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골리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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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의 군인.
2. 생애[편집]
시골 소방관 아버지, 농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밑에서 응급치료를 배웠다.
2.1. 러시아 내전[편집]
1918년 5월 노농적군에 입대했다. 1919년 3월부터 제10모스크바 소총연대장, 1919년 8월부터 제51보병사단 정치장교를 역임했다.
2.2. 전후[편집]
1940년 7월부터 노농적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으로 임명됐다. 주요 업무는 이오시프 스탈린,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세묜 티모셴코, 게오르기 주코프, 니콜라이 쿠즈네초프를 비롯한 장군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2.3. 독소전쟁[편집]
1941년 10월 제10군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서부전선의 지휘관 중 하나로서 12월 초부터 하인츠 구데리안의 부대를 툴라로부터 약 400km 떨어진 지점까지 몰아냈다. 골리코프의 부대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로부터 받은 군수물자가 적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게 됐다. 하지만 보로네시 전투 당시 실책 때문에 후방의 제1근위군 사령관으로 좌천됐다. 이후 1943년 1월 13~27일, 헝가리 왕국(1920년~1946년)의 제2주력군, 이탈리아 왕국의 알파인 군단, 나치 독일의 제24전차군단을 공격해 8만여 명의 포로를 확보했다.
그러나 제4차 하리코프 공방전 당시 자신의 부대와 병력을 과대평가한 탓에 후퇴하는 나치 독일군을 추격하지 않아 반격당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보로네시 전선으로 추방된 이후 다시는 전선을 지휘하지 못하게 됐다.
2.4. 전후[편집]
1950년 9월부터 독립기계화군 사령관, 1956년 5월부터 이오시프 스탈린 기갑사관학교장을 역임했다. 이후 소련 최고회의 부의장을 역임하다 건강 악화로 퇴직했다. 1962년 6월부터 소련 국방부 감찰관으로 활동하다 1980년 7월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3. 진급 이력[편집]
4. 기타[편집]
군사기밀을 다루는 정보 계통에서 주로 근무하며 원수까지 진급했지만, 독소전쟁 초기에 잠깐 야전 지휘관을 역임했다가 자신의 상관 니키타 흐루쇼프와 정치적 충돌을 빚으며 단단히 찍혔기 때문인지 소비에트 연방 영웅으로 등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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