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1999)/선수 경력/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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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시즌 전
3.1. 1군 복귀 이전
3.2. 1군 복귀 이후
3.2.1. 8월
3.2.2. 9월
3.2.3. 10월
4. 정규시즌 총평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김형준의 2023 시즌 활약상을 담은 문서이다.

2. 시즌 전[편집]


강인권 NC 감독의 신년회 인터뷰 중 김형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강 감독은 "일단 현재 보고받은 상황으로는 후반기부터는 경기에 뛰는 게 가능할 것도 같다. 포수다 보니까 무릎 상태에 대해 조금 조심스런 부분이 있다. 올해는 적응 기간이라고 보고 무리시키지 않고 완벽하게 부상에서 회복시키는 게 중요하다. 퓨처스에서 경기 감각을 충분히 익히고 나서 콜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한 시즌 하다 보면 포수 쪽에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대비해서 착실하게 몸을 만들도록 하겠다."라며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올 시즌 등번호는 나성범이 사용한 뒤 구단이 비워뒀던 47번을 사용하게 되었다. 입대 전 사용하던 22번을 이용찬이 가져가면서 다른 번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NC 퓨처스팀 인스타그램을 통해 2군 스프링캠프에서 캐치볼을 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오랜만에 팬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파일:김형준230201.jpg

2월 초 인터뷰를 통해 "정말 많이 좋아졌다. 단순하게 뛰는 것까진 가능하다. 70% 정도의 상태다. 캐치볼도 하고 있다. 타격은 이번 달부터 조금씩 시도해볼 것 같다"며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잘 챙겨주시고 신경 많이 써주셔서 순조롭게 재활 중이다. 별 탈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 마음도 괜찮아졌다"고 덧붙였다.

또 "이르면 오는 5~6월쯤 복귀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급하게 나서진 않을 것이다. 몸을 완벽하게 만들고 돌아오겠다. 선수는 절대 아프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건강해야 경쟁도 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조금 늦더라도 100%로 만들어 오겠다. 야구장에서 잘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준비 잘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2월 말 인터뷰에서는 "현재 러닝이나 티배팅, 캐치볼 등을 소화하고 있다. 포수로서 쪼그려 앉는 단계 정도가 남았다"며 4월에 포수 훈련을 시작해 경기 감각을 익힌 후 빠르면 6월쯤 복귀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3. 페넌트레이스[편집]



3.1. 1군 복귀 이전[편집]


시즌이 개막하고, 4월 18일 강인권 감독의 경기전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언급되었다. 감독은 "(연습경기에) 아직 포수로 경기에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지명타자로만 뛴다.[1] 포지션 특성상 무릎이 중요하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려고 한다. 생각보다 재활 속도는 빠르다. 처음에는 올해 후반기 출전을 생각하고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5월 12일 퓨처스리그에 등록된 것이 확인되었고 이 날 경기에서 6회초 박대온과 교체되어 매우 오랜만에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7회말에는 2사 만루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사구를 맞으면서 밀어내기 타점도 기록했다.

다음날 C팀 인터뷰를 통해 인삿말을 전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복귀를 할 수 있어 좋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그동안 밑에 있으면서 무릎 상태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면서 보강운동을 해왔고, D팀 경기에 나갔을 때는 타격감과 수비를 할 때의 감각을 찾으려 신경썼다"며, "나의 건강한 복귀를 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신 것 같다. 그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경기 나갈 수 있도록 준비 잘하면서 N팀에 올라가 팬들께 얼른 인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퓨처스 경기 전 연습 도중 공을 잘못 밟아 오른쪽 발목인대가 손상되면서 또다시 전열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강인권 감독은 최소 한달 이상 재활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최소 6월말까지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었다. 부상이 변수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라는 시선도 있었으나, 엔트리를 선별한 전력강화위원회는 고심 끝에 포수를 2명 다 '비와일드카드'로 결정하면서 김형준을 대표팀 주전 포수로 낙점했다.[2] 조계현 전력강화위원장은 "김형준은 군대에 가기 전에 NC에서 기술이나 실력이 검증된 선수이다. (아시안게임에서) 김형준이 중점적으로 마스크를 쓸 것이다"며 주전으로 나설 것을 예고했다. 또 부상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서는 "부상 정도가 경미하고 남은 3개월 동안 충분히 회복해 합류할 수 있다고 봤다"고 밝혔다.#

재활 과정을 거친 후 7월 5일 퓨처스 상무전에 교체출장하면서 42일만의 복귀 경기를 치렀다. 이후 7월 한 달간 11경기에 꾸준히 출장하며 타율 0.321을 기록, 정상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

7월 말 MK스포츠 인터뷰에서 "국가대표 투수들은 다 잘 던지는 사람들이다. 제가 그 투수들을 잘 던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이게 중요할 것 같다. 제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선수들이니 소통도 많이 해서 투수들의 장점이나 좋은 것들이 나올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며 "나라를 대표해서 가는 것이니 금메달을 따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 투수든, 포수든, 내야수든, 외야수든 모든 선수들이 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3.2. 1군 복귀 이후[편집]


강인권 감독은 확대 엔트리 전까지는 김형준을 콜업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23일 김수윤이 말소되면서 전역 이후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예정보다 빨리 1군에 올라온 것은 박세혁의 부상이 길어지는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3.2.1. 8월[편집]


8월 24일 문학 SSG전에서 안중열을 대신하여 경기에 투입되었다. 5회, 8회 맥카티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터뜨려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당겨친 홈런과 밀어친 홈런이 모두 비거리 130m에 육박할 정도로 여전한 파워와 타격 재능을 선보였으며, 단 한 경기만으로도 시즌 내내 포수 포지션의 공격력이 아쉬웠던 NC 팬들이 기대감을 갖기 충분한 활약이었다.




2023년 8월 24일 SSG전 김형준 연타석 홈런

25~27일 창원 LG전에서는 대수비로만 출장하다가 안중열이 부상으로 28일 말소되면서 한동안은 김형준이 주전 포수를 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3.2.2. 9월[편집]


9월 1일 대구 삼성전 2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160km/h의 속도, 비거리 125m의 거대한 솔로 홈런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6회 초 펜스를 맞히는 큼지막한 2루타에 이어, 8회 초 밀어서 다시 한 번 비거리 115m 솔로 홈런을 쳐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시즌 4호 홈런째를 기록했다.

그러나 4호 홈런 이후 타격감이 내려오며 한동안 홈런을 추가하지 못하다가, 9월 21일 고척 키움전에서 시즌 5호 홈런째를 기록하며 팀 내 최다홈런 포수로 등극했다. 이는 시즌 단 19경기만을 뛰고 달성한 것이다.

3.2.3. 10월[편집]


아시안 게임 복귀 이후, 10월 15일 창원 삼성전에서 시즌 6호를 역전 투런으로 장식했다.

4. 정규시즌 총평[편집]


재활과 상무제대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2023시즌 36경기에 선발출장에 그쳤지만 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하마터면 무너질뻔한 NC 다이노스 포수진의 구세주로 등극한 시즌으로 왜 자신이 양의지의 후계자인지를 증명했다.

특히 NC 다이노스는 46억을 투자해 데려온 박세혁이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하고 백업 포수인 안중열이 부진하고 있어 포수진에 고민이 많았는데 김형준이 항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에 선발되자 강인권 감독은 실전 경험차 김형준을 주전포수로 낙점했다.

결과는 성공적으로 김형준은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나가기 전 선발 출장한 19경기에서 5개의 홈런을 때리면서 NC 포수진의 구세주로 등극했고 게다가 공격적인 투수 리딩으로 투수진을 안정화 시켰다.

복귀후에도 원태인을 상대로 6호 홈런을 떄리는 등 고작 36경기에 출전해 올 시즌 박세혁과 홈런 동률을 기록할 만큼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국가대표 경험을 쌓고 소속팀도 가을야구에 합류하는 등 올 시즌은 김형준 선수 커리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5. 포스트시즌[편집]



5.1. 와일드카드 결정전[편집]


찾았다, 양의지 후계자! 김형준, NC가 그토록 기다린 '대형 포수' 탄생 [배지헌의 브러시백\]
이번 AG 최고 수혜자 NC일지도? 김주원‧김형준의 맹활약은 PS에서도 계속된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 8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주전포수 박세혁의 손목이 안좋다고 하지만 포스트시즌 경험이 전무한 어린 선수를 주전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감독의 큰 결단이었다. 강인권 감독은 "(누굴 먼저 내보낼지) 분명히 고민했던 부분이다. 우리 팀의 지금 흐름을 봐서는 박세혁보다 김형준에게 안정감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일단 태너와의 호흡도 생각했다. 시즌 마지막에 오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 (김형준이) 먼저 스타팅 라인업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3회까지 잘 던지던 곽빈에게 4회말 서호철의 역전 만루홈런에 이은 백투백 홈런을 터트리며 분위기를 가져왔다. 0B2S로 불리한 카운트에서 곽빈의 3구째 137km/h 슬라이더를 완벽한 스윙으로 받아쳤다.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 높게 제구된 실투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잡아당겨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15m의 타구를 날려 보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사상 첫 연속 타자 홈런이자 포스트시즌 전체로는 27호 기록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김형준 H/L


엠스플 분석

8회말 주자 1,2루 11:6 리드 상황에서 홍건희의 137km/h 슬라이더를 통타하며 쓰리런 홈런을 쳐내며 14:6으로 가는 쐐기타점을 뽑아내 포스트시즌에서 처음으로 멀티홈런을 쳐냈다. 이 멀티홈런으로 김형준은 2017년 정진기, 2018년 이범호에 이어 역대 와일드카드 세 번째 멀티 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으며, 와일드카드 최연소 홈런[3] 신기록도 세웠다. 이날 기록은 홈런 포함 5타수 2홈런 4타점 2득점.

수비에서도 맹활약했다. 포수로 9이닝을 모두 책임지며 두산의 발야구를 봉쇄하면서 상대팀 주전 포수로 출전한 양의지 앞에서 자신이 '포스트 양의지'임을 보란 듯이 증명했다. 특히 4회초 2사 후 볼넷으로 나간 도루왕 정수빈이 김재호 타석 2구째에 시도한 도루를 잡아내는 장면은 두산 쪽으로 넘어갈 뻔한 경기 흐름을 바 중요한 플레이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형준은 "아시안게임에 다녀온 뒤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일단 여유가 많아졌다"며 "국가대항전을 뛰어보면서 큰 긴장감을 느껴봤기 때문에 오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크게 떨리거나 붕 뜨는 느낌이 없었다. 아시안게임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수훈선수 인터뷰


5.2. 준플레이오프[편집]


1차전 7번타자로 선발 출장, 4타수 무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2차전에도 무안타를 기록하던 중, 8회초 문승원을 상대로 달아나는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이로써 이번 시리즈 첫 안타가 홈런으로 이어졌고, 포스트시즌에서도 3안타가 모두 홈런이 되었다.

3차전에는 포수로서의 활약을 보이는 동시에 1회말과 5회말 볼넷 출루하면서 자신의 컨택 능력을 과시했으나, 2타수 무안타로 타격에서 아쉬움이 보였다.

5.3. 플레이오프[편집]


1차전, 8번 포수로 선발출전했고, 8회말까지 마스크를 쓰고 9회 타격까지만 한 뒤 대수비로 교체되었다. 경기 기록은 5타석 4타수 1사사구 무안타(4삼진) 1득점. 타격에서의 활약은 다음 경기에서 봐야할 듯.

2차전에도 8번 포수로 선발출전했으나 신민혁과의 배터리 호흡은 잘맞추면서도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게 되었다. 창원에서의 활약을 보는 것으로.

6. 관련 문서[편집]



[1] 현 시점까지 퓨처스리그 경기출장이 없는 것을 보면 재활군 연습경기에 출장중인 듯 하다.[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선발 기준(만 25세 이하 또는 입단 4년 차 이하 선수)에 부합하는 선수 중 김형준만큼 많은 1군 경험(159경기, 290타석)을 지닌 포수는 롯데 정보근(232경기, 464타석) 정도가 있었다. 그만큼 김형준은 어린 나이에도 많은 기회를 받았다.[3] 23세 11개월 17일. 정진기가 SK 시절이던 2017년 NC전에서 달성한 24세 11개월 25일 기록을 1년 가까이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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