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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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매일경제신문사
株式會社 每日經濟新聞社
Maeil Business Newspaper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설립
1965년 8월 18일
창간
1966년 3월 24일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190 (필동1가)[2]
대표자
서양원, 장대환, 장승준
임원진
대표이사 회장 장대환
대표이사 부회장 장승준
대표이사 전무 서양원
주필 · 부사장 손현덕
업종명
신문발행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임직원
795명 (2019년 12월)
매출액
2315억 5883만 원 (2019년 연간)
영업이익
103억 7507만 원 (2019년 연간)
순이익
102억 9419만 원 (2019년 연간)
그룹
매경미디어그룹
최대주주
(재)정진기언론문화재단 (지분 46.5%)
홈페이지
www.mk.co.kr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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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링크[3]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매경5F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매경 월가월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매부리TV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매경 자이앤트TV
구독자[A]
매경5F 1400명
매경 월가월부 15.2만 명
매부리TV 22.1만 명
매경 자이앤트TV 14.9만 명

1. 개요
2. 사시
3. 사옥
4. 지배 구조
5. 역사
6. 특징
7. 제휴 신문사
8.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
9. 주관 대회 및 행사
10. 계열사
11. 논란 및 사건사고
12. 여담
13. 관련 문서
14. 역대 임원
14.1. 회장
14.2. 부회장
14.3. 사장
14.4. 부사장
14.5. 전무
15. 역대 법정등록인
15.1. 발행인
15.2. 편집인
15.3. 인쇄인
16. 역대 주요 간부
16.1. 주필
16.2. 논설주간
16.3. 편집국장



1. 개요[편집]


한국의 경제신문. 언론인 정진기가[4] 1966년 3월 24일 창간했다. 발행부수는 70만 부, 유료부수는 55만 부로 경제신문으로서는 최다이다.[5] 약칭은 매경이다. 정식 영어 명칭으로는 Maeil Business Newspaper를 쓰는데 영어 약칭은 MK[6]를 쓴다. 대주주는 정진기언론문화재단이다.

한국경제신문과는 라이벌 관계다. 가끔씩 매일경제-한국경제가 서로 디스하는 기사(주로 기자 수기의 형태로)가 나온다.

자회사로는 종합편성채널 MBN케이블방송채널 MBN플러스, 매일경제TV를 운영하는 매일방송, 매경닷컴 등이 있다. 한국경제가 경제이해도 시험인 TESAT으로 선수를 치자 매일경제에서도 매경TEST라는 것을 치른다. 일본 닛케이신문의 닛케이TEST를 본따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에서 공동으로 시험을 만들기로 했는데, 한국경제에서 중간에 나와 TESAT을 만드는 뒤통수를 시전한 것이다.[7] 매일경제의 규모가 한국경제보다 커서 각종 지원이 좋고 홍보 면에서 더 앞서나가 매경TEST가 TESAT보다 응시자 수가 약 1.5~2배 많다.[8]

영문판은 Pulse라는 별개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2. 사시[편집]


신의성실한 보도
부의 균형화 실현
기술 개발의 선봉
기업 육성의 지침


3. 사옥[편집]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매경미디어센터. 현 사옥이다.


4. 지배 구조[편집]


지분 순위
주주
지분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재)정진기언론문화재단
46.5%
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대환
4.22%
3
기타
49.28%
출처


5. 역사[편집]



파일:매일경제창간호.jpg

창간호의 모습.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사진을 메인에 실었다.

언론인 정진기가 대한민국 경제의 자립과 번영의 길잡이를 목표로 설립, 창간하였으며, 1966년 3월 24일 정진기가 발행·편집 겸 인쇄인, 김기영이 편집국장을 맡아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50번지에서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하였다.

창업주 정진기는 1929년 생이며 전남 나주 출신으로, 해방 이후 잠깐 국민학교 교사 생활도 하다가 매일경제신문을 창간하기 전 평화신문사, 서울경제, 대한일보, 일요신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기자 생활을 하면서 못다한 학업을 계속하여 국학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정진기는 창간하기 전인 1965년 10월부터 수습기자 모집광고를 내고 모집을 시작했는데, 당시 400여 명이 지원해 23명이 수습기자 1기로 채용되었으며, 정진기는 신문도 아직 없는 상태에서 자신만 믿고 지원해 준 1기생들이 고마워서 중간에 나간 사람을 빼고는 모두 국장급 이상으로 승진시켜 줬다고 한다.

창간 초기에는 1일 4면(창간호는 8면)으로 발행했으며, 월 구독료는 100원이었다. 경제신문답게 창간호부터 증권시세표와 생활물가시세표를 게재했다. 17개의 상장회사와 207개의 품목들을 시작으로 점차 늘려나갔다.

1967년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소비자 보호'라는 개념으로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투표하여 우수 상품들을 선정하는 제1회 봉황대상을 제정하였고, 국내 언론사 최초로 소비자 보호 운동을 전개하여 42차에 걸쳐 지상캠페인을 펼쳤다.

1976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필동에 새 사옥을 지어 이전하였다. 1977년에는 한국 신문사 최초로 편집국 증권부를 신설했다.

1979년 2차 오일 쇼크가 와서 경제가 어려울 때 정진기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매지로 경제 주간지인 '주간매경'[9]을 창간했다.

1981년 창업주 정진기가 타계했는데, 그는 타계 직전 언론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유언을 남겨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의 80%를 언론문화재단에, 20%를 사우회에 넘김으로써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신문사를 사회와 사원에 환원하였다.

정진기의 뒤를 이어 나병하가 2대 사장에 올랐다.

매일경제는 골프대회에 관심을 많이 두어서 1982년에 한국 언론사 최초로 매경오픈이라는 국제골프대회를 개최했고 1987년에는 제1회 한국여자오픈골프 선수권 대회를 후원했다.

1984년에 한국 신문사 최초로 편집국 과학기술부를 신설했다. 첨단산업과 국제 경제용어를 망라한 경제신어사전을 같은해 출판했다.

1988년 창업주 정진기의 사위인 장대환(당시 전무이사)이 사장에 올랐다.

1988년 국내 최초의 전자신문인 MEET를 서비스했다.

경제가 발전하여 중산층이 늘어나는 시대에 발맞춰 1990년 '시티라이프'라는 생활문화정보지를 창간했다. 격주로 발간되었으며, 연극, 음악, 여행, 영화, 미술 같은 문화와 레저를 다루는 매체였다.

1992년에는 산업안전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산업재해 예방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사람들과 기업들을 무재해운동에 동참시켰다.

1993년 조간으로 전환했으며, 1996년에는 제호를 '매일경제신문'에서 '매일경제'로 바꾸고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했다.

2000년에 지금의 매경미디어센터를 완공하고 사옥을 옮겼다.

2002년 11월 말~12월 초에 걸쳐 한국의 노조 문제를 공론화하며 비판한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 시리즈를 내보냈다. 권력화된 귀족노조들의 실상과 비리를 파헤치며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는데 이에 대해 노동계는 '자본의 앞잡이'라며 매일경제를 공격했고 그 중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게 매일경제 본사 편집국이 점거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 MBN이 개국했다.


6. 특징[편집]


기본적 우파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론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친민주통합당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으며[10], 2014년 당시 아베노믹스와 근혜노믹스를 비교하며 박근혜 정부를 은연중에 디스하는 등 정치적 극우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친기업 혹은 친재벌적인 극우 스타일이며, "대한민국 경제 10적" 시리즈, 상단 댓글 등에서도 이런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다수의 재벌들이 대주주로 있는 한국경제신문과 다르게 재벌들과의 직접적 연관은 적은 편이다.[11] 애초에 호남 출신 언론인 정진기가 창업한 신문사이기도 하고[12], 그래서인지 정진기의 사위이자 영남 출신인 장대환 회장은 국민의 정부 말기에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땅 투기 등 재산 형성 과정에 실정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서 임명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세계지식포럼을 개최하는데 이 포럼에 폴 크루그먼, 앨런 그린스펀, 조셉 스티글리츠, 2016년에는 토마 피케티를 비롯하여 여러 거장들이 참석해 오고 있다.


7. 제휴 신문사[편집]




8.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편집]




9. 주관 대회 및 행사[편집]


  • 세계지식포럼
  • 정진기언론문화상
  • GS칼텍스배 프로기전
  • 매경오픈골프
  • 매경아마추어골프
  • 매경대상경륜
  • 세계한상대회


10. 계열사[편집]


  • MBN
  • 매일경제TV
  • 매경닷컴
  • 매경출판
  • 매경부동산사업단
  • THE BIZ
  • m-print


11.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 2010년대 초중반에 매일경제와 MBN 모두 네이버에서 제목으로 낚시질 하는 기사를 자주 올렸다.관련기사1 관련기사2 특히 매일경제의 디지털 뉴스부인 '매경닷컴'의 경우에는 낚시질 제목을 통한 클릭 장사로 유명했다. 심지어 황수관 박사,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진짜 사인은 따로 있었다'는 식으로 악랄한 고인드립을 쳤다. 1 2 그 악명에 걸맞게 충격 고로케 개설 이후 줄곧 낚시기사 상위권을 굳건히 지켰다.

  • 삼성 장충기 문자 청탁 사건 때 매일경제에서도 2015년 7월 삼성 출입 기자였던 김대영 매일경제 유통경제부장이 장 전 차장에게 “서양원 국장이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밝혀졌다.#

  • 2016년 5월 1일자 인터넷판에 게재되었던 'Mr.존슨의 밤의 동화'라는 기사가 만취한 여성과 동의 없이 섹스를 하는 행위를 여성을 유혹하는 기법으로 포장했다며 논란이 되었다.[13] 기사가 나가자 항의가 빗발쳤고 이에 매일경제 측은 문제가 된 기사를 내린 뒤 사과문을 올렸다.

  • 경제 토론, 대담회, 석학 초청 행사 자주 여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에게 협찬비나 참가비를 뜯어낸다고 한다. 실제 이런 각종 언론사 주최 컨퍼런스를 통한 협찬 장사는 언론사, 특히 경제신문에서 심각한데, 단적으로 어느 경제신문사 부장급 기자가 "협찬을 안 하는 경우 기자들에게 속된 말로 조지라고 한다. 그러면 돈이 나온다", "협찬이 오면 추가 취재를 중단하고, 협찬 금액이 많을 경우에는 (기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기사를 날려버린다"고 증언했을 정도다.#

  • 2022년 11월 3일,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지도자의 키에 따라서 똑같이 오르내렸다는 황당무계한 기사를 냈다.#


12. 여담[편집]




  • 2022년 11월 1일 새 CMS 도입과 함께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하면서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던 기존 홈페이지가 대폭 개선되었다. 로그인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서인지 2023년 4월 18일부터는 로그인월을 도입하였다.

13. 관련 문서[편집]




14. 역대 임원[편집]



14.1. 회장[편집]


  • 나병하 (1985.10 ~ 1988.6)
  • 김재봉 (1988.6 ~ 1990)
  • 장대환[14] (대표이사, 2003.11 ~ 현재)


14.2. 부회장[편집]


  • 이서하 (1988.6 ~ 1988)
  • 이유상 (2012.1 ~ 2021.12)
  • 장승준 (대표이사, 2022.1 ~ 현재)


14.3. 사장[편집]


  • 정진기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66.3 ~ 1981.7)
  • 나병하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81.7 ~ 1985.10)
  • 김재봉 (대표이사 · 발행인, 1985.10 ~ 1987.7/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87.7 ~ 1988.6)
  • 장대환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88.6 ~ 2002/대표이사, 2002.9 ~ 2003.11)
  • 장승준 (대표이사, 2020.9 ~ 2021.12)


14.4. 부사장[편집]


  • 이서하 (1985.10 ~ 1988.6)
  • 정태성 (편집인, 1995.2 ~ 1996.11)
  • 장용성 (대표이사, 2012.1 ~ 2014.2)
  • 장승준 (2014.2 ~ 2020.9)
  • 손현덕 (주필, 2022.1 ~ 현재)


14.5. 전무[편집]


  • 나병하 (신문제작총국장, 1977.3 ~ 1978.8/광고국장 직무대리, 1978.8 ~ 1981.7)
  • 이서하 (1981.7 ~ 1985.10)
  • 김재봉 (주필, 1983.3 ~ 1985.10)
  • 장대환 (1988.3 ~ 1988.6)
  • 정태성 (편집인, 1989.9 ~ 1995.2)
  • 이유상, 이정근 (대표이사, 2002.8 ~ 2002.9)
  • 손현덕 (대표이사, 2018.9 ~ 2020.9/주필, 2020.9 ~ 2021.12)
  • 서양원 (편집담당 · 세지포 총괄, 2020.9 ~ 2021.12/대표이사, 2022.1 ~ 현재)


15. 역대 법정등록인[편집]



15.1. 발행인[편집]


  • 정진기 (1966.3 ~ 1981.7)
  • 나병하 (1981.7 ~ 1985.10)
  • 김재봉 (1985.10 ~ 1988.6)
  • 장대환 (1988.6 ~ ?)


15.2. 편집인[편집]


  • 정진기 (1966.3 ~ 1981.7)
  • 나병하 (1981.7 ~ 1985.10)
  • 정태성 (1985.10 ~ ?)


15.3. 인쇄인[편집]


  • 정진기 (1966.3 ~ 1981.7)
  • 나병하 (1981.7 ~ 1985.10)
  • 한병걸 (1985.10 ~ 1987.7)
  • 김재봉 (1987.7 ~ 1988.6)
  • 장대환 (1988.6 ~ ?)


16. 역대 주요 간부[편집]



16.1. 주필[편집]


  • 김재봉 (1981.7 ~ 1985.10)
  • 정태성 (1985.10 ~ 1988.6)
  • 배병휴 (1996.11 ~ ?)
  • 손현덕 (2020.9 ~ 현재)


16.2. 논설주간[편집]


  • 정태성 (1983.4 ~ 1985.10)
  • 배병휴 (1988.6 ~ 1989.3/1991.2)
  • 김광삼 (1989.3 ~ 1989)


16.3. 편집국장[편집]


  • 김기영 (1966.3 ~ 1969.12)
  • 문형선 (1970.3 ~ 1971.5)
  • 나병하 (1971.5 ~ 1977.3)
  • 김재봉 (1977.3 ~ 1981.7)
  • 정태성 (1981.7 ~ 1983.3)
  • 김상희 (1983.4 ~ 1984.3)
  • 백인호 (1984.4 ~ 1986.3)
  • 김광삼 (1986.4 ~ 1987.10/1988.6 ~ 1989.3)
  • 조장호 (1987.10 ~ 1988.6)
  • 배병휴 (1989.3 ~ 1991.2)
  • 전정만 (1991.2 ~ 1992.9)
  • 장병창 (1992.9 ~ 1994)
  • 이정근 (1994 ~ 1996.11)
  • 김민홍 (1996.11 ~ 1998)
  • 김진수 (1998~2001)
  • 권대우 (2001~2002)
  • 장용성 (2002~2004)
  • 한명규 (2004~2007)
  • 김세형 (2007~2008)
  • 조현재 (2008~2010)
  • 박재현 (2010~2012)
  • 전병준 (2012~2014)
  • 손현덕 (2014~2016)
  • 서양원 (2016.9 ~ 2018.9)
  • 김정욱 (2018.9 ~ 2020.9)
  • 김명수 (2020.9 ~ 2022.10)
  • 이진우 (2022.10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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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 사옥의 간판 밑에 MBN 뉴스8의 광고와 매일경제 로고가 있는 걸 보아하니, 둘 다 쓰는 것 같다.[2] 현 사옥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매일경제신문 구 사옥이 있다.[1] 디지털미디어시티로의 이전 떡밥이 끊이질 않는다. 원래는 삼송지구로 이전하려 했으나, 삼송지구에 매입해 뒀던 부지는 도로 매각했다.[3] 매경 월가월부는 미국 주식 관련 채널이고, 매부리TV는 부동산 관련 채널이고, 매경 자이앤트TV는 국내(?) 주식 관련 채널이다. 그런데 자이앤트TV에도 미국 주식 영상이 올라오고 매부리TV에도 주식 영상이 올라오는 등 채널별 역할 분리가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매경5F는 매경 전체의 공식채널인 것으로 보인다.[A] 2022년 4월 22일 기준[4] 1929~1981. 호는 청운(靑雲). 전라남도 나주 출생. 교사 경력도 있다. 국학대학 출신.[5] 대학생에게는 구독료를 정가의 50%인 7500원에 판매해 경제이슈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취준생들이 많이 본다. 매경TEST가 TESAT보다 응시자 수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6] MaeKyung[7] 매경TEST의 출제 교수와 담당 신문사 직원에게 직접 들은 사실이다.[8] 매경TEST의 응시자 수는 회당 약 5천 명인 데 반해, TESAT은 약 3천 명이다. 1년에 4회 치르니 연간 응시자 수는 각각 2만 명과 1만 2천 명 정도다.[9] 현 매경ECONOMY.[10] 이후에도 매경 방송사인 MBN은 기울어진 종편 환경(JTBC는 좀 더 진보 성향, 채널a, tv조선은 좀 더 보수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일구처럼 친민주 성향 앵커를 뉴스에 기용하는 등 중도~중도좌파적 스탠스를 보이기도 했다.[11] 한국경제신문은 현대자동차, LG, SK텔레콤 등 다수의 재벌들이 대주주로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12] 이런 점에선 동아일보와도 유사점이 있다.[13] 문제가 된 기사에서는 주인공이 연예인을 닮은 얼굴로 성형수술을 한 뒤 부킹으로 만난 여성이 만취상태가 되어 거부나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는 것을 일종의 '작업 스킬'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엄연히 강간 내지는 준강간 혐의가 적용되는 범죄다.[14] 전 공군참모총장 장지량의 장남. 매경미디어 회장.