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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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김씨
출생
1875년 9월 24일
평안도 용강현 화촌방 죽본리[1]
(현 평안남도 온천군 석지리)
사망
1973년 4월 16일
서울특별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75년 9월 24일 평안도 용강현 화촌방 죽본리(현 평안남도 온천군 석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19년 3월 4일 김대엽과 함께 신흥학교(新興學校) 학생 30명을 이끌고 서화면 죽본리(竹本里)·석치리(石峙里) 등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대혁은 지방법원과 복심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금일 평화 문제와 민족자결이라는 문제는 완성되지 않았는데 조선민족으로서 조선 독립을 부르짖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라고 항의하였다. 결국 김대혁은 1919년 6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월남했고, 1973년 4월 16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김대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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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근의 암현리와 함께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