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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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장의위원회 구성
4. 참고문헌



1. 개요[편집]


조총련 출신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10년 9월 17일에 출생하였다.

1935년 4월, 도쿄 도시마 조선부인친목회 회장으로 취임, 1945년까지 재임하였으며 1946년 3월, 재일본조선인연맹 도쿄도본부 부녀부장에 취임, 1952년 8월까지 재일본조선인연맹 중앙본부 부녀부장,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도맹 중앙본부 위원장 등으로 일하였다.

1952년 8월, 재일본조선민주주의통일전선 중앙조직부 차장으로 취임하여 1953년 9월까지 재임하였고 1953년 9월,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본부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961년 8월까지 재임했다. 1955년 5월, 조총련 설립에 참여, 중앙위원회 의장단으로 선출되어 1956년 5월까지 재임했다. 1960년 8월 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국기훈장 3급을 받았는데 실수를 한건지 김운순으로 이름이 보도되었다.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서 조총련 축하단장으로 참석했다.

1961년에 귀국하여 1965년 9월, 조선민주녀성동맹 제3차 대회에서 김성애, 허창숙, 리정순, 왕옥환, 량창숙, 최금자와 함께 녀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거되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후인 1965년 9월 15일 16시에 불과 56세를 일기로 일찍 죽었다. 당중앙위원회와 녀맹 중앙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김은순 동지는 일찌기 반일계몽사업에 참가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재일본 조선민주녀성동맹을 창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재일본 조선 녀성들과 공민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과 재일본 조선 녀성들과 공민들을 당과 공화국 정부 주위에 결속시키기 위한 투쟁에 자기의 모든 정력을 다 바쳤다. 동지는 조국에 돌아와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중책을 지니고 전체 녀성들과 후대들을 공산주의적으로 교양하며 그들을 당 정책 관철에로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나라의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하였다."라고 후히 평가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김일성은 1970년 11월 2일, 5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계림, 김경석, 강진건, 강영창, 리봉수, 김갑순, 김태근, 안룡각, 강상호, 리주연, 김원빈과 함께 김은순을 '당에 끝없이 충실하였으며 혁명을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한 동지'로 언급하였다.

3. 장의위원회 구성[편집]



4. 참고문헌[편집]


  • 조선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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