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공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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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공진
河拱辰


캐릭터
지위
중랑장[1] (1 ~ 4회)
상서좌사낭중[2] (4회, 12 ~ 16회)
거란 관리[3] (21 ~ 23회)
등장회차
1 ~ 4회, 12 ~ 16회, 21회 ~ 23회
배우
이도국

1. 개요
2. 작중 행적
2.1. 1 ~ 4회
2.2. 12 ~ 13회
2.3. 14 ~ 16회
2.4. 21회 ~ 23회
3. 묘사
4. 어록
5. 여담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동북면에서 여진족을 물리치던 하공진은 분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유배당하지만, 거란의 침입 이후 복직하여 고려를 구하기 위해 몸소 거란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편집]



2.1. 1 ~ 4회[편집]


1~2회에서 유방, 탁사정과 함께 목종을 호위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3회에서는 강조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유행간이 이전과 변함없이 오만하게 자신을 비롯한 무신들에게 명령을 하는 모습에 질렸는지 강조 측에 서겠다는 탁사정의 의견에 동의하며 유방을 함께 설득한다.

4회에서 유방, 탁사정과 함께 동북면으로 가 대도수지채문을 설득한 뒤 그대로 동북면에 발령된 것으로 보이는데, 하필 하공진 등이 고려에 우호적인 여진 부족까지 싸잡아 공격하는 바람에 여진 부족이 원한을 품고 거란에 고려의 정변 소식을 알렸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현종은 그들의 유배를 명한다.[4][5]


2.2. 12 ~ 13회[편집]


12회에서 강감찬을 만나는데[6] '상서좌사낭중'으로 있었다고 강감찬에게 말하며, 같은 직책으로 복직해 상경 도중을 만나서 개경의 함락 상황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7] 이후 강감찬과 동행하며 거란 사신이 서경으로 가는 행렬을 목격하고 강감찬과 함께 양규가 있는 서경에 합류하였고, 13회에서 강감찬 및 강민첨과 함께 절령에서 소배압과 만난 후 강감찬의 명으로 현종을 찾으러 갔다.


2.3. 14 ~ 16회[편집]


14회에서 드디어 현종과 만나게 된다.[8] 창화현의 향리가 하공진이 공격하러 오고 있다는 소문을 낸 탓에 지채문을 포함한 몽진 행렬 모두가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하공진이 말에서 내려서 예를 갖추며 현종의 안부를 묻자 모두가 경계를 풀고, 이후 강감찬과 양규가 세운 작전과 곽주 탈환 소식을 전한다. 친조문을 받든 후엔 자신들의 병사들은 남겨두고 홀로 거짓 친조문을 들고 개경으로 돌아가면서 현종에게 "자신이 떠나고 이틀 동안 소식이 없으면 얼른 떠나라. 고려를 위해 죽을 수 있어서 영광이다."라고 언급한다.[9]

이후 개경으로 향하던 중 추격 중이던 야율적로와 거란 병사들과 마주치나, "황제는 이미 저 멀리 남쪽으로 내려갔고 자신은 친조문을 가지고 거란 황제를 뵈러가는 길이다."라면서 블러핑을 시전해 시간을 벌어주면서 이들과 함께 개경으로 돌아왔다.[10] 이후 야율융서를 찾아가 친조의 뜻을 전하지만, 야율융서는 이를 믿지 않으면서 감옥에 가두고 거란군은 남쪽으로 진격하라고 명한다.

15회에서 탈출한 노전에 의해 그가 고려의 사신으로서 거란 진영에 남아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거란 관리들이 왜 거란군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엿듣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16회에서 압록강을 건너는 야율융서의 뒤를 따라 대신들과 압록강을 건너면서 강 너머 고려 땅을 바라본다.


2.4. 21회 ~ 23회[편집]


이후 고려 조정의 지방 개혁을 비추면서 보이지 않다가 21회 중반 간만에 거란 내부의 사정을 보여주면서 말단 거란 관리의 옷을 입은 채[11] 거란 땅에 계속 억류되어 있는 상태로 등장한다. 요 성종 야율융서가 황급히 행궁을 옮기자, 자신도 따라와야 한다는 거란 관리의 말을 듣고 뭔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22회에서는 사신으로 왔다가 참수를 당할뻔한 현종의 장인이자 형부시랑 김은부를 송, 당항의 사신을 통하여 구출한 뒤 객관에 머물든 그에게 행궁에 있던 거란의 조정이 상경으로 복귀하게 된 사정을 투서로 전한 뒤 탈출을 돕는 모습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잠시 소배압과 마주하게 되는데, 극 중 자세한 묘사가 생략되었지만 소배압의 대사를 통해 성종 야율융서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남경 석진부에 큰 집과 배우자를 선물받은 사실도 나온다.

결국 23회에서 거란의 관리와 병사들로 위장[12]한 발해 유민들의 협력을 받아 한 번 탈출을 시도하다가 실패해 객관에 연금되었던 김은부를 탈출시킨다. 이후 상경과 압록강 사이 중간 벌판에서 김은부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고 말 세 필과 통과패를 전하면서 "고려의 신하임을 잊은 적 없다"면서 그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김은부가 떠나고 바로 추격해 온 거란 추격병들과 격돌했다. 이 때, 칼을 뽑고 손을 띠로 칭칭 감으면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진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인해 같이 협력한 유민들은 몰살되었고[13], 자신도 얻어 터진 모습으로 소배압의 비아냥을 듣고 상경의 야율융서 앞으로 끌려갔다. 야율융서는 그를 일어서게 하면서 "너의 용기가 가상하니 남경으로 내려가 거란의 신하로 살아달라"라고 회유하지만, "자신은 '고려의 신하'라면서 폐하의 은혜는 가슴 한쪽에 새기지만, 마음 속에는 고려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거절하면서 야율융서의 분노를 드러냈다. 이어 웃으면서 한 발 앞으로 나서다가 호위하던 거란 병사들이 칼로 위협을 해도 당당하게 아래의 발언을 하면서 야율융서를 더욱 분노케 한다.[14]

폐하, 정복자의 자비는 위선일 뿐이옵니다. 침략이라는 악행을 덮으려는 기만술이옵니다." (야율융서 : 뭐?!) "돈 안 되는 늙은이들은 때려 죽이고, 갓난아긴 우물에 던져 죽이는 게 거란이옵니다. 그런 악행이 어찌 저 같은 사람 하나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감춰지겠사옵니까? 전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짐승의 신하가 될 수 없사옵니다.

결국 실제 역사처럼 누운 채 형틀에 묶이고 그 상태에서 배를 갈라 간이 뽑힌 채 사망하게 되었다. 거란 병사들에게 둘러쌓여 간이 뽑히기 전 있는 힘을 다해 "나는 고려인이다. 고려인..."이라고 유언을 남긴 채 바닥에 깔린 멍석에 피가 뿌린 장면을 끝으로 그의 활약은 막을 내렸다.

3. 묘사[편집]


원작 소설에서는 지채문과 어느 정도 아는 사이에 무예가 그만큼 출중하여 군사들을 어수룩하게 다룰 일은 절대로 없다고 언급되며, 지채문은 그가 용렬한 만큼 명예심도 강해서 개인적인 원한은 있을지라도 왕실에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15] 또한 원작에서 현종이 입조하러 오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아 심기가 불편한 야율융서에게 아첨하여 기분을 풀어준 후[16] 그가 고려의 바다나 섬 등의 지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을 간파해 상어 고기나 고래와 사람의 설화적인 관계 등을 설명하며 흥미를 돋구는데, 하공진은 야율융서가 생각보다 지적 수준이 높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것을 확인해서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17]

드라마에서는 목종 재위기 시절에 제1차 여요전쟁의 영웅인 유방에게도 방자하게 구는 유행간을 보며 분노가 폭발하여 강조의 정변 당시 강조의 편에 서는데, 대놓고 그 사태가 목종의 탓이고 정변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설파한 탁사정과는 달리 하공진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딱히 적극적으로 항변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현종에 의해 유배를 간 이후에도 딱히 이를 두고 원한을 가진 듯한 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간신들은 참지 못해도 고려 왕실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악감정이 전혀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까지 각오하면서 적의 진중으로 들어가 표문을 바쳐 철수시키는 공을 세우는 등 충신으로서의 모습이 부각된다. 여러모로 정변 당시 같이 친종장군 유방을 설득해 황궁의 문을 열게 한 동지였던 탁사정과는 대비되는 인물이다.

사족으로, 실제 역사에 따르면 하공진은 16회를 기점으로, 고려의 사신으로 거란에 건너간 이후 억류되어 죽을 때까지 고려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거란군과 함께 압록강을 넘어간 것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거란주 야율융서도 능력이 출중한 하공진을 끝까지 신임하여 강제로 결혼까지 주선하면서 "고려를 배신하고 우리 거란의 신하가 되어달라." 라고 회유를 시도하였지만, 끝까지 거부를 하였고 결국 고려로 돌아가려다가 실패해 고문을 당한 뒤 죽고 말았다.[18] 고려사의 기록에는 처형당하여 사망한 후, 그 시신에서 간이 적출되었지만, 극중에는 산채로 배를갈라 간을 적출당하여 고려사의 묘사에 비해 훨씬 더 잔혹해졌다.

4. 어록[편집]


저런 자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겁니까? 목숨 걸고 싸워봤자 저런 놈들이나 지키는 꼴 아니옵니까?

폐하, 용기를 잃지 마시옵소서. 도순검사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벌써 곽주를 탈환하였사옵니다.

언젠간 죽을 목숨이옵니다. 고려를 위해 죽을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옵니다.

성상 폐하께 인사 전해올려 주십시오. 단 한 순간도 고려의 신하임을 잊은 적이 없다고, 고해 주십시오.

고려를 위해서... 가자아아~!!!!!

정복자의 자비는 위선일 뿐이옵니다. 침략이란 악행을 덮으려는 기만술이옵니다!



5. 여담[편집]



  • 담당 배우 이도국은 본작이 사극 데뷔작이지만 연극 무대에서 쌓아온 실력으로 안정적으로 잘 소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 드라마에서는 당시 정확히 무슨 직책인지 나오지 않았으나 고려사의 하공진 열전에서는 목종 대에 중랑장이었다고 언급된다.[2] 12회에 해당 직책이 처음 표기되었는데, 극중 본인 입으로 한 말을 통해 유배를 가기 전에 '상서좌사낭중'으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서도 강조의 정변 전후 시점 및 현종 대에 해당 직책을 지녔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3] 야율융서로부터 관직을 하사받았지만, 그는 결국 죽을 때까지 고려의 신하로 남았다.[4] 사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하공진은 먼저 그들을 죽일 목적으로 공격하다가 패퇴하였고, 유종이 이를 알고 여진족들을 죽인 것이다.[5] 특히 드라마에서는 정보 차단에 만전해야 할 시점에 (비록 정보 유출이 기정사실이 될 지라도) 여진족을 불필요하게 공격해 정보를 유출해버린 큰 실책으로 언급되는지라 현종이 격노한다. 다만, 당시 실세를 쥐고 있던 강조의 권세에 다른 신료들이 눈치만 보면서 제대로 명이 이행되지 않았던 분위기였다.[6] 참고로 강감찬은 거란군을 유인하는 식으로 기만하였지만 그만 아내를 두고 오게 되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7] 11회에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현종이 개경을 사수하기로 명하면서 상서좌복야 유진에게 처벌 중인 장수들을 방면해 소집하도록 명하면서 재등장의 복선을 깔았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최항이 현종에게 하공진과 유종을 복직시켜 책임을 다하게 하라고 요청하였으며, 개인적인 이익으로 여진족들을 죽였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던 현종은 마침 적절한 시기에 둘을 풀어주려고 하는 상황이었다.[8] 만나기 전, 창화현의 향리들이 '하공진이 수 만의 군사를 몰고 온다'고 외치면서 몽진길에 나선 군사들의 일부를 탈주시켰다. 그리고 이후 현종 일행과 이들 창화현 호장들과 동원한 백성들이 대치할 때 하공진이 오자 이들은 그대로 달아났다.[9] 원작에선 이때 서희처럼 반드시 협상을 성공시킬 것이라고 몇몇 신료들과 함께 현종을 안심시키며 채충순도 둘을 보내어 공을 세우게 하라고 청하는데, 현종은 점을 치도록 시켜 길조가 나오자 그들을 보내주기로 하며, 하공진이 떠난 직후 현종은 광주로 가서 지채문의 도움으로 잠시 떨어져 있던 왕후들 및 시녀들과 다시 만난다.[10] 원작에선 야율분노에게 멀리 있는 강남으로 갔다면서 거짓말을 시전하며, 야율분노도 그가 허풍을 떤다고 짐작했지만, 더 이상 현종을 추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였기에 일단 개경으로 보내고 소배압의 명을 기다렸다.[11] 과거 이현운, 노전, 노의가 입었던 그 옷이다.[12] 이후 거란 추격대와 대치하는 장면에서 관리 복장을 한 유민을 제외한 병사들로 변장한 유민들이 털모자를 벗었는데 모두 머리 모양이 거란식 곤발이 아니라 상투를 틀고 있었다.[13] 뿐만 아니라 그렇게 탈출했던 김은부도 끝내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잡혔다. 물론 잡히기 직전 거란의 내부 사정을 화살에 묶어 활로 쏘아 압록강변에 있던 흥화진사 정성을 통해 개경에 있던 현종에게 전해졌다.[14] 야율융서는 이전 제2차 여요전쟁 당시 통주 삼수채 전투에서 사로잡은 강조에게서 비슷하게 회유하긴 했지만, 그에게서 '야만인'이라는 말을 듣고 분노해 무참하게 죽였는데, 하공진은 그러한 자신에게서 강조보다 한술 더 떠 '짐승'이라고 더 거칠게 표현했다. 이는 강조처럼 하공진도 자신을 분노하게 해서 죽여달라고 유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15] 원작 기준 직전에 하공진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도적들과 대치하였던 상황이었는데도 지채문이 그를 크게 의심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충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지채문과의 재회에서 하공진 또한 오해를 풀면서 자신이 멍청할지는 몰라도 불충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16] 이때 현재 현종의 처지를 토끼에 비유하여 더 이상 위협을 하지 않는다면 굴에서 나올 것이고, 야율융서가 고려로 와서 정의로운 대의를 실현하였으니 이제 수 양제나 당 태종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세웠다고 말한다. 추가로 고려는 이제 망한 것이나 다름 없는데 더 남하하면 백성들도 피해가 갈 것이니 위엄보다는 덕으로 다스릴 때니까 넓은 아량으로 그들을 어루만져 달라고 청한다.[17] 야율융서도 그림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신기해 하면서 한번 가서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고, 직후 그를 칭찬하며 거란군이 철군하도록 지시하자 하공진은 거란 군영 내에서도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한다.[18] 이를 생각하고 16회에서 그가 나온 마지막 장면(압록강을 건너면서 고려 땅을 바라보는 장면)을 다시 보면 참으로 서글픈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 거란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고려 무장의 복식을 하고 있었다. 이는 하공진이 죽을 때까지 거란으로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의 신하로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하공진의 사후 고려 왕실에서도 그의 충성심과 공을 인정해 그 아들에게 벼슬을 여러 번 올리는 등으로 보답했고, 훗날 현종의 아들인 문종에 의해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郎)'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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