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누스(라벤나 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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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티키오스




이름
로마누스
(Romanus)
출생
미상
사망
596년
직위
라벤나 총독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라벤나 총독부의 3대 총독.


2. 생애[편집]


고트족 계열 귀족 아가스테스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민병대 지휘관 신분으로서 573년에서 576년 사이에 코카서스에서 수에니 족을 무찌르고 족장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았다. 579년 마우리키우스 장군의 지휘에 따라 티그리스 강 너머의 사산 왕조 영토를 황폐화시켰다. 589년 알바니아 지역의 아라스 강에서 페르시아의 장군 바흐람 추빈과 맞붙어 승리했다. 호르미즈드 4세는 이 패배를 빌미삼아 바흐람 추빈을 모욕하였고[1], 바흐람 추빈은 반란을 일으켜 호르미즈드 4세를 폐위시키고 자기가 샤한샤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산 왕조는 내란에 휩싸였고, 동로마 제국의 동방 전선은 안정되었다.

589년 라벤나 총독 스마라그두스는 아퀼레이아 대주교 세베리누스와 추종자들이 정교회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한 탄압을 가한 일로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책망을 받고 해임되었다. 그후 로마누스가 590년에 새 라벤나 총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프랑크 왕 힐데베르트 2세에게 전리품을 전부 줄 테니 랑고바르드 왕국을 협공하자고 제안했고, 힐데베르트 2세는 이를 받아들여 프랑크군을 파견했다. 프랑크군은 3개 대열로 이탈리아에 진입하여 랑고바르드 왕 아우타리가 파비아에 갇히게 하였다. 한편 그는 동로마군을 이끌고 모데나, 알티나, 만토바를 공략하였고, 파비아로 가서 프랑크군과 합류하려 했다. 그런데 프랑크군은 로마누스와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고 아우타리와 10개월간 휴전을 맺은 뒤 이탈리아에서 빠르게 철수했다.

하지만 로마누스는 개의치 않고 작전을 이어갔다. 그는 랑고바르드 공국인 파르마, 레지오, 피아첸차 등의 복종을 받아내고 공작의 자녀들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인질로 보냈다. 이후 라벤나로 철수한 후 베네치아로 가서 충성 맹세를 받아냈으며, 별동대를 이스트리아로 파견해 여러 마을을 탈환하였다. 또한 프랑크 왕국에 사절을 보내 제멋대로 후퇴한 것에 항의하며 다시 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힐데베르트 2세는 응하지 않았고, 랑고바르드 왕국은 591년 아길루프를 새 국왕으로 세운 뒤 반격하기 시작했다.아길루프는 로마와 라벤나를 연결하는 움브리아 회랑의 여러 도시를 공략한 뒤 로마 시를 포위했다. 한편 베네벤토 공국의 랑고바르드군은 나폴리를 포위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로마누스에게 구원을 청했지만, 그는 섣불리 로마나 나폴리를 구하러 갔다간 라벤나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592년 그레고리오 1세가 아길루프와 협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누스는 협상이 이뤄지게 내버려뒀다간 움브리아 회랑이 랑고바르드 왕국에게 넘어갈 것이라 여기고 이를 막기로 했다. 그는 그해 7월 라벤나에서 출진하여 해로를 따라 로마로 이동한 뒤, 움브리아 회랑의 도시들을 재정복했다. 이로 인해 협상이 깨지자, 아길루프는 분노하여 로마 시를 포위하였고, 로마누스는 이번에도 구원해주지 않았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교황청의 재산을 털어서 랑고바르드군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고, 아길루프는 이에 만족하여 물러갔다. 그레고리오 1세는 평화를 갈망하여 로마누스에게 랑고바르드 왕국과 휴전을 맺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로마누스는 절대로 협상에 응하지 말라는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응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과 교황청 간의 사이는 멀어졌다. 로마노스는 596년경 사망했고, 칼리니쿠스가 라벤나 신임 총독으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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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벌의 여성용 옷을 보내서 입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