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메멘토 모리)

우리 집안은 몰락 직전의 귀족이었다.
대대로 이어지는 기사 집안에서 여자아이로 태어
난 나도 사내아이와 마찬가지로 엄하게 자랐다.

양자를 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처지와
일찍이 병사한 어머니를 깊이 사랑한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나를 키우셨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혹독
한 훈련을 견뎌냈고, 마침내 기사가 되었다.
'끝까지 긍지 높게 있어라. 평생을 바쳐야 할 주군
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그것이야말로 기사의 명
예'
그렇게 말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첫 번째 주군은 중급 귀족의 주인님이었다.

탐욕스럽고 거만한 남자였지만, 기사로 임명된 이
상 내 소임을 다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악정을 견딜 수 없게 된 시민들에 의
한 폭동으로 그는 죽고 말았다.

따님을 피난시키라는 명을 받고 그의 곁을 떠나
있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한심하다.
나는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다음 주군은 상급 귀족의 도련님이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어....
그렇게 다짐하고 나는 그를 위해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또 지키지 못했고....
그는 죽어 버렸다.

두 번째 주군... 상속 싸움의 한복판에 있던 그는
목숨이 노려지고 있었다.

나 말고도 몇몇 기사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 암살자가 섞여 있어서...
나 이외의 호위는 모두 살해당하고 말았다.

나는 주군을 지키기 위해
단신으로 적에게 돌진했다.

서로 맞찔러서라도 막고 말겠어!
기사의 숙원을 이룰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상관없어...!
주군만 무사하다면 그걸로....

하지만 결국 나는 또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지킴을 받았다.
적과 함께 죽기로 각오한 나를 살리기 위해
그는 시퍼런 칼날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어째서지...?
왜 내가 지킴을 받는 거야...?
기사는 주군의 수호자여야 하는데...
나는 그 소임을 아무것도 완수하지 못하고 있어!

오히려 나와 엮인 자는 모두...
죽고 만다.

그 뒤로 나는 여러 주군을 섬겼다.
여기서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위험한 임무도 많이 맡았다.

그러나 내가 섬기면 그 주군에게 죽음이 찾아온
다.
지키지 못하고 죽고 만다....
어느덧 나는 죽음의 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어울리는 단어라 생각했다.
첫 번째 주군도, 그 다음 주군도
나는 죽게 했으니까.

긍지 높은 기사로 있는 것이 나의 목표였지만,
이대로 계속 기사로 있으면 또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 뿐
그렇다면 차라리 기사로 있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 고독하게 살자....

그렇게 결심할 무렵,
어린 아가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말했다. '저의 기사가 되어주세요.'라고.

나는 죽음을 불러들인다...
분명 널 불행하게 만들 거야.
그렇게 한 번은 거절했지만....

'당신은 강하기 때문에 죽지 않을 뿐이야.
실제로 나는 살아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겨우 기억해 냈다.

이 아이는 그때의... 첫 번째 주군의 따님.
그렇구나... 나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있었어.

항상 구하지 못한 숫자만 세고 다른 것에는
일절 눈을 돌리지 않았어....
구한 숫자도 분명 있었을 텐데.

만약 허락된다면...
나는 다시 한번 기사로서 맹세하겠어.
이 아이의 미래만은 지켜내겠다고.

그로부터 수년을 함께 보내던 어느 날...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나는 그녀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 마중 나온
마차까지 호위했다.

그녀가 마차에 올라탄 그 찰나...
마차가 폭발했다.
나뭇조각이, 불똥이, 뺨을 스쳤다.

나는 곧바로 불길 속에 팔을 집어넣었다.
구해야 해. 저 아이를....
나를 믿어준 저 마음씨 착한 소녀를...!

그러나 불길은 멈추지 않고 모든 것을 삼켜갔다.
무엇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데려가지마...!
죽음의 운명이 내 곁에 있다면
날 데려가라!
내가 몇 번이고 죽어주겠어!
그러니 그녀만은...!

팔이 타서 떨어질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마음은 반대로 식어 가고...

불길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품 안의 검은
덩어리에 매달리듯 꽉 껴안았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폭발은 나를 노린것이었
다.
나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마차에 농간을 부렸다.
그 아이는 말려들었을 뿐이었어!
나와 엮이는 바람에 그 아이는...
죽은 거야!
줄곧... 기사의 긍지만을 가슴에 품고 계속 걸어왔
지만... 지키기는커녕 빼앗기만 한다.

그때였다... 강한 빛이 어둠을 찢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을 잡을 자격이 없어.
나와 엮이면 이 손의 주인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
작은 손이 내 등을 민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이 살아감으로써 이어지는 미래가 있어.
...그걸 잊지 말아줘.'
그렇게 속삭이며,

아아, 그렇구나....
이것은 그녀가 나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
그렇다면 따라야지.

나는... 기사니까.
나는 아직 죽을 수 없어.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모두가 이어준 이 목숨으로
모두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이 검을 바치겠어. 기사의,
『내』 긍지를 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