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소콜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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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 육군의 원수이자 제6대 국방장관.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1932년 5월 입대했다. 고리키 기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입학 시험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해 소대와 중대를 지휘했다. 훈련 과정을 수료한 그는 극동 지역으로 파견돼 전차 부대에서 복무했다.
2.2. 하산 호 전투[편집]
전차 중대를 훌륭하게 지휘해 용맹메달을 수여받았다.
2.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2.3.1. 독소전쟁[편집]
1941년 6월부터 9월까지 전차연대 참모장을 역임했다. 냉철하고 침착한 판단과 적극적인 리더십을 인정받아 적성훈장을 수여받았다. 1944년 3월부터 9월까지 해당 전선의 제32군 기갑 및 기계화 부대 사령관을 역임함과 동시에 대령으로 진급했다.
2.3.2. 전후[편집]
1947년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딴 기갑 및 기계화군사관학교를, 1951년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딴 고등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소장으로 진급해 제14근위기계화사단장, 제3근위기계화군 참모장을 역임했다. 1963년엔 중장으로 진급해 모스크바 군관구 참모장 및 제1부사령관을, 1965년 10월부터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을 역임했다. 1967년 4월 대장으로 진급해 소련 국방부 제1국방차관으로 임명됐다. 1978년 2월 17일, 마침내 원수로 진급했다.
2.4.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편집]
명예퇴역을 스스로 취소하고 작전사령관을 역임했다. 전투부대 배치는 물론 향후 전투까지 계획했다. 1980년 4월 28일 소련 최고회의 법령에 따라 레닌훈장과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가 수여됐다.
2.5. 말년[편집]
1984년 12월 22일,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원수가 사망함으로서 소콜로프가 국방장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지시에 따라 해임됐으며, 소련 최고회의 7~11대 부의장을 역임했다.
1987년 6월부터 1989년 7월까지 소련 국방부 감찰관으로 활동했다.[1] 1992년 은퇴 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개인 권총을 수여받았다. 한동안 독립국가연합군 총사령관 고문으로 활동했으며, 1992년 9월부터 러시아 연방 국방부 고문으로 임명됐다.
2008년 러시아가 국방부 직할 감찰단을 창설함과 동시에 소콜로프를 수석 감찰관으로 임명했다.
2011년 7월 1일, 소콜로프는 100세가 됐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직접 축전을 보냈고에게 축하 전보를 보냈고,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장관은 여러 선물을 전달했다.
2.6. 사망[편집]
2012년 8월 31일, 10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2] 배우자 마리야도 대조국전쟁 참전용사였기 때문에 소콜로프는 마리야와 함께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됐다.
3. 진급 이력[편집]
4. 기타[편집]
- 2001년 6월, 90번째 생일을 맞이해 모스크바주 명예 시민으로 임명됐다.
- 2001년 7월, 옙파토리아 명예 시민으로 임명됐다.
- 2011년 7월, 100번째 생일을 맞이해 키로프주 명예 시민으로 임명됐다. 이후 키로프 승리 공원에 그의 흉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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