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세 아오이/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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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2022년 이전
2.1. C56 파워 그라데이션 사건
2.2. 기상정령기 작가 비방 사건
2.4. 도쿄전력 옹호 사건
2.5. 익명의 트위터 유저와 스캔들
2.6. 저작권 위반 상업, 동인활동
2.7. 커미션 먹튀 및 사기 행위
2.8. 인신공격 폭언 사건
3. 2022년 이후
3.1. AI 그림 동인지 통신판매 사기 사건
3.2. 에로게 그래픽 역사 왜곡 및 성인물 업계 비하 사건
3.3. 시티헌터 공식 작가 사이버 불링 사건
3.4. AI 아동 포르노 제작 옹호 및 혐한 발언 사건
3.5. 악질 AI유저들의 사이버 불링 동조와 2차 가해
3.6. 미소녀 그림 업계 역사 왜곡 발언 사건
3.7. 섹시 타나카 씨 드라마 제작진 옹호 및 아시하라 히나코 2차 가해
3.8. 대규모 소송 및 코미케 참가비 사기 의혹
3.9. 스카지의 미소녀 일러스트 역사 왜곡 반론
3.10. 히구치 노리노부를 향한 2차 가해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만화가, 現 무직인 나나세 아오이가 저지른 온갖 논란과 사건 사고들을 정리한 하위 문서.


2. 2022년 이전[편집]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나나세 아오이의 사생활이 드러나지 않아 인품 및 언행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나나세의 언행 문제가 물위에 오르게 된 것은 기상정령기의 작가 시미즈 후미카를 비난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에 트위터를 개설한 후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이나 의견을 발견하면 폭언 및 저격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업계인들의 뒷담화과 피해자 행세를 하는 편향적인 불만표출을 시도하면서 팬들을 포함해 일본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1. C56 파워 그라데이션 사건[편집]


나무위키 코믹 마켓 사건사고 문단에도 기술된 코믹 마켓의 해프닝 중 하나로 파워 그라데이션은 나나세 아오이의 고정 서클명이다. 본 사건은 당시 나나세 아오이가 코미케의 여제라는 이명에 걸맞게 전성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는 사건이기도 했으나 그만큼 관리가 심각하게 안된 난장판으로 전락한 코미케 최대최악의 사건이기도 했다. 관리가 안된 이유는 나나세 본인도 물건을 판매할 때 포스터를 현장에서 말아 판매를 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상단에 언급된 줄 관리를 해주는 서클 인원이 나가 대응 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다. 그러나 나나세는 행사 종료 후 사건에 대해 자신을 찾아온 팬들에게 사과하는 말없이 블로그에 "코미케 역대 최대 행렬이였다" 고 눈치없이 자랑하는 발언을 하고 당시 판매한 마지막 동인지도 표지만 새로 그렸을 뿐 내용물은 러프 스케치와 과거 동인지 재록으로 때운 가격만 비싼 책이였으며 별도 공지 없이 동인샵에 위탁 판매를 하는 사고를 쳤었다. 그리고 마지막 참가 선언을 한 지 1년도 안되어 서클명을 바꾸고 다시 참가해 달리 보면 팬들을 기만했다고 볼 수 있었다.


2.2. 기상정령기 작가 비방 사건[편집]


참고 링크 - 나나세 아오이가 몰락하게 된 "기상정령기" 사건을 적은 트윗., 기상정령기 사건을 적은 아카이브, 기상정령기 사건 마토메 위키, 시미즈 후미카를 향한 비난과 음해에 대한 요약이 담겨진 5ch 나나세 아오이 왓치 스레 67판

나나세 아오이의 몰락의 단초가 된 사건이자 동인 시절 드러나지 않았던 나나세 아오이의 저열한 인품이 물위에 드러나게 된 사건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97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어 2005년에 연재 종료를 한 라이트 노벨기상정령기(気象精霊記)」는 라이트 노벨 작가 시미즈 후미카(清水文化)[1]의 데뷔작으로 삽화는 나나세 아오이가 담당했다. 그러나 편집부의 실수로 2부 연재 당시 나나세 아오이에게 연락이 닿지 못했고 당시 쁘띠몬 연재와 새로운 만화 연재를 결정해 스케쥴이 가득 찼던 나나세 아오이는 기상정령기 2부의 삽화를 그리는 의뢰를 거부했다. 그러나 편집부는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하기는 커녕 시미즈 후미카에게 연재 종료를 강요하거나 책임을 돌리게 하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했으며 편집부의 농간으로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한 시미즈 후미카는 직접 나나세 아오이에게 메일을 보내 삽화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여러가지로 종료했습니~다.

「기상정령 프랙티컬(気象精霊ぷらくてぃか)」의 문고 작업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아직 원고도 지정도 안와서 언제 발간될 지 미정이지만, 아마 4권 분량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드래곤 매거진 1월호의 프랙티컬 마지막화는 감동스러운 엔딩이었습니다.

4년 이상 걸린 스토리는 파이카라와 사이좋게 되는 것은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시미즈 후미카)의 의도와 다른 이야기의 엔딩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속사정 같은 이유로 스토리의 변명을 댄다면 작가 실격이니까요.

"중단" 이던 "막힘" 이던 "감동 엔딩" 이던 저는 귀중한 시간들을 쏟아 밀리 일행들의 일러스트를 그려왔으니까요.

「프랙티컬+」가 "스케쥴 재조정"[2]

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죠.

시미즈 후미카 선생님이 "자칭 용왕" 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원문 링크 : #


「쁘띠몬」제54화 입니다만 이번 스케쥴이 평소와 다르게 잡히지 않았던 것과 컨디션 불량 등으로 페이지가 대폭 감소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는 인기 시리즈이므로(소설 「기상정령기」시리즈 보다 초판부터 부수는 당연히 많아요~) 앞으로는 만화 쪽으로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기상정령기의 작가 시미즈 후미카씨로부터 매우 불쾌한 메일이 오기도 했습니다.(눈물) 인격자라고 생각했기에 매우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만화 마감 직전까지 기상정령기의 문고 작업에 대해 조속한 지시와 일러스트 작업을 빨리 하고 싶다는 의향을 설명하고 원고와 시간을 내주실 수 있도록 협상했습니다만, 편집부에서 연락받은 것은 "출판에 대해 작가님의 승낙을 받을 수 없다." 는 말.

아마 본인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요 확실히, 팬분들에게도 「프랙티컬」최종화를 제대로 발간해서 완결내주고 싶은데...

문고판 발행에 대해서는 가능한 작업을 할 것이므로 향후 결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 의뢰는 제 오리지널 작품의 팬의 점유율을 넘는 일이 없었습니다. 시미즈씨의 종합 점유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마 「드림마이스터(どりーむまいすたあ)」가 드래곤 매거진의 힘도, 나나세 아오이의 팬의 힘도 빌리지 않고 낸 단행본의 보통 숫자일테니까요. 중쇄가 되었는지는 궁금하네요.

원문 링크 : #


기상정령기 건은 뭐, 그 작가(시미즈 후미카)의 전(前) 드래곤 매거진 연재 작품도 중단이였던 것 같고, 기상정령기의 문고판 매출도 간신히 그 매출 이하의 숫자가 나올 때도 있었다(!) 라고 하니 결국 그렇게 작품적으로는 대단하지 않았던 것 같았네요.

하지만 제가 표지나 특집 때 a3 사이즈의 컬러 일러스트를 4~5장 그려나갔을 때 만큼은 항상 설문 조사에서 상위권이였던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단독 작품으로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원문 링크 : #


그러자 나나세 아오이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기상정령기에 대한 불만과 폭로를 하게 되었는데 내비치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시미즈 후미카에 대한 각종 비하와 모욕을 비롯해 기상정령기 시리즈의 판매량은 자신의 만화 쁘띠몬의 판매량보다 낮다, 시미즈 후미카의 소설은 자신의 그림 덕에 많이 팔렸다고 비방을 했다는 것. 후일 사건은 시미즈 후미카와 편집부의 화해. 나나세 아오이는 완전히 하차하는 식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시미즈 후미카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카도가와 그룹에 추방, 기상정령기는 다른 레이블에서도 발매되지 못한 채 연재 중단이 되고 말았다. 이후에 시미즈 후미카 본인이 아마존 Kindle을 통해 일러스트를 그려가며 리메이크하여 연재를 재개했다.

해당 사건에서 1차적으로 잘못한 것은 편집부지만 나나세 아오이 본인도 또다른 피해자인 시미즈 후미카를 비난하고 비록 직접 지필은 하지 않았을 지언정 자신이 담당한 작품을 깎아내리는 등 유치한 행동을 고수해 나나세는 안티들이 대폭 늘어났고 질보다 양 전략으로 무리하게 외주를 받아 지속적인 퀄리티 저하로 상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시미즈 후미카와 그녀의 팬들에게 책임전가를 하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시미즈 후미카와 기상정령기에 대한 비방 트윗 링크 더 나아가 시미즈 후미카를 비난하기 위해 가해자인 편집부는 잘못이 없다며 옹호, 기상정령기 캐릭터들로 에로 동인지를 그리고 "귀여운 딸들의 공양(可愛い娘達の供養)" 이라며 시미즈 후미카를 향한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에 2013년 경, 칸코레가 유행했을 과거에는 당시 칸코레를 플레이하던 시미즈 후미카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고는 그림을 그려줄테니 칸코레의 2차 소설을 써달라며 안하무인으로 대했고 시미즈 후미카가 반응을 안보이자 "안녕 블락♪" 이라며 차단을 했었다.

시미즈 후미카에 대한 원한과 피해자 행세질은 2024년 이후에도 접지 않고 있어 심심하면 지속적으로 시미즈 후미카를 기상정령기 작가라고 자칭하며 모욕과 저주를 일삼고 있다.


2.3. 트위터의 막말 어록[편집]


나나세 아오이는 2013년부터 트위터를 개설했다. 문제는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 시미즈 후미카를 비난한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건 트위터에서도 이미지가 실추될법한 온갖 엽기적인 실언과 폭언, 망언들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나나세의 트위터의 극히 일부를 번역한 어록이다. 출처는 나나세 아오이 왓치 스레의 명언집 스레드나나세 아오이의 범죄행각 예고를 정리한 스레드

일단 옛날 지인이 그림을 지적해왔을 때가 당시 말하자면 "그림은 어떻게 그리는거야? 해봐" "나는 못 그려"[3]

라고 말했더니 "그럼 펜도 못 들어?" 선을 그으려고 했는데 크게 웃더라고. 너의 그것(손가락)은 장식이구나. 라고 말하면서 하나씩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상상을 하면서 즐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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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본인의 폭언으로 구설수가 생기자)반응을 하지 않는 대신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개인을 특정하고 육체적인 피해를 줄 것을 생각하고 있어.ㅋ 제대로 된 방법으로 되갚을 생각은 없거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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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을 특정하는 방법이 있어? 직접 하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 본인이 아니라 주변의 가족도 좋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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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편집자가 담당이 되는 것은 당신(시미즈 후미카로 추정)의 실력에 맞추어서입니다. 그러니 그런 편집자가 걸린 것도 당신의 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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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많이 퇴화되었다는 여론을 보고) 2차 창작 동인지로 영리 목적이 아니라 상업지와 같은 수준으로 고집을 가진 경우 "잘 팔린다" 경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익을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영리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팔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퀄리티를 일부러 낮추었다. 요즘 2차 창작 동인지는 한 권을 만드는데에도 이틀이 걸리지 않게 되었다.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니까 행사 참가도 즐겁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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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이니까, 2차 창작이라는 이유로 수익이 나서는 안된다고 무상으로 시간을 계속 투자할 수 없다. 생활을 하는 돈은 그것에 얽메여있는 시기도 나가는 것이니까. 저작권이 있는 작품이더라도 열심히 하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코믹 마켓이라는 장소에서도 상업적 이익을 창출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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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창작으로 정당하게 저작권에 대한 이익 환원이 가능하다면 내용과 그림 둘다 심혈을 기울여 억 단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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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은 필요없어. 신자[4]

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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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도쿄전력 옹호 사건[편집]


자칭 불행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생기네요. 도쿄전력님에게 죄송합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든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던 스캔들을 일으킨 유명인이던 어떻게든 물어뜯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전력을 옹호한 나나세의 트윗. 현재는 삭제되었다.


2011년 일본은 토호쿠 대지진 사건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도쿄전력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아 사고를 크게 부풀려 일본 대중들에게 비판 및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나나세는 2016년 3월 경, 갑자기 도쿄전력을 옹호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불만만 가득 차 틈만 나면 마녀사냥을 시도하려는 사람들로 비유해 물의를 빚었으며 계속해서 도쿄전력을 비호하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결국 도쿄전력 옹호 관련 트윗들은 전부 삭제했으나 일부는 캡쳐본으로 남아있다.


2.5. 익명의 트위터 유저와 스캔들[편집]


당시 사건을 다룬 웹아카이브

2014년(당시 나나세의 연령은 만 47세), 나나세는 그림을 취미로 삼고 있는 20살의 전직 호스트라고 자칭하는 어느 트위터 유저에게 온갖 섹드립 맨트들이 담겨진 맨션을 보내면서 애정 수준의 관심을 표했다. 문제는 나나세는 동거 중인 남자친구(현재의 남편)가 있었다는 것이고 누가봐도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해당 트위터 유저도 나나세의 지나친 관심에 거부감을 느꼈는지 적당한 답변만 보내면서 거리를 두다가 트위터 활동을 중단하면서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2.6. 저작권 위반 상업, 동인활동[편집]


크라우딩 펀딩 횡령 사건 문서 아카이브
나코루루 사건 문서 아카이브
색지 옥션 경매 관련 트러블 문서 아카이브

앞서 언급됐던 색지 경매 판매에 맛을 들이면서 성인물 및 2차 창작 금지 작품이나 로리 캐릭터의 성인용 이미지를 그려 팔 생각을 하다가 삭제당하거나 경매에 낙찰되면 배송을 늦게 하는 등 여러 선을 넘는 해프닝이 발생했으며 크라우딩 펀딩을 이용한 일부 금액 횡령 의혹도 벌였다.

이러한 행태는 나나세 아오이의 전성기를 이끌어준 사무라이 스피리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SNK와의 협업도 당시에는 호재였으나 SNK의 도산으로 인해 긴밀히 작업할 기회는 얻지 못했고 계약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그린 이미지도 공식 일러스트로 비칠 수 있어졌기 때문에 홈페이지 및 픽시브에 기재한 사무라이 스피리츠 팬아트들은 삭제. 이후로도 허가 없이는 그리거나 판매하지 않기로 계약되어 영리적 동인 활동 한해서는 그릴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나나세는 SNK와 맻은 계약을 어기고 나코루루리무루루의 색지와 동인지를 멋대로 그려서 몰래 판매하려고 했으나 번번히 걸려 무산. 비영리적으로도, 개인적으로 그리는 것 자체도 영구적으로 금지당하며 공식 작가에서 강판되었다. 이렇게 보면 SNK가 나나세 아오이의 창작 활동을 방해하고 갑질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해당 계약은 나나세 아오이 본인도 동의한 계약이었고, 어떻게든 연락을 해서 개인적으로 그리는 것 한해서는 허가를 얻는다거나 계약의 재조정을 시도해본다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 지났으니 해도 관계자도 모를 것이라는 안이한 태도로 저질렀던 짓이었다 보니 좋게 보기는 힘들다. 이후 이에 대한 푸념을 트위터에 늘어놓았다가 SNK 관계자에게 항의를 받아 지웠다. 결국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가 오랜만에 SAMURAI SHODOWN으로 신작이 나왔고 나코루루도 더 킹 오브 파이터즈 XV에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나세 아오이는 SNK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어긴 만행때문에 나코루루 관련 일러스트를 그릴 기회는 오지 않았다. 거기에 과거 트위터에서는 자신이 나코루루의 원작자인 것마냥 행동하며 SNK를 비하하거나 사무라이 스피리츠 2 아수라 참마전 OVA의 만화판 계획이 나왔을 때 나나세 자신을 만화 작가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SNK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행동을 했었다.

이 선을 넘은 위법 상업활동은 동인활동도 해당되어 코미케때는 책 지참 필수 규정을 어기고 색지만 들고와 판매하거나 참가비를 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지인의 서클에 묻어가 부스 판매를 시도, 무료 배포한 색지, 동인지를 동인샵에 위탁해 판매하는 동인파락호짓을 했다.

또한 이 저작권 위반 행위는 본인이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던 아스카 120%도 마찬가지였다. 나나세는 자신을 하차시킨 패밀리 소프트에 대한 원망과 아스카 120%에 대한 남은 미련, 소유욕을 트위터에다가 하소연을 종종 했었는데 아스카 120%의 라인 스탬프를 만들어 출품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5] 이를 어찌해서 패밀리 소프트의 관계자에게 닿게 되었는데 관계자는 비영리 혹은 동인 활동이라는 전제, 저작권 표기를 해준다면 라인 스탬프 제작 및 배포를 허가해준다고 했으나 나나세는 이를 무시하고 혼다 아스카의 색지를 그려 고가에 판매를 했다.

결국 동인샵 위탁 규정을 지속적으로 어겨 나나세는 2023년 이후 토라노아나를 비롯해 멜론북스 등 유명한 동인샵들에 블랙리스트가 되어 위탁판매를 못 맡기게 되었다. 그러나 나나세는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이 잘못하거나 규정을 어긴 부분은 빼고 동인샵들을 가해자로 만들며 피해자 행세를 했다. 정황상 토라노아나는 AI 상품은 상품을 포함해 소개 페이지에도 반드시 AI임을 밝히도록 규정에 정했고, 멜론북스도 AI 규제 관련으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나나세는 자신의 AI 굿즈에서조차 AI임을 표기를 안한 채 위탁판매를 지속적으로 시도해 누적되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2.7. 커미션 먹튀 및 사기 행위[편집]


나나세 아오이는 2000년부터 커미션[6]을 진행했었는데 당시에도 팬들에게 온 커미션 의뢰를 미루거나 독촉이 와야 겨우 진행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다가 2022년 8월에 한 의뢰자의 커미션을 끝까지 안하면서 돈을 먹튀하려고 했던 게 의뢰자에게 폭로당하면서 다급히 환불하고 사과를 했다. 이외 어떤 팬이 일용직 면접에 떨어진 나나세를 위해 4만엔 가격의 만화 커미션을 넣었으나 이도 끝까지 진행을 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켰고 공론화를 당하자 나나세는 피해자들을 차단하는 추태를 보였다.


2.8. 인신공격 폭언 사건[편집]



3. 2022년 이후[편집]


2022년 9월 이후 나나세는 AI 유저로 전직하면서 AI 그림을 중심으로 사건사고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3.1. AI 그림 동인지 통신판매 사기 사건[편집]


상기 서술대로 나나세는 2022년 9월부터 AI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고 10월에 AI그림 일러스트 동인지를 만들어 동인 행사에 출품하고 남은 재고는 토라노아나에 위탁판매를 맡겼다. 문제는 토라노아나는 AI 그림을 사용한 굿즈는 반드시 AI임을 명시하도록 규정에 정하고 있는데 나나세는 책은 물론이고 상품 판매 페이지에도 AI 그림임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나세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동인지를 구매한 나나세의 팬은 자신의 트위터에 공론화를 했고 해당 트윗은 300개나 RT 되었다. 나나세는 구매자에게 자신은 AI 그림임을 명시했다고 말했지만 책의 페이지에 기록되지 않아 거짓말임이 들통났고 구매자에게 환불을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구매자는 소액이기 때문에 나나세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나 나나세는 집요하게 구매자에게 환불을 해주겠다며 구매자의 개인신상을 노출시키려고 했고 구매자가 계속 거절을 하자 자살 협박까지 하면서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개인신상 노출 요구 건으로 나나세의 트위터는 임시 정지를 당했고 동결이 해제되자 사실 관계를 왜곡하면서 구매자 및 자신을 지적한 사람들을 비난했다.


3.2. 에로게 그래픽 역사 왜곡 및 성인물 업계 비하 사건[편집]


당시 사건을 다룬 나나세 아오이 왓치 스레 132판
당시 사건을 아카이브한 트게더 링크

2023년 4월, 나나세 아오이는 AI 그림의 그림체 모방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자 과거 에로게 전성시대의 그림체는 자신의 그림체를 가져다 쓴 것이니 당시의 그림쟁이들은 전부 저작권 침해이며 자신한테 돈을 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물의를 빚었다.

당시 소비자들이 야겜을 잘 사기 때문에 당시는 야겜이 돈이 되었다, 당시 그림쟁이들이 야겜에서 그림을 그려야 먹고 살 수 있었던 건 이해하는데 왜 다들 내 그림체를 베꼈을까? 다들 내 그림을 본 적이 있을 테니 변명은 소용없다, 그 시절의 그림쟁이들은 전부 저작권침해였다, 당시 야겜이 몇만장씩 팔렸는데 나한테도 그 이익을 나눠줘야 했다, 애초에 야한 걸 그리는 사람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다, 같은 발언을 하였는데, 당연히 일본 웹상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정작 나나세 아오이도 "나가세 마유"라는 필명으로 에로게 원화를 담당했고 몰락했을때는 저예산 에로게에 참여, 에로 2차 창작 금지 작품까지 성인용 동인지를 내며 성인 업계에 몸을 담다시피 했다는 것인데 나나세의 성격을 봐서는 성인 업계에 자리를 잡는 것 까지 실패하자 자기합리화와 책임전가, 에로게 원화가 및 인기 에로 동인지 작가들을 질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업계인들, 특히 에로게 크리에이터들이 반발했는데, 스카지는 나나세 아오이가 엄청난 역사 위조 발언을 하고 있으며 20년 전 야겜 그림체 표절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나나세 아오이의 이름은 언급도 되지 않았었다고 반박했다. 지금까지 여러 크리에이터를 봤지만 이렇게까지 오만한 발언은 본 적이 없다고 비판하였으며 AI 논쟁에 야겜을 끌어들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당시 스카지가 작성한 트위터 타래

애초에 나나세 아오이가 동인계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것은 맞지만 디자인으로나 디테일에 대한 개성과 감각이 남달랐어서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그림체였으며 1999년 파워 그라데이션 사건으로 동인계에 은퇴하고 나서는 그녀의 그림체를 따라 그리는 동인작가들이 없었다. 오히려 에로게를 포함해 당시의 "모에체"의 주류, 혹은 원조격이 되는 그림은 나나세 아오이의 동세대인 미츠미 미사토로 그녀의 그림체를 트레이싱처럼 따라한 동인작가부터 상업용 에로게에서도 매우 왕성했다. 또 소위 에로게 미소녀 모에체의 원조격이라면 카넬리안 작가들이 더 주류였으며, 현재도 미츠미와 카넬리안은 전성기가 끝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결국 실력적으로 나나세 아오이를 트레이싱할만하다면 다른 작가들과 나란해서 굳이 나나세 아오이의 그림체와 동일시되지 않고, 실력이 낮은 사람이 쉽게 따라할만한 장르는 다른 작가들과 견주어 온전히 나나세 아오이의 그림체를 달고 나선 이가 많지 않았다. 종합하면 당시 그림과 장르 유행에 분명 큰 영향력이 있었다정도지, 나나세 아오이의 말대로라면 다른 작가들도 정상적인 활동으로 몰락했어야하는 것이 맞으며, 그림업계의 부정적인 특성을 감안해도 나나세 아오이 개인의 몰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준이 아니었다.

또 본인 SNS를 통해 '(내 그림체를 베낀) 사람들이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나대기 시작해서 내가 퇴물이 되었다. 출판사도 기업도 모르는 척 했다. 애초에 야한 걸 그렸던 사람은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다. 그림에 가치가 있으면 야한 걸 그리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 대체 2000년대 무렵은 뭐였을까. 그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았다면 나도 1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한다. 에로게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들로 인해 자신이 피해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추측되지만 전형적인 자신의 불행과 책임을 타인에게 책임전가하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발언에 그 과정에서 상관없거나 후배 격되는 크리에이터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어 동정은 커녕 동의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상기 서술한대로 나나세의 몰락은 본인의 책임도 상당하기 때문이며 예나 지금이나 나나세는 시미즈 후미카와 디지털 작업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 때문에, 그들이 중상모략해서, 아날로그로 그리는 자신의 파이를 빼앗아갔기 때문에 자신이 퇴물이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또한 그림체 표절 건은 일부 그림쟁이들, 특히 현역 창작자들도 많이 오해하는 부분으로 그림체는 저작권법의 보호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림체는 아이디어 표현의 영역이지 저작물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 단 AI그림은 다른 그림쟁이들이 그림을 배우는 과정에서 모방을 시작으로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원작자의 작품을 통째로 가져다쓰는 것이기에 저작권 분쟁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인데 나나세는 오독 내지는 잘못 이해하고 그림체 모방, 유사한 스타일까지 싸잡아 표절로 매도하며 비방을 가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거기에 나나세 본인도 코우지(弘司)[7]라는 기성 남성 일러스트레이터의 팬으로 동인 시절에는 그의 그림의 영향을 받다못해 코우지의 눈동자를 그리는 법을 노골적으로 카피해 1993년에 동인작가인 코우지의 아내 히즈키 이카루(桧月いかる)에게 저격을 당한 적이 있는 등[8] 나나세의 주장대로라면 본인도 그림체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해당 사건은 어느 한국 트위터 유저가 사건의 핵심과 요점, 당시 일본 업계인 및 대중들의 반발성 반응은 전부 잘라먹은 채 나나세 아오이가 그림체 표절을 주장한 것만 번역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편향적인 동정과 옹호론, 90년대 미소녀 그림체의 시조격이자 표절당해 몰락한 비운의 작가라는 오보가 퍼지는데 공헌했다.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해당 오보를 퍼뜨린 트윗은 삭제된 지 오래되었기에 캡쳐본으로만 접할 수 있다.


3.3. 시티헌터 공식 작가 사이버 불링 사건[편집]


당시 사건을 다룬 블로그 포스트
나나세 아오이의 트위터 타래

앞서 서술하듯 나나세 아오이는 AI그림에 비판적인 사람들, 특히 현역 일러스트레이터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프로 일러스트레이터가 AI그림 비판 발언을 하면 즉시 인용하며 사이버 불링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인 키라리야마 유메코(きらり山 優メ子)시티헌터2차 창작을 즐겨하고 있는 프로 동인 작가로 시티헌터는 2차 창작을 허용하고 있어 키라리야마는 공식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시티헌터 극장판의 홍보용 포스터를 그린 시티헌터 공식 작가로 활동. 시티헌터 드라마판에서도 키라리야마의 그림은 모범적인 팬아트로 인용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신・하지 않겠는가의 홍보용 포스터도 그렸다.

2023년 5월, 키라리야마는 자신의 트위터에 "좋아하는 그림쟁이들이 AI 피해를 입고 있다. (AI그림은) 그림 그리는 사람의 기술로 한정할 수 없다. 왜, 그릴 수 없어서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그림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있는 지 모르겠다" 며 AI그림의 악용 문제와 악질 AI 사용자들을 향한 비판을 하자 나나세는 키라리야마가 공식으로부터 의뢰받은 공식 2차 창작 작가라는 것을 알아보지 않고 키라리야마의 트윗을 인용. "공식의 일러스트를 프사로 사용하나 싶더니 공식의 그림체를 무단도용했다.", "고생하기 싫으니 다른 사람의 그림체를 도용해 인정을 받고 싶은거냐" 라며 비난을 가했다.

당연히 키라리야마의 팬들을 비롯해 시티헌터 팬들은 나나세의 폭언에 반발했고 키라리야마는 평범한 2차 창작 작가가 아닌 염연히 공식 2차 창작 작가라고 알려주었으나 나나세는 이들의 정정을 무시하며 "정말 공인받은 것이 맞냐, 공식이 맞다면 10만 팔로워도 안되는 작가니끼 보잘 것 없는 일이나 맡았을 것.", "(한 시티헌터 팬이 정보를 알려주자) 무비플러스는 뭐하는 회사냐? 그래도 공식 그림체를 카피한 것은 변함이 없다. 오리지널 작품으로 10만 팔로워를 모으면 된다." 라며 시티헌터 및 시티헌터의 영상물 관련 판권을 가진 무비플러스에 대한 비하와 폭언을 개시. 끝까지 키라리야마를 향한 인신공격은 변치 않았다. 결국 키라리야마는 해당 트윗을 지우고 나나세 아오이에게 사과를 하고 나나세도 사과를 하며 일단락이 되었지만 나나세는 예전부터 사건사고를 일으키면 반성 목적이 아닌 면피 목적의 사과를 하고 계속해서 사건사고를 터뜨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특히 AI 비판자가 SNS 팔로워 수가 많거나 유명한 작가라면 시비를 걸지 않는 등 누가 봐도 나나세의 잘못이 매우 커 동정은 커녕 악명만 쌓았다.

우습게도 나나세 아오이 본인도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2차 창작으로 유명해졌고 이 유명세를 바탕으로 사무라이 스피리츠의 공식작에 참여했으며 몰락기에는 작품에 대한 애정보다는 돈을 목적으로 메이저 작품의 2차 창작만을 그리는 동인파락호로 전락한 염연한 2차 창작 계열 동인작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키라리야마를 향한 비난은 제 얼굴에 침뱉기에 불과하며 추측상 나나세는 본인의 잘못으로 SNK에게 손절을 당해 공식 작가에서 강판당한 자신과 다르게 키라리야마는 공식에게 인정을 받아 취미로도, 프로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의 2차 창작을 계속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열등감과 시기심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건으로 나나세 아오이는 야스다 아키라로부터 언팔로우를 당하며[9] 현역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들도 나나세 아오이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3.4. AI 아동 포르노 제작 옹호 및 혐한 발언 사건[편집]


참고 트위터 링크

AI그림의 아동 포르노 제작이 논란이 되던 중, 실제 AI의 데이터 셋에서 실존 아동 포르노가 포함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한국에서도 이 실사 아동, 청소년의 사진을 이용해 AI로 360건의 실사풍 아동 포르노를 제작한 40대 남성이 잡혔다는 뉴스가 알려졌다. 이에 나나세는 자신과 같은 극단적인 AI 사용자와 해당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에로 사진을 만드는가? (이런 걸 수사할 시간에)쓸데없는 힘을 쓰지 마라", "AI 회사가 실제 아동들을 납치해서 학대하고 이미지를 찍은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문제냐?" 라며 순전히 AI를 옹호하기 위해 AI 아동 포르노 제작을 용인하는, 상단에 서술된 망언들이 나아보일 정도의 심각한 망언들을 했다.

이에 나나세와 대화를 하던 어느 AI사용자가 "애초에 한국은 아동 포르노 이전에 포르노 제작 자체가 불법이다." 라고 언급하자, 나나세는 "포르노 제작이 불법? 뭔가 강간 건수가 많은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라며 노골적으로 한국을 비하했다. 이 나나세의 망언을 보고 한국의 AI 관련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던 한국의 AI비판 트위터 유저는 나나세에게 한국을 비하한 건에 대한 사과와 포르노 제작 법안과 성범죄 건수의 연관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달라며 질문을 했지만 나나세는 여느 때처럼 질문을 회피하며 한국인의 국민성을 비하. 반AI파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해당 사건은 나나세가 핀트를 잘못 짚은 것을 넘어서서 얼마나 AI에 광신적인 믿음을 가졌는지, AI 옹호를 위해서라면 인종차별과 아동 포르노 묵인 등 심각한 반사회적인 폭언을 할 정도로 얼마나 추락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인데 한국의 아동 포르노 제작자가 잡힌 것은 단순히 로리쇼타물로 대표되는 가공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가공 포르노를 제작해서가 아니라 실존하는 아동, 청소년의 사진들을 모았고, 그 과정에서 AI 데이터셋에 실존 아동 포르노가 포함되었기에 실사 아동 포르노를 제작 및 배포를 했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특히 아동 포르노가 불법인 이유는 염연히 현실 모델이 존재하며 실존 피해자에 대한 피해가 심각해서로 유포를 통한 2차 피해도 그 중 하나이다.


3.5. 악질 AI유저들의 사이버 불링 동조와 2차 가해[편집]


선두에 설명하자면 하시마 페렐리(瑞島フェレリ)[10]는 일본의 악질 AI 사용자로 꼽히는 대표적인 AI 사용자로 AI 그림을 비판하는 프로 및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를 상대로 지독한 스토킹 및 사이버 불링을 하고 그 과정에서 해당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림을 AI로 배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과정에서 페렐리에게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일러스트레이터는 오기포테(荻pote), 히구치 노리노부(樋口紀信)가 있다.

그리고 나나세 아오이는 이 대표적인 악질 AI 유저들인 하시마 페렐리를 비롯해 MANA, 852話(하코니와), 사카키 마사무네와 친분 관계를 맻고 있다.

하시마 페렐리는 우라카타와 히구치 노리노부를 이어 AI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낸 일러스트레이터 우라카타(裏方)를 타겟으로 삼아 사이버 불링을 시도했는데 그 동안 사이버 불링을 시도한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들과 다르게 우라카타에 대한 사이버 불링은 매우 악질적이였다. 바로 우라카타의 그림을 AI로 도용한 뒤 본인이 우라카타인 척 사칭하며 우라카타를 사칭범으로 신고하는 것. 결국 우라카타는 페렐리의 사이버 불링을 포함해서 각종 악플러들의 살해협박, 다른 악플들을 견디지 못하고 무기한 활동중단을 선언했는데[11] 나나세 아오이는 이 사건을 보면서 페렐리와 함께 즐거워하고 페렐리가 만든 우라카타의 화풍을 도용한 AI그림을 인용, "원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기 때문에 즐길 수 있다, 이 무기는 무엇인가?" 라며 우라카타를 향한 2차 가해를 저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본 사건은 다른 사건사고들과 다르게 나나세가 직접 주도하지는 않았으나 지인이 같은 AI 사용자라는 이유로 반사회적인 만행에 동조해 간접적으로 사이버 불링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인간말종으로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2024년 2월 14일에는 AI 그림으로 오인받은 일러스트레이터 jizell자신이 작업한 타임랩스를 공개하면서 AI 그림이 아님을 인증했다. 그러나 이를 본 페렐리를 위시로 한 악질 AI 유저들은 우라카타에게 그랬던 것처럼 jizell를 상대로 사이버 불링을 했다. 나나세 아오이도 jizell의 사이버 불링에 동참해 AI로 jizell의 그림을 도용해서 출력. "질 높은 그림이란 이런거다", "화력에 비해 러프가 지저분하다" 라며 여느 때처럼 작가의 그림 실력을 폄하하는 악플을 남겼는데 이번 사건은 파장이 매우 커 나나세 아오이를 모르거나 만행을 모르는 팬이였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짐과 동시에 과거 악행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외 AI 비판 트위터 계정에서 현역 고등학생이 AI때문에 앞날이 캄캄하다고 한탄한 발언을 인용하며 "재능도 없는 주제에 AI탓하긴, 네 녀석(원문이 おの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라는 충격적인 폭언을 남기기도 했다.


3.6. 미소녀 그림 업계 역사 왜곡 발언 사건[편집]


일본의 트위터 유저가 저작권법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만일 아이디어와 표현 양식이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면 이세계물은 최초로 작성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저작권 침해로 간주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작품의 다양성은 사라진 채 재미없는 작품들만 넘쳐날 것이다. 여러분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까?(요점만 따와 작성했음을 알림.)" 라며 저작권법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기준과 처벌이 너무 강해서도 안된다며 양날의 검임을 설명하는 트윗을 작성했다. 그러자 나나세는 해당 유저의 트윗을 인용하면서 "이게 정말 통한다면 1993년부터 미소녀 계열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캐릭터 그림 일을 해온 제가 여자아이 그림 장르의 시조로 군림하게 되는데 여러분은 괜찮으신가요?" 라며 원 작성자의 트윗을 자신 입맛대로 왜곡, 나나세 본인이 미소녀/여성 캐릭터 계열 그림의 시조인 것 마냥 구는 오만하다 못해 과거 저지른 에로게 업계 역사 왜곡 사건과 동급의 발언을 했다. 당연하게도 일본 인터넷은 나나세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는데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1990년 이전부터 활동했던 만화가, 서브컬처 계열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모욕하다 못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발언이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에서 넓은 의미, 미소녀 일러스트의 시조로서 서브컬처 업계에도 영향을 미친 작가들은 나카하라 준이치(中原淳一)마츠모토 카츠지(松本かつぢ)가 꼽히고 있으며 나카하라 준이치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인형 제작자, 여성 잡지 창간자로서 다양한 패션을 입은 여성 캐릭터들을 그렸고, 마츠모토 카츠지는 남성 순정만화 작가이자 미소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두 작가 전부 1930년대에 활동을 시작해 일본 순정만화를 위시로 소녀향 업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이어서 일본 만화계의 아버지이자 신으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는 눈이 커다란 그림체를 만든 시조 격으로 자신의 순정만화 리본의 기사(1953년부터 연재 시작.)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따라서 모에는 기원 및 역사는 불분명하지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 사용되었으며 첫 작이 1985년도에 발매되어 미소녀 에로게의 시초 격으로 꼽히는 천사들의 오후 시리즈,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의 작가 타케우치 나오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히로인 린 민메이를 디자인한 미키모토 하루히코, 일본식 엘프의 시조로 불리는 로도스도 전기디드리트를 디자인한 유키 노부테루, 우루시하라 사토시 등 나나세가 활동을 시작한 93년 이전부터 미소녀를 그리는 작가들은 상당히 많았다. 거기에 2024년 3월 18일에 부고 소식이 알려진 일본의 원로 작가 이노마타 무츠미는 애니메이터로서 1979년에 활동을 시작, 미려한 그림체로 업계 전체, 미소녀 그림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점에서 나나세가 얼마나 몰지각하다 못해 오만한 망언을 했는 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3.7. 섹시 타나카 씨 드라마 제작진 옹호 및 아시하라 히나코 2차 가해[편집]


섹시 타나카 씨 드라마판 사건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해당 문서 내에 언급되어있으나 아시하라 히나코의 만화로 드라마화가 되자 지나친 원작파괴와 원작자의 요구를 무시해 드라마의 퀄리티가 낮아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아시하라 히나코는 불만을 표출하다 못해 직접 각본을 써야 했다. 그러나 드라마의 각본가 아이자와 토모코와 드라마 제작진은 자신들의 책임을 아시하라 히나코에게 떠넘기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실왜곡 발언을 해 드라마 제작진의 말만 들은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아 아사히라 히나코는 결국 자살을 하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일본 대중에서는 드라마 제작진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거세졌다.

대충 "내가 각본을 쓰겠다" 라고 나온거지 아무도 부탁을 안했어요.

그냥 자신이 납득이 안간다는 이유로 고친다면

그래서 드라마에 빠져 방송시간이 날아가버린다면 그 손해비용과 배우 분들의 스케쥴을 다시 조정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라고 생각하시나요?

뭐랄까 연재 중이라면 자신만이 그릴 수 밖에 없는 만화에 집중해 나중에 그 드라마는 말이야, 난 인정안해, 라고 푸념을 해두면 됐지,

라고 돌아가신 분(아시하라 히나코)에 대해서도 화가 나버리는거야. 죄송합니다.

디 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야? 경제도, 작품도

원문 트윗 링크 : #


아마 많이 힘들었을거예요.

드라마 제작진들 잠도 못 잤을테고

수익은 떨어지고

스폰서는 투자를 한 만큼의 결과가....

뭐 어떻게든 해도 전해지지 않아서 나쁘지는 않아요.

달리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손을 대지 않는 만화가가 많기 때문에

"이례적"이라고 각본가님은 말씀을 하셨을테고

저도 이런 속사정이라면 화가 좀 납니다.

그림 외주로 리테이크로 몇 번이나 요구당해서 마지막에는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말하면 겨우겨우 연락을 해서

원본 트윗 출처 : #


그러나 나나세 아오이는 정황상 과거 원작이 있는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편집부와 원작자의 리테이크 요구에 대한 불만표출 및 아시하라 히나코를 시미즈 후미카에 대입하고 아이자와 토모코와 드라마 제작진을 자신에게 이입해 지인인 악질 AI 유저와 대화 중 아이자와 토모코와 드라마 제작진을 갑질의 피해자로 보고 옹호, 은연 중에 아사히라 히나코를 갑질하는 원작자,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만화가로 비유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으며 당연히 분노한 아시하라 히나코의 팬들과 만화 팬들에게 거센 반발을 받았다. 나나세는 과거 저지른 도쿄전력 옹호 건도 그렇고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제대로 교차검증을 하지 않거나 비판 및 비난받는 개인과 단체를 자신에게 이입하면서 생각없이 마구 내뱉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해당 건도 비슷하게 저지른 것이다.


3.8. 대규모 소송 및 코미케 참가비 사기 의혹[편집]


나나세 아오이는 2024년 3월 3일 여느 때처럼 선샤인 크리에이션에 빠지고[12] 여름 코미케에 참가할 수 없다는 트윗을 작성했다. 그 이유는 참가비가 없는데 수중에 있는 돈을 소송에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추측상 자신을 비판하거나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고발하는 5ch의 왓치 스레의 거주자들과 트위터 유저들을 상대로 합의금 민사 소송을 걸기 위해 옥션에서 번 돈들을 전부 사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1페이스에 하루 참가 기준의 8천엔을 낼 돈 조차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한 극성 팬의 도움으로 나나세는 참가비를 얻게 되었지만 코미케 신청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이번 여름 코미케는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얻은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3.9. 스카지의 미소녀 일러스트 역사 왜곡 반론[편집]


에로게 크리에이터이자 에로게 업계에서 거물급인 스카지는 악질 AI 유저 세력에서 "디지털 일러스트가 대두했을 때 아날로그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디지털 일러스트는 비겁하다." 라고 말했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논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라는 AI를 어떻게든 정당화하기 위해 상업 일러스트의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발언이 나오자 2024년 3월 16일 기준으로 장문의 반박글을 작성했다.

스카지의 트윗은 90년대 당시에는 PC 성능을 비롯해 디지털 툴도 발전하지 못해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선화는 아날로그로 작업한 후 스캔을 떠 채색은 디지털로 진행하거나 태피스트리 같은 커다란 그림을 사용하는 출력물은 큰 종이에다가 그린 뒤 분할 스캔을 하는 형태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병행하는 것이 당연했다.[13] 본격적으로 아날로그를 아예 그릴 줄 모르는 디지털 일러스트레이터가 등장한 시기는 일본에서 트위터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클립 스튜디오가 등장하게 된 2010년대로 역사를 돌이켜보면 제일 최근의 일이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이 되는 과정에서 업계 종사자들은 불만은 커녕 반발도 없었다. 따라서 디지털 일러스트를 비겁하다고 욕하는 아날로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다는 것과 서로 간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 디지털과 아날로그 우열론을 가리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요약이 가능하다. 이에 인용 및 RT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특히 90년대, 200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업계인 및 동인계 사람들도 "당시 나온 디지털 툴은 많이 부족해서 기능 문제로 불만을 표했을지는 몰라도 디지털 툴이 비겁하다는 등 아날로그를 추켜세우며 비난한 의견들은 없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스카지는 반론 저격한 악질 AI 유저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지만 "미소녀 디지털 일러스트의 역사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AI 논쟁에서 유리한 지점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발악을 하고 있다.", "디지털을 비겁하다고 욕하는 아날로그 일러스트레이터" 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대부분 일본 유저들은 나나세 아오이를 저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서에도 적힌 것처럼 나나세 아오이는 AI 유저로 전직하면서 디지털 일러스트를 매일같이 비난했고,[14] 펜을 꺾었으면서 과거의 영광에 심취해 자신은 아날로그 일러스트레이터다. 아날로그는 성취감이 있는데 디지털은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디지털은 복제가 가능해서 아날로그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다 같은 아날로그 우월론, 디지털 폄하 망언들을 일삼은데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연구와 공부를 해서 인정된 자들만 일러스트레이터를 자칭할 수 있었는데 디지털이 등장하자 디지털의 기능을 이용하면서 편하게 가는 주제에 아무나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를 자처하고 있어 수가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일러스트의 가치가 떨어졌고 아날로그 작가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남 탓질 역사 왜곡 망언, AI를 어떻게든 정당화, 옹호를 하기 위해서 무논리적이고 억지스러운 비유를 하는 패악질을 저지른 것은 유명하다.거기에 상기 서술된 사건사고대로 자신을 어떻게든 원조격이라고 추켜세우기 위해 미소녀 그림 업계 역사 왜곡 사건을 두 번이나 일으켰기 때문이다.

스카지의 반박 트윗만 아니라 디지털의 등장으로 아날로그 작가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나나세의 주장이 얼마나 말이 안되냐면 지금도 일부러 아날로그로 그리는 작가들이 많이 있으며 개중 아날로그 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녹화해 올리는 작가들은 많은 조회수와 추천을 받으며 상업 쪽에서도 별 문제없이 활동을 하고 있다.


3.10. 히구치 노리노부를 향한 2차 가해[편집]


상단에 언급된 히구치 노리노부(樋口紀信)는 영 점프에서 연재를 하고 있는 만화가로 하시마 페렐리로부터 AI 무단 학습 피해 및 사이버 불링 피해를 당하자 만화계의 거물 작가인 모리카와 조지(더 파이팅)와 시마모토 카즈히코(아니메점장 外)에게 관련 문제에 대해 상담을 받았고 더 나아가 2차 창작 금지까지 선언하며 AI그림에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해 일본 트위터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2차 창작을 금지하게 된 이유는 페렐리가 만든 무단학습 데이터 때문에, 더 나아가 작가 본인이 AI 학습과 무단 전재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렐리 자신이 원작자인 것 마냥 "학습에 사용된 이미지는 모두 자체 제작으로 작가의 저작물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사용해도 괜찮다" 라는 망언을 내뱉는 바람에 2차 창작물에도 AI로 만들어진 해적판이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지하게 된 것이다.

최근 일본도 EU의 AI 규제 법안을 따라가면서 자율 규제에서 정부 주도 규제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고 히구치 노리노부 사건은 대형 거물 작가들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유명한 악질 AI 유저들은 입을 싹 닫고 조용히 있거나 고소당할 여지를 주지 않도록 서로 눈치를 주고 있었는데 나나세 아오이는 평소처럼 물불안가리고 끼어들어 히구치 노리노부를 상대로 온갖 망언을 내뱉기 시작했다.

"학습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전부 자작"(이라고 페렐리가 말했는데) 그렇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인가??

「学習に使用した画像はすべて自作」そんなに描ける人なんか??


이런거 좀 했다고 페렐리가 당하는건가! 왜 이렇게 괴롭히는건데!?

これやってたのフェレリやったんか!なんでこうやってわざわざ嫌がらせするん!?


뭐랄까, 거물 작가님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그 만큼의 답례를 뭘로 했을까?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っていうか、大御所の大先生の貴重なお時間取らしてその分のお返しがなにでできるんか?考えただけで恐ろしいわ、、、


더 나아가 모리카와 조지의 트윗을 자기 입맛대로 인용한 뒤 히구치 노리노부를 자신의 사심을 위해 원로 작가에게 피해끼치는 작가로 왜곡하는 망발까지 일삼았다. 모리카와 조지의 계정을 보면 알다시피 현재 자신은 히구치 작가를 포함한 AI 무단 학습 및 사이버 불링 피해를 입은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기엔 힘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괸련 법안을 만드는 정치인에게 문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한 것에 가까우며 처음에 AI에 기대하는 입장이였지만 저작권 침해 및 타인을 괴롭히는 도구로 쓰일 줄은 몰랐다며 현 AI 및 악질 AI 사용자들에 대한 비판을 남겼다. 즉 달리 보면 나나세 아오이도 포함해서 비판했음을 알 수 있다.


[1] 주로 과학 판타지 계열을 쓰며 대표작은 제비뽑기 왕자님. 해당 소설은 한국에도 정식 출판되었다.[2] 원문은 "仕切り直し". 사전에는 "처음부터 다시 교섭" 으로 기록되어있다.[3] 원문이 오레(俺)로 보아 해당 지인은 남성으로 추측.[4] 일본에서 신자는 맹목적인 악성/극성 팬을 가리키는 멸칭으로 쉽게 말해서 맹목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는 빠들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5] 단 아스카 120% 건은 나나세도 피해자 입장이라 볼 수 있다. 나나세는 2019년도에 아스카 120%에서 강판된 이유를 트위터에 밝혔는데 스스로 나간 것이 아니라 향후 애니메이션화 등으로 IP나 회사가 커진다면 계약서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패밀리 소프트에게 제안을 했다가 연락도 없이 일러스트 담당자가 바뀐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스카 120%의 지적재산권 또한 패밀리 소프트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저작권이 없는 나나세가 마음대로 캐릭터들을 그릴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6] 당시에는 커미션 개념이 없어 개인 의뢰로 표기된 마토메 사이트, 블로그가 존재. 그러나 나무위키 문서는 편의상 커미션으로 표기.[7] 연령은 불명이나 나나세의 선배격이라는 점에서는 80년대 이전부터 활동한 중년 세대일 가능성이 높으며 지금도 수채화로 계속 작업하는 아날로그 일러스트레이터이다.[8] 나나세는 히즈키 이카루에게 앙심이 있는 것인지 코우지의 트위터에 히즈키 이카루의 근황을 알고 싶다는 질문을 했다가코우지로부터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거기에 "살아있을까?" 라며 히즈키 이카루를 까내리는 폭언을 한 것은 덤. 참고로 히즈키 이카루는 필명을 나유타(Nayuta)로 바꾸고 버튜버로 활동하고 있다.[9] 이후 나나세 아오이가 야스다 아키라에게 사과를 해서 다시 맞팔로우 상태가 되었지만 나나세 아오이가 지속적으로 AI 옹호를 위해 그림쟁이들을 향한 증오 발언을 일삼자 야스다 아키라는 나나세 아오이를 다시 언팔로우를 했고 키라리야마를 향한 응원을 남기며 본격적으로 나나세 아오이를 적대하기 시작했다. 나나세 아오이는 일본 상업 일러스트 업계에서 거물인 야스다 아키라가 자신을 적대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먹었는지 야스다 아키라에 대한 시기심과 저격 발언을 했었다.[10] 하술하듯 우라카타라는 작가를 사칭하여 사이버불링을 하기 위해 트위터의 프로필 사진과 헤더를 원작자의 계정에서 따와 적용한 것이므로 사칭에 주의할 것.[11] 현재 우라카타는 많이 회복되어 다시 복귀, 페렐리가 사칭한 메일들을 공개하고 피해 사실을 알리며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12] 참고로 당시 선샤인 크리에이션의 나나세의 부스 옆에는 사고 방지를 위한 스페이스가 설치되어있었는데 주최 측도 나나세 아오이를 요주의 인물로 볼 정도로 악명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 스카지가 미소녀 게임 업계에 국한해서 그렇지 80, 90년대 게임 업계는 컴퓨터 그래픽이 발전하지 못해 표현에서 한계가 많았다보니 박스아트와 포스터 등 홍보용 일러스트는 아날로그로 작업하는 것이 대세였다. 특히 마커가 안나왔을 시기에는 수채화로 작업했었다.[14] 출처 : 나나세 아오이의 디지털 일러레와 디지털 그림 모욕 트윗1, 나나세 아오이의 디지털 일러레와 디지털 그림 모욕 트윗2, 나나세 아오이의 디지털 일러레와 디지털 그림 모욕 트윗3, 해당 트윗들은 '극히 일부만 링크를 건 것으로' 트위터 고급 서치 기능으로 디지털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지털 그림, 아날로그를 키워드에 넣으면 나나세가 얼마나 매일같이 디지털 그림을 비난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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