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드 플로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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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로베르 드 플로크스
Robert de Flocques
생몰년도
1410년경 ~ 1461년 12월 7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 피카르디
사망지
프랑스 왕국 에브뢰
아내
자클린 크레스핀
자녀
기욤, 자크, 잔
직위
에브뢰 대장, 칙령군 대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자유 용병대장이었다가 샤를 7세에게 고용되어 잉글랜드군을 상대로 대적했다.


2. 생애[편집]


프랑스 왕국 피카르디의 하급 귀족으로, 자유 용병대를 이끌고 부르고뉴, 플란데런, 로렌, 노르망디 등지에서 약탈 행위를 일삼았다. 1440년경,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는 샤를 7세에게 그가 부르고뉴에서 심각한 약탈을 자행하고 주민들을 살상했으니 처벌해달라고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하지만 샤를 7세는 그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자기 쪽으로 회유했다.

1441년 9월 15일, 로베르는 소규모 용병대를 이끌고 노르망디와 일드프랑스의 국경도시인 에브뢰를 급습해 함락시켰다. 이로 인해 퐁투아즈 공방전을 치르고 있던 잉글랜드군의 시선이 분산되었고, 퐁투아즈에 대한 그들의 지원은 약해졌다. 그 결과, 프랑스군은 9월 19일에 석달간 버티던 퐁투아즈를 공략하고 일드프랑스 전역에서 잉글랜드군을 몰아냈다. 샤를 7세는 즉시 그를 에브뢰 대장으로 선임했으며, 1444년에 그가 그동안 지은 범죄를 사면했다.

1445년 칙령군 대장으로 선임되어 용병 생활을 청산했고, 1449년 프랑스군의 노르망디 공략을 위한 공세에 참여했으며, 1450년 포미니 전투에 참가해 아군의 결정적인 승리에 기여했다. 1461년 에브뢰에서 사망했다. 그는 생전에 뒤 베크크레스팽 남작이자 노르망디 세습 원수인 기욤 10세 크레스핀의 딸인 자클린과 결혼해 두 아들 기욤, 자크와 딸 잔을 낳았다. 기욤은 에브로의 주교가 되었고, 자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브뢰 대장이 되었으며, 잔은 질 드 루브로이 드 생시몽의 부인이 되었다. 잔과 질 드 루브로이 드 생시몽의 후손이 생시몽주의의 창시자인 생 시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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