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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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12년 평안남도생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에서 발표한 부고를 보면 대략 1915년 생으로 보인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해방 이전에 고생하다가 해방 이후에 김일성 저택에서 목수로 일하게 되면서 김일성의 눈에 들어서 당간부로 사업하게 되었다. 불분명한 시점에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김정일의 후계자 내정 이전부터 그의 측근이 되어 비자금 조성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4월 5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3년에 재정경리부장에 이르렀다. 그런데 1983년 10월 9일에 조직지도부 부부장 리화영과 함께 김정일의 측근파티에 참석했다가 귀가하던 중 음주운전 때문에 교통사고가 나서 같이 타고 있던 리화영은 죽어버렸고 로명근 본인도 죽다 겨우 살아나서 몇년간 치료받으면서 요양만 했다고 한다.

이후 1986년 창광사업총국 고문으로 지내는 것이 확인되더니 1991년 5월, 허담 장의위원, 1992년 3월, 현무광 장의위원, 1992년 9월, 서철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93년 7월, 재정경리부장에 복귀하였다고 한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후 은퇴한 것인지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때는 출마하지 않았으며 2007년 3월 22일 9시에 92세를 일기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로명근동지는 당과 수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온 충직한 혁명전사이다. (...) 로명근동지는 우리당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김정일이 영전에 화환을 보내주었으며, 아마도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 참고문헌[편집]


  •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간부정책을 중심으로(서울: 선인, 2007).
  • (最新)北韓人名辭典(서울: 北韓硏究所, 1996).
  • 통일부 정보분석국, 북한의 주요 인물 자료집 2000(서울: 통일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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