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오카 니자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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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3.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3.1. 개요
3.2. 생애
3.3. 연기 스타일
3.4. 여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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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오카 가문의 문장 나나츠와리마루니 니인(七つ割丸に二引)

카타오카 니자에몬 (片岡仁左衛門)

간사이를 연고지로 둔 가부키 명문가 카타오카 가문의 당주가 잇는 세습명이자 명적이다. 야고는 초대와 2대는 불명, 3대부터 5대가 토사야 (土佐屋), 6대가 토미마스야 (富桝屋), 7대부터 당대가 마츠시마야 (松嶋屋)이다.

당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15대일 정도로 350년이라는 유래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름이 갖고 있는 입지와 명예 또한 가부키계에서 선망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이 세습명을 잇는 배우는 가문에서 특히 장래를 촉망받고 가부키 배우로서의 연기력이 수준급에 달해야만 하는 인식이 있으며 이전의 계보를 보면 실제로 그러하다.

다만 어느 가문이나 비슷하겠지만 사실 가부키에서 세습명을 이은 인물이 많다는 것은 과거에 세습명의 명적 처리를 제대로 못한 것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 카타오카 니자에몬 역시 야고가 세 번에 걸쳐 나눠져 있듯, 선대 배우와의 관계가 조금 복잡한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워낙 유명하고 뼈대 있는 명적이다 보니, 니자에몬을 이은 배우가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 아끼는 방자에게 보관 명적으로 이어둔다거나, 먼저 타계한 자신의 형이나 동생에게 사후 세습명으로 추존하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명적을 추존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배우가 당시 업계에서 뛰어난 배우여야만 가능했기에 역대 니자에몬들이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남성 역의 타치야쿠, 여성 역의 온나가타, 여러 일본 무용에서 전부 최고도달점에 섰으며 여러 기네스북 기록과 일본 예술회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는 당대인 15대도 마찬가지이다.

'간사이 가부키 명문가 마츠시마야'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가문의 배우 대부분이 교토부, 나라현, 오사카부 출신으로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가문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간혹 습명 행사나 다른 가문의 피로 공연을 위해 도쿄를 오가기도 하지만 여러 사연이 있기에 가문의 배우들은 공연 때문에 잠깐 지내다가 공연이 끝나면 급히 간사이로 돌아가는 편이다.

이는 도쿄가 본고장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도쿄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끔찍하게 살해당한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2.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편집]


초대와 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과 7대부터 당대의 니자에몬이 추존을 포함하여 실제 세습명으로 인정받은 경우이며 3대부터 6대는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동시 명적, 보관 명적으로 쓰였기에 기록상으로 표기해둔 것에 가깝다.

  • 초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엔호(1673년), 간사이에서 온나가타의 최고 배우로 여겨졌던 토요시마 하루노조의 동생이며 본래 가부키좌에서 일하는 샤미센 연주자였다. 1656-1715.

  • 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초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장남. 아버지로부터 명적을 습명받았지만 요절하였다. 그리고 이 인물의 요절로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명적 세습이 잠시 중단되었다. 본명은 카타오카 산헤이. 생몰년 미상.

  • 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초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여동생 혹은 처제. 추존된 것이며 초대가 타계한 직후 임시로 카타오카 가문의 3대 당주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무용과 샤미센을 통한 나가우타 연주의 특기자였다. 생몰년 미상.

  • 4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 모든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배우이며 사실 4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습명 당시 어떠한 경위로 습명받게 된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아라고에에서 특기를 발휘한 배우였지만 이내 가부키 배우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1758년.

  • 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4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 유명 배우인 3대 후지카와 한자부로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명적을 맡고 있던 것으로서, 이것을 5대로 여기고 있다. 생몰년 미상.

  • 6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선대와의 관계는 불명. 위의 동시 명적 사례와 마찬가지로 당시 유명 배우인 3대 미호키 기자에몬이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명적을 맡은 것이며 이를 6대로 여기고 있다. 1731-89년.

  • 7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초대 아사오 쿠니고로의 동생이다. 여러 유명 가문의 방자로 지내다가 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요절로 세습이 중단되었던 명적을 100년만에 부활시키며 본인이 7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을 습명받는다. 1755-1837년.

  • 8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7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 본래 나리타야 7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문하생 출신으로 그 실력이 출중하여 여러 가문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이 닿은 마츠시마야에서 카타오카 니자에몬을 습명받았다. 1810-63년.

  • 9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8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 본래 4대 미마스 다이고로의 문하생 출신으로 지내다가 카타오카 가문의 2대 카타오카 가도의 문하생이 되었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가문의 눈에 들어, 가도의 양자가 되었다. 당시 예명은 2대 카타오카 가토우. 이처럼 장래를 촉망받던 배우였으나 30대 중반에 급사하였다. 그리고 그의 사후 36년 뒤,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추존에 의해 9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으로 인정되었다. 1839-72년.

  • 10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8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3남. 완벽한 무대였어야 할 본인의 카타오카 니자에몬 습명 피로 공연을 대사 실수와 여러 동작 실수로 망쳐 버렸고, 그것을 내내 염두에 두며 다른 배우들의 시선에 괴로워하다 과로사하였다. 본래 9대였지만 자신의 남동생이 위의 인물을 9대로 추존하며 사후 12년 뒤에 10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되었다. 1851-95년.

  •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8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4남. 나리타야에 가부키 18번이 있다면 마츠시마야는 '카타오카 12집'이라는 가예가 있는데, 이 가예의 저자이다. 형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카타오카 니자에몬을 습명할 때, 안타깝게 급사한 2대 카타오카 가토우를 9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으로 추존하며 자신의 형을 10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으로 기록한 뒤 본인은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을 습명받았다. 1858-1934년.

8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외손자이며 10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이다. 온나가타와 타치야쿠 등, 어느 배역에서나 최고의 연기를 하였으며 신인 육성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도쿄 태생이었으나 양자 입적 후로는 간사이에서 생활했으나 그의 실력이 간사이에서만 쓰이는 게 아까웠던 여러 가문의 배우들의 요청에 의해 자신의 후처와 함께 도쿄로 거주지를 옮겼던 몇 안 되는 카타오카 가문의 배우였다. 허나 말년에는 자신의 집에서 동거하던 문하생에게 본인 포함 일가족이 끔찍하게 살해당하였다. 1882-1946년.

  •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 친부는 일본의 금융 재벌인 야스다 재벌의 2대 총수 야스다 젠자부로이다. 야스다 젠자부로의 3남으로 태어나자마자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여담으로 13대 니자에몬의 여동생이 오노 요코의 어머니이며, 즉 호적상으로는 다르지만 오노 요코의 셋째 외숙부이다. 1903-94년.

  • 14대 가타오카 니자에몬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장남. 역대 니자에몬 중에서 유일하게 일평생 온나가타만을 연기해온 배우이다. 자신이 거둔 문하생에게 처참히 살해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본인이야말로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되어야 한다며 쇼치쿠에 아득바득 우기다가 실력 차이로 밀려나자 5대 카타오카 가도를 습명받게 된다. 그러나 포기를 안 했는지 카타오카 가도 습명 당시, 본인을 13대 카타오카 가도라고 자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그의 사후,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아버지의 세습명인 카타오카 니자에몬을 14대로서 추존받게 되었다. 여담으로 일평생 온나가타를 연기한 배우였던지라 동시대의 타치야쿠로 유명했던 배우인 코오라이야의 9대 이치카와 코마조[1]부부로 엮여 여러 무대에 섰었는데, 둘은 실제로 연인관계였으며 이는 1940년 경, 코마조가 나리타야에 양자로 입적되고 더는 서로 왕래가 없게 되자 결별했다고 한다. 결별 직후, 가도는 식음을 전폐하였고 이를 가문에서 뜯어말리자 설탕물만 겨우 마시며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리고 코마조의 결혼 소식과 첫아이 탄생 소식에 힘들어 하며 본인은 일평생 결혼도 안 하고 지냈다. 이후 코마조가 먼저 세상을 뜨게 되자 그의 부고 소식에 넋을 잃고 울었다고.[2][3] 1910-93년.

  •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당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3남이며 위로 이미 가부키 배우로서 활동하는 두 형이 있었지만 자신만의 특출난 연기와 출중한 외모, 어느 배역이나 소화 가능한 연기력에 의해 아버지와 쇼치쿠의 결정으로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을 습명받았다.[4]이 때문에 위의 두 형과는 습명 직후 불화가 있었지만 이내 15대 니자에몬의 연기력을 인정했다고. 니자에몬보다는 타카오라는 본명으로 더욱 유명세를 떨쳤다. 1944년–.

3.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편집]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十五代目 片岡(かたおか 仁左衛門(にざえもん | Nizaemon Kataoka XV


파일: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jpg

본명
片岡(かたおか 孝夫(たかお (카타오카 타카오, Takao Kataoka)
예명
초대 카타오카 타카오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1998년 습명)
출생
1944년 3월 14일 (80세)
오사카부 오사카시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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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7cm, 60kg
학력
교토 시립 라쿠토 중학교 (졸업)
교토 외대 서구 고등학교 (중퇴)
가족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1903년생-1994년 사망)[5]
어머니 카타오카 키요코
3남 5녀 중 삼남
첫째 형 5대 카타오카 가토우(1935-)[6]
둘째 형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1941-2021년 사망)[7]
여동생 카타오카 시즈카(1946-)[8]
배우자 카타오카 히카에(1966년 결혼)[9]
장남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1968년-)[10]
장녀 카타오카 사치(1970-)[11]
차녀 카타오카 쿄코(1971-)[12]
장손 초대 카타오카 센노스케(2000년-)[13]
친손 카타오카 타카아키(2021년-)[14]
조카 초대 카타오카 신노스케(1967-)[15]
조카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16]
당숙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1882-1946년 사망)
고종사촌 누나 오노 요코[17]
내종질 션 레논
야고[18]
마츠시마야 (松嶋屋)
직업
가부키 배우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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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개요[편집]


일본가부키 배우.

가부키 가문 마츠시마야의 당주이자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간사이 가부키의 대부라고도 불린다.


3.2. 생애[편집]


파일: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일가.jpg}}}
마츠시마야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일가의 가족 사진[* 1954년에 촬영된 것으로 앞줄 좌측부터 13대 니자에몬의 부인 카타오카 키요코, 5녀 시즈카, 13대 니자에몬, 삼남 타카오, 13대 니자에몬의 장모 츠네. 바로 뒷줄 좌측부터 차남 요시히토, 4녀 타마에, 3녀 사에코, 차녀 요시코. 그 뒷줄 좌측부터 13대 니자에몬의 문하생 두 명과 하수인 두 명. 장남 히데키미와 장녀는 친가댁에 맡겨져 있었다고 한다.]
1944년 3월,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가부키 가문 마츠시마야의 당주를 지내던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과 어머니 카타오카 키요코 사이에서 3남 5녀 중 삼남으로 태어난다. 출생명은 카타오카 타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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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분장실에서
둘째 형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와 함께

위로 이미 가부키를 하는 형이 둘 있었기에 당주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그러나 오사카부의 가부키좌인 나카좌에서 다섯 살의 나이에 첫 무대를 가진 타카오는 자신이 가부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루에 학교를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부키 연습에 온종일 매진해 있었다.

이후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건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순회 가부키 극에서 타치야쿠, 온나가타 등을 완벽히 해내며 '도쿄에 단쥬로가 있으면 오사카에는 타카오가 있다'라는 수식어까지 붙게 되었고 지역과 가문의 간판 배우로 출세하게 된다. 가문의 기대를 받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1966년, 22세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며 한창 중요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앞으로 부진할 것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받았지만 때마침 1967년, 간사이 가부키가 침체에 빠지며 잠시 도쿄로 거점을 옮겼다. 그리고 1968년, 장남인 카타오카 야스오를 얻으며 후계까지 확보한 뒤, 도쿄, 오사카의 가부키 무대에 더욱 열중했다.

니마이메로 유명했던 배우답게 드라마, 영화에서 명연기를 펼쳤으며 그가 나온 드라마의 해당 회차는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였다.

1993년에는 평소 앓던 지병으로 인해 휴연을 하며 타카오는 못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1년만에 회복하여 다시 무대에 복귀하였다. 이 시기부터 아버지인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세 아들 중 누가 가문의 차기 당주에 적합한지 쇼치쿠의 회장과 의논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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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습명 피로 공연 中
1994년에는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사망하였고 그의 유언대로 1998년, 삼남인 카타오카 타카오가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습명받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두 명의 형들과 사이가 안 좋았지만 금방 화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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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일가[19]
2000년에는 장손인 카타오카 마사히로[20]가 태어나며 56살의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손자를 위해 카타오카 가문의 가예 '카타오카 12집'의 개선에 나섰고 마사히로가 습명을 받은 이듬해에 완성하며 카타오카 가문 삼대 피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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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의 마츠시마야 카타오카 가문[21]
2015년,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이자 인간국보로 인정받으며 일본 예술회의 회원이 되었다.

3.3. 연기 스타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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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사에다 다이가쿠노스케
전형적인 니마이메 배우이다. 우선 형들과 달리 키가 177cm로 가문의 배우들을 통틀어 상당한 장신이고 얼굴도 미남, 카리스마형이라 타카오의 얼굴을 보러 오사카까지 가부키를 보러 왔다는 팬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외모와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아라고에를 겸비한 연기력까지 겹쳐져 4대 가문을 제외하고 그저 실력만으로 주인공 역을 많이 연기한 배우로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스케로쿠는 나리타야의 선대 당주 12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함께 배역으로 분쟁을 벌이다 결국 도쿄, 오사카에서 따로 개최한 일화는 유명하다.

무용도 수준급인데, 일본 무용과 가부키 배우 임원회 직함으로 일본 예술원 회원으로 인정받았다. 과거, 자신의 방자를 포함하여 카타오카 아카데미의 문하생들에게 무용을 가르쳤으며 그의 무용을 배우기 위해 일부러 오사카까지 오는 문하생과 부모가 많았다. 현재는 나이 때문에 조카인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에게 원장직을 인계하였다.

나카무라야의 6대 나카무라 칸쿠로와 궁합이 잘 맞는 상대역이 그의 동생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이듯, 15대 니자에몬도 타치야쿠로 설 때면 늘 상대역으로 따라오는 단짝 배우가 있는데, 그가 바로 온나가타를 주력으로 하는 5대 반도 타마사부로이다. 20대 시절부터 늘 엮여 함께 무대에 올랐으며 둘의 콤비가 쇼와 가부키의 간판이었을 정도. 젊은 시절 둘의 인터뷰.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습명 이전까지 사용한 카타오카 타카오라는 이름으로 지낸 기간이 더 길고, 이 이름으로 활동하며 여러 공연 기록을 세웠기에 해당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3.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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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5px -10px"파일:타카오 젊은 시절2.jpg파일:타카오 젊은 시절.jpg}}} ||
    젊은 시절의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카타오카 타카오로 배우 활동하던 시절, 후지 테레비의 신슈 텐마 사무라이,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의 1965년 방영작 <태합기>에서 모리 나리토시 역, 1971년 방영작 <봄의 언덕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리 역, 1972년 방영작 <신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다카쿠라 천황 역, 1975년 방영작 <겐로쿠 태평기>에서 아사노 나가노리 역, 1991년 방영작 <태평기>에서 고다이고 천황 역 등, 여러 배역으로 출연하였다.

나이가 여든을 넘어선 이후로는 본인의 주력 배역을 제외하면 무대에 그리 잘 서지는 않는 편이다. 그나마 7~8월 오사카 여름 대가부키에서 얼굴을 비치며, 후배 배우들의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가부키의 대부로 불리며 세간에 그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많은 가문의 유명 배우들이 그에게 직접 연기를 배우고 무용을 지도받는다. 특히 15대 니자에몬 본인이 한때 섰던 무대라면 늘 감독관으로서 참여하며 후배 배우들을 엄하게,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가르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