 목록[편집]



3.1. 지리10경[편집]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詩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1972년 지리산 등산 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하여 배포한 '지리산 산악회'는 지리산의 빼어난 자연경관 중 대표적인 10곳을 선정하여 지리산 10경을 발표했다.

지리산은 산이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지리십경 외에도 바래봉 등 여기저기 절경이 많다.

  • 1경 - 천왕일출(天王日出)

  • 2경 - 피아골단풍(직전단풍,稷田丹楓)

  • 3경 - 노고운해(老姑雲海)

  • 4경 - 반야낙조(般若落照)

  • 5경 - 벽소명월(碧宵明月)

  • 6경 - 세석철쭉(細石躑躅)[3]

  • 7경 - 불일현폭(佛日顯瀑)

  • 8경 - 연하선경(煙霞仙景)

  • 9경 - 칠선계곡(七仙溪谷)

  • 10경 - 섬진청류(蟾津淸流)


3.1.1. 천왕봉 일출[편집]


파일:천왕봉일출2023.jpg
2024년 갑진년 새해 첫 천왕봉 일출.

천왕일출(天王日出)은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에서 바라보는 일출을 말하며, 지리 10경 중 제 1경이다.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떨쳐온 일출 풍경인 만큼 마치 하늘이 열리는 듯한 장관을 보여준다고 한다.

천왕봉의 일출은 3대가 내리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만큼 지리산의 모든 경치 중에서 가장 보기가 힘들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산봉우리의 특성 상 해가 뜨는 새벽에는 구름 속에 잠겨있는 경우가 많아 일출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이 트이는 날이 많지 않다. 하지만 천왕봉 일출은 지리산의 모든 경치와 풍광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가장 보기 힘든 만큼 난이도는 단연 최고이다. 천왕봉 일출을 보려면 일단 산 밑에서 천왕봉까지 4~5시간은 기본으로 등산을 해야 하는데,[4] 천왕봉까지 올라간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해는 오전 5~7시에 뜨기 때문에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여름에는 해가 일찍 뜨기 때문에 6~7월 기준으로 새벽 4시~4시 30분에는 일어나야 여유롭게 천왕봉으로 가서 일출을 볼 수 있다. 겨울에는 해가 늦게 떠서 비교적 늦은 시간인 새벽 6시~6시 30분에 일어나도 일출시간에 맞춰서 천왕봉으로 갈 수 있지만 그 대신 -10~-20°C를 밑도는 엄청난 추위와 싸워야 한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높은 산의 특성상 강한 바람이 자주 부는데, 이런 바람까지 같이 불면 체감온도는 -30°C까지 떨어질 수 있고 바닥에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서 얼굴을 때리기도 한다. 때문에 한겨울인 12월~2월 중순 사이에 천왕봉에 간다면 방한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여 등산하고 여름에는 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가면서 일출 시간에 맞춰 천왕봉에 올라간다고 해도 무조건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가오거나 날씨가 흐린 날에 못보는건 당연하고, 천왕봉은 정상에 구름이 내려앉아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날이 매우 자주 있다. 여기서 구름이 내려앉는다는 건 구름이 하늘에 껴서 흐려진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름이 천왕봉을 덮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천왕봉에 구름이 앉게 되면 안개 낀 것과 차원이 다르게 정말 바로 앞의 길만 보이고 주변은 하나도 안 보인다.

높은 지대 특성상 일기예보에는 맑다고 나와있는데, 막상 가보면 구름이 앉아있는 날도 허다하다.[5] 그렇게 구름이 앉아있다가 해 뜨고 30분 정도 지나면 구름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조망이 탁 트이는 날도 많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구름이 가끔 색다른 비경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구름의 고도가 적절하게 내려가면

파일:운해일출.png

이렇게 운해와 일출이 어우러진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새해 첫해가 뜨는 1월 1일은 천왕봉 일출을 보러오는 등산객이 가장 많은 성수기로, 이날이 되면 천왕봉에는

파일:천왕봉인파.png

이렇게 첫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린다.

새해 첫날 해 뜨기 직전에는 천왕봉 정상은 물론 바로 아래 등산로까지 등산객들로 가득 차기 때문에 일출을 보려면 대피소에서 일찍 출발해야 하며,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해 뜨기 1시간 전에는 도착하도록 출발해야 한다.

이날이 되면 천왕봉과 가장 가까운 장터목 대피소는 예약 인원이 너무 몰려서 추첨을 통해 예약을 받는데, 경쟁률이 엄청나다. 때문에 장터목 대피소 예약에 실패하면 두번째로 가까운 로타리 대피소를 예약하면 된다. 하지만 로타리 대피소는 수용인원이 30명뿐이라 이마저도 쉽지 않다.[6]

로타리 대피소 예약마저 실패한다면 세번째로 천왕봉과 가까운 치밭목 대피소나 세석대피소를 예약하면 된다. 하지만 치밭목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가려면 3시간이나 걸리고 그 3시간거리의 등산 난이도가 "매우 어려움"이다. 세석대피소는 천왕봉까지의 등산난이도는 쉬운 편이지만 거리가 치밭목~천왕봉보다 더 길어서 30분정도 더 걸린다.

간혹 대피소 예약에 실패했거나 대피소 숙박이 귀찮은[7] 프로등산러들은 탐방로가 개방되는 새벽 4시가 되자마자 산 아래 탐방로 입구에서 등산을 시작해서 해가 뜨는 7시 30분까지 3시간 30분 만에 천왕봉에 도착해 일출을 보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다.

1월 1일마다 천왕봉에 엄청난 해맞이객 인파가 몰리는 것 때문에 2019년 12월에는 국립공원공단, 함양소방서, 산청소방서가 탐방객이 몰리는 천왕봉 등산의 주요 거점인 백무동과 중산리에 임시상황실을 설치하고 천왕봉과 장터목, 로타리 대피소에는 현장 구조 캠프를 운영하여 사고를 대비했다.

이렇듯 좋은 체력과 운까지 요구하는 천왕봉 일출이지만 보는데 성공한다면 보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의 값을 톡톡히 한다. 실제로 천왕봉에서 해뜨는 것을 기다리다가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저절로 감탄사를 내고 처음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는 사람들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천왕봉 일출은 보기 힘들지만 실제로 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아름답고 확실히 다른 장엄함이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도전해볼 만하다.

2021년 1월 1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립공원 대피소가 폐쇄됨에 따라 새해 첫 천왕봉 일출을 감상하기가 힘들어졌다. 이에 지리산 국립공원 경남사무소는 사무소 인스타그램을 통해 천왕봉 일출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2022년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새벽 입산이 통제되어 새해 첫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국립공원공단이 2021년처럼 천왕봉 일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였다.

2023년부터는 1월 1일 새벽 입산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장터목대피소를 비롯한 국립공원 대피소들이 개방하여 일반 탐방객들도 새해 첫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1.2. 피아골 단풍[편집]


파일:구례 피아골.png

피아골 단풍은 전라남도 구례군에 있는 계곡인 피아골계곡에서 보는 가을 단풍을 말한다. 산행 초입에 있는 마을인 직전마을에서 이름을 따와 '직전단풍(稷田丹楓)'이라고도 부르는데, 피아골은 지리산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적으로도 가을 단풍이 아주 유명한 곳이다. 매년 10월 단풍철이 되면 이 피아골에서 단풍축제가 열리는데, 이때에는 피아골계곡이 단풍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피아골 단풍은 흔히 삼홍(三紅)이라고 하는데, 단풍나무가 많아 산이 붉게 불타는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맑은 계곡물에 비치는 수홍(水紅), 그 물빛과 산홍으로 사람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어 보이는 인홍(人紅)이 그 세가지이다.

트래킹을 하면서 단풍을 즐길 수 있는 피아골 코스도 존재한다. 피아골 코스는 연곡탐방지원센터~직전마을~표고막터~삼홍소~피아골 대피소~피아골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총 거리는 8.8km, 5시간이 소요된다. 난이도는 중급이다. 연계 코스에 따라 산에서 1박도 가능하다. 산행 초입인 연곡탐방지원센터~직전마을 구간은 군내버스나 승용차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거리는 2.8km로서 도보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대부분 등산객은 직전마을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이용해 이 구간을 지난다. 만약 이 구간을 걷는다면 총 6시간을 잡아야 한다. 직전마을~표고막터~삼홍소~피아골대피소 구간은 4km이고, 탐방 시간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연주담, 삼홍소 등 아름다운 담과 소가 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피아골 단풍의 핵심 구간을 이룬다. 특히 코스 중간의 표고막터~삼홍소 사이의 1km 구간의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 가을 피아골은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다는 말이 이 삼홍소에서 유래되어 나온 말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 좋아 가을 단풍을 찾는 많은 탐승객들은 이 구간만 왕복으로 걷기도 한다.

피아골대피소~피아골 삼거리 구간은 2km,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급한 편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험한 길에는 나무계단이나 철계단이 놓여 있다. 이 구간 끝은 지리산 주능선에 닿는다

피아골 중간에 위치한 피아골대피소는 피아골 산행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숙박이 가능하며, 간단한 식사류를 판매한다. 산장 주변에서 취사도 가능하다. 샘도 있다.

피아골을 따라 흐르는 피아골 계곡은 지리산의 제 2주봉인 반야봉(1,732m)에서 시작되어 연곡사로 흐르는 계곡으로 피아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행하여 식량이 부족했던 시설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중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는 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된것이다.





3.1.3. 노고단 운해[편집]


파일:16071_입선_지리산_지리3경 노고단의 구름바다_정인희_d.png

노고운해(老姑雲海)는 지리산의 제3 주봉인 노고단(1,507m)에 올라서 보는 운해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운해란 높은 산에 올랐을 때 구름이 산봉우리 아래로 바다처럼 깔려서 주변에 솟은 산봉우리가 마치 바다 위의 섬처럼 보일 때를 말한다. 운해를 순우리말로 표현하면 '구름바다'이다.

노고단 운해는 천왕봉 일출과는 다르게 감상을 위한 등산 난이도가 매우 쉬운 편이다. 일단 노고단 탐방코스 자체가 해발 약 1,100 m인 성삼재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코스 시작점(성삼재)부터 노고단 정상까지 거리가 4.7 km로 약 1시간만 올라가면 된다. 특히 성삼재휴게소~무넹기코스 2km 구간은 경사도 완만하고 길이 비교적 평탄하고 넓게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운해는 매일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에 필요한 요건이 있기 때문에 노고단 운해를 기대하고 노고단에 간다면 운해 형성요건에 맞는 날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운해는 주로 봄과 가을에 일교차가 심하고, 비가 온 다음 날로 아래 대기층의 온도와 상층의 온도차이가 많이 날 때 형성된다. 또한 밤에 형성된 운해는 해가 뜨면 지표면의 기온이 상승하여 발생한 상승기류로 물결이 일듯 움직이다가 사라져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노고단에서 운해를 보기 좋은 날은 봄 또는 가을의 비가 온 다음 날 아침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일교차가 15°C 이상 심하게 나고 최저온도가 2°C 이하이면서, 비가 온 다음 날로 습도가 90%이상인 맑은 날이 좋다. 또한 바람이 불면 운해가 빨리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바람이 잔잔한 날이 운해를 감상하기에 좋은 날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노고단 정상에 올라서 운해를 감상하려면 미리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예약을 하면 카카오톡으로 QR코드가 전송되고 이 QR코드를 노고단 고개의 예약 확인게이트에서 인식을 하면 간편하게 예약 확인이 되어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예약은 무료로 할 수 있으며, 하루에 1920명까지 예약을 받는다. 1인당 10명까지 예약이 가능하고 운영 기간이 연중 운영이기 때문에 1년 내내 예약이 가능하다.[8] 이때문에 1년 중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예약에 실패하는 일이 거의 없고, 당일 남는 정원에 한해서 현장예약도 할 수 있어서 노고단 고개에 올라 그곳에서 예약한 뒤 바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노고단에 갔을 때 예약을 하지 않았어도 당황하거나 노고단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할 필요도 없다.

파일:봄노고단.png

파일:03025_지리산_노고단원추리_정만식24mb.png


파일:봄 노고단 운해.png


노고단의 계절별 운해 풍경(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3.1.4. 반야봉 낙조[편집]


파일:반야낙조.png

반야낙조(般若落照)는 지리산의 제 2주봉인 반야봉(1,732m)에서 보는 저녁노을 또는 해넘이(낙조)를 말한다. 난이도는 반야봉에서 직접 낙조를 볼 경우 보통~어려움[9]이고 다른 장소에서 반야봉을 배경으로 낙조를 보는 경우에는 장소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반야봉은 지리산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일출보다는 일몰이 더 아름답다. 이는 동쪽의 위치한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1,915m)이 일출이 아름다운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해가 질 무렵 반야봉에 오르거나 반야봉이 보이는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산 능선 또는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는게 반야봉 낙조의 감상포인트이다.

파일:반야봉 낙조.png
여기에다 이렇게 운해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반야낙조는 정의가 조금 모호한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반야봉에 올라서 보는 노을이라는 설이고, 두 번째는 반야봉이 보이는 곳에서 반야봉을 배경으로 보는 노을이라는 설이다.

반야봉에 올라서 반야낙조를 볼 경우, 난이도는 중급[10]이며, 등산 거리는 성삼재 출발 기준으로 10.2km, 등산 시간은 약 4시간 30분 정도이다. 성삼재~임걸령까지의 5.9km구간은 길도 평탄하고 경사도 비교적 완만하여 수월한 산행이 가능하지만 임걸령 샘터를 지나면 조금씩 가파른 구간이 나오기 시작하고 반야봉을 1km앞둔 노루목부터는 경사가 심해져서 등산 난이도가 어려움 단계로 올라간다.

사실 이러한 루트로 반야낙조를 보러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낙조를 보려면 저녁에 가야하는데, 국립공원공단이 입산시간 지정제[11]를 실시하고 있어 늦은 시간에는 입산이 불가하고, 통제되기 전에 입산한다고 해도 어두워지면 하산할 때 위험하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반면 반야봉을 배경으로 보는 반야낙조는 대피소를 예약할 수 있어 여유롭게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반야봉을 배경으로 보는 반야낙조는 사진을 촬영하러 오는 탐방객들이 선호한다. 주로 지리산 주능선에서 사진을 찍거나 감상한다. 이 루트는 대피소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반야봉에 올라서 보는 반야낙조 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3.1.5. 벽소령 보름달(벽소명월)[편집]


파일:벽소령 달.png
사진 출처
벽소명월(碧宵明月)은 지리산 주능선의 고개인 벽소령(1,350m)에서 바라보는 보름달 풍경을 말한다. 벽소령에서 보는 달은 차갑도록 푸르고 밝다해서 유명하다.

벽소령에는 국립공원 대피소인 벽소령 대피소가 위치해 있어 숙박이 가능하다. 덕분에 벽소명월을 보려고 야간 산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벽소령은 지리산 종주의 주요 거점중 하나이기 때문에 종주 중에도 날짜와 날씨가 맞는다면 벽소명월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벽소령은 지리산 중앙에 위치한 고개이고 서쪽의 형제봉(1,438m)과 동쪽의 덕평봉(1,522m)에 비해 비교적 해발 고도가 낮다. 이렇게 봉우리들 사이에 위치한 지형 특성 상 강풍이 잦고 강수량도 많은 편이다.

벽소령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하동군 화개면 사이에 위치한 고개로 벽소령이라는 지명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푸를 벽, 밤 소에 재 령으로서 푸른 밤재가 된다. 벽소(碧宵)라는 이름은 벽소한월(碧宵寒月)에서 유래했다. 그 의미는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라는 의미로 그만큼 벽소령에서 보는 보름달이 오래 전부터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벽소령은 함양군 방향에서도 오를 수 있고 하동군 방향에서도 오를 수 있다. 함양군 방향으로 오를 경우 마천면의 음정마을을 출발점으로 잡을 경우 벽소령 대피소까지 거리는 6.7km에 난이도는 보통이다.

하동군 방향으로 오를 경우 의신마을 출발 기준으로 벽소령 대피소까지의 거리는 6,8km에 난이도는 보통~어려움이다.

사실 이렇게 산 밑에서 바로 벽소령으로 올라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벽소령으로 오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지리산 종주 등산객들이다. 벽소령은 지리산 종주길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벽소령 대피소[12]가 있기 때문이다.






3.1.6. 세석평전 철쭉[편집]


파일:세석평전 철쭉.png
세석철쭉(細石躑躅)은 지리산 주능선 가운데에 펼쳐져있는 고원인 세석평전(細石平田)의 철쭉군락에서 피는 철쭉을 말한다.

세석평전은 영신봉(1,652m)과 촛대봉(1,703m)사이에 위치한 약 30만평 정도 되는 넓이의 고원이며, 이곳의 해발 고도는 1,500~1,600m정도이다. 세석(細石)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잔돌(細石)이 많은 평지'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해발 고도가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철쭉의 개화기가 5월 말~6월 초로 평지보다 1개월 정도 늦다.[13]

세석평전은 지리산 종주능선에 위치해 있고 국립공원 대피소 중 가장 큰 규모의 세석대피소(240명 수용)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지리산 주능선 종주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무조건 주능선 종주를 통해서만 세석평전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백무동과 산청군의 거림에서 세석평전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으며, 세석평전에서 지리산 남부능선이 시작되기 때문에 하동군 청학동에서 시작하는 남부능선 종주코스에서도 세석평전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철쭉의 개화기는 지리산 국립공원에서는 성수기이다. 따라서 대피소 예약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지리산 철쭉하면 현재는 전북 남원시의 바래봉(1,165m)이 더 유명하지만 바래봉 철쭉이 유명해진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원래는 세석평전의 철쭉이 더 유명했다.

그러나 세석평전은 과거 심각한 훼손을 겪으면서 철쭉을 포함한 초목들이 사라졌다. 이후 복원사업을 통해 세석평전의 생태계를 복원했지만 철쭉보다는 구상나무가 더 많아져 철쭉 군락지는 예전보다 줄어들게 되었다.

실제로도 현재 세석평전은 구상나무 군락지의 규모가 더 크고 철쭉 군락지의 규모는 바래봉이 세석평전보다 더 크다. 매년 열리는 철쭉제 또한 바래봉에서 열린다.

세석철쭉과 바래봉 철쭉을 비교하자면 바래봉은 1970년대에 면양 목장이 들어서면서 철쭉 군락이 형성되었기 때문에[14] 마치 사람이 다듬어놓은 듯이 철쭉이 초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세석평전은 철쭉이 구상나무, 털진달래, 붉은병꽃나무 등 여러 종류의 초목들과 어우러져 있다.

세석평전의 훼손은 세석평전이 구한말 동학 농민군의 전장, 일제 징용과 징병 거부자들의 피난처, 해방공간 빨치산의 근거지, 6.25 전후 화전민들의 보금자리로 쓰이며 오랜 세월동안 진행 되었고 70년대 이후 급증한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야영과 해마다 초여름에 개최되었던 철쭉제 인파 등으로 황폐화 되었다.

게다가 국방부가 1991년 벙커와 참호, 철조망 같은 군사시설까지 이곳에 설치하면서 세석평전의 훼손은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1995년 토양을 보충해 식물이 자라날 환경을 조성하고 군사시설을 걷어낸 뒤 등산객의 야영과 취사를 금지하는 세석평전 복원사업이 실시되어 세석평전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훼손되기 이전의 세석평전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명성을 날렸던 철쭉꽃 명승지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세석평전은 해발 고도가 1,500m가 넘는 고지대임에도 물이 상당히 풍부하다. 고지대에서는 보기 힘든 개울이 있고, 심지어 습지까지 있을 정도다.

이 덕분에 세석평전은 지리산의 다른 곳보다 구상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고사하는 개체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3.1.7. 불일폭포[편집]


파일:불일폭포.png
사진 출처
불일폭포(佛日瀑布)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위치한 폭포로 높이 60m, 폭 3m로서 지리산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폭포이다. 불일폭포에서 낙하한 물은 화개천 계곡으로 흘러간다.

불일폭포 코스의 난이도는 쉬움이다. 쌍계사에서 출발하여 2.4km의 거리를 1시간 30분정도 걷다보면 불일폭포에 도착한다. 이 코스는 완만한 경사와 시원하게 뻗은 숲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등산에 숙련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비교적 수월한 탐방이 가능하다. 또한 이곳은 매우 시원해서 여름에 피서 또는 산책 삼아 와보는 것도 추천한다.

쌍계사 경내에 들어서면 '불일폭포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0.4km정도 따라가면 쌍계사의 암자인 국사암과 국사암 삼거리가 나오며, 이곳까지는 계단 높이가 높은 돌계단길이다.

하지만 국사암 삼거리부터 이 탐방로의 절반 지점인 환학대(1.2km 지점)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흙길과 돌길, 그리고 나무다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가 쉽다. 이 구간을 따라가면 나오는 환학대는 최치원이 청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장소이다.

환학대에서 마족대(1.6km 지점)까지는 약 10~15분 정도 걸리는 길로, 조금 가파른 돌길(돌계단길)과 나무다리가 있다. 마족대는 임진왜란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에 오를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진 곳이라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장소이다.[15]

마족대에서 불일탐방지원센터(불일평전, 2km 지점)까지 10~15분 정도 소요되는 구간은 완만한 돌길과 흙길로 편안한 편이다. 이 구간을 지나면 도착하는 불일평전에는 봉명산방(鳳鳴山房)이라 불리는 오두막을 비롯해 샘터와 연못, 이전 시설물을 리모델링한 불일탐방지원센터, 그리고 화장실 등이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불일탐방지원센터(불일평전)에서 불일폭포 코스의 마지막 관문인 불일암(2.2km 지점)까지는 1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흙길, 나무다리 및 계단, 급경사 돌길 등으로 이어져 있다. 대체로 걷기 좋은 평평한 길이지만, 불일암 못 미처 한 차례 경사가 심한 난코스가 있기 때문에 이 구간은 다른 구간보다 난이도가 약간 높다.

불일암에서 불일폭포(2.4km 지점)까지의 구간은 짧은 흙길을 지나면 대부분 나무계단 길이다. 계단의 높이가 꽤 높은 부분도 있어 오르고 내릴 때 조금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의 2.4km구간을 다 지나면 불일폭포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불일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불일탐방지원센터, 그리고 화장실 등이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불일탐방지원센터(불일평전)에서 불일폭포 코스의 마지막 관문인 불일암(2.2km 지점)까지는 1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흙길, 나무다리 및 계단, 급경사 돌길 등으로 이어져 있다. 대체로 걷기 좋은 평평한 길이지만, 불일암 못 미처 한 차례 경사가 심한 난코스가 있기 때문에 이 구간은 다른 구간보다 난이도가 약간 높다.

불일암에서 불일폭포(2.4km 지점)까지의 구간은 짧은 흙길을 지나면 대부분 나무계단 길이다. 계단의 높이가 꽤 높은 부분도 있어 오르고 내릴 때 조금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불일암에서 50여m만 내려가면 불일폭포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불일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60m 높이에서 떨어지는 불일폭포의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광경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

'불일폭포'와 '불일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불일폭포 앞에 있는 암자에서 정진수도했고, 그 불심에 감동한 고려의 제 21대 왕 희종은 그가 입적하자 불일보조 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에 지눌이 수행을 했던 암자와 그 앞에 있는 폭포에 그의 시호를 따서 '불일'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불일암과 불일폭포가 되었다.

여기서 불일암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감국사가 창건한 암자로 쌍계사의 부속암자이다. 불일암은 진감국사가 쌍계사를 세우면서 함께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에 나타나 있는 불일암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말엽 때부터라고 한다.





3.1.8. 연하선경[편집]


파일:여름 연하선.png
연하선경(煙霞仙景)은 지리산 주능선의 봉우리인 연하봉(1,723m)부터 세석대피소까지의 능선길에서 보는 경치를 말한다. 연하선경은 25.5㎞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졌다고 알려져있다.

연하봉과 촛대봉(1,703m) 두 봉우리 사이에서는 가끔 구름이 흘러가기도 하는데, 이런 광경을 보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 속 연하봉 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는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이다.

연하선경은 주로 지리산 종주길에서 만날 수 있으며, 연하선경을 보기 위한 난이도는 어려운 편이다. 이유는 연하선경 길의 양쪽 봉우리인 연하봉(1,721m)과 촛대봉(1,703m)은 높이가 1,700m가 넘는 고봉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등산을 해야 하고, 지리산 종주를 통해 연하선경을 본다고 해도 지리산 종주 자체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

지리산 종주코스를 이용하지 않고 연하봉으로 가는 길은 세석평전으로 가는 길과 같다고 보면 된다.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세 방향에서 오를 수 있으며, 대표적인 코스로는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가 있다. 백무동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에서 장터목 방향으로 가지 않고 입구에 '세석길'이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는 길로 가면 세석대피소를 거쳐 연하봉으로 갈 수 있다. 백무동~가내소폭포까지는 난이도가 쉬움~보통 단계이며, 백무동~장터목 코스보다는 쉬운 편이다. 또한, 이 탐방로는 한신계곡(백무동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경관이 뛰어나다. 1시간 정도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첫나들이폭포부터,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 여러 폭포를 만날 수 있다.






3.1.9. 칠선계곡[편집]


파일:11057_지리산_칠선폭포와가을단풍_김용대.png
사진 출처
칠선계곡은 함양군 마천면에 위치한 계곡으로 길이는 9.7km이다.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915m)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마천면 추성리로 흘러 임천[16]과 합류한다.
칠선계곡은 설악산 천불동계곡, 제주도 탐라계곡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난이도는 어디까지 올라가느냐에 따라 다르다. 도입부에 위치한 용소나 비선담까지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지만 비선담을 넘어간다면 난이도가 매우 어려움으로 급상승한다. 비선담부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5.4km의 코스는 가히 지리산의 모든 등산코스 중 난이도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어찌나 험하고 미끄러운지 상술되어 있듯이 칠선계곡에 '죽음의 계곡'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고 마폭포를 지나 천왕봉으로 오르는 구간은 경사가 60~70°에 달한다. 그리고 이 코스를 탐방하려면 여행자 보험을 개별 가입한 후 확인서를 지참해야 한다. 칠선계곡의 이러한 험준함 때문에 칠선계곡 코스는 전문 산악인들이 히말라야 등 해외 원정 등반을 떠나기 전 훈련을 하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칠선계곡 코스는 과거 자유로운 탐방객 출입이 허용되었으나 1997년 태풍 사라 때 엄청난 폭우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어 1998년부터 생태계 회복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고 어느 정도 생태계가 회복되자 2004년부터 복원사업이 시작된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주요 서식지가 되기도 했다. 현재 칠선계곡 일대 124,000㎡의 면적이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칠선계곡 코스 전체 탐방로 9.7㎞ 중 추성리에서 비선담까지 4.3㎞는 전면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아도 탐방할 수 있다. 비선담에서 천왕봉까지의 5.4㎞ 코스는 탐방 예약을 해야만 탐방을 할 수 있으며,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루 60명까지만 예약이 가능하고 국립공원공단 직원 4명이 안내하는 탐방가이드제가 시행되고 있다. 칠선계곡 비선담~천왕봉 코스 탐방은 5월, 6월, 9월, 10월의 월요일과 토요일에 가능하다.

칠선계곡 코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상단의 칠선계곡 코스 문단 참조.

칠선계곡은 이렇게 주변 산세가 매우 험하지만 한국 3대 계곡으로 꼽히는 만큼 경관은 정말 수려하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다.

칠선계곡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일곱명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계곡에서 목욕을 했다는데서 유래되었으며 이에 얽힌 전설도 전해내려오고 있다. 전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때 사향 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 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 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

함양군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참고로 전설과는 다르게 실제 사향노루는 뿔이 없다.
칠선계곡 중에서도 일곱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장소는 '선녀탕' 이라는 지명으로 불리고 있다.

칠선계곡에는 칠선폭포를 비롯해 대륙폭포, 마폭포 등 7개의 폭포와 용소,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등 33개의 소(沼)가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폭포는 칠선폭포이다.

칠선계곡 중간에 위치한 칠선폭포는 높이 10여m로 지리산의 여느 폭포들보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지리산 최고의 계곡에서 쏟아지는 폭포답게 수량이 풍부하고 물줄기에 힘이 있다. 또 폭포 아래의 소(沼)는 제법 깊고 널찍하며 물은 투명한 옥빛을 이룬다. 칠선폭포라는 이름은 칠선계곡의 중심부에 위치해 붙은 것이다. 상단의 사진도 칠선폭포를 찍은 것이다. 가을철에 찍은 사진이라 폭포의 양이 그리 풍부하지는 않지만 여름철이 되면 수량이 더욱 풍부해지고 물줄기에 힘이 생긴다.





3.1.10. 섬진청류[편집]


파일:15050_지리산_지리10경섬진청류_윤병춘_F.png
사진 출처
섬진청류(蟾津淸流)는 지리산을 감돌아 남해로 흘러가는 섬진강을 지리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을 의미하기도 하고 섬진강 주변에서 지리산을 배경으로 강이 흘러가는 풍경을 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섬진강이 전라남도 구례군을 경유하여 흐르기 때문에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비롯한 장터목, 연하봉(1,721m) 등 경상남도에 속한 지리산 동부권에서는 섬진 청류를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섬진청류를 보려면 지리산 서부권(전라남도)에 위치한 제 3주봉 노고단(1,507m)이나 제 2주봉 반야봉(1,732m)에 올라야 한다.

상술했듯이 노고단으로 올라서 섬진청류를 보는 코스가 비교적 등산 난이도가 쉽고 등산 거리도 짧기 때문에 노고단에서 섬진청류를 보는 것이 반야봉을 비롯한 다른 장소에서 보는 것 보다 더 보편적이다. 또한 노고단이 지리산의 다른 봉우리보다 섬진강 유역과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섬진청류를 더욱 잘 볼 수 있다.






3.2. 사찰[편집]


지리산은 오래전부터 큰 산으로 유명을 떨친 만큼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이 많다. 대표적으로 화엄사, 대원사, 쌍계사, 법계사, 실상사, 천은사, 영원사, 벽송사 등이 있다. 특히 19번 국도의 구례-하동 구간에는 계곡마다 오래된 사찰들이 들어서있다. 구례쪽부터 하동 방향으로 천은사, 화엄사, 문수사, 연곡사, 쌍계사 순서.


3.2.1. 화엄사[편집]


파일:19013_장려_지리산_산사의 새벽_김순권_D.jpg
산사의 새벽.(화엄사 홍매화) 사진 출처

화엄사(華嚴寺)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노고단의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삼국시대의 승려 연기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거쳐 지리산 주능선을 통과한 후 산청군의 대원사로 하산하는 '화대종주' 코스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화엄사 문서 참조.


3.2.2. 천은사[편집]


파일:구례 천은사.jpg
천은사 수홍루. 사진 출처

천은사(泉隱寺)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에 있는 사찰로, 화엄사의 말사이다.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절이며, 828년에 인도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절의 이름이 달랐는데, 앞뜰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 하였다. 그 뒤 875년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하였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로 승격되었다가 임진왜란의 전화로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후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혜정(惠淨)이 중창하였고, 1679년에 단유(袒裕)가 중건하여 사찰의 이름을 천은사라 하였다. 중건 당시 감로사의 샘가에는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났으므로 한 승려가 이를 잡아 죽였더니 그 뒤로부터는 샘이 솟아나지 않았고, 샘이 숨었다 해서 천은사로 개명하였다 한다. 구렁이와 관련된 이 전설은 상단의 '파충류' 문단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천은사 앞으로 노고단로가 지나가는데 노고단으로 가는 탐방객들이 천은사를 들르지 않는데도 천은사의 사유지를 지나간다는 이유로 이곳에 있던 매표소에 통행료를 강제로 내야했던 `통행세`로 악명이 높았다. 1987년부터 2019년까지 32년간 이어져오다 결국 폐지되었다.


3.2.3. 대원사[편집]


파일:대원사.jpg
사진 출처

대원사(大源寺)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에 위치한 사찰로, 삼국시대의 승려 연기가 548년에 창건하였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창건 초기의 이름은 평원사(平原寺)였다. 그 뒤 폐사가 되었던 것을 1685년(숙종 11), 운권(雲捲)이 옛터에 절을 짓고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으며, 1890년(고종 27) 구봉(九峰)이 낡은 건물을 중건하고 서쪽에 조사영당(祖師影堂), 동쪽에 방장실(方丈室)과 강당을 짓고 대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3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자 주지 영태(永泰) 등 50여 명이 16,000원의 시주를 얻어, 1917년 전(殿)·누(樓)·당(堂)·각(閣)과 요사채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중건하였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공비들의 약탈 방화로 소실된 뒤 8년 동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 승려 법일이 다시 중창한 뒤 비구니선원을 개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분에 이 절은 한국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이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1112호인 다층석탑이 사리전 앞에 있다. 646년(선덕여왕 15) 자장이 세웠다는 이 탑은 돌이 철분을 많이 함유한 탓으로 붉은 물이 스며 나와 강렬한 인상을 풍기고 있으나 조각은 소박하다. 하단 네 귀퉁이에는 신장상을 세우고 사면에는 연화문을 조각하였으며, 체감의 비율은 거의 완벽하다. 옥개석은 둔중하며 제9층의 사우에는 작은 종을 달았다. 절 입구에는 부도와 방광비(放光碑)가 있고, 절 부근에는 옛날 선비들이 수학하였다는 거연정과 군자정 등이 있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고난이도 코스인 '대원사 코스'가 이곳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3.2.4. 쌍계사[편집]


파일:쌍계사.jpg
사진 출처

쌍계사(雙磎寺)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위치한 사찰로, 723년에 통일신라의 승려 삼법이 창건하였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이다.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절은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취한 뒤 귀국하였다.그리고 한라산·금강산 등을 두루 다녔으나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오자 호랑이가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에 이르렀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그 뒤 840년(문성왕 2)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대가람을 중창하였다.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리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가 이 절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벚꽃 시즌에는 아래에 있는 화개장터부터 쌍계사까지 일명 십리벚꽃길이 전국구 명소가 된다.

지리산 남부능선 종주코스인 세석-삼신봉 코스가 이곳을 시종점으로 시작한다. 이 곳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16.6km, 10시간의 산행이 요구된다. 여기서 남부능선-주능선 종주를 한다면 1박은 하는 것이 좋다. 세석까지는 불일폭포이후 탐방로 정비가 주능선 만큼 좋지 않기에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자세한 내용은 쌍계사 문서 참조.


3.2.5. 법계사[편집]


파일:법계사 삼층석탑.jpg
보물 제 473호인 법계사 삼층석탑의 모습. 사진 출처

법계사(法界寺)경상남도 산청군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진흥왕 5년에 승려 연기가 창건하였다.

해발 1,450m고지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위치상 최고봉인 천왕봉(1,915m)과도 인접해있으며, 천왕봉 등반 최단코스인 중산리 코스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등산객들의 쉼터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1405년에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불탄 뒤,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이 준공되어 절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삼층석탑이 있으며, 절 뒤에는 암봉(巖峰)과 문창대(文昌臺)가 있다.

이 절은 일본과 미묘한 관계가 있는 절로, 예로부터 '법계사가 일어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일어나면 법계사가 망한다.'라고 하여 여러 차례 왜적이 침범하였다. 고려 때 왜적 아지발도(阿只拔屠)가 이 절에 불을 지르고 운봉전쟁에서 이성계의 활에 맞아 죽은 일화는 심심찮게 이야기되고 있다.


3.2.6. 실상사[편집]


파일:실상사.jpg
사진 출처

실상사(實相寺)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위치한 사찰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홍척이 828년에 창건하였다. 다른 사찰들과 달리 실상사는 강가의 평지에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비교적 접근성이 좋고 사찰 경내가 평탄하다.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하였다. 그 후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또한 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 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다.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세한 내용은 실상사 문서 참조.


3.2.7. 영원사[편집]


파일:영원사.jpg
영원사와 지리산 주능선 너머의 일출. 사진 출처

영원사(靈源寺)경상남도 함양군에 위치한 사찰로,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영원이 창건하였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때의 고승이었던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창건하여 절 이름을 영원사라 하였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의하면 영원조사는 원래 범어사(梵魚寺)라는 절에서 수행하다가 욕심 많은 스승의 곁을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토굴을 짓고 10년 동안 정진(精進)하여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뒤 다시 범어사로 돌아와서 흑 구렁이로 변한 스승의 업신(業身)을 제도한 뒤 영혼을 인도하여 지리산 토굴로 돌아가다가 한 부부를 만났다. 그는 부부에게 열 달 뒤 아이가 태어날 것이니 7년 뒤에 자신에게 데려다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토굴로 돌아와서 7년 동안 절을 지어 이 영원사를 완성하였다. 찾아온 동자를 제자로 삼아 방안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뒤 문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고 이 문구멍으로 황소가 들어올 때까지 열심히 정진하라고 일러주었다. 그 뒤 동자는 문구멍으로 황소가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불도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전생의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해발 920m지점에 위치한 이 절은 주변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절의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1] 1위는 한려해상국립공원, 2위는 북한산 국립공원.[2] 북한산은 계곡의 규모가 지리산에 비해 크지도 않거니와 안전 상, 환경 상의 문제로 출입이 불가능하다.[3] '철쭉'은 우리말이지만, 한자어에서 유래되었다. 철쭉의 한자 이름은 척촉(躑躅)인데, "꽃이 아름다워 사람이 머뭇거린다" 또는 "잎과 꽃에 있는 독을 먹은 사람이 머뭇거리며 비틀거린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출처 : 경남일보[4] 등산을 어느정도 해본 사람 기준이다. 평소에 등산을 아예 안하는 등산초보자라면 6시간까지 걸릴 수도 있고 거기다가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6시간 이상으로 걸릴 수도 있다.[5] 이는 천왕봉 관측소가 없는것도 있다.[6] 세석 대피소는 240명, 장터목 대피소는 155명 수용할 수 있다.[7] 대피소에서는 물로 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휴대용으로 해결해야 한다. 청결에 신경쓰고 싶다면 휴대용 가글, 드라이샴푸, 1회용 샤워타올 등을 챙겨간다면 도움이 된다. 사용하고 나온 쓰레기는 되가져가야 한다.[8] 칠선계곡 탐방은 5월 1일~6월 30일/9월 1일~10월 31일 1년중 딱 4개월만 예약이 가능하고 예약 정원도 1일 60명으로 노고단보다 적어서 훨씬 예약하기가 힘들다.[9] 반야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성삼재에서 노고단 고개를 통해 주능선 길을 따라가다가 노루목에 있는 갈림길에서 반야봉 방향으로 올라가야 한다. 성삼재~노루목 구간의 난이도는 보통이지만 삼거리에서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난이도가 어려움이다.[10] 해발 1,732m의 고봉에 오르는 것이지만 반야봉 코스는 해발 1,090m의 성삼재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천왕봉 코스 보다는 쉬운 편이다.[11] 국립공원공단이 안전사고 예방과 고지대 불법 야영으로 인한 자연훼손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산행목적지, 거리와 산행시간 등을 고려하여 탐방로별로 입산ㆍ통제시간을 지정ㆍ운영하는 제도이다.[12] 이 대피소는 지리산의 대피소 중 노고단 대피소, 세석 대피소와 더불어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13] 해발고도가 100m 높아질수록 약 0.6℃ 정도 낮아진다. 세석평전은 해발고도가 약 1,500m~1,600m 정도 되기 때문에 평지보다 기온이 6~8℃ 정도 낮다. 실제로 지리산에는 4월 중순~하순에도 눈이 오는 경우가 많다.[14] 과거에는 여러 초목이 무성했지만 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만을 남기고 뜯어먹으며 철쭉이 도드라지게 되었고, 이후 면양 목장이 사라지고 1990년대 등산로가 개방되면서 철쭉 명소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15] 청학동에 머물던 최치원이 말을 타고 가다 머물렀던 흔적이 남은 곳이라고 하는 설화도 있다.[16] 임천은 칠선계곡을 비롯해 한신계곡(백무동계곡), 비리내계곡, 뱀사골계곡, 달궁계곡, 심원계곡 등 지리산의 여러 유명 계곡들이 합류한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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