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헤르도니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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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양측의 전력
3.1. 로마군
3.2. 카르타고군
4. 전투 경과
5. 전투 이후



1. 개요[편집]


기원전 210년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과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의 로마군이 이탈리아 남부 아풀리아의 헤르도니아(현재 포지아)에서 맞붙은 전투.

2. 배경[편집]


기원전 211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가 새 집정관으로 선임되었다. 원로원은 두 사람이 아풀리아로 진군하여 한니발에 대항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얼마 후 카푸아 공방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이탈리아의 상황이 호전되자, 원로원은 두 집정관 중 한 명이 마케도니아 왕국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군사 작전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제비뽑기 결과 갈바가 그 역할을 맡았고, 그는 아풀리아에서 단독 지휘권을 받아 한니발과 대적했다.

켄투말루스는 한니발이 아풀리아 바깥으로 진군하지 못하도록 성공적으로 견제했으며, 기원전 210년 전직 집정관이 된 뒤에도 계속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현직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함께 각각의 군대를 이끌고 헤르도니아로 향했다. 두 사람은 초기에 살라피아를 공략하고 카르타고 수비대를 섬멸했다.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여긴 그들은 계속 추격하여 말모레 시와 멜레 시를 공략하고 카르타고군 3,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두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그들은 밀 24만 배럴과 보리 10만 배럴을 확보했다.

이에 기세 등등해진 켄투말루스는 단독으로 헤르도니아로 진격했다. 마침 헤르도니아 시민들이 한니발에게 등을 돌렸으며 조만간 로마 편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곧 그곳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또한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간 이상 여기로 단시일에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판이었다. 한니발은 첩보를 통해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헤르도니아에 먼저 들어갔고, 도시 인근에 진을 치고 적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3. 양측의 전력[편집]



3.1. 로마군[편집]



3.2. 카르타고군[편집]




4. 전투 경과[편집]


헤르도니아에 도착한 켄투말루스는 눈앞에 카르타고군이 진을 치는 걸 보고, 후방에 진영을 세웠다. 한니발이 기병대를 파견해 로마군 진영을 공격한 뒤 퇴각하자, 로마군은 즉시 출격하여 전투 대형을 갖췄다. 한니발은 군대를 사열시킨 뒤 "우리가 이 전장에서 2년 전에 로마군을 물리친 걸(1차 헤르도니아 전투) 떠올려라."라고 격려했다.

이후 벌어진 접전에서, 로마 보병대는 2열로 늘어서서 카르타고군의 맹공에 맞서 싸웠지만, 적 기병대가 전장을 우회하여 로마군 진영을 점령하고 후방을 강타하면서 전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로마군은 궤멸되었고, 7,000명에서 13,000명에 달하는 병사가 전사했다. 켄투말루스는 11명의 트리부누스 밀리툼과 함께 전사했다.


5. 전투 이후[편집]


한니발은 대승을 거둔 뒤 적 진영을 약탈하여 무수한 전리품을 챙긴 후 헤르도니아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메타폰툼과 투리니로 옮겼다. 또한 지난날 켄투말루스와 밀통했던 헤르도니아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한편, 살아남은 로마군 장병들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합류했지만, 원로원은 이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시칠리아로 보내 거기서 근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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