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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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조 7대 황제
代宗 靈皇帝 | 대종 영황제

묘호
대종(代宗)
시호
기천정지극문정무령황제
(起天挺地克文定武靈皇帝)
연호
건통(乾統, 1593년 ~ 1623년)

막(Mạc / 莫)

낀꿍(Kính Cung / 敬恭 / 경공)
생몰 기간
? ~ 1625년
재위 기간
1593년 ~ 1621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막낀꿍(Mạc Kính Cung / 莫敬恭 / 막경공, ? ~ 1625년)은 대월 막 왕조의 제7대 황제(재위: 1593년 ~ 1621년)로 막낀디엔(막경전)의 아들이었다.


2. 생애[편집]


즉위 이전에 돈후왕(敦厚王)에 봉해졌다.

1593년, 서국공(西國公) 응우옌낀(阮敬)의 아들 막응옥리엔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고, 문란주(文蘭州)에 근거지를 두며 연호를 건통(乾統)으로 개원했다. 해양(海陽), 경북(京北) 각처에서 막 왕조를 지지하는 세력이 막낀꿍이 즉위한 것을 알자 분분히 부중을 이끌고 귀부해 왔다. 중흥 후 레 왕조응우옌호앙이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자 화공을 써서 이를 대파하고 해양의 장왕(壯王) 막낀쯔엉(莫敬章, 막경장)의 부를 점거했다. 이로써 해양과 산남(山南) 일대가 모두 평정되었다. 이듬해 막응옥리엔이 대종 막낀꿍을 끼고 안박현(安博縣)에 근거지를 정했으나 후 레군에게 패배했다. 막응옥리엔, 대종 막낀꿍은 사명부(思明府)로 달아나 명나라에 칭신했다. 후 레 왕조의 공세하에 막 왕조의 장군들은 어지러워져 반란을 일으키고, 항복했다. 대종 막낀꿍과 막응옥리엔은 명나라의 용주(龍州)로 도망쳤고, 병사를 내어 양산(諒山) 일대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1600년, 영조 막머우헙의 서모(庶母) 부이(裴)씨가 탕롱에서 국모(國母)를 자칭하며 막 왕조의 지지자들에게 병사를 일으킬 것을 호소하고 동시에 대종 막낀꿍을 영접하여 귀국하도록 했다. 막낀꿍은 부를 거느리고 탕롱 귀환을 시도했으나 후 레 왕조의 찐뚱의 공격을 받아 패배했다. 막군이 금성현(金城縣)에 이르렀으나 오래지 않아 고평(高平)으로 물러났다.

1618년, 찐뚱이 군사를 거느리고 막 왕조를 쳤고, 태원(太原)을 공격했다.

1621년, 대종 막낀꿍이 그의 4촌 손자인 막낀코안에게 양위했다. 막낀코안은 대자현(大慈縣)에 근거를 두고 지켰으며, 막낀꿍을 태상황으로 높였다.

1625년, 후 레 왕조의 찐짱이 찐끼에우(鄭橋)를 파견하여 고평을 공격했고, 태상황 막낀꿍을 사로잡아 청화(淸化)로 압송해 참수했다. 황제 막낀코안은 명나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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