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아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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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ifer
생몰년도
미상 ~ 880년
출생지
노케라
사망지
테아노
재위 기간
861년 - 880년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살레르노 공국 5대 대공.


2. 행적[편집]


노케라 영주인 '벙어리' 다우페르의 아들로, 누이 아델치사(Adelchisa)는 베네벤토 공국 5대 대공 지카르드의 아내였다. 839년 지카르드가 피살된 뒤 재무관 라델치스 1세가 대공을 자처하고 지카르도의 형제 지코눌프타란토에 감금하자, 아버지, 카푸아의 가스탈트(Gastald: 특정 지역에서 민사, 군사 및 사법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관료)를 맡고 있던 라눌프와 함께 지코눌프를 구출하고 살레르노 공국을 세워 라델치스 1세에 대항했다. 전쟁은 10여 년간 이어지다가 851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이자 이탈리아 국왕 루도비코 2세의 중재에 따라 양자가 베네벤토 공국을 절반으로 나눠가지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후 지코눌프의 아들 지코가 대공 직위를 물려받았다가 2년 만에 섭정을 맡았던 피에트로에게 폐위되었고, 피에트로의 뒤를 계승한 아데마르가 살레르노 공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카푸아를 나폴리 공국과 연합해 공격했으나 패배하면서 민심을 잃었다. 그는 카푸아 백작 란둘프 1세의 부추김을 받고 861년 정변을 일으켜 아데마르를 축출하고 대공에 선임되었다.

루도비코 2세는 구아페르를 반역자로 간주했지만, 타 지역에서 벌어진 반란을 수습하는 데 전념해야 했던 터라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데마르는 나폴리에 망명한 뒤 복위할 기회를 노렸지만, 살레르노와 갈등을 벌이고 싶지 않았던 나폴리 측이 그를 넘겨버렸다. 구아페르는 아데마르를 실명형에 처해 다시는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게 했다. 이후 카푸아 백국과 화해하고 카푸아 백작 란도 1세의 딸인 란델라이카(Landelaica)와 결혼하여 과이마르 1세를 낳았다.

871년 아글라브 왕조가 파견한 사라센군이 살레르노에 쳐들어와서 1년간 포위 공격을 벌였다. 이로 인해 도시 내에서 굶주림이 만연하여 항복을 심각하게 고려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말피 공화국이 보급품을 보내주면서 기사회생했다. 그 후 루도비코 2세가 구아페르의 1년이 넘는 탄원과 간청 끝에 프랑크군을 파견했고, 랑고바르드-프랑크 연합군은 살레르노 외곽에서 사라센군과 격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격파했다.

880년에 은퇴하여 몬테카시노 수도원으로 입회하러 가던 중 테아노에서 사망해 그곳의 교회에 안장되었다. 사후 아들 과이마르 1세가 살레르노 대공에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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