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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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6년
평안북도 정주군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제는 1876년생이며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정주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고, 그해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1920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나창헌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상해 대한인거류민단(大韓人居留民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쑨원 등이 광동에서 광동중화민국정부를 수립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김기제를 선전부장으로 임명하여 김천정(金擅廷)ㆍ이우민(李愚珉)ㆍ임권(林勸)ㆍ손사민(孫士敏)ㆍ박영우(朴永祐)ㆍ김희작(金熙綽)ㆍ전재한(田在漢)ㆍ차정신(車廷信) 등과 함께 파견하였다. 9월 광동에서도 한중호조운동(韓中互助運動)이 일어나자, 9월 29일 중국 유력인사들과 중한협회를 조직하고 서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1월 중국 광저우에서 황포군관학교가 설립되자, 그는 군의 겸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학생 입교문제에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이후 19로군의 항일전투에도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 1926년 오철성(吳鐵城) 휘하 군대의 군의로 있으면서 산두(汕頭)로 출장하였으며, 1933년 11월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광주지부(廣州支部)에 100불을 지원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김기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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