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SUKE/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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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스케 올스타즈
3. 사스케 신세대
4. 모리모토 세대
5. 연예인 유력 선수
6. 야마다 군단 쿠로토라
6.1. 현 멤버
6.2. 전 멤버
7. 기타 유력 선수
8. 외국인 유력 선수
9. 유력 선수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있는 선수



1. 개요[편집]


사스케는 유력선수로 불리는 멤버들과, 유력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나오며 인지도를 쌓는 인물들이 꽤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아예 제작진에서 모임처럼 묶어서 부르기도 하는 편.

일본 위키백과에 가면 사스케 기록이 있는데, 대부분 고인물들의 싸움이다.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보이는 사람이 계속 보인다. 보통 계속 나오는 사람들은 사스케 유력선수라 불리며 직업에 상관없이 서로 알고 지낸다.[1][2][3] 하지만 고인물이라고 해도 무조건 출전권을 주는 것은 아닌듯한게 "ㅇㅇㅇ 씨는 이번 회에 참가는 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같은 기록이 언급이 종종 나온다. 40시즌의 경우 예선에 무려 500명이나 참가했으나 예선 2위까지만 본선 출전권을 줄 정도로 예전에 비해 오히려 빡셌다. 참가 경험이 꽤 있었지만 예선에서 탈락한 참가자로는 사쿠마 코타[4], 와시미 유지[5], 야마구치 코스케[6], 우가진 쇼고[7]가 있었다. 사스케 본선에 출전한 1위 니시무라 와타루는 1스테이지 초반에 광탈하며 허무하게 끝났고, 2위 야에가시 슌페이도 1스테이지에서 선전했지만 클리어는 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예선 참가자가 3스테이지를 가는 등의 활약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41시즌도 똑같았으며 41시즌 때는 3명이 예선을 통과했으나 2위 참피 타쿠미만 드래곤 글라이더까지 갔고, 다른 둘은 트윈 다이아를 넘지 못했다. 특히 예선 1위 소마 코타로는 트윈 다이아의 타이밍을 몸치 탈락자들보다도 못 맞추는 굴욕을 당했다.


2. 사스케 올스타즈[편집]


사스케 초기에 최강자로 꼽혔던 멤버들. 제작진 측에서 이들을 묶어서 사스케 올스타즈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멤버는 유동적이었으나 여기서는 시즌 14 때 제작진이 확정한 6명만을 적는다. 여담으로 이 사람들은 버블 터질 때 사회에 나간 세대가 주류라 그런지 개인사가 파란만장한 경우가 많다. 예외는 유일한 대졸인 시라토리 분페이로 이 사람만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
  • 야마다 카츠미(山田勝己) - 출장 32회.
"미스터 사스케"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사스케에 인생을 바친 남자. 본업은 철공소 사장인데 원래 일하던 회사에서 해고당해서[8] 아내의 친정에서 운영하는 철공소 일을 하게 된 케이스.[9] 첫 시즌에 데뷔하여 통산 31회에 출전했고 미스터 사스케라는 별명답게 초기 시즌의 에이스로 대우받았으나 막상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횟수는 10회로 많지 않으며 그마저도 12시즌을 이후로 19회 연속 1st 스테이지에서 광탈하였다. 또한 파이널 스테이지에 간 것은 3시즌 딱 한번이고[10] 그 때 30cm를 남기고 실패해서[11] 완전제패는 경력은 없다. 그래도 미스터 사스케로 유명세를 타서 잠정은퇴를 했던 시즌에도 해설로 초빙된 적도 있었다. 현재는 다시 복귀하여 현역으로 뛰고 있으며, 29시즌부터는 야마다 군단 쿠로토라(黒虎) 라는 팀을 꾸려 제자들을 키워서 사스케에 내보내는 활동도 하고 있다. 쿠로토라 멤버가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한 것은 40시즌이 처음이나, 여기서 실패하며 완전제패를 해내지는 못했다.[12] 여담으로 중학교 시절에는 육상부, 고교 시절에는 야구부 출신이었다고 한다.[13] 아들과 같이 페어 VIKING[14]에 출전하였고 1st 스테이지에서 시간초과로 탈락했지만 당시 페어 VIKING은 2nd 스테이지 정원이 11팀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1st 스테이지 클리어는 단 한 팀이었기 때문에 11위 막차를 타고 2nd 스테이지까지 진출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시간초과로 최종 탈락. 여담으로 사스케에서는 매번 시작하자마자 떨어지기로 유명했던 타코텐쵸 쿠라모치 미노루 팀보다 페어 VIKING에서는 순위가 낮았다.[15] VIKING 개인전엔 2회 출전하였으나 모두 1st 스테이지 탈락.
  • 야마모토 신고(山本進悟) - 출장 41회.[16]
"사스케 유일의 개근상"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사스케 초기 레전드. 본업은 체육관 사장이지만 원래는 자동차 관련 전문학교 출신의 주유소 아르바이트였다.[17] 파이널 스테이지에는 2회 갔으며 두 번 다 실패해서 완전제패 경험은 없다. 통산 성적은 그래도 미스터 사스케 야마다보다는 조금 더 좋은 편. 12시즌 이후로 1st 스테이지를 단 한 번도 클리어한적 없는 야마다와 달리 야마모토는 당장 2022년 치러진 40시즌에서도 2nd 스테이지 진출을 달성해냈다. 여담으로 야마모토 역시 중학교 시절 농구부, 고교 시절에는 육상부를 했던 운동맨이다. 하지만 의외로 담배는 피운다는 듯. 41시즌에도 출전한다.
  • 아키야마 카즈히코(秋山和彦) - 출장 21회.
사스케 사상 최초의 완전제패자. 별명은 "털게의 아키야마".[18] 3rd 스테이지 진출 자체도 3회로 적고, 3rd 스테이지를 통과한 건 딱 한번(4시즌)이 유일한데 그 4시즌에 완전제패를 해내며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본업은 지압사.[19] 첫 시즌에 데뷔하여 28시즌까지 20번 출전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40시즌에 복귀하였으나 1st 스테이지의 드래곤 글라이더를 넘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마지막 2nd 스테이지 진출은 16시즌. 여담으로 사스케 첫 완전제패를 하고 받은 상금은 자신의 치료원을 개업하는데 썼다고 한다. 치료원 개업과 운영에 전념하느라 다음 시즌인 5시즌에는 불참선언을 했다고.
  • 타케다 토시히로(竹田敏浩) - 출장 31회.
"사상 최강의 소방관"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물. 사스케 올스타즈 중 유일하게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경험은 없지만[20] 3rd 스테이지에 무려 13번이나 진출을 했던 우승후보 중 한 명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배구부였고 졸업 이후 소방관의 길을 걷다[21] 2014년 퇴직하고 체육관 사장으로 전직했다. 사스케는 5시즌에 데뷔하였고 11시즌부터 17시즌까지 7시즌 연속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고 최우수 성적까지 기록하던 시절이 전성기. 또한 다른 올스타즈들이 노쇠화로 실력이 떨어지거나 은퇴하는 상황에서도 33, 34시즌 2연속 2rd 스테이지에 진출했으며 36시즌에 전치 1년짜리 부상을 입어 37시즌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38시즌에 복귀하는 등 나이를 잊고 꾸준히 활약했으나 38시즌 이후 부정맥으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40시즌을 앞두고 끝내 은퇴를 선언했다.[22] 본업도 몸을 쓰는 직업이고 사스케에서 발군의 운동능력을 보여주었지만 놀랍게도 흡연자이다.[23] 참고로 이혼 경력이 있다.
  • 나가노 마코토(長野誠) - 출장 29회.
"사상 최강의 어부"로 유명한 역대 2번째 완전제패자.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직업은 어선 선장이다. 그 외에 본인이 살고있는 미야자키현 노베오카시의 관광대사도 겸하고 있다. 데뷔시즌은 7시즌이고 11-13시즌에 3연속으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에이스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때는 3번 모두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탈락.[24] 이후 17시즌에 다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해 여기서 완전제패를 이뤄내면서 사상 2번째의 완전제패자가 되었고 23시즌에 한번 더 파이널 스테이지를 갔으나 4번째 탈락을 맛보았다.[25] 이후 27시즌에 3rd 스테이지를, 30시즌에 2nd 스테이지를 가면서 나름대로 2010년대 초반까지는 활약했으나 노쇠화로 인해 31, 32시즌에서는 모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였고 이후에 은퇴를 선언하고 SASUKE 제작팀에 합류하여 분석 일을 맡았다.[26] 하지만 38시즌에 코로나 시국 속에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일회성으로 복귀하였고 40시즌부터는 완전히 복귀하였다. 이때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1st 스테이지를 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40시즌 때 클리어를 노릴 만한 성적은 냈다. 그리고 2009년생 큰아들 나가노 카이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스케 선수를 하게 되어서인지[27] 41시즌 때도 아들과 함께 또 나왔으나 2nd 스테이지에 진출한 아들과 달리 본인은 쿼드 스텝스 첫 번째 발판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져 탈락하는 바람에 전체 꼴찌(...)라는 기록만 세웠다. 결국 완전제패자 최초로 전체 꼴찌 기록을 찍었으며 완전제패, 전체 최우수 성적, 전체 최하위 성적을 모두 기록하였다![28] 하지만 통산 파이널 스테이지 5회 진출, 최우수 성적 8회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사스케 올스타즈 6명 중에서는 가장 임팩트 있는 성적을 많이 남긴 선수였다. VIKING에도 2시즌과 3시즌에 출전하여 2시즌 때는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갔으나 완전제패에 실패했고[29] 3시즌 때는 1st 스테이지 덧셈 퀴즈 파트에서 64+93을 156(157이 정답)이라고 계산하는 바람에 탈락. 당시 바이킹에서 나가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덧셈 실력이었다.[30] 2시즌 때는 79+40으로 문제가 쉬웠는데도 더듬더듬 풀었으니. 여담으로 그렇게 헤비스모커라고 한다. 단 술은 매우 약해서 본인 말로는 한 방울도 못 마신다고 한다니 담배만 피우는 것.
  • 시라토리 분페이(白鳥文平) - 출장 12회.
"인바무라의 영웅"이란 별명의 초창기 유력선수. 다른 올스타즈에 비해서는 출전 횟수가 적고 데뷔시즌도 9시즌으로 가장 늦지만 12시즌에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올스타즈의 일원으로 당당히 꼽혔다. 21시즌을 끝으로 수술 등으로 사스케에 출전하지 않다가 30시즌에 깜짝 복귀. 그러나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고 이후에는 사스케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정작 이래놓고 공식적인 은퇴선언을 사스케 올스타즈 중에서는 유이하게[31] 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사스케 올스타즈 중 공식적으로 대졸임이 확인된 유일한 인물. 일본체육대학 육상부 출신이다. 본업도 주로 몸을 쓰는 다른 사스케 올스타즈들과는 다르게 공무원. 치바현 인자이시약소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3. 사스케 신세대[편집]


사스케의 세대교체의 첫 시작은 보통 나가노 마코토가 완전제패를 해낸 17시즌으로 본다. 이 시즌에 10대 나가사키 슌스케가 파이널 스테이지에 올랐으며 나가노를 제외한 다른 구 올스타즈 멤버들의 노쇠화가 눈에 띄게 보였던 시즌이기 때문. 보통 신세대 멤버로는 9명이 뽑히며 대강 1970년대 중후반~1980년대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어린 멤버들은 신세대보다 뒷세대로 꼽히는 모리모토 세대 멤버들과 나이가 비슷하다.[32] 그래서인지 이제는 안 나오거나, 나와도 1st 스테이지 탈락이 디폴트인 올스타즈 멤버들과는 달리 이 멤버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2023년 현재도 2nd,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고 파이널 스테이지를 노리고 있다.
  • 우루시하라 유지(漆原裕治) - 출장 21회.
"신세대의 리더", "공중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역대 3번째 완전제패자이자 사상 최초로 2번의 완전제패를 해낸 사스케 신세대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성적을 남기고 있는 인물. 그러나 본업은 체육과는 관계없는 신발 영업사원이다.[33] 데뷔는 세대교체가 어느 정도 진행되던 21시즌이었는데[34] 바로 다음 시즌인 22시즌 파이널 스테이지에 가면서 신성으로 주목받기 시작, 23시즌은 2nd 스테이지에서 한순간의 미스로 탈락했지만 24시즌에서 파이널 스테이지 도전자 5인 중 유일한 완전제패자가 되면서 에이스로 거듭났다. 그리고 27시즌에서 2번째 완전제패를 달성해내면서 2010년대 초 사스케 최강의 에이스로 군림하였다. 이후 31-33시즌에서 3시즌 연속 1st 스테이지 탈락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슬럼프 없이 45세가 된 2023년 현재도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35][36] 최우수 성적은 4번 기록. 여담으로 2nd 스테이지에 약한 편. 탈락이 6번으로 역대 타이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반대로 3rd 스테이지에서는 강하기로 유명했으나, 첫 도전부터 3연속 통과한 후 5연속 탈락이기 때문에 3rd 스테이지의 강자라고 불리기에는 현재는 조금 미묘한 느낌이 있다. 여담으로 고졸이라 후술할 모리모토의 등장 전까지는 "대졸자는 사스케 완전제패를 해내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유지되었다.
  • 나가사키 슌스케(長崎峻侑) - 출장 19회.
최초로 "사스케 신세대"라는 말을 들은 인물. 본업은 트램펄린 피트니스 강사이며 원래는 프로 트램펄린 선수였다. 17세에 사스케에 데뷔하여 첫 도전부터 2nd 스테이지에 진출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던 그는 4번째 도전인 17시즌에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며 세대교체의 막을 열었다. 그러나 17시즌 이후로는 파이널 스테이지에는 간 적이 없고, 33시즌을 끝으로 3rd 스테이지도 가지 못한데다 36-39시즌 4연속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며 최근에는 오히려 폼이 떨어진 상황. 그나마 40시즌과 41시즌에는 2nd 스테이지까지는 진출하며 체면을 살리긴 했다.[37] 여담으로 본업인 트램펄린으로 올림픽 출전을 여러 번 노렸으나 부상으로 낙마하거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며 올림픽을 밟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에는 1회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 참고로 동생 나가사키 타카마사도 형만큼 고인물은 아니었으나 2nd 스테이지 진출 경력이 있는 나름 준수한 사스케 경력자이며 사스케 신세대로 같이 꼽히는 칸노 히토시와는 코쿠시칸대학 체육학부 동문이다. 칸노가 선배.
  • 스즈키 유스케(鈴木祐輔) - 출장 14회.
별명은 "3대 사스케 선생님"이다.[38] 본업이 중학교 체육교사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은 듯.[39] 첫 출전은 16시즌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 나오다가 30시즌부터 갑자기 11회 연속출전을 했다. 최고 성적은 3rd 스테이지로 4번 진출해서 4번 다 탈락했다.[40]또한 2nd 스테이지에 상당히 강해 37시즌을 제외하면 2nd 스테이지는 전부 클리어했다. 40시즌에는 44살의 나이로 2nd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최고령 기록도 갈아치웠을 정도로 우루시하라 유지와 함께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여담으로 쓰시마 섬에서 부산광역시까지 수영해서 건너간 경력이 있다고 한다. 41시즌 때는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며 노쇠화가 오는 상황에서 더 3rd 스테이지에 진출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선수.
  • 칸노 히토시(菅野仁志) - 출장 18회.
별명은 "신세대의 기수". 본업은 실버 액세서리 디자이너다.[41] 데뷔는 20시즌으로 2번째 출전한 22시즌에서 3rd 스테이지를, 3번째 출전한 23시즌에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며 신세대의 유력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고 실제로 28-31시즌까지 4시즌 연속 3rd 스테이지를 가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드래곤 글라이더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며 32시즌부터 7시즌 연속 1st 스테이지에 탈락하는 굴욕을 맛보며[42]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23년 1월 우루시하라 유지의 합동훈련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41시즌에도 도전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 2nd 스테이지 복귀는 도전조차 못 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흡연자다.
  • 하시모토 코지(橋本亘司) - 출장 10회.
별명은 "신세대 제 3의 남자". 본업은 체조지도원 겸 마사지가게 점장[43]으로 사스케 올스타즈 시라토리와는 일본체육대학 동문이다. 21시즌에 예선 7위로 통과하며 데뷔했고 이렇다 할 활약은 크게 없었지만 24시즌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완전제패는 하지 못하고 29시즌을 끝으로 척추에 이상이 생겨[44] 사스케를 떠났다. 이후 40시즌에 깜짝 복귀했지만 1st 스테이지 피쉬 본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탈락.
  • 아사 카즈마(朝一眞) - 출장 8회.
별명은 "눈물의 거푸집목수". 본업은 별명에서 알 수 있든 거푸집 목수. 21시즌에 예선 4위를 차지하며 데뷔하였으나 예선 탈락 등의 사유로 22~26시즌은 출전하지 못하다 27시즌에 복귀하여 데뷔 첫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후 펑펑 울어서 이런 별명이 생긴 듯. 28~31, 33시즌에서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으나 5번 모두 파이널 스테이지는 가지 못했고 33시즌을 끝으로 부상을 이유로 은퇴하였다.
  • 마타치 료(又地諒) - 출장 18회.
본업은 배관공으로 중졸 학력으로 바로 취업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45]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스케 완전제패를 꿈꿀 정도로 사스케 광팬이었고 중학교 시절부터 사스케 트레이닝을 하였다. 데뷔는 예선 3위로 출전권을 획득한 21시즌이지만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고, 이후 22~23시즌은 예선탈락, 24시즌은 불참, 25~26시즌은 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면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27, 30시즌 두 번이나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주목받게 된다. 그러나 31시즌 이후로는 1st 스테이지 탈락도 잦아지고 파이널 스테이지는 아예 가지 못하면서 예전만큼은 못한 상황. 39시즌에서는 3rd 스테이지까지 진출하면서 부활하였으나 40시즌에서는 1st 스테이지 롤링 힐에서 충격의 조기광탈을 하면서 커리어로우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후 41시즌에서는 2nd 스테이지 살몬 래더에서 탈락하면서 미묘한 결과를 냈다. 사스케 정규시즌 이외에도 미국에서 개최한 국가대항전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일본이 참가한 세 시즌 모두 개근하였고[46]국가대항전에서 28전 1승 27패로 거하게 털린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따낸 멤버.[47] 또한 전 세계의 사스케 선수 중 유일하게 3개 국가에서 3rd 스테이지 클리어를 해낸 선수라는[48] 기록도 가지고 있다. 여담으로 2022년 모친상을 당했다. 어머니가 어린 나이에 마타치를 낳았기 때문에[49] 향년 55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 카와구치 토모히로(川口朋広) - 출장 17회.
별명은 "사스케계의 리얼육왕". 마타치와 함께 중졸 학력을 갖고 있는 사스케 유력선수이다.[50] 21시즌 예선 2위를 기록하며 데뷔하였고 나오다 말다 하면서 이렇다 할 성적을 보이지 못하다 30시즌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이후 31시즌부터 40시즌까지는 6번이나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사스케 우승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중. 여담으로 기복이 꽤 심해서 16번의 도전 중 정확히 절반인 8번 1st 스테이지를 통과했는데, 1st 스테이지를 통과한 8번 중 7번 2nd 스테이지를 통과했다. 즉, 잘 되는 시즌에는 3rd 스테이지가 거의 보장 수준인데 안 되는 시즌에는 1st 스테이지를 통과할 수준도 안 된다는 것.[51] 근데 3rd 스테이지에서는 7번 중 1번 클리어할만큼 약한 편이다.[52] 또한 사생활 면에선 썩 좋지 않은 듯. 운송업에 종사했고 한때는 회사에도 다녔으나 지금은 다 그만두고 무직인데 사스케에 전념하느라 가정에 소홀해져서[53] 이혼당했다고 한다.[54][55] 사스케에 4명밖에 없는 해외판 사스케 3rd 스테이지 클리어 경력자이기도 하다. 베트남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에서 기록.
  • 히오키 마사시(日置将士) - 출장 16회.
치바현 인바군에서 키타가와 전기라는 전기점 점장으로 일하는 사스케 유력선수. 고교시절 배드민턴 선수였다고 하지만 고졸 이후 운동을 그만두고 전문학교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였다. 사스케 첫 데뷔는 25시즌이지만 그 전부터 여러번 예선에 참가했을 만큼 사스케 광팬이었다고 한다.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경력은 없지만 출전한 15번 중 11번 1st 스테이지를 통과, 7번 2nd 스테이지를 통과한 강호 중 한 명. 그러나 후술할 사토 준과 함께 3rd 스테이지를 더럽게 못 깨기로 유명하다. 8번이나 가 놓고 단 한 번도 깨지 못했으니. 3rd 스테이지에 유독 약한 근본적인 이유는 클리프행어 장애물에 너무 약하기 때문.[56] 아무래도 사스케 3rd 스테이지의 꽃인 장애물인지라 클리프행어가 없어질리는 없고, 오히려 다른 유력선수들은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점점 상향되고 있기 때문에 피를 보고 있다. 여담으로 Snow Man이와모토 히카루가 연예인 멤버들을 제외하고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스케 유력선수이다. 그래서 둘이서 훈련을 하거나[57] 유튜브 컨텐츠를 진행한 적도 있으며 히오키는 Snow Man 콘서트에도 자주 간다.[58] 덕분에 스노만 팬들에게는 인생 대성공한 기만자 취급을 받는 중.[59] 특이하게도 유력 선수지만 매번 초중반 번호를 받는다. 덕분에 2nd, 3rd 스테이지에서는 거의 고유명수 급으로 1번 타자를 많이 맡는다.[60]
  • 키시모토 신야(岸本真弥) - 출장 8회.
본업은 영업사원. 30시즌 3rd 스테이지에 진출했고 크레이지 클리프행어를 클리어하면서[61] 유력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으나 31시즌에 부상으로 출전이 다 결정된 후 직전에 기권선언을 했다. 이후 2번 더 출전하였으나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한 채로 33시즌을 끝으로 사스케를 접었다. 8번이나 출전하였으나 1st 스테이지 클리어는 딱 한 번인데, 그 한 번의 대회에서 클리프행어까지 클리어했던, 사스케 역사상 가장 원 히트 원더라고 할 만한 선수로 꼽힌다.[62][63] 여담으로 은퇴시즌인 33시즌 때는 33시즌 전체 참가자 중 꼴찌 탈락[64]이라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40시즌까지는 사스케 올스타즈-신 세대-모리모토 세대 통틀어 유일한 꼴찌 경험자이자 3rd 스테이지 이상 진출과 꼴찌 탈락을 모두 경험해본 유일한 인물이었으나 나가노 마코토가 41시즌 전체 꼴찌를 기록하면서(...) 아니게 되었다.[65]

4. 모리모토 세대[편집]


모리모토 유스케가 29시즌에 처음으로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여 최우수성적을 거둔 후 대두하기 시작한 1990년대생들로 이루어진 유력 선수들을 묶어서 모리모토 세대로 부른다. 다른 세대와는 다르게 모리모토라는 개인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31시즌 이래 모리모토 유스케가 압도적인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멤버마다 다르지만 데뷔가 빠른 멤버는 10대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신세대 멤버들과 데뷔시기가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빨리 데뷔한 경우도 있다.[66] 다만 1990년대생 강자라고 해서 다 모리모토 세대인 것은 아닌게 연예인 참가자나 야마다 군단 쿠로토라 멤버, 외국인 멤버들은 보통 이 명단에 넣지 않는다.
  • 모리모토 유스케(森本裕介) - 출장 17회.
"사스케 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역대 4번째 완전제패자이자 역대 2번째 2번의 완전제패를 해낸 도전자. 본업은 시스템 엔지니어로 사스케에서 완전제패를 해낸 선수 중 유일하게 대졸이다.[67] 중학교 시절부터 부 활동을 하지 않고 사스케 트레이닝을 했으며, 중3 나이로 18시즌에 데뷔전을 치르고 18, 19, 21, 22시즌에 출전하였다.[68] 하지만 전부 1st 스테이지의 벽을 넘지 못했고 22-26시즌은 아예 예선탈락했다. 이후 27시즌에 사스케에 복귀한 후 처음으로 1st 스테이지를, 29시즌에는 2nd 스테이지를 통과하면서 유망주로 떠오르게 되었고 31시즌 드디어 완전제패를 해내면서 사상 4번째 완전제패자가 되었다. 직후인 32시즌에는 신입사원 연수 때문에 결장하였으나[69] 이후 9시즌 중 소리타츠카베에서 타임아웃을 당한 37, 39시즌을 제외한 7시즌 모두 3rd 스테이지에, 이 중 4번을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 사스케 최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38시즌에는 사상 2번째 2회 완전제패도 해냈다. 41시즌까지 기준으로 삼았을 때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횟수는 5회로 나가노 마코토와 공동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나가노는 이미 노쇠화로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되고, 모리모토는 아직 32살로 한창때기 때문에 나가노의 기록을 깨는 것은 반쯤 기정사실화되어있다.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사스케 도전자. 여담으로 할아버지가 사스케에 엄청난 팬이라 매 시즌을 녹화해서 다시보기한다고 한다. 모리모토의 장점은 3rd 스테이지 최악의 장애물 클리프행어를 가장 안정적으로 통과한다는 것[70] 1st, 2nd 스테이지만 놓고 보면 모리모토보다 더 빠르고 더 안정적으로 깨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으나[71] 3rd 스테이지의 클리프행어의 난이도가 엄청 상향된 32시즌 이후 이 장애물을 밥먹듯 통과하는 도전자는 모리모토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게 되었다.[72] 다들 여러번 해서 대부분 떨어지다가 운 좋게 한두 번 통과하는 수준.[73] 그러나 모리모토는 이 클리프행어를 언제나 안정적으로 통과해낸다. 여담으로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3rd 스테이지를 최초로 클리어해낸 도전자이기도 하다. 다만 정규시즌은 아니고 국가대항전.[74] 1년 후의 국가대항전에서도 클리어하면서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도 2회나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 이 기록은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도 11번의 시즌이 치러지는 동안 통산 7명밖에 없는 나름대로 대단한 기록이다.[75] 사족으로 그렇게 많이 사스케에 나왔는데 부인은커녕 여자친구라는 사람도 전혀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현지에서는 모리모토는 모태솔로냐는 말이 좀 있다.[76]
  • 타다 타츠야(多田竜也) - 출장 10회.
"야마가타 현청의 별"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도전자. 본업은 공무원으로 야마가타현청 소속으로 야마가타 현립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육상부 출신으로 중학생 시절인 17시즌에 데뷔하여 17시즌과 19시즌에 참여하였으나 1st 스테이지를 넘진 못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34시즌에 다시 복귀하였고, 36시즌 처음으로 1st 스테이지를 돌파한 후 5시즌 연속으로 3rd 스테이지에 진출, 이 중 2번은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올라간 신흥 강자이다. 2nd 스테이지에서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으며, 3rd 스테이지의 꽃 클리프행어를 6번 중 5번이나 통과해내며 모리모토 다음 가는 강자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41시즌의 바티칼 리미트 버스트는 손을 대자마자 떨어지면서 결국 3번째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 사토 준(佐藤惇) - 출장 13회.
"현대판 닌자"라는 별명의 도전자. 본업은 파쿠르 지도원[77]으로 굉장히 사스케에 적합한 본업을 가지고 있다. 데뷔는 우루시하라 유지와 같은 21시즌인데[78] 이 시즌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후 1st 스테이지를 12회 연속 클리어한[79] 1st 스테이지 한정 최강자이다. 또한 2nd 스테이지도 살몬 래더에서 2연속, 언스테이블 브릿지에서 1회 탈락한 후 8연속으로 클리어할 정도로 2nd 스테이지까지도 매우 안정적으로 깬다.[80]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오히려 모리모토 유스케보다도 강자로 보이는데, 3rd 스테이지의 클리프행어에 정말 심각하게 약하다. 3rd 스테이지에서 클리프행어에 가지도 못하고 탈락한 33시즌을 제외한 8번 모두 클리프행어에서 떨어졌다.[81][82] 똑같이 클리프행어 못 하기로 유명한 히오키 마사시보다 1번 더 떨어진 것. 이 덕분에 1st, 2nd 스테이지만 보자면 최강자인데 파이널 스테이지를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여담으로 사스케 39, 40시즌에 출전한 노기자카 46사토 카에데에게 방송에서 파쿠르를 가르쳐주는 지도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 야마모토 케이타로(山本桂太朗) - 출장 10회.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출신 엘리트 학원강사로[83] 20시즌에 데뷔했지만 이후로 예선에서 번번히 떨어지다 29시즌으로 복귀했다. 29시즌에는 2nd 스테이지에 첫 진출. 그러나 2nd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후 또 4시즌을 쉬고 34시즌 때 복귀하여 34~40시즌까지는 쭉 출전하였다. 또한 39~40시즌은 3rd 스테이지까지 진출하였으나 39시즌은 사이드와인더에서 어이없게 탈락, 40시즌은 다 와 놓고 마지막 파이프 슬라이더의 점프 구간에서 한 끝 차로 안타깝게 탈락하였다.[84] 41시즌의 경우 자신있었던[85] 바티칼 리미트의 난이도 상향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그 외에도 38시즌에서는 2nd 스테이지 롤링 로그에서 떨어지는 등 '여기는 무난히 통과하겠지?' 싶은 곳에서 자주 떨어지는 불운한 선수. 후술할 아라키와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산악부 선후배 관계이다. 야마모토가 선배.
  • 아라키 나오유키(荒木直之) - 출장 9회.
게이오기주쿠대학 이공학부에서 학- 석사를 취득한 엘리트 카 디자이너. 상술한 야마모토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산악부 선배이다. 중학생 때부터 자기 또래의 모리모토 유스케, 타다 타츠야가 사스케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동경하였고 20시즌에 출전할 기회를 얻었으나, 개인사정으로 인해 출전을 고사했고 실제 데뷔는 29시즌에 이루어졌다. 모리모토 세대 선수들 중 가장 늦게 데뷔. 29, 32, 35시즌에 출전하였으나 모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였는데 36시즌에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37-39 시즌은 1st 스테이지 1회 클리어에 그쳤으나 40시즌 다시 3rd 스테이지에 재진출. 그러나 두 시즌 다 클리프행어에서 탈락하였다. 이후 41시즌 때 3rd 스테이지에 또 진출했지만 사이드와인더에서 탈락. 하지만 베트남판 사스케에 일본 대표로 출전해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한 경력이 있어서 해외판까지 합치면 아무튼 파이널 스테이지 경력을 갖고 있다.[86] 아쉽게도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완전제패는 실패. 해외판에서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선수는 아라키 외에도 모리모토 유스케, 마타치 료, 카와구치 토모히로가 있지만 셋은 모두 국가대항전 기록이고 해외판 정규시즌에서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것은 아라키가 유일하다.

5. 연예인 유력 선수[편집]


연예인들 중에도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완전제패자는 없지만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들이 몇 있다. 다만 최근 시즌에는 연예인 신분으로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 현재 연예인 최강자는 39~41 3시즌 연속 3rd 스테이지 진출을 해낸 카지하라 하야테로 꼽히며 카지하라를 제외하고 최근에 3rd 스테이지에 진출한 연예인은 36시즌의 다루빗슈 켄지가 있다. 이후 41시즌에 와사비가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연예인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 오오모리 아키라(大森晃)/몽킥키 - 출장 11회.
사스케 초기 연예인 멤버들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던 개그맨으로 1~3시즌 모두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하지만 완전제패에는 실패. 이후에 4연속으로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후 오랫동안 나오지 않다가 23시즌에 복귀하여 두 시즌 나왔지만 또 1st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또 오랫동안 나오지 않다가 38시즌에 복귀하여 3시즌 연속으로 나왔는데 세 시즌 다 1st 스테이지 탈락. 애초에 1968년생으로 미스터 사스케 야마다랑 나이가 비슷하다보니 사스케 초기 시즌에는 잘했을지 몰라도 현재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다.
  • 케인 코스기(ケイン・コスギ) - 출장 6회.
쇼 코스기의 아들로 유명한 액션배우. 1~8시즌 중 5번 출전하여 1회의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과 4회의 3rd 스테이지 진출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했었다. 8시즌 이후 사스케를 떠났다가 40시즌 아주 오랜만에 복귀를 했는데, 만 48세의 나이로 1st 스테이지를 깨면서 역대 최고령 1st 스테이지 클리어 기록을 갱신하였다.[87] 아쉽게도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2nd 스테이지에서는 한계만 보여주며 탈락했으나 전성기의 실력이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였다. 여담으로 동생 세인 코스기도 사스케에 몇 번 나왔고, 6시즌 때는 형제 동반 3rd 스테이지 진출도 해냈다. 미국 국적자 중 유일하게 원조 사스케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경력자이기도 하다. 다만 국적만 미국이지 본인의 삶의 터전도 일본이고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으니 사실상 일본인이지만..
  • 이케타니 나오키(池谷直樹) - 출장 22회.
"역삼각형의 에일리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체조선수 출신 탤런트. 2시즌에 데뷔하여 9번의 1st 스테이지 클리어와 6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을 이뤄냈다. 꾸준히 나오기보다는 나오다 말다를 반복했는데 37시즌 이후 세 시즌을 건너뛰고 40시즌에도 출전했으나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1st에서 탈락했다. 무토 토모히로와는 사제지간.
보디빌더 겸 개그맨. 8시즌에 데뷔하여 33시즌까지 총 12회 출장하여 2nd 스테이지에 3회 진출하였다. 최고성적은 2nd 스테이지. 파워는 좋았으나 속도가 느린 편이었기 때문에 9번의 1st 스테이지 탈락 중 5번이 타임아웃이었다.[88]
  • 왁키(ワッキー) - 출장 10회.
개그맨으로 20시즌에 데뷔하여 총 10회 출장하였다. 2nd 스테이지에는 3회 진출. 30시즌을 끝으로 한동안 안 나오다 37시즌에 복귀했으나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였다.
  • 카지하라 하야테(梶原颯) - 출장 4회.
요시모토자카46 소속 배우로 카라테 유단자이다. 데뷔시즌인 38시즌부터 2nd 스테이지에 진출하며 눈도장을 찍더니 39~41시즌은 3rd 스테이지까지 단숨에 진출하면서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39~41시즌 모두 클리프행어에 약점을 보여주면서 탈락한 것은 흠.[89] 사이카와 코지[90]와 절친이라 보통 둘이 같이 다니고 훈련도 같이 하는 편이다. 촬영장에서도 다른 유력선수와의 교류를 하기보다는[91] 거의 둘이서만 다니는 편.
  • 모리 와타루(森渉) - 출장 8회.
성우 카네다 토모코의 남편으로 알려진 배우. 16시즌으로 데뷔했으며 37시즌까지 8회 출전하여 2회의 1st 스테이지 클리어를 기록해냈다. 여담으로 부인도 31시즌에 참가하였으나 1st 스테이지 시작하자마자 광탈. 이후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바람에 구조대까지 출동하였다.
골덴 봄버의 드러머 맞다.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신체능력이 좋다고 평가받았기에 사스케 출전을 강하게 희망하였다고 한다.[92] 데뷔시즌은 28시즌이며 3번째 참가인 31시즌에 처음으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 이후 36시즌에는 최초로 3rd 스테이지 진출이라는 쾌거까지 이루어냈으나 이후 3시즌 연속으로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며 하락세를 탔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매우 좋지 않아 40시즌은 기권까지 했다가 41시즌 2년만에 복귀하였으나 발 부상으로 인해 빠르게 뛰지 못하여 시간초과로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워낙 사스케에 진심이고 성적도 좋다 보니 다른 사스케 유력 선수들하고도 친하고 같이 훈련하기도 하는 모습이 잡힌다.
쟈니스 사무소아이돌 그룹 A.B.C-Z 멤버로 팀내에서도 육체파로 꼽혔다. 31시즌에 데뷔했고 33, 34, 40시즌에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으나 2nd 스테이지는 세 번 모두 탈락. 현재 쟈니스 사무소에서 사스케에 출전하는 멤버들 중 맏형이자 데뷔 최고참이기 때문에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보이며[93], 이제는 사스케에서도 나름 고인물이라 할 급이기 때문에 다른 유력 선수들하고도 사이가 좋다. 이와모토 히카루를 데리고 히오키, 우루시하라와 합동 훈련을 하는 장면도 방송을 탔다.[94] 여담으로 쟈니스 아이돌 최초의 1st 스테이지 클리어 멤버다.[95]
Snow Man의 리더이자 그룹 내에서도 가장 운동신경이 좋은 멤버로[96] 츠카다 료이치쟈니스 주니어[97] 최고 유망주라고 추천했다. 데뷔시즌은 33시즌으로 이때는 너무 급하게 한 나머지 1st 스테이지 첫 에리어에서 탈락. 그 후에도 훈련 때는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번번히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면서 꼬였다. 하지만 38~39 두 시즌 연속으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내면서 이제는 어엿한 유력 선수가 되나.. 싶었으나 40시즌에서는 드래곤 글라이더가 중간에 탈선하면서 안타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41시즌에서는 신 에리어 트윈 다이아를 넘지 못하고 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2nd 스테이지에 올라간 38시즌의 경우 살몬 래더에서 탈락을, 39시즌은 리버스 컨베이어에서 시간초과로 탈락을 했다. 아무튼 현재 쟈니스 사무소에서 가장 3rd 스테이지에 근접한 멤버. 그러나 사스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피지컬과 성실성은 좋을 지 몰라도 장애물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라[98] 잠재력은 높지 않다는 평가를 주로 받는다. 여담으로 이와모토가 처음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38시즌은 정식 데뷔를 하고 맞이한 첫 번째 시즌이었다. 유력 선수들 중에서 가장 친한 사람은 히오키 마사시라고 한다. 종종 히오키의 집에 이와모토가 찾아가 둘이서 훈련하기도 하는데 이 덕분에 히오키는 Snow Man 팬들 사이에서 인생 성공한 남자라고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최근에는 제작진 측에서 어지간한 유력 선수보다도 더욱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아마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인기 연예인의 비중을 높이고 싶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사스케의 주 팬층인 남성 시청자들 사이에선 당연히 아오안인 남자 아이돌인지라(…) 이와모토에 대한 여론이 영 좋지는 않다. 성적이라도 좋으면 응원해줄 텐데 2nd 스테이지 2회 진출로는 성적으로 어필할 정도가 못 된다는 것이 중론이라..[99]
  • 사이카와 코지(才川コージ) - 출장 4회.
가면라이더 세이버즈오스 역을 맡은 미국 혼혈 일본인 액션배우.[100] 데뷔는 37시즌으로 데뷔 첫 시즌부터 1st 스테이지를 아주 가볍게 클리어해내면서 단숨에 유력 선수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안정적이고 빠른 1st 스테이지 능력과 다르게 2nd 스테이지는 각양각색으로 다양한 곳에서 탈락하면서[101]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카지하라 햐아테와 절친이라 보통 둘이 같이 다니고 훈련도 같이 하는 편이다. 촬영장에서도 다른 유력선수와의 교류를 하기보다는[102] 거의 둘이서만 다니는 편.
쟈니스 주니어 유닛 7 MEN 사무라이 멤버로 데뷔는 38시즌.[103] 데뷔 시즌부터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내면서 새로운 쟈니스 유력 선수로 떠올랐다. 이후 39시즌도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으나 40시즌은 상술한 소속사 선배 이와모토 히카루처럼 드래곤 글라이더가 중간에 탈선하면서 안타깝게 탈락하였다. 2nd 스테이지에서는 38시즌은 살몬 래더, 39시즌은 리버스 컨베이어에서 시간초과로 탈락을 했다. 이후 41시즌 때는 코스 이탈로 1st 스테이지 실크 슬라이더에서 탈락.
쟈니스 주니어 유닛 소년닌자 멤버로 데뷔는 39시즌. 데뷔 시즌부터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내면서 선배 스게타 린네, 이와모토 히카루와 함께 쟈니스 3인 동반 2nd 스테이지 진출을 이뤄냈다. 하지만 2nd 스테이지는 첫 장애물 롤링 로그에서 광탈하면서[104] 허무하게 끝났다. 40시즌은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하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보였다. 41 시즌에서는 불참했는데, 썰에 의하면 40시즌 때 특혜를 받았다는 폭로가 나와서 그 문제로 참가권을 박탈당했다고 하지만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105]
화악기밴드의 드러머로 다루빗슈 켄지, 히오키 마사시, 이와모토 히카루와 친하여 사스케 4형제라고 할 정도이다. 38시즌에 데뷔하여 38-39시즌 때는 1st 스테이지의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떨어졌으나 한 시즌을 쉬고 돌아온 41시즌 때 3rd 스테이지의 클리프행어 디멘션까지 갔다.

6. 야마다 군단 쿠로토라[편집]


미스터 사스케 야마다 카츠미가 창단한 팀. 프로는 아니고 사스케를 위해 유력선수들이 모여서 훈련하듯이 야마다 카츠미의 지도 하에 야마다가 직접 제작한 시설을 이용해서[106] 사스케 완전제패를 목표로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는 도전자들의 모임이다. 매 시즌마다 사스케에 출전할 멤버들을 자체 예선을 통해 선발한다. 야마다 군단이 나름 유명해져서인지 와다 아키코도 38시즌에 앗코 군단 아카토라라는 사스케 팀을 창설하였으나 2시즌 간 1st 스테이지 클리어 멤버가 단 1명에 불과하며 야마모토 군단에 비해서는 확실히 밀렸고[107] 39시즌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군단 내 에이스 계보는 29-35시즌 야마모토 히로시게[108]->37-38시즌 이사 요시노리->39시즌 이후 야마모토 요시유키로 이어진다.[109]

6.1. 현 멤버[편집]


사스케 본선 출장 경력이 있는 멤버만 서술한다. 명단 외에도 사스케 본선 경력이 없는 멤버 5명이 더 있다.[110]
  • 야마모토 요시유키(山本良幸) - 출장 5회.
2023년 현재 야마다 군단 최고의 에이스로 간사이대학 체조부 부장 출신이다. 본업은 체육교사. 2019년 여름 37시즌을 앞두고 입단하였고 이 해 바로 출전권을 획득하였고, 데뷔 첫 시즌인 37시즌부터 연속으로 3시즌간 3rd 스테이지까지 진출하였지만 파이널 스테이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후 40시즌에는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면서 야마모토 군단 사상 최초의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자가 되었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8m를 남겨두고 실패하며 완전제패 도전에는 실패하였으나 현재 야마다 군단에서 최초로 완전제패를 이룰 사람으로 유력하게 꼽히고 있다. 단장 야마다 카츠미는 "1st를 200% 클리어 할 수 있는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파이널리스트 특전으로 41시즌 군단 예선을 면제받았다. 41시즌 때는 37, 38시즌 때 고배를 마셨던 클리프행어 디멘션을 또 실패하면서 탈락.
  • 카와우치 소이치로(河内総一郎) - 출장 1회.
간사이를 중심으로 한 야마다 군단에서 유일하게 간사이가 아닌 아이치현에 살고 있는 멤버. 이 때문에 매주 훈련하러 아이치현에서 야마다 군단의 연습 세트가 있는 효고현까지 가기 때문에 달마다 교통비만 11만엔이 나온다고 한다. 본업은 브레이크 제조회사 직원으로 39시즌 군단 예선에서 2위를 차지하며 데뷔하였다. 데뷔 첫 시즌인 39시즌에는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였고 40시즌에는 예선에서 5위 안에도 들지 못하며 부진한 끝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41시즌에서도 군단 예선에서 거의 최하위에 가까운 성적으로 탈락하며 복귀 실패.
  • 타카스카 하야토(高須賀隼) - 출장 2회.
2021년 야마다 군단에 입단하였고 39시즌 군단 예선에서 3위를 차지하며 한 끝 차이로 출전하지 못했던 이력이 있다. 이후 40시즌에서 재대결 끝에 예선 2위를 차지하며 사스케에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시즌인 40시즌에서는 1st 스테이지를 통과하였으나 2nd 스테이지 스파이더 드롭에서 탈락. 본업은 수영 강사. 41시즌 예선에서도 작년에 재대결했던 멤버와 또 재대결 끝에 예선을 통과하였다.[111] 하지만 41시즌에서는 방심하다 롤링 힐에서 조기탈락하고 말았다.
  • 나카시마 유타(中島結太) - 출장 2회.
중학교 2학년으로 최연소 멤버. 데뷔 시즌은 40시즌이지만 군단 예선에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마다 군단의 이름으로 출전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1st 스테이지 마지막 장애물 2연속 소리타츠카베까지는 갔으나 시간초과로 탈락했다. 특별히 41시즌 군단 예선을 면제받아 예선에는 번외로 참가만 했지만 예선에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이후 1st 스테이지는 무난히 클리어했으나 2nd 스테이지의 백스트림을 버티지 못하며 시간초과로 탈락.
  • 야마모토 히로시게(山本浩茂) - 출장 7회.
야마다 군단의 원조 에이스이자 창단 멤버. 29시즌부터 35시즌까지 7시즌 연속 출전하였고 야마다 군단 최초의 1st 스테이지 클리어 멤버이다. 특히 처음으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30시즌 때는 응원하러 녹화장에 오기로 한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어머니를 뒤로하고 출전해야 했는데 여기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본업은 게임센터 직원이라 팀내에선 세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35시즌을 끝으로 출전하지 않으며 사실상의 은퇴상태지만 야마다 군단은 탈퇴하지 않고 사스케 녹화장에 응원하러 오기도 한다.

6.2. 전 멤버[편집]


  • 와타나베 요스케(渡辺陽介) - 출장 4회.
야마다 군단의 창단 멤버. 그러나 1st 스테이지를 단 한 번도 클리어하지 못한 채로 사스케를 떠났다. 마지막 도전 겸 3시즌만에 군단 예선을 통과해서 출전한 34시즌 때는 단장 야마다 카츠미가 타이밍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피쉬 본에서 탈락. 와타나베의 탈락 직후 마타치와 카와구치가 피쉬 본 타이밍을 잘못 알려줬다고 하자 뻘쭘해하는 야마다가 백미(…)
  • 오카다 사토마(岡田知磨) - 출장 1회.
야마다 군단의 창단 멤버. 그러나 29시즌 1st 스테이지 첫 번째 장애물 롱 점프에서 탈락한 게 유일한 사스케 경력. 본업은 이삿짐센터 직원이었다.
  • 미즈카와 케이시(水川圭史) - 출장 1회.
야마다 군단의 창단 멤버. 그러나 29시즌 1st 스테이지 첫 번째 장애물 롱 점프에서 탈락한 게 유일한 사스케 경력. 본업은 주택설계사였다.
  • 마츠바라 신지(松原慎治) - 출장 3회.
30시즌에 데뷔했던 야마다 군단의 전 멤버로 30~32시즌까지 3시즌에 출전하였으나 한 번도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했다. 본업은 정밀기계가공업.
  • 오바타 사토시(小畑仁志) - 출장 4회.
32시즌에 데뷔했던 야마다 군단의 전 멤버로 32~35시즌까지 4시즌에 출전하였고 한 번은 3rd 스테이지 진출까지 해냈다. 야마다 군단 시절에는 군단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야마모토 히로시게와 원투펀치를 이뤘다.[112] 그러나 35시즌 이후 야마다 군단을 탈퇴했고 사스케도 은퇴했다. 야마다 군단에서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탈퇴하고 사스케도 은퇴한 멤버. 사생활 문제가 좀 있었다고 한다.[113] 본업은 기계 유지 및 보수 관리자.
  • 마에다 미즈키(前田瑞貴) - 출장 1회.
36시즌에 데뷔했던 야마다 군단의 전 멤버로 36시즌 딱 한 시즌 나와 1st 스테이지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했다. 본업은 특수교사.
  • 이사 요시노리(伊佐嘉矩) - 출장 5회.
36시즌에 데뷔했던 야마다 군단의 전 멤버로 37~38시즌 야마다 군단의 에이스였으나 39시즌에는 앗코 군단 아카토라로 이적하면서 야마다 군단을 탈퇴하였고 앗코 군단이 해체된 40시즌에는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면서 야마다 군단 탈퇴멤버 중 유일한 현역이다. 본업은 10종경기 선수.[114] 36시즌에는 1st 스테이지 초반에 빠르게 광탈했으나 37~40시즌까지 4시즌 연속 3rd 스테이지에 진출한 실력자. 하지만 3rd 스테이지에서는 악명 높은 클리프행어를 도전해본 시즌도 1번에 불과할 정도로 초반 장애물에 약하다. 플라잉 바에서 1회, 스윙 엣지에서 무려 2회 탈락을 기록했으니.

7. 기타 유력 선수[편집]


  • 타카하시 켄지(高橋賢次) - 출장 21회.
콘구 타카하시로 잘 알려진 전직 유력선수. 본업은 처음에는 사가와 익스프레스 소속 택배기사였고 말년에는 개인사업자로 독립하여 1인 택배사 콘구 익스프레스를 차렸다. 큰 키와 유력선수들 중에서도 톱급이었던 파워가 강점이었던 선수로[115] 5시즌에 데뷔하여 8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과 1번의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24시즌), 1번의 최우수 성적(18시즌, 3rd 스테이지 탈락.)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24시즌을 끝으로 클리프행어를 넘지 못하거나 아예 1st, 2nd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35시즌에서 1st 스테이지 탈락을 기록한 후 "아직 건강할 때 자신보다 젊은 도전자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발언을 남기고 은퇴했다. 사실 사스케 올스타즈가 전성기를 보내던 초창기 때부터 활약하였고 본인의 최전성기를 신세대 때 보냈으며 모리모토 세대가 두각을 나타낼 때까지 활동했기 때문에 오히려 롱런했기 때문에 특정 세대로 꼽히지는 못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사람.[116]
  • 와시미 유지(鷲見裕二) - 출장 9회.
전직 모토크로스 선수이자 현 자동차 정비사. 9회 출전하여 3번의 2nd 스테이지 진출을 이뤄냈고 3rd 스테이지 기록은 없다. 데뷔시즌은 11시즌.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기록은 3rd 스테이지 진출을 한 적이 없는 선수 중 유일하게 최우수 성적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선수라는 것이다. 19시즌 때 일어난 일로 당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유이한 선수였고, 같이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야마다 코지와 똑같이 2nd 스테이지 살몬 래더에서 탈락하면서 공동 최우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야마다는 3rd 스테이지 진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3rd 스테이지를 한번도 못 가봤음에도 불구하고 최우수 성적 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와시미가 유일. 29시즌을 끝으로 사스케를 떠났다가 40시즌 때 복귀를 시도, 예선 탑 20까지는 들었으나 탑 20 1:1 매치에서 패하며 복귀하지 못했다.
  • 이시카와 테루카즈(石川輝一) - 출장 8회.
14시즌 데뷔하여 데뷔 첫 시즌 3rd 스테이지 진출을 달성해냈고 7시즌을 쉰 후 22시즌부터 30시즌까지 7번 더 출전하였다. 2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기록과 6번의 2nd 스테이지 진출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파이널 스테이지에는 가지 못했다. 30시즌을 끝으로 사스케를 그만두었다. 여담으로 마지막 시즌인 30시즌에서는 1st 스테이지와 2nd 스테이지를 모두 통편집당했다. 보통 잘 하는 선수들은 어지간하면 조금조금씩은 보여주는데 두 스테이지 연속으로 통편집을 당한 케이스. 4시즌 이후로 이런 일이 30시즌에 처음 일어났다고 한다.
  • 오쿠야마 요시유키(奥山義行) - 출장 10회.
전직 일본 육상 국가대표였고 은퇴 후에는 트레이너로 전직하였던 인물. 19시즌에 데뷔하였고 24시즌 파이널리스트였다. 3rd 스테이지도 6번이나 가는 등 상당한 실력자였고 마지막 시즌인 29시즌도 2n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으나 29시즌을 끝으로 사스케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 무토 토모히로(武藤智広) - 출장 4회.
프로 트램펄린 퍼포머로 38시즌 데뷔. 데뷔시즌에는 1st 스테이지 드래곤 글라이더를 넘지 못했으나 39-41시즌 3시즌 연속으로 3rd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그러나 39-40시즌은 모두 사이드와인더에서 탈락.[117] 41시즌 때는 드디어 사이드와인더를 클리어했으나 클리프행어에서 떨어졌다. 여담으로 이케타니 나오키의 제자라 그런지 이케타니 나오키, 와타나베 마이[118]와 셋이서 주로 다닌다. 피쉬 본 타이밍을 잡아주는 파트너도 와타나베.
  • 오시마 아야노(大嶋あやの) - 출장 7회.
전직 신용금고 직원, 현직 어린이 트레이너인 여성 선수. 2시즌의 타나베 치에[119] 이후로 사스케는 남성과 외국인 여성[120] 외에는 1st 스테이지를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해왔는데 24년만에 그 기록을 깨버린 일본인 여성 선수이다. 원래 여성 전용 사스케 쿠노이치 9시즌으로 데뷔했고 2nd 스테이지에 2번, 3rd 스테이지에 1회 진출한 경력이 있다.[121] 사스케 데뷔는 31시즌. 데뷔시즌부터 소리타츠카베까지 가며 여성 선수들 중 최고수준으로 평가받았고 36시즌에는 타임아웃으로 탈락하긴 했지만 어지간한 유력 선수들도 번번이 떨어지던 드래곤 글라이더를 클리어해내면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37, 38시즌 때 이전에 클리어했던 피쉬 본과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하면서 뒷걸음질쳤고, 39시즌은 또 소리타츠카베에서 탈락. 그래도 40시즌 때는 12.6초를 남기고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내면서 24년만에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일본인 여성 선수가 되었다. 이후 진출한 2nd 스테이지에서는 초반의 난관 장애물 사몬 래더까지 무난히 통과해냈으나 스파이더 드롭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무튼 2023년 기준 일본인 여성 선수 중에선 최강자로 꼽히는 선수. 2019년 독일에서 열린 국가대항전 4 네이션스 스페셜 2에서 각 팀마다 한 명씩 있는 여성 쿼터로 참가하였고[122] 팀원 중 유일하게 1점이라도 따낸 선수가 되었다. 그나마도 여성 선수간의 매치에서 4팀 중 3위를 기록해서 겨우 1점 딴 것. 이후 2023년 닌자 워리어 프랑스 인터내셔널 매치에도 국가대표로 참가. 2023년의 41시즌에서는 1st 스테이지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떨어졌다.
  • 나가사키 타카마사(長崎剛政) - 출장 4회.
사스케 신세대로 꼽히는 나가사키 슌스케의 친동생. 본업은 형과 똑같은 트램펄린 선수. 18시즌 형을 따라 참가하며 데뷔했고 1st 스테이지를 무난히 클리어해내면서 형제 동반 1st 스테이지 클리어를 기록했다. 그러나 2nd 스테이지 살몬 래더에서 탈락. 이후 19, 20시즌에서는 두 시즌 모두 1st 스테이지에서 무너졌다. 20시즌을 끝으로 안 나오다가 34시즌에 깜짝 복귀했으나 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후 다시 사스케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2020년에 형 나가사키 슌스케가 올린 SNS 글에 의하면 2020년 하반기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트램펄린 활동은 물론 운전까지 힘들다고 한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 다행히도 몇 달 만에 회복되어 2021년 봄에 올린 트윗을 보면 이제는 정상적으로 운동도 일도 가능하다고 한다.[123]
  • 세가와 타케루(世川武尊) - 출장 8회.
타케루로 알려진 프로 킥복서. 30시즌에 데뷔하여 6시즌 연속 출전하고 2nd 스테이지에 2회 진출했다. 35시즌 이후 나오지 않다가 39시즌에 복귀했으나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 이후 41시즌에 복귀했으나 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 고토 유스케(後藤祐輔) - 출장 4회.
본업은 일본 산림청 직원. 38시즌에 데뷔하여 39시즌 때 1st 스테이지를 통과하였으나 38시즌과 40시즌은 모두 1st 스테이지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했다. 41시즌에서는 다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했으나 2nd 스테이지 롤링 로그에서 탈락. 여담으로 사스케 장애물 제작 공모전에 참가한 적이 있다.
  • 나카가와 타카하루(中川貴晴) - 출장 3회.
본업은 7인제 축구 선수. 33시즌으로 데뷔했고 34시즌, 36시즌 2n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다. 또한 베트남 사스케에도 1회 출장하였으나 1st 스테이지 탈락. 40시즌 예선에 참가하며 복귀에 도전했으나 예선 1라운드에서 탈락하였으며 41시즌 역시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 우가진 쇼고(宇賀神翔悟) - 출장 4회.
본업은 건설노동자. 32시즌으로 데뷔했고 34, 36시즌 2n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으나 두 시즌 모두 1st, 2nd 스테이지를 통편집당했다. 이후 37~38시즌은 불참했고 39시즌과 40시즌 때는 참가를 희망했으나 참가하지 못했다. 40시즌의 경우 예선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굴욕도[124] 겪었다. 이후 2023년 1월 우루시하라 유지와의 합동훈련에 참가하면서 41시즌 도전을 선언했다.
  • 미야오카 료스케(宮岡良丞) - 출장 1회.
은행원으로 10년간 사스케를 너무 좋아해서 참가 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떨어지다가[125] 2023년 드디어 참가권을 받았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참가했는데 갑자기 1st, 2nd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주목받았고 3rd 스테이지도 바티칼 리미트 버스트의 마지막 지점에서 탈락하면서 첫 출전에 바로 최우수 성적을 기록하였다. 사실 사스케 시범맨 출신이라 알음알음 숨겨진 강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는 한다.[126]
  • 나가노 카이오(長野塊王) - 출장 2회.
나가노 마코토의 아들로 중학교 1학년부터 사스케 선수로 데뷔하였다. 첫 참가인 40시즌 때는 1st 스테이지 롤링 로그에서 빠르게 떨어졌으나 바로 다음 해인 41시즌 때는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최연소 1st 스테이지 클리어를 기록하고 떠오르는 신성이 되었다. 그러나 2nd 스테이지 롤링 로그에서 바로 떨어지면서 41시즌은 아쉽게 끝냈다. 여담으로 야마다 군단 쿠로토라의 막내 나카시마 유타(나가노보다 1살이 많다)와 자주 엮인다. 공교롭게도 나카시마 유타도 41시즌 2nd 스테이지에서 탈락.

8. 외국인 유력 선수[편집]


  • 요르단 요프체프 - 출장 7회.
불가리아의 체조선수로 올림픽에 6회 출전하여[127]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를 수상한 경력이 있었다. 사스케는 8시즌으로 데뷔하여 첫 도전부터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며[128] 유력선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후 6번의 도전에서는 3rd 스테이지에 3번 더 진출하였지만 파이널 스테이지를 밟지는 못했다. 참고로 8시즌 당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는 제한시간에 딱 맞춰 통과했다.
  • 리언즈(李恩至)[129] - 출장 12회.
"대만의 영웅"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외국인 참가자 중 가장 사스케에서 꾸준히 활약한 스타플레이어. 본업은 암벽등산가였고 현재는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17시즌 데뷔하여 2nd 스테이지까지 갔었고 18시즌까지 2시즌 연속 출전하였다. 이후 두 시즌을 쉰 후 10시즌을 연속으로 출전하는데 커리어하이는 24시즌으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하였다. 이외에도 25시즌과 26시즌에는 2시즌 연속으로 최우수 성적을 기록하는 등 5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을 이뤄냈다. 27시즌 때 1st 스테이지 첫 번째 장애물에서 발끝이 물에 닿는 바람에 충격적인 탈락을 한 후 28시즌마저도 1st 스테이지 초반에 탈락하며 슬럼프를 겪나 싶었으나 29시즌, 30시즌 연속으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30시즌 때는 3rd 스테이지까지 진출하며 완전부활에 성공한 이력도 있다. 그러나 30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사스케를 떠났다. 다만 31시즌 때는 대만인 영어교사 훙칸칭[130]을 응원하기 위해 방일하여 쵤영장에는 왔다고 한다. 이후 30시즌으로부터 2년이 지난 2016년 베트남 사스케 2시즌에 출전했지만 여기서도 3rd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후 완전히 은퇴했다. 은퇴 후 모리모토 유스케가 대만에 갔을 때 리언즈의 체육관에 가 리언즈랑 재회하는 모습을 본인 SNS에 올리기도 했다.[131] 여담으로 한국과는 달리 대만에서는 SASUKE가 정식으로 방영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리언즈의 인기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 브라이언 오로스코 - 출장 5회.
미국파쿠르 선수로 드류 드렉셀이 나오기 전에 사스케에서 대활약을 하던 미국 참가자 중 한 명으로 20시즌에 데뷔하여 총 4번의 2nd 스테이지 진출과 2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을 해냈다. 또한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도 6회 참가하여 1시즌 예선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132] 사스케 마지막 출전은 26시즌. 27시즌 때는 드류 드렉셀과의 1:1 매치에서 패하여 출전하지 못했다.
  • 리바이 뮤엔버그 - 출장 5회.
미국파쿠르 선수로 드류 드렉셀이 나오기 전에 사스케에서 대활약을 하던 미국 참가자 중 한 명. 데뷔시즌은 오로스코와 동일한 20시즌이었다. 최고기록은 오로스코와 동일한 3rd 스테이지 진출. 진출 횟수도 3rd 스테이지 2회, 2nd 스테이지 4회로 똑같다. 25시즌을 이후로 사스케에 나오지 않았다.[133]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는 2시즌 우승자였고 1~4시즌까지 4회 참가하고 1시즌 때 최우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출연한 4시즌 때는 지역대회 1st 스테이지에서 시작하자마자 쿼드 스텝에서 탈락했다(…). 이후 사스케를 은퇴하고 농부가 되었다고 한다.
  • 데이비드 캠벨 - 출장 3회.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 "갓파더"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의 뮤지션으로 22시즌 때 데뷔했다. 데뷔 시즌에는 1st 스테이지에서 떨어졌지만 26, 27 2시즌은 모두 3rd 스테이지에 진출. 이후 일본 사스케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는 2023년 현재도 현역으로 활발히 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15번의 시즌 모두 참가하여 8, 12, 13시즌을 제외하면 모두 전국대회까지 진출하였지만 전국대회에서는 매번 1스테이지 탈락. 딱 한번 9시즌 때 2nd 스테이지에 진출한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또한 베트남 사스케에도 2019년 치러진 5시즌까지 총 3번 출장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해내지 못한 완전제패를 여기서 해냈다! 2시즌에서 해냈으며 이후 4시즌과 5시즌에도 출장하였으나 모두 3rd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일본 사스케에서는 아주 잠깐 나왔고,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는 전국대회까지는 자주 출전해도 1st 스테이지 클럽이었지만[134] 나름대로 완전제패 경력자 중 한 명이다. 이외에도 중국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에 출전하여 5개국이 참여한 파이널 스테이지 기록대결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 브렌트 스테펜센 - 출장 3회.
26시즌으로 데뷔하여 3회 출전하여 2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과 3번의 2rd 스테이지 진출기록을 세웠다.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는 1시즌부터 11시즌까지 출전, 이 중 6시즌과 11시즌은 전국대회에 오르지 못했고, 3rd 스테이지를 1번[135], 2nd 스테이지를 4번 진출했었다. 11시즌에서 지역대회 탈락을 한 것을 끝으로 완전히 은퇴. 참고로 카타나 챈스의 전 남자친구였다.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교제.
  • 드류 드렉셀 - 출장 8회.
"아메리카판 사스케의 영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2010년대 중후반 미국의 사스케 최강자...였으나 현재는 그저 미성년자 성폭행[136]으로 전락해 제명당한 범죄자에 불과하다. 1989년생으로 본업은 체육관 트레이너.[137] 일본 사스케 데뷔는 27시즌으로 여기서 미국 대표 10인 중 유일하게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138] 이후 30시즌 다시 일본 사스케에 초청받아 7시즌 연속으로 출전하고 6시즌 연속 3rd 스테이지 진출과 7시즌 연속 2nd 스테이지 진출을 기록했다. 36시즌에서는 미끄럼틀 구간에서 어이없게 코스아웃을 당하며 일본 사스케 최초로 2nd 스테이지 탈락을 기록했는데[139], 이후 치러진 37시즌에도 초청받았지만 2019년 12월 여자친구[140] 출산을 했기 때문에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기권하였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일본 사스케 경력이 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상술한 성폭행.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는 12시즌까지 출전하였는데 지역대회에서 탈락한 6시즌과 중도 실격당한 12시즌을[141] 제외하고 전부 전국대회까지 진출하였고 7번의 2nd 스테이지 진출과 4번의 3rd 스테이지 진출, 1번의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및 완전제패와 2번의 최우수 성적 달성기록을[142] 해냈다.[143] 문제의 미성년자 성폭행만 아니면 일본 사스케 40시즌에도 초대되어 사상 최초의 2개국 완전제패 도전도 가능했겠지만 이젠 다 끝난 얘기. 드렉셀은 수사 중 자신이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은 인정하였으나 그녀가 미성년자인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드렉셀이 피해자가 15세 생일을 맞은 후로부터 2년간 강제로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한다.[144] 사실상 나이를 몰랐다는 주장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상황. 미국 팬들도 페도필리아 취급하고 있고 일부 팬들은 그가 세운 기록까지도 부정하고 있을만큼 험악하다.[145] 이후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그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3명이나 더 나왔고, 이 중 2명이 미성년자였다고 한다. 유일하게 성인인 마지막 강간 피해자는 사실혼 관계인 여자친구의 친구였다고 한다니 이 사람들에게 한 행위까지 전부 유죄로 판명나면 평생 감옥에서 사는 것도 가능할 듯.[146] 여담으로 31시즌 당시 클리프행어 규정 문제로 논란이 조금 있었다. 이때 드렉셀이 시도한 방식이 규정위반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고 주장했기 때문.[147] 이후 2023년 감형을 노린 것인지 유죄를 인정했다고 한다. 선고는 2024년 1월 예정이다.
  • 제시 그라프 - 출장 3회.
사스케 최강의 여성 선수. 여성 선수 중 유일하게 3rd 스테이지 진출 경력이 있다.[148] 34, 37, 40시즌에 출전하여 34, 37시즌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지만 모두 클리프행어에서 탈락했다. 이후 40시즌에서는 2nd 스테이지에 탈락하면서 커리어로우. 은근히 유리몸인 게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 무려 두 시즌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바로 6, 13시즌. 이후 14시즌 때 복귀했지만 14, 15시즌 모두 지역대회에서 탈락했다.탈락 이후 방일해서 참가한 일본 사스케에서는 또 1st 스테이지를 깼다[149]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는 2nd 스테이지를 1회 진출한 것 외에는 사실 그렇게 뛰어난 통산 커리어를 갖고 있지는 않다.[150][151] 본업은 스턴트우먼.
  • 레네 카슬리 - 출장 2회.
딱 1회(37시즌) 출장에 그쳤으나 그 1회에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진출한 독일 출신의 코끼리 조련사. 7대째 100년 넘게 대대로 서커스를 해오는 서커스 단원 집안 출신으로 독일판 사스케 최강자 중 한 명이었다. 일본 사스케에서도 37시즌 최우수 성적을 기록하였고 이후 독일에서 완전제패를 해내면서(6시즌) 독일 최강임을 증명하였지만 다시 해외 선수들을 초청한 40시즌에는 나오지 않았다. 독일판 사스케는 2시즌부터 8시즌까지 출전하여 1회의 완전제패와 5회의 3rd 스테이지 진출, 5회의 2nd 스테이지 진출 기록을 갖고 있다. 유일하게 1st 스테이지에서 떨어진 시즌은 완전제패 직후인 7시즌. 여담으로 팀 닌자 워리어 저머니 2회 우승을 갖고 있는데 일본 사스케 출연 당시 닌자 워리어 저머니 2회 우승자라는 잘못된 정보가 방송되었다. 팀 닌자 워리어 저머니는 닌자 워리어 저머니의 스핀오프로 취급되는 팀전 방식의 대회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6시즌에서 기록한 완전제패 1회가 유일한 우승기록이다. 또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2개 이상의 국가에서 열린 사스케/닌자 워리어 정규시즌에서 파이널 스테이지에 도전한 인물이다. 이후 SASUKE 41시즌에 참가하게 되면서 4시즌만의 복귀를 한다.[152] 여담으로 사스케 선수로 6년간 활동하면서 상금으로만 약 4억 7천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독일 직장인들의 연봉 중앙값이 6천만원대인걸 감안하면 부업인 닌자 워리어 선수 활동만으로 어지간한 직장인들 연봉을 받아온 셈. SASUKE 41시즌과 거의 비슷하게 방영된 닌자 워리어 8시즌에서는 3rd 스테이지 클리프행어 마지막 점프에서 탈락하면서 아깝게 파이널 스테이지 복귀를 놓쳤다. 그리고 SASUKE 41시즌 또한 빠르게 가려고 타이밍도 안 맞는데 무리하게 점프를 하다가 떨어지면서 독일과 똑같은 3rd 스테이지 클리프행어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빠르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데 사토 쥰, 카지하라 하야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 완급조절이 필요한 장애물에서도 피지컬로 커버하겠다고 최속으로 가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종종 미끄러져 떨어지는 경우가 있으며[153] SASUKE 41시즌에서 이것이 제대로 터졌다.
  • 다니엘 길 - 출장 1회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11시즌, 15시즌 파이널리스트이자 15시즌 완전제패 기록자, 그리고 완전제패 개념 없이 순위싸움으로 승부를 결정한 12시즌의 우승자이다. 트레이드 마크로 펌을 한 장발을 유지하고 있으며 코로나와 백신 미접종으로 인해 13, 14시즌을 쉬고도 15시즌 때 복귀해서 완전제패를 해낸 현재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최강자 중 한 명. 그러나 그도 백턴 클리프행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첫 방일인 41시즌 때 3rd 스테이지 클리프행어에서 탈락했다.

9. 유력 선수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있는 선수[편집]


사스케에는 유력 선수는 아녀도 어느정도 인지도가 높은 반고정 도전자들이 있다. 여기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사스케 출전 경력도 꽤 있는 참가자 중 1st 스테이지조차도 클리어 경력이 0회인 인물을 적는다.
  • 쿠라모치 미노루(倉持稔) - 출장 18회.
"타코텐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물로 이자카야를 운영하고 있다.[154] 트레이드 마크는 별명대로 문어. 일단 머리도 문어마냥(?) 스킨헤드인데다 출발할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어를 들고나온다. 1st 스테이지 결승점 버튼에 문어를 올려놓은 적도 있다. 전형적인 개그성 참가자지만 본인은 진지하게 나오는 것이 포인트. 당연히 실력은 개판이라 매번 1st 스테이지 첫 장애물에서 떨어지고 종종 어쩌다 2~3번째 장애물까지만 가도 관중석에서 환호가 튀어나온다. 그래도 60대의 노인 신분으로 1st에서 몇몇 장애물은 클리어해낸다는 점에서는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155] 데뷔는 9시즌이고 은퇴는 28시즌이다. 은퇴시즌인 28시즌에는 손자를 인터뷰했는데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맨날 떨어지는 것밖에 못 봤다."라고 말한 게 킬포 40시즌에는 70대 나이로 복귀를 선언했으나 예선에서 당연히 탈락. 설명만 보면 굉장히 몸치인 것으로 보이지만 60대이고 키가 작아서 그렇지 실제 몸 자체는 상당한 근육질이다. 실제로 봉에 매달려 있을 때 잘만 버티면서 기어올라가는 장면이 있었으니 신체능력 자체는 일반인 평균 이상이지만 노인이라는 한계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람의 이자카야는 사스케 참가자들과 팬들 사이에서는 명물이라 우루시하라 유지의 두 번째 완전제패 축승회도 이 사람의 가게에서 하였고, 37시즌에 방일한 해외 사스케 대표 선수들이 단체로 이 가게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여담으로 같이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하라시마 마사미, 아오키 야스오와는 보통 세트로 묶여서 3명이 연속으로 도전하는 게 디폴트였다. 그리고 상술했듯 신체능력 자체는 근육질의 괜찮은 몸이었기 때문인지 트리오 중에서 최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제일 잘 했다. 다른 둘이 27시즌까지 하고 은퇴했지만 타코텐쵸만 한 시즌 더 나오기도 했고. 여담으로 페어 VIKING에 손자와 출전하여 1시즌, 2시즌 모두 2nd 스테이지까지 진출하며 선전하기도 했다. 두 시즌 다 1st 스테이지에서 시간초과로 탈락했지만 기록상 전체 9위였기 때문에 11팀만 진출하는 2nd 스테이지 진출권을 획득.[156][157] 하지만 3시즌 때는 초반 장애물에서 탈락하면서 1st 스테이지가 끝이었다. VIKING에 개인으로 참가하기도 했는데 여기선 5번째 장애물에서 덧셈 문제를 틀려서 탈락하며 나름 선전했다.[158] 페어 바이킹을 보면 손자가 타코텐쵸보다 겨우 48살 어리다. 본인도 일찍 결혼하고 자식도 일찍 결혼한 듯. 2022년에는 하라시마 마사미와 함께 40시즌 관람석에 초청받아서 오랜만에 녹화장에 왔다.(팬들에게 주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과 같은 자리에 앉혔다.)
  • 하라시마 마사미(原島雅美) - 출장 17회.
"행글라이더남"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물. 실제 행글라이더 타는 것을 좋아하며 본업은 제조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다. 데뷔는 9시즌이며 은퇴는 27시즌이다. 쿠라모치와 마찬가지로 못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몸 좋은 노인인 쿠라모치와는 다르게 신체는 평범했다. 그래서인지 1st에서 매번 떨어지며 퍼포먼스성 도전을 선보였다. 그래도 트리오 셋 중에서 2위는 했다. 1st 스테이지 첫 장애물을 클리어한 경험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 16시즌에서는 3번째 장애물 크로스 브릿지까지 진출하였다.[159] 또한 VIKING에서도 장애물 클리어는 한 적이 있다. 여담으로 트리오 셋 중 가장 연하. 2022년에는 타코텐쵸와 함께 40시즌 관람석에 초청받아서 오랜만에 녹화장에 왔다.(팬들에게 주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과 같은 자리에 앉혔다.)
  • 아오키 야스오(青木保夫) - 출장 14회.
사스케 역사상 최약체이자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던 인물. 본업은 조각가로 매번 출발 전 자신이 만든 3D 프린터 조각품을 들고 와서 전시하는데 손재주는 상당히 좋지만 실력은 트리오 셋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꼴찌였다. 단 한 번도 1st 스테이지 첫 장애물을 넘어간 적이 없다! 아무래도 쿠라모치는 노인이지만 신체 자체는 근육질로 괜찮았고 하라시마는 신체능력은 별로여도 아직 40대라서 어느 정도 체력이 남아있었다면 이 아저씨는 키는 155cm로 상당히 작고[160] 나이도 50대라서 체력도 거의 다 빠져갔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슷한 프로그램인 바이킹에서는 장애물을 통과한 경력이 있다. 여담으로 일본 개그맨 카스가 토시아키가 4번째 도전에서 1st 스테이지 첫 번째 장애물을 통과해냈는데, 아오키를 제외하고 카스가가 가장 오랫동안 1st 스테이지 첫 번째 장애물을 통과해낸 적이 없었던 선수라고 하는 걸 보면 아오키의 기록은 다른 의미에서 진귀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13시즌에 데뷔하여 27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 토리사와 카츠히데(鳥澤克秀) - 출장 23회.
18시즌에 데뷔하여 41시즌 현재도 현역인 개그성 출연자. 전직 역도선수이고 현재 본업은 아웃소싱 영업관리직이라고 한다. 22시즌을 빼고 전부 다 나왔고 매번 출발선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느라 힘을 다 빼서 본 무대에서는 1st 스테이지 조기탈락을 반복하는 게 일상. 그래도 위의 트리오랑은 달리 4번째 장애물까지 간 적이 있다. 34시즌에서 피쉬 본까지 갔었다.
  • 혼마 타카시(本間隆史) - 출장 7회.
반다이사스케부 부장. 사스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사내 동아리로 사스케 동아리를 만든 회사원이다.[161] 회사는 반다이라는 완구 메이커. 전형적인 참가에 의의를 두는 개그성 출연자지만 본인은 진지하고[162] 다른 개그성 출연자들과는 다르게 무려 드래곤 글라이더까지 갔을 정도로 저력을 가지고 있다.[163] 2023년에 열리는 41시즌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4시즌 연속으로 반다이사스케부에는 출전권이 1장밖에 주어지지 않게 되면서 37시즌 이래 이 사람만 나오고 있다 보니 일본에서도 더 젊고 신체능력이 좋은 부하 직원에게 출전권을 양보할 때가 온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중.[164][165]
  • 사쿠마 코타(佐久間光太) - 출장 4회.
초등학교 선생님. 사실 이 문단에 적히기에는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1st 스테이지 클리어 경력이 없는 케이스. 35~38시즌까지 4시즌 연속 출장을 했으나 이 중 세 번이나 소리타츠카베에서 타임아웃 탈락을 기록했다. 소리타츠카베 앞에서 진행되는 수백키로짜리 태클을 밀어서 타고 올라가는 구간에 약한 것으로 보인다.[166] 이후 39시즌은 불참했고 40시즌 예선에도 참가하였으나 탑 40 1:1 미션에서 개그맨 챰피 타쿠미[167]에게 패배하여 탈락하였다. 이후 우루시하라 유지의 합동훈련에 참가하며 41시즌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41시즌 참가자 명단에 없었다.
  • 마츠다 다이스케(松田大介) - 출장 9회.
3대째 수도 설비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유한회사 마츠다 수도의 사장. 사스케의 광팬으로 원래는 뚱뚱했으나 사스케 출전을 목표로 살을 뺀 끝에[168] 만 40살의 나이로 32시즌 때 데뷔를 했다. 사스케 세트를 집에 전부 제작해서 들여놓은 것으로 유명하며 '마츠다 파크'로 불리고 있다. 유력 선수는 물론 히가시무라 메이, 사토 카에데 등 아이돌 참가자들까지 여기서 트레이닝을 할 정도.[169] 이 때문인지 1st 스테이지조차도 한 번도 클리어하지 못했으나 유력 선수들과 같이 다니며[170]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40시즌 때 은퇴를 고려했으나 41시즌에도 참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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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시즌부터 40시즌까지 개근한 사람도 있다. 바로 트레이닝 짐 오너인 야마모토 신고. 3시즌과 7시즌에서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다.[2] 사스케 고인물들끼리는 사적으로 모여서 연습을 하는 경우도 았는데, 전기점을 운영하는 히오키 마사시와 신발 영업사원 우루시하라 유지, 아이돌 A.B.C-Z츠카다 료이치가 같이 사적으로 만나 사스케 연습을 하는 장면도 방영된 적 있다.(33시즌) 이때 츠카다가 이번 시즌에 첫 참가하는 쟈니스 주니어를 한 명 데려와서 같이 연습시켰는데 이 주니어는 3년 후 Snow Man으로 데뷔하는 이와모토 히카루. 즉, 일반인들과 밀리언셀러 아이돌이 사스케를 통해 친분이 생긴 것이다.[3] 보통 사스케에서 자주 활약하는 멤버들은 블루컬러 육체 노동자나(마타치 료, 카와구치 토모히로처럼 아예 중졸로 취업한 사례도 있다.) 트레이너, 체육교사같이 체육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리모토 유스케(프로그래머)처럼 화이트컬러도 없지는 않으며(아라키 나오유키, 야마모토 케이타로는 명문대인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이다. 물론 사스케 유력선수 중 대졸 자체가 적은 편. 모리모토의 경우 에키벤대학인 코치대학 출신.) 이와모토 히카루, 츠카다 료이치, 다루빗슈 켄지처럼 연예인도 있다.[4] 1스테이지 소리타츠카베에 유독 약했던 교사. 2023년 1월 우루시하라 유지의 유튜브에 올라온 41시즌 준비자들의 합동 트레이닝에 참가한 것이 확인되었다. 40시즌 예선에서는 3라운드(40강) 1:1 미션에서 니시노 타쿠미에게 패하여 탈락. 정작 니시노도 사스케 출전에는 실패[5] 1스테이지에서 무려 98명이 떨어진 19시즌에서 당당히 2스테이지에 진출한 둘 중 한 명. 은퇴했다가 복귀를 선언했으나 예선에서 4라운드(20강) 1:1 미션에서 오 로스티스라브라는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일본에서 활동하는 복싱선수에게 패해 탈락했다. 하지만 오도 사스케 출전에는 실패.[6] 13, 14시즌에서 각각 2, 3 스테이지를 갔으나 14시즌을 끝으로 안 나오다가 30시즌에 1회성 복귀를 했던 인물. 예선 4라운드(20강) 1:1 미선에서 운죠 유키에게 패해 탈락했다. 하지만 운죠도 사스케 본선은 못 갔다.[7] 2스테이지에 2번이나 간 나름 유력 선수였으나 예선 1라운드조차 뚫지 못하고 탈락했다.[8] 봄베 운송업에 종사했다. 업무 시간에 사스케 연습한답시고 일을 제대로 안 하다가 해고당했다는 말이 있다.[9]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기 때문에 야구장 맥주판매원도 겸직했으나 사장이 되면서 맥주판매원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0] 3rd 스테이지를 4회 출전하여 1회는 클리프행어에서, 2회는 파이프 슬라이더에서 탈락하였다. 덕분에 야마다는 2022년 인터뷰에서 가장 싫어하는 장애물로 파이프 슬라이더를 꼽았다. 장애물 자체가 싫다기 보다는 기억이 너무 뼈아프다나. 야마다는 초기 시즌의 파이프 슬라이더는 점프 구간이 별로 안 멀었기 때문에 자신이 점프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패착으로 꼽았다.(극초기 한정으로 파이프 슬라이더는 점프 구간이 거저먹기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그나마도 익숙하지 못해서 탈락이 속출했던 게 함정. 그러나 사람들이 적응하게 되자 롱 점프를 해야 하는 까다로운 구간으로 바꿔버렸다.)[11] 팬덤 위키의 서술은 20cm로 뭐가 됐든 한 끝 차. 하지만 가장 아슬아슬한 기록은 아닌 게 나가노 마코토가 다 올라가놓고 0.11초 차이로 완전제패에 실패한 적이 있었다,[12] 여담으로 쿠로토라는 여러 명이 무리지어 나오지만 매번 2~3명만 출전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들러리인가 싶지만 자체 예선을 통해 출전자를 뽑는 구조라고 한다. 40시즌 기준 출전 방식은 군단장 야마다 카츠미에게 1장을 기본적으로 주고 나머지 2장을 제자들에게 예선을 시켜서 1위와 2위에게 주는 방식. 3명을 출전시키는 시즌에는 3위까지 출전권을 줬을 것이다.[13] 고교 졸업 이후 호세이대학에 진학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본인 스스로 아니라고 부정.애초에 버블경제 시기에 호세이대같은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봄베 운송업을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대학에 대한 얘기를 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학력이 고졸인지 대졸인지는 불명이다.[14] 한국 SBS 슈퍼 바이킹이 이 프로의 판권을 사서 만들어졌고 거의 비슷했지만 페어 바이킹은 부모/조손 같이 성인 1명에 아이 1명으로 출전하는 방식이었다. 다만 출발 드림팀에 비해서는 많이 인기가 낮았다.[15] 타코텐쵸는 손자와 출전하여 1st 스테이지 9위를 기록했고 2nd 스테이지에서는 야마다 카츠미 부자보다 한참 앞에서 물에 떨어져서 탈락.[16] 사스케 유일의 개근상.[17] 여담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야마모토가 승진을 하다보니 사스케에서의 소개도 주유소 아르바이트->주유소 직원->주유소 소장->에리어 매니저->본사 과장으로 호칭이 계속 바뀌어갔다 그러나 2015년 완전히 정유업계를 떠나 체육관 사장으로 전직.[18] 가업을 이으려고 아버지와 털게잡이를 한 적이 있어서 붙은 별명.[19] 한국의 안마사에 해당한다. 사실 아키야마의 직업에는 사연이 있는게 아키야마는 원래 레슬링 선수를 목표로 올림픽 출전이 꿈이었으나 선천적인 약시 때문에 시력이 극단적으로 안 좋아서 꿈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자위대에 입대했다가 가업인 어부를 이으려 했으나 또 시력 문제로 선박 면허를 취득하지 못해 어부도 포기. 결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홋카이도 고등맹학교를 나와 지압사의 길을 걸었다. 사스케 첫 출전 당시에는 시각장애를 숨기고 있다가 완전제패 후에야 사실을 털어놓았다. 물론 사스케에 잘만 도전한 걸 보면 완전한 맹인은 아니다.[20] 불운한 것이 3rd 스테이지 마지막 관문 파이프 슬라이더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21] 한창 사스케에서 전성기를 누릴 때는 본업이 소방관이었다. 그래서 별명도 사상 최강의 소방관.[22] 당장 38시즌 때도 규정위반으로 실격당해서 그렇지 1st 스테이지 클리어를 했다.[23] 이외에도 야마모토 신고, 나가노 마코토, 칸노 히토시, 이와모토 히카루 등이 흡연자임을 밝혔거나 흡연 장면이 포착된 사스케 유력선수이다.[24] 이때 12시즌은 다 올라갔으나 0.11초 차로 탈락, 13시즌은 10cm를 남겨두고 타임아웃으로 탈락했다.[25] 이때도 다 올라갔는데 0.21초차로 탈락.[26] 이런 사례로는 이스라엘의 유발 셈라도 있다. 4시즌에서 완전제패를 달성한 후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5시즌부터는 닌자 워리어 이스라엘 제작팀에 합류하여 아나운서를 맡게 되었다.[27] 사실 나가노 카이오는 진짜 큰 아들이 아니다. 진짜 큰 아들은 和樹(카즈키로 추정)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에 치러진 9시즌 때 둘째아들과 함께 나가노를 응원하러 왔다. 이때 두 아이 모두 혼자 서 있을 정도의 나이는 되었기 때문에 20대에 이미 결혼해서 애들을 낳았다가, SASUKE 문제로 인해 이혼하고 큰아들과 둘째 아들의 양육권도 전 부인이 데려가게 되었다고 한다.(부부동성인 일본 특성상 이런 경우 부인이 결혼 전 성을 회복하는 경우도 많아서 애들이 어머니 성으로 개성하는 경우도 많다.) 이후 나가노는 현재의 부인과 2009년 즈음 결혼하고 2009년에 바로 세 번째 아들이자 실질적인 장남 나가노 카이오가 태어났다. 전 부인과의 이혼 이유는 놀랍게도 SASUKE 도전. 원래부터 SASUKE 선수 활동에 회의적이던 부인은 17시즌에 완전제패를 하게 되자 은퇴할 것을 권했으나 나가노가 은퇴를 거부하면서 사이가 나빠져 이혼했다고 한다.[28] 사스케 올스타즈 중에서도 유일하다(...). 다만 야마다 카츠미, 아키야마 카즈히코도 1st 스테이지 첫 장애물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가노가 딱히 못한 것은 아니다. 특히 아키야마는 전성기 시절에 이 짓을 한 적 있다(...). 다만 아키야마도 야마다도 전체 꼴찌는 아녔다.(야마다가 39시즌의 쿼드 스텝스 4번째 발판을 제대로 밟았으나 직후 발이 미끄러져서 물에 살짝 닿아서 탈락하는 바람에 꼴찌를 할 뻔 했으나, 아이돌 그룹 THE RAMPAGE from EXILE TRIBE타케치 카이세이가 쿼드 스텝스 4번째 발판을 밟지도 못하고 물에 빠져서 꼴찌를 피했다.)[29] 당시 바이킹의 파이널 스테이지는 밧줄을 가로로 길게 타고 간 후에 세로로 또 타고 올라가는 방식이라 매우 길었다. 나가노는 초중반 페이스는 좋았으나 체력고갈로 막판엔 아예 매달려서 올라가지도 못했다. 이후 바이킹은 사다리타기로 파이널 스테이지를 변경하였고 4시즌 때 클리어한 4명 중 가장 기록이 좋았던 사토 히로미치(사스케 2nd 스테이지 진출 경력자)가 완전제패를 인정받았다.[30] 한국의 슈퍼바이킹도 그랬지만 몸을 쓰는 일이나 예술계열 일에 평생을 종사해온 사람들이 이 파트에서 생각보다 크게 애를 먹었다. 거기다가 나가노는 고등학교에 갈 생각조차 안 했을 정도로 공부와 담을 쌓았다고 한다.(실제로 나가노는 중졸이다.) 수는 적었지만 이 파트까지 살아남은 고학력자 도전자가 틀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었다. 당장 사스케 모리모토 세대로 꼽히는 야마모토 케이타로(당시 중학생, 게이오기주쿠대학 진학)의 경우 바이킹 덧셈 문제는 쉽게 풀었다.[31] 다른 한 명은 개근상 야마모토 신고.[32] 대강 1990년을 기준으로 나눈다. 신세대의 최연소 마타치는 1989년생, 모리모토 세대 최연장자 야마모토 케이타로는 1991년생이다.[33] 고등학교 시절 체조부기는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인원부족으로 폐부.[34] 이때는 다이제스트도 아니고 아예 통편집되어서 이름조차도 안 나왔다. 또한 사스케 참가 자체는 초기부터 도전했던 것으로 보이는 게 13시즌 예선 탈락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있다.[35] 당장 36~41시즌 중 3번이나 4r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다. 심지어 45세로 참여한 41시즌 때도 3rd 스테이지에 진출. 사스케 올스타 중에서 저 나이를 먹고도 3rd 스테이지에 간 사람은 전무하며 2nd 스테이지 진출도 야마모토 신고를 제외하면 해내지 못했다. 그나마 그 야마모토도 30대 중반을 넘긴 후에는 어쩌다 한번 1st 스테이지 클리어를 해내는 수준.[36] 그러나 41시즌 때 클리프행어 디멘션에서 탈락한 후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짜내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 걸 보면 이제 슬슬 노쇠화가 체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37] 그러나 스파이더 워크/스파이더 드롭에서 3연속 탈락중이다. 또한 3rd 스테이지에서도 그나마 만만한 편인 플라잉 바만 2번 연속으로 탈락중인 상태라 예전의 나가사키와 비교하면 못하다. 41시즌 때는 부상으로 2nd 스테이지에 진출만 하고 기권하였다.[38] 1대와 2대도 있다. 1대는 아사오카 히로유키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12시즌 파이널리스트였으며 3rd 스테이지도 4번이나 갔으나 15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대는 카츠미 요시나가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이 사람은 2nd 스테이지에 한번 간 것이 전부로 커리어는 썩 좋지 않다.[39] 토카이대 체육학부 출신으로 교사 면허도 취득하였지만 원래는 교사가 꿈이 아녔고 취준생이었다고 한다. 유니클로에 지원하였으나 떨어졌다고.[40] 특이점으로 성공률 87%에 달하며 10시즌 통산 탈락이 9번밖에 나오지 않은 사이드와인더에 심각하게 약하다. 이 9번의 사이드와인더 탈락 중 3회가 스즈키이다(…). 또한 사이드와인더 클리어율도 0%. 이만큼 사이드와인더를 못하는 선수는 2번 도전해서 다 떨어진 무토 토모히로 정도밖에 없다. 유일하게 사이드와인더 탈락이 아닌 32시즌은 플라잉 바에서 떨어지면서 사이드와인더에 가지도 못했다(…).[41] 정작 대학 전공은 체육. 같이 사스케 신세대로 꼽히는 나가사키 슌스케의 코쿠시칸대학 선배다.[42] 이 7번 중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한 시즌만 4번이고, 드래곤 글라이더에 도전한 시즌은 5번이다. 40시즌에서 그나마 드래곤 글라이더를 처음 클리어했지만 시간초과 탈락.[43] 마사지가게라고 하지만 유흥업소같은 곳이 아닌 사실상 PT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헬스장같은 느낌의 가게이다.[44] 심각한 척추측만증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알게 된 계기가 조금 특이한데, 27시즌 때 자신의 몸 상태가 매우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3rd 스테이지에서 탈락한 걸 보고 혹시 이상이 있나 싶어서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45] 원래는 도색공이었는데 이직하는 과정에서 사스케에 출연하여 무직으로 방송에 뜬 굴욕을 당한 적이 있다. 이는 40시즌에서 카와구치 토모히로도 같은 일을 겪는다.[46] 다만 일본 선수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선수들과 아시아 연합팀으로 참가한 USA vs THE WORLD 4 때는 카와구치가 대신 나갔다.[47] USA vs JAPAN 때 3rd 스테이지에서 마지막 장애물인 플라잉 바애서 탈락했다. 비록 상대도 동일한 곳에서 탈락했지만 마타치가 1초 빨라서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USA vs THE WORLD에서는 3rd 스테이지 클리어를 기록했으며 베트남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에서도 3rd 스테이지 클리어를 한 번 거두었다. 이 때는 클리어가 마타치 혼자라 일본 연합팀의 승리.[48] 일본 2회, 미국 1회, 베트남 1회. 애초에 2개 이상의 국가에서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선수가 전세계에 6명밖에 되지 않는다.[49] 모친상 때 마타치는 33살이었다.[50] 고등학교 입학은 했는데 입학을 앞두고 사고를 쳐서 입학날 근신 처분을 받고 근신 상태에서 퇴학당했다고.[51] 실제로 37, 38, 39 시즌은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 40시즌은 3rd 스테이지 진출, 41시즌은 다시 1st 스테이지 탈락을 기록할 정도의 기복을 보였다.[52] 물론 3rd 스테이지를 드럽게 못 깨기로 유명한 히오키 마사시나 사토 준보다는 낫지만...[53] 다만 처음 데뷔할 때 보면 그의 부인이 약혼자 신분으로 연습도 도와주고 응원하러 녹화장에도 왔다. 점차 카와구치가 사스케에서 성적을 내면서 주객전도가 된 듯.[54] 공식적으로 이혼을 밝힌 카와구치와는 다르지만 같은 중졸인 마타치 료도 이혼썰이 돌고 있다. 물론 마타치의 경우 증거라고는 혼자 산다는 점 하나 때문이라 단신부임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부인과 자식이 사스케에 응원하러 오지도 않기 때문에 이혼이라는 예측이 많이 나온다.[55] 어린 시절 카와구치 본인의 부모님도 이혼해서 편모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랑은 교류가 거의 없다가 사스케를 출연을 계기로 다시 연락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가 응원하러 촬영장에 온 적도 있다. 바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30시즌. 이후 31시즌에는 부모님을 모두 초대하였고 사스케를 통해 재회하게 되었다. 카와구치 본인도 불량하게 살다가 사스케를 준비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 걸 보면 사스케에 전념해서 부인에게는 소홀해졌어도 본인과 부모님에겐 오히려 +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56] 클리프행어에 가지도 못하고 탈락한 1번을 제외한 7번 모두 클리프행어에서 떨어졌다.(백턴 점프는 8번 시도하여 1회 성공. 36시즌인데 이때는 두번째 백턴에서 떨어졌다.) 참고로 그 1번의 탈락은 35시즌의 플래닛 브릿지인데, 4시즌 동안 히오키를 제외하면 아무도 떨어지지 않아서(…) 4시즌만에 사라졌다. 히오키가 플래닛 브릿지 첫 도전자 겸 첫 탈락자였고 그후로 본인 포함 아무도 안 떨어졌다.[57] 아예 사스케를 앞두고는 히오키의 집에서 합숙도 한다.[58] 이와모토랑 친한 또 다른 유력선수인 우루시하라 유지와 같이 간 적도 있다.[59] 단순히 이와모토랑 친해서뿐만은 아니다. 히오키는 자기 가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도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교회에 꽤 번듯한 주택도 가지고 있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다가 그러면서도 자기 취미를 즐기고 이것으로 방송까지 타서 유명해지는 등 전형적인 성공한 중산층의 표본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60] 그래도 최근 시즌에는 사이카와 코지가 계속 2nd 스테이지 1번타자를 맡아줘서 고유명수 모드는 많이 줄었다. 40시즌의 경우 사이카와랑 손잡고 2nd 스테이지에서 떨어져서 3rd 스테이지를 가지도 못했고. 41시즌의 경우 교토대학 사스케 동아리 대표가 첫 출전에 3rd 스테이지까지 가면서 이 사람이 마루타 역할을 다 해줬다.[61] 직후 바티칼 리미트에서 탈락했다.[62] 물론 사스케에 그렇게 많이 나오고도 딱 한 번 3rd 스테이지에 진출한 선수는 더 있으나, 키시모토처럼 꾸준히 나오면서 맨날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다가 딱 한 번 엄청나게 잘 한 선수는 거의 없다. 다루빗슈 켄지만 해도 12번 출전하여 3rd 스테이지는 딱 1번 갔지만 2nd 스테이지는 4번이나 갔기 때문에 원 히트 원더의 느낌은 아니다.[63] 키시모토 신야를 제외하고 사스케에서 그나마 원 히트 원더에 가장 가까운 선수는 34시즌 3rd 스테이지에 진출한 오바타 사토시와 21시즌 3rd 스테이지에 진출했던 미야자키 다이스케. 두 사람 다 4번 출전하여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이외에 유사 방송까지 따지면 쿠노이치의 모리 요코(5번 참가해서 1번 3rd 스테이지 탈락, 나머지 시즌 전부 1st 스테이지 탈락.)나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의 네이트 버크할터(7번 참가해서 11시즌 때는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였으나, 나머지 6시즌 중 5시즌은 지역대회 탈락에 1시즌은 1st 스테이지 탈락.)가 있다.[64] 첫 번째 장애물 쿼드 스텝스 첫 발판에서 두 번째 발판으로 가는 점프 중 중심을 잃고 탈락.[65] 2nd 스테이지 이상 진출자로 범위를 낮추면 34시즌의 모리 와타루도 있다. 여담으로 모리 와타루는 부부가 모두 사스케 꼴찌 탈락을 하기도 했다.[66] 예를 들면 모리모토 유스케는 18시즌 데뷔, 그보다 앞 세대로 간주되는 우루시하라 유지는 21시즌 데뷔이다.[67] 고치대학을 나왔으며 정보과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였다.[68] 20시즌은 골절 부상으로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다.[69] 사스케 유력 선수들을 보면 사스케에 집중하여 직장이나 가족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예를 들어 사스케로 인해 부인과 불화가 생긴 카와구치 토모히로 모리모토는 자신의 생업과 사스케가 겹칠 때는 미련 없이 사스케를 뒤로하고 생업에 집중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성적을 내니 정말 대단한 것.[70] 아예 클리프행어 시리즈에서 떨어진적이 없다!! 2014, 2015년 크레이지 클리프행어를 시작으로. 2017,2018년 울트라 크레이지 클리프행어, 2020년 클리프행어 디멘션. 참고로 모리모토는 인도네시아 사스케에 나가서도 클리프행어는 무난히 통과했다.그리고 그 다음 장애물에서 탈락 이외에도 미국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에서도 클리프행어를 클리어한 기록이 있다.[71] 예를 들면 10번 도전해서 9번 연속으로 1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사토 준. 제한시간 30초를 남기고 클리어한 경험도 있다.[72] 백턴을 두 번 하는 클리프행어에서 한 번도 안 떨어진 참가자로는 마타치 료와 야마모토 케이타로가 있는데, 마타치는 36시즌 딱 한 번 도전한 거고 야마모토가 그나마 40, 41시즌 두 번 도전해서 다 클리어했다.[73] 다만 40시즌 현재 기준으로는 사토 준, 히오키 마사시 등 극단적으로 클리프행어에 약한 몇 명을 제외하면 바티칼 리맨션을 더 버거워하지 클리프행어는 그럭저럭 잘 한다. 그러다가 41시즌에서는 기존에 백턴 클리프행어를 잘 했던 우루시하라 유지, 야마모토 요시유키, 레네 카슬리 등이 전부 떨어졌다.[74] 당시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는 6시즌까지 진행했었고 7시즌 때 처음으로 정규시즌에서의 3rd 스테이지 클리어가 나온다.[75] 일본 선수 중 미국에서도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해낸 선수는 모리모토 외에는 마타치 료(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국가대항전에서 1회, 베트남 사스케 국가대항전에서 1회)가 유일하다. 전체 해외판으로 따지면 베트남 사스케 2시즌 때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아라키 나오유키와 베트남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에서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카와구치 토모히로까지 총 4명이 해외판의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76] 나머지 모리모토 세대 4인 중 사토 쥰을 빼면 부인이 현장에 응원하러 온 것이 포착되었다.(41시즌 기준) 또한 이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신 세대, 사스케 올스타즈 멤버들은 전원이 기혼자거나 결혼했던 전적이 있다. 그리고 부인이나 여자친구가 한 번도 응원하러 온 적 없는 유력 선수는 모리모토와 사토 쥰을 제외하면 꼬꼬마 10대들이나 연예인 참가자들밖에 없다.[77] 파쿠르 지도원이라는 직업이 아시아에서 굉장히 생소하기 때문에 영국까지 유학을 가서 파쿠르 지도원 면허를 따 왔다고 한다. 이 면허 취득자는 아시아에 총 3명 있다나. 영국 유학 덕분에 영어도 할 줄 아는 듯. 유튜뷰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 외국에서 온 선수들하고 영어로 대화하는 장면도 보이며(특히 41시즌 때는 레네 카슬리와 스파이더 드롭을 건너뛰기로 계획하고 둘이서 상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다른 유력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간의 통역을 맡기도 한다.[78] 고등학생 신분으로 예선에 참가하여 예선 5위를 기록했다.[79] 결장한 시즌이 몇 번 있는데, 이 중 29시즌은 예선에서 떨어졌고, 39시즌은 발목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80] 단순히 안정적인 것 뿐만 아니라 그냥 타임어택 모드로 매우 빠르게 끝내버린다.[81] 백턴 점프는 12번 시도하여 4번 성공했다. 그래도 성공률 14%대를 기록한 히오키보다는 나을지도.[82] 유튜브에 올라온 41시즌 도전 풀버전을 보면 해설을 맡은 스기야마 신야 아나운서랑 당시 녹화중이던 스태프들까지도 사토 쥰이 클리프행어에서 8번째 탈락하는 모습을 보자 아쉬워할 정도였다.[83] 사스케 유력 선수들 중 명문대는커녕 대졸 자체도 많지 않다 보니 이런 케이스는 정말 희귀하다. 명문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하고도 사스케에서 활약하는 야마모토와 아라키가 이레귤러.[84] 사실 매 시즌마다 3rd 스테이지를 너무 쉽게 깨서 밸런스 붕괴가 나오는걸 막기 위해서인지 제작진들이 마지막 점프 구간을 턱없이 넓게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여기서 떨어지는 경우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본헤드플레이까지는 아니다. 실제로도 역사상 많은 참가자들이 저 구간에서 떨어졌다.[85] 오랜 클라이밍 경력 덕분에 손가락으로 버티는 힘 하나는 그 모리모토 유스케도 한 수 아래라고 할 정도로 세다고 한다. 실제로 클리프행어도 몇 번 못 가서 그렇지 단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86] 하지만 감안해야 하는 것이 당시 베트남 사스케는 동 시즌의 일본 사스케에 비해서 장애물이 조금 구식인 경우가 많다 보니 난이도가 살짝 아래였다.(아메리칸 닌자 워리어를 위시한 서구권 사스케는 1st, 2nd 스테이지는 오히려 원판보다 더 어렵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32시즌이 치러질 때라서 클리프행어난이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 있었는데 베트남 사스케에서는 24시즌에 쓰였던 장애물이 여럿 사용되었고, 문제의 클리프행어는 17시즌 수준으로 난이도가 낮았다. 실제로 12인이나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바람에 베트남 사스케 쪽에서는 3rd 스테이지 난이도를 대폭 올려버렸고 이후 치러진 3번의 시즌에서는 아무도 3rd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했다.[87] 이와 동시에 1st 스테이지 성공률 100%를 기록하고 있는 참가자 중 참가횟수 1위 기록도 가지고 있다.[88] 덤으로 2nd 스테이지에서도 타임아웃 탈락을 1회 기록했다.[89] 클리프행어가 백턴이 강제된 28시즌 이후로는 세 시즌 이상 연속으로 비슷한 유형의 클리프행어에서 떨어진 선수들은 보통 클리프행어에 발목잡혀서 거기가 커리어하이가 되는 점이 많다는 것이 좀 에러다. 카지하라가 42시즌 때 극복하지 못하면 정말 아사 카즈마, 히오키 마사시, 사토 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고로 백턴을 요구하는 클리프행어를 첫 3번의 도전에서 모두 실패한 선수 중에서 4번째 이후에 클리어를 해낸 선수는 칸노 히토시가 유일하고, 그나마 칸노가 클리어할 때는 백턴을 1번만 하면 됐고 클리프행어가 움직이는 구조도 아니라 상대적으로 쉬웠다.[90] 카지하라가 94년생, 사이카와가 빠른 95년생이라 학교를 같은 해에 나왔다.[91] 내외하는 것은 아닌게 종종 대화하는 장면이 잡히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 듯한게 또래인 모리모토 세대 멤버들한테도 존댓말을 한다.정작 사토 준은 카지하라와 사이카와에게 반말을 한다[92] 골덴 봄버에서는 가장 몸치임 우타히로바를 제외하고 모두 사스케 출전경력이 있으나 1st 스테이지 클리어는 다루빗슈가 유일하게 해냈다.[93] 39시즌에는 츠카다 혼자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해서 후배들이 위로해줬는데, 40시즌에는 츠카다 혼자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서 본인이 후배들을 위로해줬다.[94] 사스케 40시즌 직후 치러진 온라인 팬 미팅에서 우루시하라 유지가 41시즌 때는 츠카다, 이와모토와 동반으로 3rd 스테이지에 진출하고 싶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하지만 또 우루시하라 혼자 3rd 스테이지에 갔다.[95] 애초에 현역 쟈니스 신분으로는 최초로 사스케에 출전했다. 물론 전직 아이돌까지 합치면 히카루GENJI의 모로호시 카즈미도 20시즌에 출전한 적이 있긴 하다.(당시 기록은 1st 스테이지 2번째 장애물 록 그립에서 탈락.)[96] 놀랍게도 훌륭한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갖고 있는데 술도 잘 마시며 담배도 피우고(이건 본인이 밝힌 것이 아니고 피우다가 사진 찍혔다. 최근에는 아이코스를 소지한 것이 포착되기도.) 식단 관리도 딱히 안 한다고 한다. 평소에 운동을 매우 철저히 하는 듯.[97] Snow Man은 37시즌이 방영되고 약 한 달 후인 2020년 1월에 데뷔했다. 즉, 사스케 데뷔 당시에는 주니어 신분.[98] 첫 시즌의 쿼드 스텝스 탈락과 41시즌의 트윈 다이아 탈락만 봐도 이와모토는 피지컬 위주의 플레이를 하며, 어느정도 요령이 필요한 장애물에서는 약한 것을 알 수 있다.[99] 상술했듯이 이와모토는 피지컬과 성실성은 좋으나 센스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사스케 선수로서의 잠재력은 같은 쟈니즈의 츠카다 료이치보다 낮게 평가받고 있었다. 당장 38시즌 때 2nd 스테이지에 가자 시청자들의 주된 반응은 1st 스테이지를 절대 클리어 못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해냈다는 놀라움의 반응이었을 정도.[100] 혼혈이지만 일본에서만 살아서 영어를 전혀 못 한다고 한다.[101] 출전한 4시즌 다 1st 스테이지를 가볍게 클리어하고 2nd 클리어에서 탈락했는데 각각 살몬 래더 쿠다리, 스파이더 드롭, 월 리프팅, 리버스 컨베이어에서 탈락했다. 즉, 4번 다 다른 곳에서 약점을 보여주며 떨어진 것,[102] 내외하는 것은 아닌게 종종 대화하는 장면이 잡히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은 듯한게 또래인 모리모토 세대 멤버들한테도 존댓말을 한다.정작 사토 준은 카지하라와 사이카와에게 반말을 한다[103] 당시 무소속 주니어 스즈키 슌에이와 같이 출전하였는데 스즈키는 1st 스테이지 피쉬본에서 탈락하면서 39시즌 때는 아지마 히데키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그는 데뷔하지 못한 채로 2022년 6월 쟈니스를 떠나면서 더는 사스케에서 볼 일이 없어졌다.[104] 바로 직전시즌 야마모토 케이타로가 탈락한 그 장애물이다. 롤링 로그는 사실 2nd 스테이지 장애물 중 가장 만만한 장애물인데 2nd 스테이지에 도입된 38~40시즌에서 딱 한 명씩만 떨어졌다. 40시즌 때는 럭비선수 후지타 요시카즈가 탈락.[105] 그 자리는 WEST.하마다 타카히로로 교체되었다.[106] 야마다는 28시즌 때 은퇴를 결심하면서 본인이 연습용으로 집 근처에 설치했던 세트를 철거하였으나 29시즌을 앞두고 제자들을 키워 자신이 못다한 꿈을 이루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새로 연습용 세트를 지었다.(어차피 야마다가 연습하던 세트는 오래돼서 노후화되기도 했다.)[107] 그나마 그 1명도 야마다 군단 출신 이사 요시노리였다.[108] 34시즌 한정으로 오바타 사토시.[109] 36시즌 때는 출전자 둘 모두 첫 출전에 1st 스테이지 탈락이라 이렇다 할 에이스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110] 이중 1명은 벨기에 국적의 연구원으로 2023년 군단 예선 도중 모국에 가야 해서 기권했다.[111] 우가타 히사시라는 멤버로 예선 최종 재대결에서만 두번이나 탈락하며 사스케 데뷔에 또 실패했다.[112] 야마다 군단 최초의 3rd 스테이지 진출자이다.[113] 인터넷을 뒤져보면 야마다 카츠미조차도 그의 사생활에 대해 전해듣고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고 할 정도라 사실상 금지어가 된 듯 하다. 애초에 34시즌 때 야마다 군단 최초로 3rd 스테이지에 진출한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인생을 살면서 제대로 해 온 게 하나도 없다면서 여기서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대학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중퇴했으며, 어릴 때는 야구부였으나 백업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해서 공식전에 나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남들한테 민폐만 끼치는 인생을 살아왔다나. 즉, 본인 스스로도 본인이 사고뭉치로 살아온 것을 알고는 있었다는 건데..[114] 다만 본업인 10종경기에서는 국내 대회 10위가 최고일 정도로 그렇게 인상적인 선수는 아니다.[115] 그러나 큰 덩치 때문인지 신체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요구하는 장애물에는 약했다. 말년에 1st 스테이지 연속탈락을 할 때는 초심자와 나름대로 할 만한 선수를 구별하는 정도에 불과한 타이 파이터에서 계속 탈락했었다.[116] 올스타즈 중 나가노 마코토, 시라토리 분페이보다 데뷔가 빨랐다. 콘구 타카하시가 처음 3rd 스테이지에 진출한 7시즌 때 나가노는 처음 사스케에 참여하여 1st 스테이지에서 광탈, 시라토리는 그 때 사스케에 참가한 적도 없었고 9시즌이 되고 나서야 처음 나왔다. 그런데 정작 유일한 파이널 스테이지 도전은 신 세대의 전성기로 간주되는 24시즌.[117] 사이드와인더는 10시즌 간 탈락자가 9번 나올 정도로 3rd 스테이지에서는 성공률이 높은데 무토하고 스즈키 유스케 둘이 유독 약하다. 둘이 합쳐 5번 탈락에 성공률 0%를 자랑하고 있으니(…).[118] 같은 이케타니 나오키 밑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여성 단원. 사스케에도 1회 나왔지만 1st 스테이지에서 떨어진 후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는다.[119] 사스케에는 2, 3시즌 2회 출전하여 2시즌 때 2nd 스테이지를 갔으나 3시즌 때는 1st 스테이지에서 탈락. 이후 여성 전용 사스케 쿠노이치에도 6회 출전하여 2nd 스테이지에 2회, 3rd 스테이지에 1회 진출하였다.[120] 그래봤자 오시마 이전에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던 외국인 여성도 제시 그라프 한 명이다. 40시즌에서 오시마 뒤에 도전한 슈테파니 아델만이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여성 참가자는 40시즌간 통산 4명(일본인 2명)이다.[121] 쿠노이치는 2018년 11시즌 이후 더이상 열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시마는 쿠노이치에서는 정작 최강자로 꼽히지는 않았다.[122] 언젠가부터 국가대항전에서 여성 1인을 넣는 것이 공식처럼 되었는데 엄격한 예선을 거쳐서 뽑다 보니 여성 유력 선수도 몇 명씩 있는 타국과 다르게 일본은 딱히 경쟁력있는 여성 참가자가 전무해서 오시마 1명이 독보적이라 한동안은 국가대항전에 출전할 때마다 개근할 것으로 보인다.[123] 물론 2021년 여름에 검사차 잠시 입원했던 것을 보면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124] 푸쉬업을 많이 한 순서대로 조별로 상위 2명을 뽑는 거였는데 조 운이 없었다. 우가진은 푸쉬업 105개째에서 그만두었는데 조 4위였다. 다른 조에 있었던 사쿠마 코타는 90개도 안 하고도 2라운드에 진출했으니.[125] 2022년 11월 사스케 40시즌 오디션 특집 유튜브 영상에도 나온다. 당시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면접을 치렀는데, 본인 집에 설치한 클리프행어 세트를 양복을 입은 채로 시도하는 모습을 어필하였으나 결국 출전권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일반 예선에서도 참가하였으나 1라운드 팔굽혀펴기 대결에서 탈락했다고 한다.[126] 사스케는 시범맨이 한 번 이상 클리어를 해야만 그 장애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역사상 아무도 못 깨서 하향먹은 장애물도 시범맨은 깬 적이 있다는 것이다.[127] 가뜩이나 에이징 커브가 빨리 오는 체조선수인데도 불구하고 만 39세의 나이로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출전하여 그 대회에서도 결선까지 갔을 정도로 꾸준한 몸관리를 보여주었다.[128]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출발 신호를 놓쳐서 1.5초 늦게 출발했고 그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129] 일본식 발음으로는 리엔치.[130] 30-32시즌 3회 출전하여 30, 31시즌 2nd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그러나 두 시즌 다 어이없게 첫 장애물 크로스 슬라이더에서 탈락. 여담으로 리언즈와는 다르게 일본에서 취업한 사람이라 그런지 일본어가 유창했다.[131] 사스케에 출전할 당시에 일본어를 못해서 통역이 따라다녔지만 당시 유력 선수들과 연을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132] 당시 미국 사스케는 기록을 측정하여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고 완전제패 개념의 도전은 없었다. 하지만 완전제패 개념이 없던 1-3시즌 때는 원조 사스케에 선수를 파견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최우수 성적 기록자는 원조 사스케에서 가장 잘 한 선수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하면 리바이 뮤엔버그가 1시즌의 최우수 성적이다.[133] 26시즌 출전권은 얻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기권. 대신 선수단과 같이 방일해서 녹화장에서 미국인 동료들을 응원해줬다.[134] 현재 이 사람의 이미지는 야마모토 신고와 비슷하다. 왕년에는 최고 에이스였고(2-3시즌 최우수 성적.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 2시즌 연속 최우수 성적을 찍은 사람은 10,11시즌 최우수 성적을 기록한 드류 드렉셀과 13,14시즌 최우수 성적을 기록한 케이든 랩색이 끝이다.) 나이를 먹고도 꾸준히 개근하고 있지만 현재는 노쇠화로 인해 예전만은 못한 레전드 느낌. 이 때문에 가끔 사스케를 오래 봐 온 일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데이비드 캠벨이 오랜만에 한 번 나와주면 안되냐는 말도 나온다. 다만 본인이 직접 일본 시청자들 댓글에 자신은 언제든지 원조 사스케에 다시 나갈 수 있다면 나가고 싶다고 대댓글을 단 적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제작진에서 신경을 안 쓰는 듯(…)..[135] 4시즌에 진출. 당시 2nd 스테이지에서 무려 23명이나 탈락하면서 전국대회 참가자 100명 중 유일하게 3rd 스테이지에 도전하였다. 이는 원조 사스케 20시즌과 비슷한 그림.떨어진 것도 똑같다[136] 제자를 성폭행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지만 사스케에서 제명당해서 완전히 무죄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복귀는 불가능.[137] 참고로 일반적인 사스케 유력 선수들과 다르게 대졸이다. 퀴니피악 대학교를 졸업했다.[138] 하프파이프 어택에서 무릎을 크게 다쳐 기권했다.[139] 안타까운 게 발이 에 스치는 등의 이유로 탈락하는 경우는 즉시 탈락판정을 내리는데, 드렉셀의 경우는 코스아웃 당시에는 아무 선언도 없이 경기를 진행시켰고 드렉셀이 클리어 버튼을 누른 후에야 실격 판정을 내렸다. 비슷한 케이스로 12시즌 당시 야마다 카츠미가 장갑을 벗어야만 하는 코스에서 장갑을 끼고 플레이를 했을 때와 36시즌 모리 와타루가 리버스 컨베이어 벨트에서 벨트 바깥쪽으로 기어가는 반칙 플레이를 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다 끝나고 나서야 실격시켰다.[140] 같이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결혼하지 않은 채로 그의 아들을 낳았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았다고 하니 사실혼같은 느낌인듯.[141] 이유는 당연히 성폭행. 코로나로 인해 시즌이 몇 달 연기되어서 시즌 진행 중에 성폭행으로 체포되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인 게 지역 대회 진행 중에 실격된 거라 탈락자 중 한 명을 추가진출시키고 영상을 편집하는 선에서 끝났지 11시즌처럼 완전제패라도 했으면 방송국 입장에선 대참사였을 뻔.[142] 10시즌과 11시즌.[143] 이외에도 비정규 매치까지 합치면 국가대항전에서 3rd 스테이지 클리어를 또 해냈었다. 심지어 중간에 손바닥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도 그 손을 갖고 끝까지 완주한 건 덤. 12시즌은 시즌 중 제명당해서 통편집당했기 때문에 그가 실질적으로 출전한 마지막 대회인 2020년 국가대항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부상 덕분에 당시 미국 대표팀은 대회 내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다가 원래 파이널 밧줄타기 선수로 내정된 드렉셀이 최종 밧줄타기 1:1에서 교체되는 바람에 호주에게 충격의 역전우승을 내주고 만다.(당시 규정은 1-3스테이지 통합 1/2위팀이 1:1 파이널 스테이지를 통해 우승팀을 가리는 방식이라 아무리 점수가 안 좋아도 2위만 유지한 후 밧줄타기로 승부를 보면 됐다.)[144] 이외에도 피해자는 드렉셀이 아동 포르노를 보았다는 증언과 화상통화 시 음란행위를 요구했다는 것도 폭로하였다.[145] 그 와중에 한국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팬도 일부 있다.[146] 심지어 도주 위험을 높게 본 것인지 구속 이후 보석을 신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레딧에서는 닌자라서 풀어주면 도망 잘 갈 거라는 드립도 나왔다[147] 당시 드렉셀은 탈락처리가 아닌 재도전 지시를 받았고 재도전 결과 탈락하였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드렉셀은 규정을 알고 있었으나 규정대로 플레이했을 때 클리어할 자신이 없어서 해당 방식을 사용하였다고 인정했다. 해당 규정은 '그 외' 문단에 나온 클리프행어 관련 규칙에 자세히 적혀있다.[148] 전세계를 통틀어 이 기록은 제시 그라프를 필두로 올리비아 비비안, 슈테파니 아델만까지 3명이 전부. 뒤의 둘은 각각 베트남과 독일에서 해냈다. 이 중 제시 그라프랑 올리비아 비비안은 2회 3rd 스테이지 진출을 해냈다.[149] 사실 12시즌 때도 지역 대회에서 13위로 탈락하였으나, 드류 드렉셀이랑 같은 조에서 참가한 덕분에 전국대회를 앞두고 그가 체포되면서 실격당하자 빈자리에 편입되어 전국대회에 진출하였다.[150] 8시즌 때 2nd 스테이지에 진출했는데 이것이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사상 첫 여성 도전자의 2nd 스테이지 진출이다. 또한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의 1st 스테이지는 원조 사스케보다 꽤 어려운 편. 와일드카드 진출자 일부를 제외하면 다들 까다로운 지역대회를 통과한 실력자들이기 때문이라 2nd 스테이지 진출자 인원을 조정하려면 어쩔 수 없다.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에서 1st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여성은 통산 3명이며 모두 1회씩에 그쳤다.(원조 사스케는 제시가 혼자 3번 클리어해서 4명이 6회 클리어.)[151] 다만 정규 시즌이 아닌 국가대항전에서는 2nd 스테이지까지 1회 클리어했다. 또한 아메리칸 닌자 워리어 올스타전에서는 3rd 스테이지에 도전한 적 있는데 여기서도 클리프행어에서 탈락.[152] 사스케 출전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일본 여행을 간다고 했기 때문에 사스케 또 나가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고, 이후 본인이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이 사스케에 참여하러 일본에 간 것이 맞다고 확정지었다. 당시 친한 닌자 워리어 유력 선수이자 고향이 일본인 준 킴과 같이 일본에 갔다고 한다.[153] 클리프행어 통산 8번 도전 3번 성공. SASUKE 39시즌 때 워낙 쉽게 파이널까지 가서 그렇지 생각보다 그렇게 클리프행어를 잘 하는 선수는 아니다.[154] 2019년에는 확실히 운영하고 있었으나 2023년 인터뷰에서는 폐업했다고 한다. 이제 70대 고령인데다가 코로나 시국까지 겹쳐서 가게를 접고 쉬는 듯.[155] 커리어하이인 26시즌에는 3번째 장애물 롤링 에스카르고까지 갔다. 이때 1~2번째 장애물에서 탈락한 사람이 100명 중 45명이고, 타코텐쵸와 동일하게 롤링 에스카르고에서 탈락한 사람만 28명이었다. 즉, 공동 28등까지 기록해 본 것.[156] 1st 스테이지 당시 10위가 사스케 2nd 스테이지에 여러번 갔던 전직 체조선수 사토 히로미치 부자, 11위가 미스케 사스케 야마다 카츠미 부자였다. 세 가족 다 사이좋게 2nd 스테이지에서 탈락. 그리고 사토 히로미치 부자는 2시즌 때 완전제패를 해냈다.[157] 2시즌 때는 78+46을 가지고 손자랑 실랑이하느라 20초를 날렸다. 타코텐쵸는 124라고 제대로 계산했지만 손자가 114라고 우겨대는 바람에 결국 손자를 힘으로 저지하고 타코텐쵸가 124를 입력[158] 96+77을 317이라고 했다. 정답이 173인 걸 감안하면 기계 작동법이나 숫자 버튼을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159] 이때 1~2번째 장애물에서 탈락한 사람만 무려 70명이나 되었다. 즉, 하라시마가 TOP 30 안에는 들어갔다는 것. 다만 크로스 브릿지는 원래 성공률이 90% 가까이 되는 장애물이었고 16시즌에서 크로스 브릿지에 도전한 30명 중 탈락자는 하라시마 단 한 명이었다.[160] 한국에서도 이 키면 키 미달로 사회복무요원을 간다[161] 말이 동아리지 거의 상사인 혼마 타카시의 사스케 훈련을 부하들이 도와주는 것밖에 없다(…). 그래도 37시즌 때는 반다이사스케부에 출전권이 두 장 주어졌기 때문에 부하 직원 한 명이 추가로 참가하였다. 이 사람은 1st 스테이지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162] 애초에 개그성 출연자라고 해도 이 사람들 다 진지하게 플레이한다. 한 번 나와서 떨어지는 게닌들 정도를 제외하면 사스케에서 대충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163] 보통 사스케에서 유력 선수들도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자주 떨어지고, 드래곤 글라이더까지 가기만 해도 평균 이상의 신체 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50대의 아저씨가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은 엄청 대단한 것이다.[164] 본인의 말에 의하면 41시즌 출전권이 1장이라 부하 직원에게 출전권을 양보할까 고민했으나 드래곤 글라이더의 트램펄린에서 한 번만 제대로 점프를 해 보고 싶다는 본인의 열망 때문에 한번 더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드래곤 글라이더까지 간 38시즌의 경우 시간이 몇 초 남지 않아서 허둥대다가 트램펄린 앞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그대로 굴러서 물에 빠져 탈락했다. 즉, 드래곤 글라이더에서 탈락한 것은 맞는데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진 것.[165] 출전권 양보 얘기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나오는 편. 사스케 올스타즈마냥 왕년에 잘 했던 것도 아니고, 마츠다 다이스케처럼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하지도 않고(반다이사스케부에서 사스케 모의 세트 연습을 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다. 다 회사 내부 시설을 가지고 야매로 할 뿐.), 하다못해 개인 피지컬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도 자신보다 더 잘하는 부하 직원들에게 출전권을 양보하지 않고 꾸역꾸역 나온다는 점에서 이 사람을 싫어하는 사스케 팬들도 일부 있다.[166] 보통 파워가 약한 선수들이 이부분에서 힘을 많이 빼서 소리타츠카베에서 제 실력을 못 보여주곤 한다.[167] 요시모토흥업 소속 개그맨이다. 사스케 예선에는 본명 니시오 타쿠미로 참가하였다.[168] 이때 살을 무리하게 뺐는지 주변에서 병 걸린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169] 마츠다 본인은 1st 스테이지 클리어 기록이 없지만 마츠다 파크에는 2nd, 3rd 스테이지를 대비한 세트까지 제작해뒀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본인이 집에 세트를 만들지 않은 장애물에서 탈락하면 바로 그 장애물을 집에 설치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끔 기껏 세트를 설치해서 연습했는데 해당 장애물이 폐지돼서 써먹지 못한 경우도 있다.[170] 40시즌 때 마츠다의 도전 때는 모리모토 세대, 신 세대, 사스케 올스타즈들은 물론 이와모토 히카루를 필두로 한 쟈니스 유력선수들까지 전부 다 마츠다를 따라다니며 응원을 해줬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